태그 : ETP
2008/07/18   2008 록페스티벌 예습서: 달리자, 여름으로 [14]
2008 록페스티벌 예습서: 달리자, 여름으로
여름만 기다렸다. 록 페스티벌의 계절인 덕이다. 여느 때 보다 더 기다렸다. 참으로 괴로운 4개월을 보낸 탓이다. 4년 같은 시간이었다. 연말에나 느낄 법한 피로의 나날이었다. 기억속에나 있는 분노의 재림이었다. 그렇게 여름까지 왔다.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승리는 없어도, 저들은 여전히 굳건히 오만과 전횡의 통치를 하고 있어도, 여름은 왔다. 록 페스티벌, 그 청춘의 해방구가 다시 열리려 한다. 지난 해까지의 화두는 오직 하나, 인천펜타포트록페스티벌이었다. 올해는 다르다. ETP페스티벌과 썸머브리즈가 경쟁상대가 됐다. 여느 때 보다 더 풍부한, 록 페스티벌의 계절이다.



우선 펜타포트부터 얘기하는 것이 순리겠지. 무수한 소문이 돌아다녔다. 신빙성없는 카더라 통신과 '핵심 관계자'의 입을 빌린 꽤 그럴싸한 정보가 메신저를 타고 퍼졌다. 4월 1일 만우절에는 라디오헤드, 콜드플레이, 메탈리카 등의 이름이 적힌 환상의 포스터가 삽시간에 퍼졌다. 그 무수한 풍문의 숲위로, 공식 라인업의 봉화가 몇 번에 걸쳐 피어 올랐다. 라인업이 완성됐다. 지난해에 비해 선택과 집중의 흔적이 보이는 라인업이다.

우선 영국 뮤지션들이 주된 라인업을 이룬다. 각각 26, 27일의 대미를 장식하는 트래비스와 언더월드가 우선 그렇다. 포스트 라디오헤드 시대의 총아로, <The Man Who> <The Invisible Band>등, 듣기도 좋고 따라부르기도 좋은 다수의 히트곡을 보유한 트래비스는 어찌 보면 록 페스티벌 덕에 스타덤에 인증도장을 찍은 밴드다. 1999년 발표된 그들의 2집 <The Man Who>는 영국 앨범 차트 2위까지 오른 후 하향세를 타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해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서 드라마틱한 일이 일어났다. 그들이 무대에 오르고 이 앨범에 담긴 'Why does it always rain on me?'를 부르자 하늘에서 정말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에서 이런 장면이 나온다면 픽, 웃을 테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이니 화제가 된건 당연지사. 그리하여 <The Man Who>는 다시 차트 1위에 올랐다. 이번 펜타포트에서도 그런 드라마를 기대할 수 있을까.

런던 일렉트릭시티, 트리키와 더불어 이번 라인업의 일렉트로니카 3인방으로 정리할 수 있는 언더월드는 국내에서도 영화 <트레인스포팅>에 수록된 'Born Slippy'로 메가히트를 기록했던 팀이다. 지난 해 케미컬 브라더스가 보여줬던, 마리화나 근처에도 가지 않아도 LSD를 한 듯한 공감각적 초월의 경지를 언더월드도 당연히 보여줄 것이다. 특히 영국을 대표하는 디자인 그룹 토마토가 함께 내한, 긍극의 비주얼 퍼포먼스를 언더월드의 음악에 덧입힌다고 하니 한층 더 기대해도 좋겠다. 그들을 뒷받침해줄 서브헤드라이너급의 팀들도 대부분 영국 뮤지션이다. 헤드라이너급을 제외하고는 만족도가 그리 높지 못했던 지난해와는 달리, 올해의 서브헤드라이너들은 더없이 쟁쟁하다. 더 뮤직, 고! 팀, 카사비안, 피더, 가십 등등. 펜타포트가 아니고서는 결코 국내에서 만나지 못했을 게 틀림없는, 바야흐로 록계의 가장 핫한 밴드들이 대거 인천을 찾는 것이다. '바로 지금의 음악'을 만나고 싶다면 올해 펜타포트는 120%의 만족감을 선사하리라.

음악팬들이 가장 기다렸던 건 바로 첫 날의 헤드라이너였다. 진작 발표된 둘째날, 세째날의 헤드라이너와는 달리 이 자리는 오랫동안 공석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뚜껑이 열렸다. 한일 양국을 대표하는 펑크 밴드, 엘르가든과 크라잉 넛이 공동헤드라이너로 선정됐다. 2006년 월드컵 때 뻔질나게 방영된 은행 CF에 'Make A Wish'가 삽입되며 많은 인기를 모았던 엘르가든은 일본 뿐만 아니라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몇 차례 내한공연을 가졌었고, 그 때 마다 더 큰 공연장에서 더 많은 관객을 모아왔다. 상대적으로 국내팀에 대한 관심이 약해질 수 밖에 없는 펜타포트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지난 해 왠만한 외국 뮤지션보다 더 관객을 사로잡았던 크라잉 넛과 엘르가든의 진검승부에서 누가 우세승을 차지할 것인지를 지켜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다.

국내 라인업도 지난해와는 차별화된 분위기가 엿보인다. 델리 스파이스, 이한철 등이 상대적으로 모던록에 집중하겠다는 펜타포트측의 입장을 대변한다면, 그 외의 라인업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국내 록계의 흐름을 잘 보여주는 편이다. 문샤이너스, 갤럭시 익스프레스, 로로스 등 최근 애호가들 사이에서 검색순위 급상승을 보였던 팀들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펜타포트와 EBS스페이스 공감, 문화관광부가 함께 하는 프로젝트인 '헬로 루키'를 통해 배출된 신예 9팀도 매일 오후에 무대에 오른다. 슈게이징부터 펑크까지, 장르도 다양하다. 한국에 이런 음악을 하는 팀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하는 감탄을 선사할 것이다.

어느 록 페스티벌이든 마찬가지겠지만, 펜타포트에서 계속 지적되온 사항이 편의시설 부족. 특히 여자들의 경우는 화장실을 한 번 가려면 20분씩 기다려야했다. 두번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여자 화장실도 대폭 증설하고 그 외 음식이나 세면시설 등도 확충한다고 하니 올해는 좀 더 쾌적하게 페스티벌을 즐길 수 있을듯 하다. 하지만 호텔급의 안락함을 원한다면 그냥 호텔로 가라. 그야말로 사서 고생해도 즐거운 게 광야에 세워진 페스티벌의 무대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땡볕 또는 폭우가 두렵다면, 야외에서의 3일이 부담된다면 올해는 도심형 페스티벌도 있다. 서태지 컴백과 함께 펼쳐지는 ETP페스티벌과 일본의 서머소닉 페스티벌 라인업이 대거 참가하는 썸머브리즈다. 8월 14일과 15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리는 ETP페스티벌은 당연하게도 서태지를 주인공으로 해서 역시 많은 국내외 뮤지션이 참가한다. 아무래도 관심이 가는 건 해외참가팀일터. 어느 나라 대통령과 일란성 쌍생아로 추측되는 마릴린 맨슨과 인디 록 애호가들 사이에서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데스 캡 포 큐티가 우선 눈에 띈다. 그 외 서태지와의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진 드래곤 애시, 미국 펑크 밴드인 더 유즈등도 참가한다. 국내 최강의 열혈 팬덤을 거느린 서태지가 주축이 되는 페스티벌인만큼 매진예상은 당연지사. 펜타포트가 후지록페스티벌과 제휴하고 있다면, 8월 7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썸머브리즈는 서머소닉과 제휴관계다. 90년대 일렉트로니카를 대표하는 프로디지가 헤드라이너로 참가하며 그 외의 라인업은 서머소닉의 라인업에 비하면 다소 약한편이라 아쉽다. 패닉! 앳 더 디스코, 뉴 파운드 글로리, 로스트 프로피츠같은 이모성향의 팀이 그 쪽 애호가들의 구미를 당길만하지만 콜드플레이, 섹스피스톨즈, 버브 등 그야말로 '하악하악'한 서머소닉에 비하면 왠지 김이 빠진다는 걸 부인하기 힘들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서머소닉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상륙한다고 하니, 올해는 전초전쯤으로 생각해도 좋을듯 하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미뤄 보건데, 세계 최강의 자양강장제는 록페스티벌이다. 비가 와도 좋고 뙤약볓 내려쬐도 좋다. 끝없이 울려 퍼지는 음악과 함께 하루를 보내면 복날을 따로 챙길 필요가 없다. 똑같이 인파에 치일지라도, 피서지의 인파와 페스티벌의 인파는 지옥과 천국만큼이나 아득한 차이가 있다. 그들과 어울려 소요하고 오수를 즐기자. 점프하고 슬램하자. 뒤엉키고 잔을 부딪히자. 지난 6월 밤마다 서울 도심에서 느낄 수 있었던 모든 감정들 중 비장과 분노를 제외한 모든 좋은 감정들, 취향의 연대와 감동의 일체감이 인천송도에서 잠실에서 여름내내 밀려올 것이다. 한 해의 나머지를 버텨낼 수 있는 벅찬 에너지가 신비롭게 채워질 것이다. 감동적이고 황홀하게 신경세포에 퍼질 것이다. 단언한다. 영화도, 미술도, 다른 어떤 예술도 만들 수 없는 음악만의 힘이다. 그 힘을 믿자. 믿는 순간 우리는 다시금 스무살이 되리니.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시사인 원고
by 김작가 | 2008/07/18 12:28 | 스토리 | 트랙백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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