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조윤석
2007/11/23   루시드 폴은 다시 노래한다 [26]
루시드 폴은 다시 노래한다


2006년 9월 23일 새벽, 부산 앞바다에서 익사 사고가 일어났다. 고인의 이름은 김정찬. 향년 33세. 강원도에 있는 고등학교 교사였던 그에게는 17년 지기가 있었다. 그 친구는 음악을 했다. 이름은 조윤석. 루시드 폴이란 이름으로 더 알려졌다. 사고 후 약 20일이 지난 10월 12일, 루시드 폴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노래 가사를 하나 올렸다. '노래할 게'라는 제목으로 몇 시간만에 만든 곡이었다. 스위스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과학도이기도 한 조윤석은 유학 생활이 끝나기 전에는 앨범을 낼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런 그에게 다시 노래할 결심을 하게 한 건 친구의 돌연한 죽음이었다. 그는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남겼다. "망치로 한 대 맞은 듯이 정신차리고, 노래 많이 쓰렵니다. (중략) 정찬이가 노래를 하고 싶다면, 내 목으로 같이 노래하고 기타치고 그러렵니다. 옛날에 고등학교 때 우리가 그랬듯이요." '곡: 윤석 + 정찬, 사: 윤석', 이라는 크레디트가 이 노래에 달렸다. 루시드 폴의 세번째 앨범 <국경의 밤>은 그렇게 출발했다. 

<국경의 밤>이라는 제목은 고국과 외국의 사이, 음악인과 과학자 사이, 언더와 오버 사이에 있는 경계인 같다는 생각에서 지었다고 한다. 루시드 폴의 인생이 늘 국경에 있었다. 부산 출신인 그는 인디 신 초창기 홍대앞에서 레이니 선, 앤, 피아 등 부산 출신 밴드들이 끈끈한 정으로 뭉쳐 활동할 때, 부산 커뮤니티에 속해 있지 않았다. 그가 음악을 처음에 시작한 건 홍대앞이 아닌 서울대앞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인 1993년에는 유재하 가요제에서 동상을 받았지만 주류 음악계에 그가 설 곳은 없었다. 심지어 대학가요제에서는 예선 탈락의 고배도 마셨다. 조윤석의 1998년 데뷔작인 밴드 미선이의 앨범은 주류도 아니고 비주류도 아닌 음악을 담고 있었다. 주류는 아이돌 그룹의 천하였다. 인디에서는 펑크와 하드코어가 대세였다. 델리 스파이스나 언니네 이발관과는 또 다른 미선이의 음악은 모던록에서도 비주류였다. 그러나 그 해 음악잡지 '서브'에서 실시한 독자 투표에서 이 앨범은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불러 일으켰다. 그건 그가 서있던 국경이 단절과 소외가 아닌, 이음과 계승에 있기 때문이었다. 80년대부터 면면히 이어져온 포크의 감성과 진솔한 가사를 미선이가, 조윤석이 드러낸 것이다. 

방위산업체에 복무하던 시절 내놓은 루시드 폴의 1집은 그런 감성을 더욱 잘 드러내고 있었다. 시인과 촌장, 박학기, 유재하 등에서 출발해 윤상과 토이 등으로 이어지는 계보. 루시드 폴은 오랫만에 등장한 감성의 싱어송라이터였다. 한국 인디 씬이 내놓은 첫번째 포크 앨범이기도 했다. 2001년 발매된 이 앨범은 미선이 못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방송 출연 한번 하지 않았지만, 공연 조차 그리 많이 하지 않았지만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팔려나갔다. 뭔가 벌어질 것만 같았던, 하지만 별거 벌어지지 않았던 90년대의 열기가 남긴 어떤 상처가 있었다. 그 열기안에 있지 않았던 소외된 이들은 계속 은둔했다. 그 상처와 은둔을 루시드 폴은 개인의 언어로 노래했다. 그러나 공감의 잔향을 퍼뜨리는 언어였다. 나즈막한 목소리로 나일론 줄을 뜯으며, 오보에 같은 겸손한 악기들의 도움을 받아 루시드 폴은 그렇게 조용히 감성적 음악을 찾는 이들의 마음에 자리를 잡았다.  이듬해에는 <버스 정류장>의 영화 음악을 맡아 그의 이름을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알렸다. 어쩌면 작은 스타가 될 수도 있는, 그런 조짐이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조윤석이 전한 다음 뉴스는 새 앨범이 아닌 유학이었다. 소속사로 부터 받은 상처가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새로운 도전이라기보다는 또다른 도피였다. 방구석에서 노래를 만들고 부르던 75년생 물고기자리의 경계인은 그렇게 스웨덴으로 헤엄쳐가고 스위스로 흘러갔다. 한국에 있는 음악 친구들과 계속 교류했고 유희열이 속해있는 토이 뮤직에 둥지를 틀며 음악을 계속 했다. 2005년 루시드 폴의 두번째 앨범 <오, 사랑>을 내놨다. '물이 되는 꿈' '들꽃을 보라' '할머니의 마음은 바다처럼 넓어라'등 여전히 주옥같은 트랙을 담고 있는 앨범이었지만 약간의 찬반양론을 불러 일으켰다. 평생 사랑을 숨길 것 같았던 그가 사랑을 정면에 내걸었다. 1집에서 빛나던 아마추어리즘은 함춘호, 김광민, 유희열 등이 세션으로 참여하며 고급화됐다. '참 어렵지/ 사는 것/ 내 뜻대로 원하며, 사는 것/' ('들꽃을 보라')같은 언어는 '내 맘이 보이나요?/이렇게 숨기고 있는데./ 내 맘이 보인다면,/그대도 숨기나요?'('보이나요?')와 충돌하며 미묘한 이질감을 만들어냈다. 당시 한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변했다"며 지난 시간, 자신이 머물러있지 않았음을 밝혔지만 이 앨범에 아쉬움을 보였던 건 변해온 길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일기쓰듯 가사쓰고 독백하듯 노래하는 뮤지션이었으니까. 미처 보지 못한 일기에 대한 독자들의 아쉬움이었달까.

다분히 개인사에서 출발한, 자칫 먼 훗날 다른 모습으로 만날뻔 했던 <국경의 밤>은 그러나 그 아쉬움을 모두 달래주고도 남는다. 가을과 겨울의 경계에 찾아온 이 앨범에서 뮤지션과 과학자, 고국과 외국, 언더와 오버의 국경은 무의미하다. 다만 그가 살고 있는 곳, 그가 그리워하는 곳, 그가 바라보는 곳에 대한 모든 이야기가 담겨있을 뿐이다. 그는 올해 초, 이 앨범의 레코딩 세션을 하며 연주자들에게 반복을 시키지 않았다. 두 세번 연주하고 느낌이 오면 다소 모자라도 그대로 갔다. 노래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과도한 연습으로 순수함이 사라지기 전의 느낌을 담아냈다. 완벽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그래서 더 매력적인 감성을 그대로 담아낸 것이다. 미선이와 <버스정류장>, 그리고 루시드 폴의 1집과 2집이 모두 느껴지는 루시드 폴, 혹은 조윤석의 현재완료형 음악이 <국경의 밤>을 관통한다. 얼마전 스위스화학회에서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다는 가십을 가벼이 압도하는 깊이와 서정이 심해의 물처럼 흐른다.

그는 고국의 친구들을 그리워하고, 가족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고, 치열한 삶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이에 더하여 세상을 이야기한다. 미선이의 앨범에서 이미 보수신문들에 대한 짜증을 '치질'이란 곡을 통해 노래했던 그였다. 그의 눈은 더욱 넓어졌다. 사유는 깊어졌다. 루시드 폴은 '사람이었네'에서 자본과 세계화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제 3세계에 대한 착취를, 'kid'에서 차별과 폭력을 노래한다. 뜨거운 소재다. 하지만 그는 더없이 담담하다. 격하되 차갑고 치열하되 아름답다. 그래서 그의 메시지는 어떤 선동의 구호나 도구화된 음악도 전할 수 없는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카에타노 벨로소, 메르세데스 소사 등 그가 심취했던 제 3세계 저항 뮤지션들과 마찬가지로. 음악과 메시지가 얼마나 아름답게 만날 수 있는지, 우리는 김민기나 한대수의 옛 음반이 아닌 지금 여기의 음반에서도 느끼게 된다. 

들을 음악이 없다고 그토록 목놓아 외치던 대중들이 이런 음악을 외면하면, 한국 대중음악의 미래는 없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국경의 밤>은 발매 닷새가 채 되기도 전에 초판이 모두 팔렸다. 아직 스위스에 있는 루시드 폴은  오는 12월 22일부터 25일까지의 공연을 위해 한국에 들어온다. <국경의 밤>을 들으면 혼자서 일기를 쓰고 싶어진다. 공연을 보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질 것 같다. 꽁꽁 숨겨뒀던 마음의 이야기를, 루시드 폴이 꺼집어낸다.

시사IN 원고

열 다섯 대의 담배를 피워가며 밤을 새워 쓰다.


사람이었네 (extanded version)
by 김작가 | 2007/11/23 06:45 | 스토리 | 트랙백 | 덧글(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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