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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3   제프 버클리 <Grace Around The World> [10]
제프 버클리 <Grace Around The World>



기술의 발전은 음악 팬들을 행복하게 해왔다. 레코딩 테크놀로지의 역사는 더 좋은 소리를 우리에게 듣게 해줬다. 영상 테크놀로지가 발달할 수록, 우리는 '그 때 그 곳'을 '지금 이 곳'으로 느낄 수 있게 됐다. 녹음과 영상이 결합한 공연 실황은 기술 발전의 수혜를 가장 크게 입은 영역이다. 덕분에 우리는 5.1채널 사운드에 HD영상으로 그 때 그 곳을 더욱 생생하게 지금 이 곳으로 옮기게 된다. 그러나 그 때 그 곳이, 이식될 준비를 채 하지 못했던 상태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일지라도 한계가 있다. 제프 버클리 역시 그런 준비를 하지 못했다. 아니, 미처 남기지 못했다. 마음만 먹으면 당대의 섹시 아이콘이자 록 스타가 될 수도 있었던 그는, 채 그 자리에 발을 딛기도 전에 멤피스의 울프 강에 휩쓸려 사라졌기 때문이다. <Grace>가 발매된 지 15년이 지난 지금, 그의 목소리만이 세상을 부유하고 있을 뿐이다. 끝나지 않을 여행의 길을 잿빛 먼지처럼 흩날리며. 

<Grace>는 시대의 트렌드에서 비껴 나있는 작품이었다. 그 해 4월, 커트 코베인이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쏘아 록의 제단에 스스로를 제물로 바친 후 얼터너티브는 90년대와 등치를 이루는 단어가 되버렸다. 하지만 <Grace>는 그런지, 네오 펑크, 컬리지 록, 인더스트리얼 등 마치 기다렸다는 듯 90년대를 휩쓸며 등장한 그 어떤 장르안에도 속해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세월이 바뀌거나 말거나 무난한 곳에서 무난하게 머물러있는 이지 리스닝 또한 아니었다. 진공 청소기로 카페트를 밀며 'Lilac Wine' 같은 노래를 누가 들을 수 있단 말인가. 팝도 록도, 그리고 그 아래 존재하는 수많은 범주로도 묶을 수 없는 요상한 앨범이 바로 <Grace>였다. 그러나 요상한 음악이었다. 음악을 들은 누구나 취향을 뛰어넘어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는 음악이었다. 그리고 어디에도 들어맞지 않으되, 어디에나 들어맞는 음악이기도 했다. 적어도 그의 목소리와 그의 멜로디가 필요한 바로 그 곳이라면 어디에나. 그렇지 않다면, 'Halleluja'가 미국 드라마에 그리 자주 등장하는 일도 없었을 테고, 그 때 마다 차트에 제프 버클리의 이름이 등장하곤 하는 일도 없으리라.

그의 목소리를 이토록 신묘하게 만든 건 무명 시절의 환경 덕이었다. 팀 버클리라는 걸출한 아티스트의 2세로 태어났으나, 아버지로부터는 어떤 영향도 받지 못했던 제프 버클리였지만 어쨌든 뮤지션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다.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한 어머니는 어린 제프가 음악과 친해질 수 있도록 생활을 통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의 첫 장난감은 음악이었고 그의 첫 취미도 음악이었다. 뮤지션이 되는 건 운명이나 마찬가지였다.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기타 한 대 들고 뉴욕으로 건너가 뮤지션이 됐다. 클럽도 아닌 카페에서 음악을 시작했다. 카페란 음악을 듣기 위해 오는 공간이 아니다. 하물며 길 모퉁이 마다 거리의 악사들이 있고 오래된 클럽이 사라져도 눈 깜짝하지 않는 뉴욕의 카페다. 누가 연주를 하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고 각자의 이야기를 한다. 온갖 기계들은 각자의 기능에 충실하며 온갖 소음을 낸다. 제프 버클리는 그곳을 장악해야 했다. 기계의 소음을 덮어야 했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음악에 귀기울이게 해야 했다. "공간 안의 모든 것을 음악으로 바꾸는 법을 배우게 됐다.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음악을 맞췄던 거다. 사람들이 떠들면 그저 떠들도록 나뒀다. 사람들도 음악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었다. 작은 카페의 식기 세척기가 내는 소음도 배웠다. B단조로 연주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식기 세척기 소음 때문에 사운드를 낼 수 없었다." 신에, 페즈 등의 카페에서 공연하던 제프 버클리는 그렇게 공간과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대화를 장악할 수 있었다. 소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 주변의 모든 것을 블랙홀 처럼 빨아들여 성대로 토해 내는, 화이트홀 같은 그의 목소리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런 목소리가 <Grace>에 빼곡히 담겨 있었다.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Grace>는 평단의 찬사를 받았지만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는 앨범을 내고 계속 노래했다. 그러나 판매고는 100만장에 미치지 못했다. 무엇보다, 히트 싱글이 없었다. 이 앨범에서 커팅된 싱글은 <Last Goodbye>가 유일했다. 이상하지 않은가. 'Mojo Pin'부터 'Dream Brother'에 이르기 까지 어느 하나 쉬이 흘려 들을 수 있는 곡이 없는 앨범인데 정작 히트 싱글은 없다니. 아이러니한 건 바로 여기다.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이 DVD의 출시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과 캐나다, 유럽과 일본을 돌며 투어를 했고 그 때 마다 방송에 출연해서 라이브와 다름없는 공연을 펼쳤다. 히트 싱글이 없다는 건 그에게 하나의 자유였다. 원하는 어떤 앨범 수록곡이든 원하는 스타일로 노래할 수 있는 자유. 제프 버클리와 그의 밴드는 <Grace>에 있는 노래들을 앨범의 오리지널리티에 크게  제프 버클리는 방송에서 아무 노래나 하면 됐다. 만약 그의 노래 중 어느 한 곡이라도 히트 싱글로 기록됐다면, 남아있는 방송 영상은 그 노래에 편중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앨범 수록곡 대부분이 영상으로 남아있게 됐다. 
 
제프 버클리는 앨범에 구애받는 사람이 아니었다. 앨범은 특정한 순간을 담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없이 많은 테이크 중 베스트를 모아서 하나의 순간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는 편집과 보정이라는 단계가 들어간다. 즉, 레코딩은 아티스트의 진정성 그 자체를 보여주기 보다는 가공된 진정성을 담아내는 조작의 미디어에 가깝다. 문명에 의해 창조된 진정성은 자신의 존재를 역전시킨다. 그 스스로 재현의 대상이 된다. 아티스트는 앨범을 내고 그 앨범에 담긴 음원을 무대를 통해 재현한다. 공연을 복제하기 위해 탄생한 레코딩이란 기술이 공연이 복제해야할 대상이 된거다. 그러나 제프 버클리는 자신의 공연을 통해 앨범을 복제하려하지 않았다. 그는 <Grace>에 담긴 노래를 연주하고 부를 때 마다, 앨범 버전과는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표출했다. 라이브를 위한 편곡이라기 보다는, 그 때 그 때 자신의 기분과 영감에 따라 즉흥적인 요소를 많이 가미하곤 했다. "언어는 아름답지만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언어란 아주 남성적이에요. 너무 구조화돼 있죠. 하지만 목소리란 내세에서 온 것입니다. 아무 것도 상징하지 않는 어둠이죠. 자신의 내부에서 나와 그 자체로 존재하고 표현되는 겁니다." 제프 버클리가 무대에서 표현하려 한 건 기계와 뮤직 비즈니스의 언어로 구체화된 '음원'의 모사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서있는 그 곳의 공기와 분위기, 그 안에 머물러 있는 자신의 내면에서 발현되어 흩뿌려지는 목소리로 그 공간과 하나가 되려했다. 그가 무명시절에 터득했던 음악의 진리를, 짧은 프로 뮤지션 생활 내내 표출했던 거다.

그래서일 것이다. 그가 남긴 음악이 요절이라는 최고의 마케팅 포인트를 넘어 계속 곁에 머물 수 있는 것은. 같은 영화를 서너번씩 보기는 힘들어도 같은 음악을 수십번씩 들을 수 있는 건 음악이 영화, 즉 서사 매체에 비해 훨씬 감성의 영역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이성에 의해 판독된 서사는 논리가 되어 뇌속에 저장된다. 다음에 무엇이 나오고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예측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감성은 그 때 그 때의 수용 상황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뇌에 반영된다. 대중음악이란 감성과 이성의 조화다. 상업적인 목적이 뚜렷한 음악일 수록 감성보다는 이성에 의해 만들어진다. 듣는 이를 심리적, 생리적으로 쉽게 자극할 수 있는 공식들이 적용된다. 익숙한 멜로디와 정서를 가진 음악이 쉽게 히트하는 건 그래서다. 하지만 제프 버클리의 음악은 보다 감성적인 측면에 맞닿아있다. 이론과 논리로 쉽게 분석하기 어려운 기묘한 아우라가 그의 목소리와 외침과 속삭임에 깃들어 있다. 90년대에 쏟아져나왔던 그 많은 명반들 중 언제나 새로운 기분으로 들을 수 있는 음반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보면 알 것이다. 얼핏 불가해하고 신비하며, 단순히 애수나 멜랑콜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레이스의 장수 비결은 바로 거기에 있다. 또한 언어와 목소리에 대한 그의 철학이 음악으로 구체화되어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또한 제프 버클리는 음악의 원초적 목적을 가장 현대적으로 재현한 인물이기도 했다. 태초의 음악은 '절대성'에 대한 경배에서 시작했다. 원시 시대, 보름달이 뜨는 밤 나무 토막을 두드리며 군무를 추던 부족들은 음악을 통해 다산과 풍년을 기원했다. 음악은 생명과 생존을 주관하는 어떤 절대적 존재로의 가교였던 셈이다. 이런 정신은 바로크 시대의 종교 음악가들이 교부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냈던 수많은 고음악에도 전승됐다. 기독교라고 하는 수단을 통해 봉건 공동체의 정신적 안정과 합일을 이끌었던 시대에, 사람들로 하여금 절대성의 권위를 보다 쉽게 인지시키고 그 숭고미를 일깨웠던 건 복잡한 교리와 철학보다는 음악이기도 했다. 세속성이라고 하는 순간의 시간을 넘어 영성이라고 하는 항구적 시간을, 중세 시대의 사람들은 음악으로 표현했다. 그래서 "제프 버클리는 다른 사람에게 특별한 영감을 줄 수 있는 뮤지션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영감을 받은 사람은 자신의 존재와 음악에 대한 생각을 확장시켰다"라는 크리스 코넬의 말은 내면으로부터 발현되는 어떤 절대적 영감을 포착할 수 있었던, 그리고 이를 훼손하지 않고 원초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제프 버클리의 특별한 재능에 대한 고해성사일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은총(grace)을 절대자와 나 사이에 이뤄지는 교감에 대한 특별한 감사의 순간이라고 말해보자.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느끼는 수많은 회한과 상상, 얻게되는 무수한 영감과 감흥이야말로 은총이라 할 수 있지 않을런지.

그러니, 제프 버클리의 음악을 가장 제대로 감상하는 건 역시 그의 라이브를 지켜보는 것이다. 그러나 가고 없는 그가 울프강에서 젖은 몸을 털어내며 걸어나오기라도 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 <Grace Around The World>는 그런 불가능한 꿈을 실현해주는 문명의 선물이다. 그가 북미와 유럽, 그리고 일본을 돌며 매개했던 은총의 시간을 담고 있다. <Grace>투어 기간 동안 출연했던 방송 중에서 그의 음악적 영감이 가장 빛나던 순간들을 모았다. 제프 버클리의 어머니인 메리 길버트가 방대한 영상자료 중 DVD에 담길 소스들을 골랐다. 라이브 영상에서 흔히 기대하는 건 뮤지션의 생생한, 즉 가공되지 않은 연주와 노래가 하나일테고 또 관객과의 호흡이 또 하나일 것이다. 이 DVD에는 그러나 후자의 기대가 빠져있다. 노래가 끝나고나서야 관객들은 뜨거운 호응을 보낸다. 어떤 노래는 그마저도 편집되어 있다. 아직 절대적 팬덤을 만들어내지 못했던 그였기에 싱얼롱을 기대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령 그가 계속 음악 활동을 했고 스타덤에 올랐을지라도 마찬가지 반응이었을 것이다. 그의 노래는 함부로 따라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싱얼롱의 순간을 만들어내며 즐길 수 있는 공연이 아니다. 이 DVD만 봐도 명확해진다. 그것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추기경이 집전하는 미사의 설교를 청중이 함께 외치는 것과 비슷하다. 마치 고해성사를 하는 듯 진솔한 그의 표정과 신앙간증을 하는 듯 절절한 그의 목소리를 다만 지켜볼 수 있을 뿐이다. 그 소름돋는 순간을 동시에 느낄 뿐이다. 무지로부터의, 혹은 강요된 침묵이 아니라 범접할 수 없는 신비한 소리에 침 삼킬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침묵이 형성되는 것이다. 비록 방송 영상을 모아놓은 탓에 라이브 DVD를 전제로 한 화려한 영상과 무대는 마련되어 있지 않지만, 밴드와 함께 연주하는 그의 모습이야 말로 어떤 블록버스터 라이브보다도 더욱 장엄하고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 공연 실황 모음집을 보다가 깜짝 놀란 사실이 하나 있다. 제프 버클리의 라이브 영상이나 음원을 보고 들은 적이 없다. 그런데 꼭 그랬던 것 처럼 착각하고 살아왔다. 그리고 <Grace>를 다시 들었다. 라이브에서도 스튜디오에서도, 제프 버클리는 한결같은 뮤지션이었다. 그에게 스튜디오와 무대라는 구분은 별 의미가 없었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자신과 타자들을 합일시켰고 절대성의 음표를 뿌렸다. <Grace>와 <Grace Around The World>는 그런 사실을 서로 보여주는 쌍생아다. 달의 앞면과 뒷면이다. 순환하는 원전과 2차 사료다. 제프 버클리라고 하는 부재(不在)는 이 순환을 통해 비로소 하나의 실재가 된다. 음반 산업과 쇼 비즈니스의 틀안에서 안주할 생각이 없던 한 아티스트의 숭고한 정신이라는, 그런 실재가.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해당 앨범의 해설지.
아울러 블로그에 올린 적 없는 <Grace>의 해설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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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 2009/06/03 18:44 | 스토리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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