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이효리
2008/07/24   엄정화 VS 이효리 [16]
엄정화 VS 이효리
과연 음반 시장이 불황이긴 한 것일까. 요즘 가요계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그럴만도 하다. 줄줄이 컴백이다. 연초부터 토이, 김동률 등이 오랫만에 새 앨범을 들고 나오더니 상반기 브라운관의 핫이슈는 모두 가수들이 장악했다. 비록 음악이 아니라 버라이어티 쇼 프로그램을 통해서긴 했지만 아무튼. 그러더니 결국, 마치 여름 극장가를 블록 버스터가 휩쓸듯 대형 가수들이 대거 돌아오고 있다. 엄정화와 이효리, 원더걸스와 빅뱅, 그리고 서태지와 김건모까지. 야릇한 구도가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그럴 예정이다. 그 중에서도 최근의 가요계를 가장 뜨겁게 달궜던 이슈는 엄정화와 이효리의 동시 컴백이었다. 각각 90년대와 2000년대를 대표하는 섹시 아이콘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돌아온 것이다.

사자와 호랑이가 싸우는 풍경을 거의 볼 수 없듯, 비슷한 팬층을 갖고 있는 덩치 큰 가수 끼리는 같은 시기를 피해서 활동하는 게 가요계의 오랜 관계였다. 자칫 서로의 파이가 줄어들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슈가 분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타 작곡가와 프로듀서의 풀이 한정된 탓에 같은 작곡가의 다른 노래가 같은 시기에 깔리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기 때문인 탓도 있다. 그런데 붙었다. 그것도 이효리와 엄정화다. 물론, 작심하고 서로 진검승부를 펼친 건 아니다. 2주 정도라는 밭은 시간차가 둘의 컴백 타이밍으로 잡힌 데는 몇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우선, 올림픽이다. 월드컵과 올림픽 기간은 전통적으로 문화 시장의 비수기다. 그 기간 동안 국민들의 관심은 당연하게도 온통 베이징으로 쏠리기 마련이다. 대박을 노리고 앨범을 내봤자 쪽박 찰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게다가 8월 초에는 서태지가 컴백하겠다고 진작 선전포고를 한 상태다. 그리고 둘 다 댄스 음악으로 승부를 내는 가수. 그렇다면 대기가 한창 달아오를 때 치고 올라오는 게 시기적으로 유리하다. 그래서 이례적으로 경쟁이라는 프레임을 형성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실 이효리나 엄정화나 이번 앨범이 갖고 있는 의미는 클 수 밖에 없다. 우선 엄정화. 90년대의 섹시퀸이자 댄싱퀸이었던 그녀는 정말 한국의 마돈나가 되고 싶었던 듯 하다. 마돈나가 90년대 후반 당대의 일렉트로니카 뮤지션과 작업하며 엔터테이너에서 아티스트로 격상했듯, 엄정화는 <Self Control>과 <Prestige>등 지난 두 장의 앨범에서 달파란, 정재형, 지누, 페퍼톤스 등 실력파 일렉트로니카 뮤지션들과 함게 했다. 결과는? 비평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뒀다. 평론가들은 기꺼이 이 두장의 앨범에 손을 들어줬다. 'Come 2 Me'는 2007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일렉트로니카/댄스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엄정화에게 아티스트 못지 않게 중요한 건 엔터테이너였다. 섹시 퀸이자 댄싱 퀸의 자리를 수성하는 거였다. 그 누구도 뺏어갈 수 없었던 여왕의 권좌를 2003년 이효리가 쟁탈했을 때 내심 복잡한 심경이 아니었을까. 세월만 탓하고 있기에는 그녀의 야심이 건재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번 앨범은 다시 대중의 열광을 되찾아와야는 절대적 미션을 부여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이효리도 마찬가지다. 돌이켜보건데 '텐 미니츠'와 '애니 모션' 이 가수로서의 이효리에게는 천장이었다. 2집 <Dark Angel>의 'Get Ya'는 등장과 동시에 표절 논란에 시달려야했다. 단순히 논란으로 끝난 게 아니라 기정 사실화되는 분위기까지 몰고 갔다. 핑클 시절부터 인연을 맺었던 DSP와 결별하고 가요계의 마이더스로 통하는 김광수의 엠넷미디어와 계약을 맺은 후 미니 앨범을 발표했다. 여기에 담겨 있던 미디엄 템포 발라드 '그녀를 사랑하지 마'는 '왜 이효리가 씨야짓을 하고 있냐'는 비난을 받았다. 게다가 연기자로 영역을 확장하려는 시도는 번번히 시청률 참패로 돌아왔다. 남은 건 '여자 유재석'이라는 찬사를 받을만큼 탁월했던 방송 진행능력. 만약 가수로서 존재감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이효리의 길은 MC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됐다. 그게 어디냐고? 천하의 이효리가 MC로만 굳어지기에는 뭔가 너무 아쉽지 않은가? 본인에게나 업계에게나.

엄정화와 이효리의 컴백작품에 이런 배경에서 나오는 절치부심이 묻어나오는 건 그래서 당연지사다. 다시 엄정화, 그녀가 손을 잡은 파트너는 YG다. 빅뱅을 대성공시키며 아이돌 시장에 파란을 일으킨 YG의 가장 큰 자산은 확실한 대중적 코드에 SM이나 엠넷미디어와는 차별화된 프로듀싱 능력이다. 엄정화는 그 능력을 샀다. YG의 힙합적 성격에 끌려만 가지도 않았다. 원타임의 테디가 작곡한 '디스코'는 YG특유의 감칠맛나는 사운드 메이킹은 살리되, 엄정화가 그동안 추구해온 일렉트로니카가 주도권을 잡고 있는 노래다. 절창의 보컬리스트는 아니되 탁월한 표현력을 가진 엄정화의 보컬도 최근 그 어느 앨범보다 잘 살아있다. 여기에 빅뱅의 탑이 랩 피쳐링을 맡음으로서 엄정화를 잘 모르는 세대의 시선까지 붙잡는데 성공했다. 여느 걸그룹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아니 혼자서도 그 이상의 존재감을 펼치는 뮤직 비디오 역시 공개와 동시에 큰 관심을 끌었다. 지난 두 장의 앨범에 비하면 확실히, 엄정화는 다시 옛 영광을 되찾을 가능성이 높다.

이효리의 컴백도 성공적으로 보인다. 순차적으로 새 앨범에 관련된 화보와 뮤직 비디오 티저를 공개하며 서서히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온 그녀의 'Hyorish'는 예전에 비해 분명히 나은 보컬 실력과 음악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타이틀 곡인 '유 고 걸'을 비롯, 대부분의 노래에서 목소리를 기계로 매만진 흔적이 많이 사라졌으며 현재 영미권 여성 뮤지션들의 최신 트렌드인 복고풍 소울의 채취도 느껴진다. '천하무적 이효리' '이발소집 딸'같은 자전적 노래들을 통해 가수로서의 이효리와 방송에서의 이효리로 나뉘었던 다중적 캐릭터를 하나로 모으는데도 성공하고 있다. 전자가 섹시함, 후자가 털털함을 대표하는 캐릭터였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두 명의 이효리가 만나고 있는 것이다. 뮤직 비디오 표절 논란도 적극적으로 대처, 큰 문제없이 극복했다. 사실 이효리는 뭘해도 욕먹고 뭘해도 찬사받는 이슈 메이커임을 생각하면 이번 논란은 가벼운 수준이었다.

시작은 그렇게, 양쪽 다 성공적이다. 그리고 현재까지 시장에서의 결과는 이효리가 압도적으로 우세인듯 하다. '유 고 걸'이 등장과 동시에 모든 온라인 음원 차트에서 1위를 석권한 반면, '디스코'는 1위를 놓친 차트가 많았다. 엠넷미디어의 전방위적 마케팅에 상대적으로 '디스코'의 열기가 주춤한 측면도 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이효리의 승리로 올 여름이 굳어질 조짐이다. 그러나 어차피 이효리와 엄정화는 같은 듯 다른 필드에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 이효리가 철저히 방송과 젊은 층 중심을 타겟으로 하고 있다면, 엄정화는 90년대를 관통했던 이들에게는 아직 누나이자 언니다. 보다 소구계층이 넓다는 얘기다. 그래서 장기적 시선이 필요하다. 90년대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섹시퀸, 댄싱퀸으로 부르는 게 어색하지 않은 여성 연예인은 대한민국에 엄정화 하나다. 약 10년이 지났을 때 이효리는 어떤 위치에 서있을 것인가. 훗 날 가요계는 둘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그 하나의 전환점이 바로 올 여름에 놓여 있다.

한겨레 21 원고
by 김작가 | 2008/07/24 22:46 | 스토리 | 트랙백 | 덧글(16)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음악 친구나 해요
by 김작가 2008 이글루스 TOP 100
Calendar
메모장
noisepop@hanmail.net
http://twtkr.com/GrooveCube
카테고리
전체
음악이 해준 말
생각
스토리
대화
어른들의 놀이터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상수일지
아주 특별했던 봄
아주 특별한 여름
go20
private press
NM
야담과 실화
바벨의 콘서트
VS 칼럼
자전거 라이프
방명록
비밀의 창고
미분류
포토로그

보이는 것의 날인
태그
매시브어택 페스티벌 철학성향테스트 이병우 어떤날 아감벤 씨엔블루 국카스텐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FnC 2010 VampireWeekend 트위터 전망 맑스 내한공연 블로그 오아시스 Contra 인디 이런들어떠하리저런들어떠하리 아이돌 들뢰즈 밥딜런 그린데이 글래스톤베리 루시드폴 레미제라블 문화정책
전체보기
rss

skin by zodiac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