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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3   록 페스티벌 가이드 [11]
록 페스티벌 가이드
언젠가부터, 라고 하지만 사실은 한 삼년전부터 여름은 가장 기다리는 계절이 됐다. 노출의 계절이라 눈이 즐겁기 때문에?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술취해 길거리에 뻗어 자도 얼어 죽을 걱정이 없기 때문에? 역시, 틀린 말은 아니다. 록 페스티벌의 계절이기 때문에? 빙고. 바로 그거다. 음악 애호가라면 누구나 '음악을 좋아하길 정말 잘했어'라 울먹이는 록 페스티벌은 2006년 펜타포트가 시작된 이래 여름의 최대 이벤트가 됐다. 심지어 크리스마스 이브보다 더욱 기다려지는 날이 될 정도다. 크리스마스 이브는 그 전 까지 여친을 만들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 하지만, 록 페스티벌은 여친 따위 없어도 된다. 강호의 애호가들이 모두 모여 하루 종일 울려퍼지는 라이브 사운드와 함께 만들어가는 게토이자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여름, 하면 누구나에게 솟아오르는 설렘을 모으고 모아 하나의 샤먼으로 승화시키는 시키는 시간인 것이다. 세계 어디나 마찬가지다. 하여, 어느 나라나 록 페스티벌이 있기 마련이다. 후발 주자인 한국과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그래서 골수 애호가들은 여름이 되면 떠난다. 유럽으로, 일본으로. '원단'을 체험하러.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1.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매년 6월 마지막 금토일, 글래스톤베리 인근의 농장에서 열리는, 영국을 대표하는 록 페스티벌이다. 공식 명칭은 '글래스톤베리 공연 예술 페스티벌'. 6월 초에야 라인업이 발표되는데 4월 초에 티켓이 오픈된다. 그런데 오픈과 동시에 15만장의 티켓이 몽땅 팔려 나간다. 누가 나오는 지도 모르는데 일단 지르고 보는 것이다. 이건 뭐, 선지원 후시험이었던 학력고사도 아니고. 이런 '묻지 마' 페스티벌이 가능한 건 1970년에 마이클 이비스가 자신의 농장을 하룻동안 개방하며 시작된 이 페스티벌이 영국 음악의 현주소를 대변해왔기 때문이다. 국내에도 개봉했던 다큐멘터리 <글래스톤베리>에서도 알 수 있듯 80년대의 스미스와 뉴 오더, 90년대의 오아시스, 블러, 펄프 등이 수많은 전설적 순간을 만들어냈다. 특히 1995년 참가한 펄프의 'Common People'을 15만 관객이 때창하는 모습은 90년대 브릿팝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남아있다.
글래스톤베리는 머드 페스티벌로도 악명이 높다. 그도 그럴 것이 일년 내내 농장으로 쓰이다가 6월 마지막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15만의 인파가 몰려든다. 게다가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영국의 날씨이다보니 비라도 한번 내리면 농장은 거대한 진흙밭이 된다. 그러니 장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품목인 셈이다. 또한 비가 안내려도 도처에 뒹구는 소똥의 향연에 시크한 스니커즈 따위는 단숨에 폐품이 될 수 밖에 없다. 소똥만 있으면 차라리 다행인데, 인분도 만만치 않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다보니 매일 청소하는 화장실은 청소가 끝나고 곧 청소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변한다. 뭐랄까, 문명과 비문명을 가르는 잣대인 화장실의 존재가 유명무실한 것이다. 그래서다. 글래스톤베리는 음악 축제라기 보다는 일종의 야생으로 돌아가는 기간이다. 도시의 쾌적함 따위는 안드로메다의 사물함에 잠시 보관된다. 라인업과 상관없이 전세계에서 수많은 인파가 몰려드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6월 27일부터 3일간 열리는 올해 페스티벌은 블러의 재결성 첫 공연(아싸!), 브루스 스프링스틴, 닐 영, 프란츠 퍼디넌드 등 어느 때 보다 쟁쟁한 라인업으로 열린다. 제이-지가 참가, '록페스티벌에 왠 힙합?'이라는 비아냥을 자아냈던 지난 해의 오명을 말끔히 씻을만 하다.




2.록 워히터
벨기에서 열리는 페스티벌로 올해로 33회째를 맞는다. 처음에는 하루만 열렸지만 점점 날짜를 늘려가더니 지금은 총 4일동안 열리고 있다. 정작 자국 출신 뮤지션은 별로 없는 벨기에지만 록 워히터의 라인업은 상상을 초월한다. 라인업을 보고 있자면 처음에는 국가 예산을 쏟아 부어서 뮤지션들을 섭외하는 건가, 싶다가 급기야는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라디오헤드, 시규어 로스, 벡 기타 등등이 참가했던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메탈리카, 프로디지, 오아시스, 콜드플레이, 릴리 앨런, 킬러스, 블록 파티, 나인 인치 네일스, 카이저 치프스...(헉헉)이 무대에 오른다. 그러니 내가 갈 수 없다면, 차라리 천재지변으로 취소되길 바라는 몹쓸 마음이 발동해도 이상할 게 없다.
왠지 글래스톤베리와는 미묘한 경쟁관계에 있는데, 지난 해 나름 극렬한 친환경 밴드인 라디오헤드가 각종 분뇨로 인한 이산화탄소배출량이 높은 글래스톤베리 대신 상대적으로 친환경적인 록 워히터 출전을 택하면서 그런 구도가 형성된 듯 하다. 글래스톤베리가 6월 마지막 주에 열리고 올해 록 워히터는 7월 2일부터 4일까지 열리는 시기적 이유도 있다. 글래스톤베리의 맛이 라인업의 파워가 절반이고 나머지 절반이 관객을 보는 재미(각국의 팬들이 자신의 국가나 조직의 깃발을 들고 객석을 매운다던가 하는)인데 비해 록 워히터는 순수하게 공연에 모든 게 집중된다는 점에서도 두 페스티벌이 비교된다. 열개가 넘는 글래스톤베리의 스테이지에 비해 록 워히터는 심플하게 두 개의 무대에서 열리니 무대 이동에 소요되는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절약할 수 있을 뿐더러, 대부분의 알짜는 다 메인 스테이지에 오르니 '닥치고 공연 감상'이면 충분한 것이다. 그런데 왠지 모를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이유는 그 짱짱한 라인업을 앞에 두고도 객석은 썰렁하기 그지 없다는, 다녀온 이들의 증언때문. 가진 자의 여유? 배고픔을 모르는 자들의 사치? 젠장, 이런 쿨 가이들. 여튼, 페스티벌 장소에서 열리는 다른 이벤트는 다 포기하고 오직 공연에만 집중하고 싶은 이들이라면 영순위로 선택해야할 거의 먼치킨급 페스티벌.





3.코아첼라 밸리 뮤직
매년 4월, 금토일 3일 동안 미국 캘리포니아주 인디오에서 열린다. 수익을 아메리카 인디언 보호 단체에 기부하는 자선 페스티벌이다. 개최 날짜상 한 해 페스티벌의 포문을 여는 셈이다. 우드스톡으로 시작해 룰라 팔루자로 정점을 찍었던 미국 록 페스티벌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다른 페스티벌과는 달리 미국 아티스트들이 주로 무대에 오른다. 2006년에는 무려 마돈나가 이례적으로 공연을 했으며, 2007년에는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이 이 때 재결성 공연을 가졌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은 이 때부터 각국의 페스티벌을 순회하기 시작했는데 원래 지난 해 펜타포트에도 참가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연초에 잭 덜라루차가 애아빠가 되는 바람에 모든 일정을 취소, 공연이 무산된 아픔의 역사가 있다. 아무튼, 코아첼라가 주목 받는 건 평소 록 페스티벌에서 보기 힘든 아티스트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외에도 메이저부터 인디까지 골고루 아우르며, 또한 그 아우름의 퀄리티가 상당히 뛰어나다는 이유다. 역시 세계 음악 시장 1위인 미국다운 포용력이랄까. 4월 17일부터 19일까지 열렸던 올 해의 라인업만 봐도 다른 페스티벌과는 다른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레너드 코헨(!), 폴 매카트니(!!),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모리씨, 킬러스, 큐어, 안토니 앤 존슨스, 디벤드라 반핫, 플릿 폭시스 등 관록의 뮤지션들과 지금 세계 록 음악의 미학을 견인하고 있는 미국 인디 록 뮤지션들의 고갱이가 몽땅 눈에 들어온다.




4.후지 록 페스티벌
펜타포트, 그리고 올해 새로 시작되는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의 모태가 된 페스티벌이다. 지난 해까지는 펜타포트와 제휴 관계에 있다가 올해부터는 지산과 동일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 이유로 국내 음악 팬들의 관심이 가장 많이 쏠리는 페스티벌인데, 후지 록 라인업을 보고 올해 국내 페스티벌의 라인업을 점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름 때문에 페스티벌 장소가 후지산 인근이 아니냐는 오해를 빚지만 후지 필름이 메인 스폰서이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고 실제로는 나에바 리조트에서 열린다. 1997년 시작되었으며 현재는 약 15만명의 관객이 참가하는, 명실상부한 아시아 최대의 페스티벌로 자리 잡고 있다. 매년 7월 마지막 금토일 3일동안 개최되는데, 올해 메인 스테이지의 헤드라이너는 위저와 오아시스, 그리고 프란츠 퍼디넌드다. 그러나 후지 록 페스티벌에서 관전 포인트는 사실 라인업이 아니다. 캠핑형 페스티벌의 공통적 특징 답게 관객들이 공연보다는 행사 그 자체를 즐기는 모습이 눈에 띈다. 오타쿠 근성으로 충만한 나라다보니 행사장 구석구석마다 기타를 치고 야광봉을 돌리고 비보잉을 하는 이들로 가득 차있는데, 심지어 무대가 전혀 보이지 않는 숲속에서도 자기들이 준비한 공연을 펼치는 이들도 있다. 또한 세계 록 페스티벌에서 가장 먹거리, 마실거리가 풍부한 페스티벌로 유명하다. 각국의 음식들과 술이 곳곳에서 판매된다. 그러다보니 무대에서 누가 공연을 하거나 말거나, 먹고 마시고 비공식 이벤트를 즐기는 이들도 많다. 아직까지 해외 뮤지션들의 공연에 굶주려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를 할 수 없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갈수록 라인업이 약해진다는 평가도 있으나 그와 상관없이 관객은 날로 늘어가는 추세다. 공연보다는 축제에 방점을 찍는, 말 그대로의 페스티벌이라 할 수 있다.




5.서머소닉
가장 많은 국내 음악팬들이 찾는 페스티벌이다. 처음에는 도쿄에서만 열리다가 현재는 오사카와 도쿄에서 동시에 개최된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아 8월 14일부터 16일까지 3일간 진행된다. 지난 해 말부터 서울에서도 열린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무산됐다. (흑흑) 서머소닉의 가장 큰 특징은 페스티벌이라기 보다는 '공연 박람회'라 할만한 독특한 진행방식이다. 도쿄의 경우 치바현의 마린 스타디움에 메인 스테이지가 설치되며 인근의 마쿠하마리 메세(코엑스를 생각하면 된다)에 파티션을 치고, 몇 개의 무대가  더 설치된다. 두번째로 큰 마운틴 스테이지가 메인 스테이지의 서브 개념으로 운영되며, 다른 스테이지는 모두 각각의 컨셉트를 갖고 있다. 댄스 스테이지의 경우 말 그대로 댄스/일렉트로니카 아티스트들이 무대에 오르고 소닉 스테이지는 슈게이징,노이즈,프로그레시브적 요소를 갖고 있는 뮤지션들의 무대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다보니 메인 스테이지와 마운틴 스테이지에는 포괄적인 음악 팬들이 몰리고, 다른 스테이지는 해당 장르의 팬들로 가득 매워지곤 한다. 10주년을 맞은 올해는 첫 해의 헤드라이너였던 그린데이와, 주최측이 가장 보람있던 팀으로 뽑았던 라디오헤드를 섭외할 예정이었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무산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이 쩍 벌어지는 라인업임에는 틀림없다. 마이 케미컬 로맨스, 비욘세, 린킨 파크 등 일본에서 특히 인기가 높은 뮤지션들이 메인 스테이지를 채우고 플레이밍 립스, 소닉 유스, 모그와이, 나인 인치 네일스, 에이펙스 트윈, 틴에이지 팬클럽, 바셀린스, 스페셜스, 머큐리 레브등 과연 10주년 다운 라인업이 눈에 띈다. 별도의 스폰서 없이도 이렇게 화려한 라인업으로 페스티벌을 열 수 있는 이유는 서머소닉 특유의 '양성 시스템' 때문. 즉, 아직 스타덤에 오르기 전의 뮤지션을 발굴하여 무대에 세우며 관계를 맺기 시작, 그 뮤지션이 성장하면 보다 좋은 조건에 불러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해 헤드라이너였던 콜드 플레이가 메인 스테이지에 올랐을 때 객석의 전광판에서는 '1회 서머소닉에 참가했었다'라는 문구가 자랑스럽다는 듯 지나갔다. 그 때는 콜드플레이가 말 그대로 꼬꼬마였을 때다. 늘 스타급 헤드라이너에만 목숨을 거는 국내 페스티벌이 마땅히 배워야할 덕목이다. 박람회에 가까운 페스티벌이다보니 공연이 모두 끝나는 10시가 되면 10만여명의 관객이 모두 JR을 타러 썰물처럼 빠져 나가는 재미있는 풍경도 볼 수 있다.

바자 7월호 원고
by 김작가 | 2009/06/13 14:30 | 스토리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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