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보편적인노래
2008/12/10   브로콜리 너마저 <보편적인 노래> [21]
브로콜리 너마저 <보편적인 노래>


'앵콜요청금지'는 아마 80년대를 살았다면 기억에 남아있을, 대학가요제 참가팀의 아마추어적 순수함을 환기 시키는 노래였다. 그런 노래들이 브로콜리 너마저의 데뷔 EP에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특별히 감정표현을 하지 않고 무심히 부르는 노랫말이 소환하는 그 무수한 감정들은 누군가에게는 연애의 쓴 기억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친구와의 대소사를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혹은 지극히 보편적인 인생의 단상을 환기시켰을 것이다. 설익은 연주와 세련되었다고는 말하기 힘든 편곡은 그들에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대신, 동아리방의 어슴프레한 형광등을 연상케하는 장치였다. 오직 좋은 노래와 노랫말, 그것 뿐이었다. 그것 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기 때문에 몇 몇 큰 무대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빈약한 라이브 실력도 그들에게는 큰 흠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관객은 그들의 연주력을 확인하려 간 게 아니라, 노래를 들으러 갔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펜타포트에서의 그 집단 싱얼롱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입소문 하나로 대박을 이끌어낸 <앵콜요청금지>이후, 브로콜리 너마저에 대한 시선은 반신반의였다. 과연 또 이런 맛깔스러운 팝을 다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고 과연 또 이런 맛깔스러운 팝을 다시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하는 기대도 있었다. 말장난처럼 들리겠지만 첫 히트 싱글 이후 고만고만한 노래들로 고만고만한 밴드가 되는 사례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체득된 양가적 마음이었다.  그러니 브로콜리 너마저의 데뷔 앨범은 발매전부터 <앵콜요청금지>와 비교되는 숙명에 처해있던거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들은 전작 우려먹기도, 조급한 변화도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지속과 차별화, 양쪽 모두를 택했다.  대부분의 노래는 <앵콜요청금지>의 연장선상에 있다. 단순한 비트 위로 인상적인 기타, 혹은 키보드 리프가 반복되고 역시 그 리프에 기반하는 보컬 멜로디가 계속 곡을 이끌어가는 스타일 말이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브로콜리 너마저에 대한 열광의 기반은 바로 그 스타일에 있었으니까. 거기에 훌륭한 이야기를 갖추고 있으니 박수를 치기에는 넉넉한 요인이 아닌가. 그러나 정규 앨범이다. 몇 곡으로 승부하는 게 아니라 10여곡을 펼쳐놔야 한다. 단거리가 아닌 장거리 시합의 출발선에 서야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100미터 정도의 거리를 <앵콜요청금지>의 기억이 이끌어간다면 그 다음은 바로 <앵콜요청금지>와 차별화된 노래들의 몫이다. 그런데, 그 노래들이 정말 탁월하다.

<앵콜요청금지>는 명백한 팝 앨범이었다. <보편적인 노래>또한 그렇다. 그러나 EP에서의 팝이 복고적 감성에 기반하고 있었다면 <보편적인 노래>의 그것은 모던함이다. EP에서 그들이 인디 음악계에 대학가요제의 아마추어리즘을 장전했다면, 90년대 이후 인디 팝의 고갱이가 <보편적인 노래>에 이식되어 있다. 21세기의 캠프 파이어 송이라 해도 손색없을 '2009년의 우리들', 엔딩 곡이라는 위치에 더없이 걸맞는 '유자차'같은 노래들이 그에 대한 심증이라면, 타이틀 곡이자 앨범의 백미인 '보편적인 노래'는 '앵콜요청금지'가 그들 재능의 정점이 아님을 보여주는 물증이다. 올해 최고의 팝이 단연 언니네 이발관의 '아름다운 것'이라는 걸 의심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보편적인 노래'는 올해 최고의 팝 리스트를 고민하게 만든다. 무난함을 꽤 상회하는 아름다운 기타 팝에 그칠 수 있었던, 역시 그것만으로 충분한 이 6분 22초짜리 노래는, 하지만 2절이 끝난 후 이어지는 브릿지 하나만으로 충분한 고민의 대상이 될 자격이 있다. 흔히 가요는 왜 사랑 타령만 있냐고들 한다. 사랑 노래가 나쁜 게 아니다. 다만, 이런 사랑 노래가 없다는 게 문제였음을 '보편적인 노래'는 역설한다. 공연장에서 이런 노래를 들으면 감히 따라 부를 엄두도 나지 않을 것이다. 그저 가사를 음미하며 속으로 따라할 뿐.  만약 이 노래를, 그리고 이 앨범의 모던한 트랙들을 <앵콜요청금지>의 열악한 녹음으로 들었으면 충분한 맛을 느낄 수 있었을까. 다시 녹음된 '앵콜요청금지'가 너무 매끄러워져 오히려 EP에서의 맛을 상실했듯이. 그러니 <앵콜요청금지>와 <보편적인 노래>를 비교하는 건, 언니네 이발관의 초기 앨범 두 장을 비교하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하다. 각자 다른 환경, 그 환경에서 최선의 노래들이 두 앨범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다. 이들이 앨범 발매 후 무기한 활동 정지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노래>는 2008년 한국대중음악계가 마땅히 가져야할 값진 마침표지만, 브로콜리 너마저라는 밴드의 마침표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서는 곤란하다.



보편적인 노래


보편적인 노래를 너에게 주고 싶어
이건 너무나 평범해서 더 뻔한 노래
어쩌다 우연히 이 노래를 듣는다 해도
서로 모른 채 지나치는 사람들처럼

그때, 그때의 사소한 기분 같은 건
기억조차 나지 않았을 거야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건 너무 슬퍼
사실 아니라고 해도 난 아직 믿고 싶어

너는 이 노래를 듣고서 그때의 마음을
기억할까, 조금은
보편적인 노래가 되어
보편적인 날들이 되어
보편적인 일들이 되어
함께한 시간도 장소도 마음도 기억나지 않는

보편적인 사랑의 노래
보편적인 이별의 노래에

문득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때, 그때의 그때

그렇게 소중했었던 마음이
이젠 지키지 못한 그런 일들로만 남아
괜찮아 이제는 그냥 잊어버리자
아무리 아니라 생각을 해보지만

by 김작가 | 2008/12/10 23:48 | 음악이 해준 말 | 트랙백(4) | 핑백(1) | 덧글(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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