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데파페페
2008/09/26   쌈싸페 & GMF : 가을 깊어가는 곳에 음악이 [12]
쌈싸페 & GMF : 가을 깊어가는 곳에 음악이



어느 때 보다 많았던 여름 록 페스티벌의 시즌이 지나간 후 가을이 왔다. 지리하게 이어진 여름 날씨가 단숨에 서늘해지자마자 또 페스티벌 시즌이 시작됐다. 연중 마지막으로 야외에서 공연을 즐길 수 있는 10월이 온 것이다. 2006년 펜타포트 이후에야 여름 록 페스티벌의 참맛을 느낄 수 있었다면 가을은 꽤 오랫동안 페스티벌의 계절이었다. 쌈지사운드페스티벌이 있었기 때문이다. 1999년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크래시와 크라잉 넛 등을 헤드라이너로 열렸던 쌈지사운드페스티벌은 올해로 열 살을 맞았다. 그 시간동안 조금씩 모양새를 바꿔왔다. 처음에는 무료로 시작했지만 조금씩 입장료를 받아왔다. 천원으로 출발해서 올해는 만원이 됐다. 참가하는 팀들도 조금씩 늘어왔다. 처음에는 100% 인디 밴드로 시작했지만 이듬해 허니 패밀리의 참가를 시작으로 산울림, 싸이, 인순이, 심수봉 등 참가자의 면면도 넓어져왔다. 꽤 오랫동안 한국 음악 소비 문화 한켠에 자리 잡고 있었던 메이저와 인디, 장르와 장르간의 배척 관계를 깨왔던 것이다. 빅 뱅을 록 페스티벌의 무대에 올린 것도 쌈싸페만이 할 수 있는 파격이었고 이승환이 본격적으로 인디 뮤지션들과 교류하며 한 무대에 서기 시작한 것도 쌈싸페에 참가한 이후의 일이다.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회를 거듭하며 외형과 내형을 프레스코화 그리듯 구축해온 쌈싸페의 지금 이미지는 그래서 단순히 록 페스티벌이라 할 수는 없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던 자신의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의 축제다. 굳이 말하자면 리얼 뮤직 페스티벌이랄까. 그런 면모는 10주년을 맞은 올해 더욱 두드러진다. 갤럭시 익스프레스, 검엑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등 현재 한국 음악계의 뜨거운 감자들이 참가하는 건 물론이고 노 브레인, 크라잉 넛 등 쌈싸페와 함께 성장해온 록 스타들도 무대에 선다. 또한 김창완과 심수봉, 김덕수, 백현진, 김범수와 다이나믹 듀오의 라인업은 그동안 쌈싸페가 만들어온 자신의 성격이 있기에 위화감없이 성립한다. 연예인과 뮤지션의 경계가 애매모호한 한국에서 쌈싸페는 그것의 경계점을 명쾌히 집어내는 감별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과거로부터 소환된 두 팀이 더해진다. 하나는 신철. 80년대 다운타운가를 주름잡은 DJ이자 '철이와 미애'의 그 신철이다. 그는 DJ로서 이번 쌈싸페에 참가한다. 그가 트는 음악이 이태원 '문댄스'가 한 시대를 호령했던 당시의 유로 댄스일까. 아님 시대의 조류에 맞게 일렉트로니카를 선보일까. 궁금하면 가서 확인하면 된다. 부지런히 발바닥을 비비면 그 뿐, 말은 필요없다. 무엇보다 반가운 이름은 유 앤 미 블루다. 지금 솔로 뮤지션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승열과 영화음악감독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방준석의 듀오였던 유 앤 미 블루는 그 자체로 한국 대중음악사의 전설이다. 시대를 잘못 만났던 비운의 90년대 밴드, 그러나 그들의 진가를 알아주는 시대가 되며 절판된 앨범들이 10만원이 넘는 이변을 만들어냈던 그들이 지난 여름 제천 국제영화제 이후 다시 한 번 뭉치는 것이다. 

쌈싸페의 트레이드마크로 꼽을 수 있는 프로그램은, 일종의 신인 발굴 프로젝트인 '숨은 고수'다. 로로스, 할로우 잰, 국카스텐 등 매년 수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을 통과한 숨은 고수들은 아니나 다를까, 곧 인디 신의 라이징 스타로 떠오르곤 했다. 올해 쌈싸페가 특별한 이유는 이번의 숨은 고수들 뿐만 아니라 역대 숨은 고수들이 한 무대에 서기 때문이다. 국내 페스티벌계에서는 이번에 처음으로 도입되는 회전무대와 함께, 10살을 맞은 쌈싸페는 늘 그래왔듯 장르와 세대의 합종연횡으로 진짜 음악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을 오는 3일, 올림픽 공원으로 재촉할 시간이 될 거다.

지난 해 가을,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모두 부산으로 내려 가 있을 때 음악팬들은 올림픽 공원에서 열린 페스티벌에 주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특별한 컨셉트를 찾을 수 없었고 설령 있다 한들 드러나지 않았던 기존의 음악 페스티벌과 확실한 차별점이 있던 페스티벌이었다. 감성음악을 모토로 모던 록, 포크, 일렉트로니카 계열의 뮤지션들이 출동해서 여성을 대상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던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은 올 해 두번째를 맞아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더욱 훌륭한 음악 축제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10월 17일부터 19일까지 올림픽 공원에서 열리는 올해의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에는 미국 인디 록의 대부인 요 라 탱고와 일본 어쿠스틱 기타 듀오 데파페페같은, 이 페스티벌에 딱 들어맞는 해외 팀들이 있다. 봄여름가을겨울과 토이, 자우림, 델리 스파이스가 페스티벌 무대에 선다. 지난해 루시드 폴로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에 참여했던 조윤석은 올해 파격적 결정을 내렸다. 그가 루시드 폴로 솔로 활동을 하기 전 결성했던 밴드인 미선이로 무대에 서는 것이다. 이 예상치 못했던 이름이 발표되자 마자 음악팬들이 술렁거렸던 건 당연하다. 1998년 음악잡지 '서브'에서 독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올해의 음반'에 예상을 뒤엎고 1위를 차지했던 미선이의 데뷔 앨범이었다. 루시드 폴 음악의 원류라 할 수 있는 '치질' 진달래 타이머' '샬롬'등 주옥같은 명곡들이 가득 들어찬 이 앨범은 펑크와 모던록으로 이분화된 당시 인디 음악계의 도식에서 벗어나있는, 어떤 내밀한 감성의 극치였다. 그 노래들을 다시 들을 수 있다니, 어찌 설레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올림픽 공원의 청명한 야외와 실내, 잔디와 호수가를 고루 활용하며 '록페스티벌은 곧 탈진'이라는 등식을 깨버리는 그랜드 민트 페스타가 이런 추세로만 가준다면, 우리는 명백히 차별화된 음악 축제를 갖게 될 게 틀림없다. 아니, 사실은 이미 그렇다.

어느 페스티벌을 가도 마찬가지다. 음악 오타쿠들이 모인 게 아닌 이상, 다양한 부대 행사와 온갖 즐길 거리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흘린 땀을 금새 식혀주는 바람을 맞으며 방방 뛰는 청춘남녀들이 몰리는 쌈싸페도, 땀 흘릴 일 거의 없이 녹차병을 찰랑거리며 산책하듯 공연을 즐길 수 있는 GMF도. 여름 페스티벌의 필사적 분위기와는 다른 여유가 가을 페스티벌과 함께 한다. 페스티벌의 열기 보다는 계절의 운치가 보다 지배적 요소로 자리잡는 것이다. 그러니 밤이 되면 고개를 들어 하늘도 볼 수 있는 느긋함 마저 생길 수 밖에.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달을 기억한다. 2000년 10월 어느 주말밤,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무심코 올려다 본 하늘에는 보름달이 걸려있었다. 깊어가는 가을밤의 운치 덕도 있었겠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제2회 쌈지사운드 패스티벌이 절정으로 향하고 있던 시간이었다. <청춘 98>을 끝으로 잠시 공백기를 가졌던 노 브레인이 <청년폭도맹진가>로 컴백한 후 가졌던 첫 대형 무대였다. '청년폭도맹진가'에 이어 '청춘98'을 연주했을 때 스탠드 맨 뒷줄의 사람들까지 모두 일어섰다. 그리고 함께 '오이(oi)!'를 외치며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연세대 노천극장이 화강암이 아니라 흙으로 덮여있던 시절, 안치환과 꽃다지의 '문화행사'를 볼 때나 접할 수 있는 풍경이었다. 표정에 차이가 있었을 뿐. 당연히 2000년의 표정은 90년대의 그것에서 느낄 수 있었던 쓸데없는 엄숙주의 따위는 없었다. 다만 이 자리에서 즐기며 하나가 된다는 느낌이 있었을 뿐. 그게 바로 그 날 밤의 달에 특별한 아름다움을 부여했다.

음악이 아니었다면, 관객들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그날 밤 하늘 같은 건 쳐다볼 일도 없었을 거다. 달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닭살돋는 생각도 당연히 안했을 거다. 60년대 이래 음악공연의 꽃이 된 야외 음악 페스티벌에 처음으로 참가했던 사람이라면 얼추 비슷한 경험을 한 번씩 해보지 않았을까.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번 가을에도 그런 달이, 음표로 가득 찬 가을밤의 공기를 환히 적셔주리라.

한겨레21 원고

by 김작가 | 2008/09/26 17:45 | 스토리 | 트랙백 | 핑백(1)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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