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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9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 [1]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


이틀간의 안개가 걷힌 후의 월요일, 서울의 거리는 노란 낙엽이 <영웅>의 한 장면처럼 가득 흩날렸다. 개나리 군락만큼 아름다운, 한 점 잡티 없는 노란 물결을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세상에 마구 뿌려댔다. 다만 처연했다. 안개가 내내 자욱했던 토요일, 세상을 떠난 한 뮤지션 생각이 내내 가지 않아서였다. 6일이 이진원의 발인이었다.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벽제 화장터로 그의 관이 옮겨졌다. 생전 쓰던 기타가 관에 얹혀 마지막까지 함께했다. 

몇 몇 뮤지션들도 마지막 가는 길을 동행했다. 그의 관이 뜨거운 불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와이낫의 주몽, 김마스터, 하이 미스터 메모리, 이한철의 표정은 모두 달랐다. 오열하고, 머리를 숙이고, 고개를 돌리고, 이를 꽉 물고 마지막을 지켜봤다. 마음은 같았다. 누구도 최후가 될 지 몰랐던 공연을 마친 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밤새 뒤풀이를 하고 집에 들어와 월드 시리즈를 지켜보다가 콩나물을 사서 해장국을 끓여 먹던 중 쓰러져 30시간이 지난 후에야 발견된, 이진원의 외로운 죽음에 대한 애도와 안타까움과 억울함과 분노. 그 자리에 있던 그들 뿐이었을까. 그가 쓰러졌다는 소식이 퍼진 후 음악인뿐 아니라 음악을 아끼는 이들은 모두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랬다. <드래곤볼>에서 원기옥을 쏘려는 손오공에게 기운을 빌려주는 모든 자연과 생물처럼. 그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이 퍼진 후 그를 몰랐던 이들까지 들끓어 올랐다. 트위터를 타고 퍼진, '도토리 사건' 때문에. 그 순간, 그의 죽음은 한 뮤지션의 비극이 아니었다. 아이돌 시스템과 방송 중심의 홍보 체계에서 벗어나있는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IMF이후 한국 사회의 중산층이 서서히 붕괴되었듯, 21세기는 한국 음악계의 중산층을 급격히 붕괴시켰다. 급성장한 IT는 컨텐츠라는 개념을 낳았고, 음악은 음원이 되어 컨텐츠 산업으로 빨려 들어갔다. 음악인의 권익보다는 IT업체의 수익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이동통신사, 음원판매사는 헐값에 기존의 음악을 사들였고 새로운 노래또한 형편없는 분배를 받으며 음악에만 의존해야하는 음악인들의 설자리를 빼앗아갔다.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을 두루두루 소화할 수 있거나, 트렌드에 맞는 가수만이 기존의 가요판에서 데뷔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21세기 들어 자신의 음악으로 영역을 확보한 가수의 숫자를 꼽아보면 답은 바로 나온다. 자기 음악을 하려는 이들에게 갈 곳은 인디 레이블 밖에 없어졌다. 음악 생태계에 허리가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음악인들이 음악 외의 다른 생업을 택해야했다. 실용음악을 전공해서 레슨이나 세션을 할 수 있다면 최선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독학으로 음악을 해왔다. 회사를 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의 노동 현실은 남의 노래를 카피하는 직장인 밴드 정도만이 허용될 뿐, 차분히 창작을 할 수 있는 여유를 좀처럼 주지 않는다. 20대때는 카페 아르바이트 같은 비교적 편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지만 이진원 같은 30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비교적 널리 알려진, 1집의 '스끼다시 내 인생' '절룩거리네' 같은 노래들은 불합리하디 불합리한 음원 요율과 방송 금지 판정등의 장벽으로 말미암아 그를 반지하 작업실에서 꺼내지 못했다.

그의 옆에 가족이 있었다면, 그래서 쓰러진 그를 바로 병원으로 데려갔다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난한 전업 뮤지션에게 결혼을 하고 정상적인 가정을 꾸린다는 건 힘들었다. 사회 안전망이라는 거창한 틀에서 소외되고 가족을 꾸리는 평범한 일 조차 사치일 수 있는 음악인의 삶이었다. 또한 청년 실업과 사회적 비용의 상승으로 인해 비혼을 택할 수 밖에 없는 지금 이 사회의 젊은 세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절룩거리네’로 사회의 단면을 질그릇처럼 노래했던 그였다. 역시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 인생의 마침표였다.

무비위크 '김작가의 음악돋보기'
by 김작가 | 2010/11/19 16:57 | 생각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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