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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1   인간 내비의 비애 [16]
인간 내비의 비애
홍대 토박이다보니 늦은 오후나 저녁쯤 되면 종종 전화가 걸려 온다.
홍대앞에 잘 안오는 지인들이
홍대앞에 와서는
홍대앞에 갈만한 곳이 어디냐는 문의를 하는 것이다

어느 지역에 가든
친절한 토박이가
그 지역의 인상을 결정하는 법

일단
인원을 물어보고
문의자와 상대의 관계를 물어보고
원하는 업종을 물어보고
원하는 분위기를 물어보고
현재 위치를 물어본 후

적절한 넓이와
적절한 분위기의
적절한 업소를
적절한 거리에 맞춰
제시하는 것이다

철저한 맞춤형 서비스랄까.
그래서
언제나
고객만족도는
물론
당연하게도
백퍼센트

인간이란
역시
밥먹고
술먹고
차마시는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존재다

게다가 남녀사이라면
무릇
더욱 그러하다

하여
가끔은
홍대쪽에 괜찮은 모텔이 없냐는 문의가 들어올 때가 있다
물론
이 경우에는
백퍼센트 문자고
그 동안의 관례로 보건데
백퍼센트 남자의 의뢰다

그런데
홍대앞에는 제대로 된 모텔은 커녕
모텔도 거의 없다
왕년에 수많은 청춘들에게
추억을 남겼던
삼화여인숙이 어느 한 구석에 있고
대로변에 있으되
그 규모와 외관의 분위기를 보건데
약 10년 전 리뉴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큰 뜻을 이루고픈 남녀라면
딱히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 수 밖에 없는
라인모텔이 있을 뿐이다

나름 모텔이 꽤 많을 법한 동네임에도
이토록 모텔이 없는 까닭은

1.홍대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모두 존재하는 독특한 지역이기 때문

2.홍대앞에 이렇게 사람이 많아진 건
2002년 이후로
이미 땅값이 제법 비쌌던 동네에
모텔을 신축할 수 있는 건물이 들어설 수 없었기 때문

3.이 동네가 은근히 고관대작들이 많이 주거하는
뼈있는 동네이기 때문

이 세 가지의 학설이 흔히 거론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1번을 밀고 있다

아무튼
무슨 이유가 됐던간에
모텔이 워낙 없는 동네이다보니
그런 문의가 들어왔을 때
추천할 수 있는 곳은

두 군데 밖에 없다
한 군데는 합정로터리 인근에 있는 모 호텔
또 한 군데는 모 사거리에 있는 모 모텔

이 두 곳을
친절하게도 현재 위치에서 목적지 가는 길까지
친절하게 대실 요금과 룸의 규모와 서비스에 대한
안내까지 곁들여 해주고 나면
레스토랑이나 카페나 클럽에 대한 안내를 해줬을 때 보다
몇 배의 진심이 느껴지는
감사의 답장이 돌아오곤 한다

그 때 마다 생각한다
이 정도의 진심이라면
놈의 본심은
문자가 아닌 통화로 감사를 전하고 싶을 테지만
성경에도 써있듯
무릇 그러한 것은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해야하는 법이니까
관대하디 관대한 나로서는
충분히 이해하고 싶어진다


여기서 잠깐,
위치는 그렇다 치더라도
어떻게
대실 요금과 룸의 규모와 서비스에 대해서
알 수 있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겠다

여기서 잠깐,
그에 대한 답변을 해주자면
이 동네에 모텔이
신촌이나 사당역처럼
무슨 촌을 이루는 것도 아니고
꼴랑 두어개에 불과한데
그 정도의 정보를 파악하고 있지 못해서야
지역의 토박이라 말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라기 보다는
어쨌든 버젓한 어른인데다가
혼자 살기 까지 꽤 오랜 시간을
가족과 함께 살았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점잖은 곳부터
점잖지 않은 곳까지
가리지 않고
지역 관광 및 유흥 및 유희 정보를 제공하는
나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응, 나야
어어 그래, 왠 일?
어 있잖아. 나 오랫만에 홍대 왔는데 근처에 괜찮은 모텔 없어?

어이쿠 왠 일로 문자가 아니라 전화로 이런 비밀스러운 문의가?

문자든 전화든
친절함을 잃어서는 곤란하다

게다가 전화로 그런 걸 묻는다는 것은
상대방과
매우
격이 없는 사이임을 증명하는 사실일 터.

하여
거리에 상관없이
일대의 모텔들 중
가본 사람 마다
최고의 만족도를 자랑하는
합정 로터리 인근의 모 호텔을 추천

당연히 감사하다는 말을 들은 후
전화를 끊고
문득 생각을 했다

가만있자
아무리 그래도 전화로 그런 정보를 물어보다니 대단하군
아니 아니 잠깐만
이 놈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잖아?

순간
펄펄 끓인 콜라를 마시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대담함 때문?
노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를 요만큼도 남자로 보지 않는다는 것인가
그리하여
다른 남자랑 모텔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이라는 사실을
친히 육성으로 들려주겠다는
일종의 조롱이자 선언인 것인가

펄펄 끓인 콜라를 마시다가
입천장과 식도를 동시에 데는 기분이 들었다

만에 하나
그녀가 레즈고
특히 공을 맡고 있다면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얼마전까지 내 친구와 연인이었던 사이였던데다가
그 때까지만 해도
레즈는 커녕 바이일 가능성 조차 제로였던 인간이고
설령 갑자기 잠재된 본능을 깨달아
커밍 아웃을 했을지라도
이토록 빨리
나에게까지 알릴 확률은 누가 봐도
지극히 희박했다

멀쩡한 정신을 가진 인간이
콜라를 펄펄 끓여 마실 가능성보다
더욱 희박함에 틀림없다

뭔가
이루말할 수 없이
살짝
부아도 치밀어 오르고
섭섭하기도 그랬다

그것이
남자로서 뭔가 무시당한다는 느낌때문이었는지
단순한
욕구불만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살짝
조심스럽게
문자를 보냈다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한테 그런 거 물어보면 좀 그렇지 않냐

라는 굉장히 중의적이고 다의적이며 해석의 여지가 풍부해서
자못 정치적이기까지한 그런 문자를

답이 온 건
세 시간 정도가 지나서였다

SMS도 아닌
MMS로
그녀는 해명을 전해왔다

아, 그런 것 때문은 아니었고 친구랑 홍대 주변에서 놀다가 갑자기 영화가 보고 싶어졌는데 극장보다 편한 곳을 가고 싶은 거야 그래서 디비디방을 갈까하다가 여자끼리 디비디방가면 왠지 좀 뻘쭘해서 모텔에서 편하게 보려고 그랬어 오해했구나?ㅋㅋㅋㅋㅋ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저 MMS에서 눈꼽의 양자만큼이라도
진정성이 느껴지는가?

설마
그럴리가 없을 것이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다

나또한 그랬다

ㅋㅋㅋㅋㅋ아 그렇구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과연?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훗ㅋㅋㅋ

라고 답장을 보내서
살짝 비웃어주려 했으나
그녀와 모텔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을
상대를 옆에 두고
태연한 척
비겁한 변명을 떠올렸을 그녀의
곤궁한 처지를 배려하여

그냥
씹었다

나는 관대하니까
관대하고 말고
하면서

한 시간 정도 후
다시 문자가 왔다
그녀였다

근데 오빠가 알려준 대실 요금 틀렸더라? *****원이 아니고 *****원이던데? 그거 몇 년전 요금이래ㅋㅋㅋ

문의전화보다
변명문자보다
더욱 기분이 묘해졌다
우울해졌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인간 내비로서의 정보가 틀렸기 때문인지
혹은 굳이 써봤자
스스로의 곤궁한 처지를 드러낼 뿐인
어떤 문장 때문인지
지금도
나는
알지 못한다



*세 곡 요약


Billy Brag-Internationale

전화받은 직후에는
이런 기분이었다가


Choir and orchestra of Soviet radio-Internationale

비겁한 변명을 들은 후에는
이런 기분이었는데


Gong Lor-Samakhi Na Na Chaat (Internationale in Thai)

결국
이런 기분이 되었던 것이다


by 김작가 | 2009/12/11 06:33 |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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