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내한공연
2010/03/03   그린데이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12]
그린데이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관람자의 입장에서 공연은 보통 둘로 나뉜다. 재미있는 공연과 감동적인 공연. 머리를 비우고 비트와 사운드에 몸을 맞긴 채, 온 몸을 땀으로 적실 수 있는 공연이라면 재미있는 공연이다. 온 신경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와 무대위의 사람에게 집중한채 그 모든 순간을 되새길 수 있다면 감동적인 공연이다. 그렇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 둘을 하나로 묶는 공연이 있었다. 여기에 '존경스럽다'라는 단어를 추가하게 한 공연이 있었다. 지난 1월 18일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렸던 그린 데이의 첫 내한 공연이 바로 그랬다.

그린데이는 록의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커리어를 가진 밴드다. 일반적으로 록 뮤지션의 창작력은 젊을 때 절정에 다른다. 데뷔 앨범, 혹은 그 뒤의 한 두 장 앨범으로 나머지 여생을 이어나간다. 그 뒤에 히트곡이나 히트앨범은 있어도 공연에서 최고조의 분위기를 만드는 노래는 초기의 히트곡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린데이는 그렇지 않다. 우선 1994년 그들의 메이저 데뷔 앨범 <Dookie>가 있다. 1991년 너바나가 'Smells Like Teen Spirit'의 기타 리프로 80년대의 종말과 90년대의 시작을 선언한 이래, 음악계는 새로운 루키들의 등장과 숨어있던 명장들의 재발견으로 급속한 세대교체가 한참이었다. 거기에 화룡정점을 찍은 게 그린 데이였다. 'Basket Case' 'Welcome To The Paradise'등 거의 모든 곡이 사실상 히트곡이나 다름없었던 <Dookie>는 90년대 록에 펑크라는 화두를 더한 앨범이자, 70년대 펑크가 팝과 만나며 얼마나 새로워질 수 있고 동시에 에너제틱할 수 있는지를 입증하는 명반이었다. 또 하나, 이 앨범의 공로가 있다면 듣는 사람을 리스너에 머물게 하지 않고 뮤지션으로 거듭나게 했다는 점이다. 쉽고 단순한 연주, 그 안에 담겨있는 설레이는 멜로디, 사춘기의 불안한 감성이 있는 그대로 표현된 가사는 생전 기타를 잡아 본 적 없었던 당시의 청소년들에게 기타를 잡게 했다. 미국이나 영국 뿐 아니라, 일본과 한국에서도 그린데이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밴드를 결성한 이들이 속속 등장했다. 너바나와 그린데이가 아니었다면 90년대 한국 인디신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린데이는 그 후에도 계속 좋은 앨범들을 내놨다. <Insomaniac> <Nimrod> <Warning>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궤적은 곧 90년대의 흐름이었다. 그들과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던 펑크 밴드들이 대부분 10대를 위한 음악에 머무는 반면, 그린데이는 앨범 하나를 낼 때 마다 그만큼 먹어온 자신들의 나이를 반영시켰다. 어쿠스틱한 사운드가 있었고, 음악적 다채로움을 확장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평가하는 사람에 따라 범작이라 할 수는 있어도 졸작이라 할 수 있는 앨범은 단 한 장도 없었다. 그러나 역시 <Dookie>를 능가하는 파급력을 갖는 앨범은 없었다. 그린데이는 그렇게, 꾸준히 웰 메이드 앨범을 내면서 나이 먹어가는 90년대 밴드의 모범을 그려나가는 듯 했다. 초기 히트곡으로 공연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성공한 중견 밴드의 길을. 그러나 2004년 발매된 <American Idiot>은 모든 걸 바꿔버렸다. 21세기 미국 청소년의 새로운 타입인 고스족을 연상케하는, 스모키 메이크업과 블랙 & 레드로 코디한 의상으로 연주한 'American Idiot'은 그들의 밴드 경력을 리셋시키는 노래였다. 어디 그 노래 뿐이었는가. 이라크 전 참전 군인을 남자 친구로 둔 여성들의 심금을 울렸던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같은 발라드는 록의 열혈팬이 아닌 이들도 설득할 수 있는 수작이었다. 공과 수, 완과 급, 장과 단을 모두 겸비한 앨범이 바로 <American Idiot>이었던 것이다. 중생대의 대기만큼이나 고밀도의 사운드, 교체한 자동차 엔진처럼 광속으로 질주하는 리듬, 2시간 짜리 영화를 3분으로 압축한듯한 다이나믹하고 스펙터클한 구성은 그들을 90년대 밴드에서 2000년대의 핫 아이콘으로 리셋시킨 힘이었다. 94년 <Dookie>로 로큰롤 하이스쿨의 모범생으로 입교한 그들은, 이 앨범에 이르러 로큰롤 하이스쿨의 교사가 될 수 있던 것이다. 수작의 행렬끝에 나온 이 명작으로. 오죽했으면 최근 앨범이자 만만찮은 완성도를 갖고 있는 록 오페라적 앨범 <21st Century Brokedown>이 나왔을 때, 비평가들이 "그린데이라면 이런 앨범은 자다가도 만들 수 있다"며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내렸을까.

그런 그린데이의 공연이었다. 90년대에 청춘을 보낸 세대와 바로 지금 청춘을 보내고 있는 세대가 함께 열광할 수 있는, 그것도 서로 다른 노래에 반응할 수 있는 몇 안되는 팀의 내한 공연이었다. 약 일만 이천 명의 관객이 빼곡이 들어찼다. 티켓은 진작에 솔드아웃. 강추위를 뚫고 지하철 역에서 체조 경기장까지 향하는 행렬의 얼굴은 하나같이 설래였다. 어느 정도 딜레이되기 마련인 공연의 시작은 정확한 시간에 시작됐다. 인트로와 함께 등장한 그린데이는 새 앨범에 담긴 노래들로 공연의 스타트를 끊었다. 초기 시절의 곡들을 연주할 때는 30대가, 최근 두 장의 앨범에 담긴 노래를 할 때는 10대와 20대가 함성을 질렀다. 여기까지는 '재미있는 공연'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설명이다. 그 공연이 감동적이었던 건, 옛날 노래를 할 때나 최근 노래를 할 때나 변함없는 연주력과 목소리였다. 인간은 누구나 세월을 겪는다. 10년전의 목소리와 지금의 목소리는 그래서 다르다. 목소리를 소모해야하는 보컬리스트라면 더욱 그렇다.  90년대에 등장했던 밴드들이 옛날 노래를 할 때 힘들어하는 건 그런 면에서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린데이는 그 당연함을 벗어나있었다. <Dookie>부터 <21st  Century Breakdown>까지의 모든 목소리와 연주가 한 점 흐트러짐없이 그대로 재현됐다. 음악을 위해 얼마나 많은 로큰롤의 쾌락을 포기해왔을까. 얼마나 철저하고 치열하고 성실하게 자기관리를 해왔단 말인가. 그런 노력이 첫 내한공연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었다. 한점 빈틈없이 들어찬, 초등학생부터 중년까지의 일만이천관객들이 몸이 부숴져라 놀고, 목이 터져라 소리질렀던 건 그런 인생에 대한 본능적 반사작용에 다름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써놓고 보니 왠지 거장의 공연에 어울릴 법한 문장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을 오직 음악에 바쳐온 장엄한 거인의 무대에. 하지만 천만에, 그들은 멋지게 늙은 게 아니라 여전히 젊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느낌일 것이다. 94년 우드스톡 페스티벌에서 관객들과 진흙을 던지며 놀던 펑크 키드는 전혀 늙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한 액션이 아니었다. 진짜 에너지였다. 왜 그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에너지였다. 그들은 시시때때로 관객을 무대 위로 끌어 올렸다. 마이크를 건내고 노래를 하게 했다. 기타를 치게 했다. 공연의 중심에 밴드 뿐만 아니라 관객도 함께 있었다. 서로 주고 받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동등한 위치에 그린 데이는 관객들과 자신의 관계를 위치시켰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린 데이에 의해 무대에 오른 어느 여고생이 빌리 조에게 키스 세레머니를 할 수 밖에 없던 것은. 생각해보라. 동경해마지 않는 록스타가 자신을 무대 위로 끌어 올렸다. 노래를 하라고 마이크를 건네 주더니, 자신 앞에 무릎꿇고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이성이 존재할 틈이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 거기에는 오직 욕망과 용기의 룰만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누구라도 그럴 수 있었다. 그만큼 굉장한 에너지가 2시간 내내 공연장을 출렁거리게 했던 것이다.

그런 에너지만으로 그린 데이는 관객을 쥐락펴락했다. 요즘의 대형 공연계에 필수품으로 여겨지는, 무대 영상이나 화려한 장치, 하다못해 현장중계용 스크린도 없었다. 오직 무대가 있었다. 밴드가 있었다. 그리고 관객이 있었다. 이 최소한의 요소만으로 그린 데이는 왜 그들이 다른 밴드들처럼 사멸하거나 쇠락하거나, 전성기 이후의 삶을 이어가는 단계에 머물지 않고 현재진행형의 시간을 살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줬다. 압도적인 본질로 외적인 모든 것들과의 차이를 만들어냈다. 그 크고 넓은 올림픽 체조 경기장이 작은 라이브 클럽처럼 느껴지던 공연이었다. 내한공연 역사에서 하나의 전설로 기록될 가치가 있는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 그 공연을 본 음악인들은 홍대로 향했다. 그리고 밤새도록 그린 데이의 노래를 틀어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마치 자신들이 공연이라도 한 것 마냥, 설레고 기쁜 표정으로. 엔돌핀과 아드레날린이 솟아오르는 대화였다. 그린데이가 그들에게 하사한 활기였다. 안봤으면 후회할 공연이 아니다. 꼭 봤어야만 하는 공연이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걸, 시간이 지나도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그런 공연이었다.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현대카드 사보에 실림.

by 김작가 | 2010/03/03 14:38 | 스토리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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