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김현진
2007/11/23   <당신의 스무살을 사랑하라> [8]
<당신의 스무살을 사랑하라>

김현진이란 이름이 세상에 알려진 건 90년대 후반이었다. 처음은 자퇴생이었다. 하고 많은 자퇴생들 중에서 그녀가 서태지로 촉발된,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던 자퇴생의 시대를 대표했던 건 고등학교를 관둔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들어갔으며 무료잡지 붐과 함께 등장했던 영화지 ‘네가’의 편집장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 때 그녀의 나이는 아직 10대였다. 매체는 그녀를 앙팡테리블처럼 소개했다. 닫힌 교실을 박차고 나와 자신의 세상을 열어제끼는 주체로서 그녀를 호명했다. 그러나 과연 그랬을까?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자퇴생에게는 그 후로도, 그 전만큼이나 희망없는 세상이 이어졌다. 주체가 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어쩌면 그녀도, 앙팡테리블이 아니라 다만 신기한 아이로 소비된 것인지도 모른다. 주류에 의해 대상화된 체로.

김현진이란 이름을 다시 본 건 작년 창간된 ‘매거진 T'였다. ’이상한 나라의 TV‘라는 칼럼에서였다. 이 칼럼은 TV프로그램에 관련된 거였지만, TV는 사실 이야기를 꺼내기 위한 출발점에 지나지 않았다. 김현진은 이 칼럼을 통해 결국, 이 땅에서 여자로, 20대로 산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세상의 아이러니를 외쳤다. 페미니스트냐고? 만약 당신이 페미니스트를 ’조리퐁은 여자의 성기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없애야 한다‘라는 흰 소리나 하는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다면, 김현진은 절대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여자, 그것도 안 예쁘고 돈도 없는 젊은 여자가 한국에서 산다는 건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가를 김현진은 이야기할 뿐이다. 자신의 가정사와 연애사와 회사생활과 학교생활을 톡톡 털어가며. 구질구질한 신세한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의 글은 읽는 순간 빠져든다. 첫 문장과 끝 문장 사이에 찍혀있는 마침표를 무시하고, 마치 한 문장인듯 단번에 읽힌다. 김현진의 글은 주장과 논쟁의 광야가 아닌, 수다의 바다를 헤엄친다. 탱탱볼처럼 튀는 표현과 탈곡기의 벼처럼 쏟아지는 단어들은, 한 번 그녀의 글을 읽은 사람들을 즉시 애독자로 만들어버린다.

그녀의 새 책이 나왔다. <당신의 스무살을 사랑하라>다. <네멋대로 해라><불량소녀백서>등에 이은 네 번 째 책이다. 20대 여자들을 위한 ‘자기격려서’란다. 과연, 익히 접해왔던 김현진의 수다는 여기서도 작렬한다. 칼럼에서의 독기가 빠진 게 아쉽지만, 남자와 기득권에 의해 대상화된 지금 20대 소녀들에게 반발자국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그러나 내용에는 빈틈이 없다. 여전히 독한 언니다. 다이어트 강박증, ‘쿨’에의 집착, 자기계발서의 허구, 된장녀, 명품 등 이 땅에서 젊은 여성을 비하하기 위해 쓰이는 모든 코드들에 김현진은 가차없이 따귀를 날린다. 그런 코드들을 소비하고 있으면서 능동과 수동의 애매한 경계에 있던 ‘언니들’에게 딱부러지게 선을 그어주는 것이다. 하고 싶은 건 하고, 하기 싫은 건 하지 마라고. 당신은 당신일 뿐이라고. 당신이 아닌 어떤 것에도 연연하지 말라고. 만약 내가 그 또래의 여자였다면 (별로 상상이 되지는 않지만) 카타르시스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지가 잘못해놓고 오히려 나한테 손을 치켜드는 나쁜 전 남자친구에게 대신 물을 끼얹어주는 친구를 보는듯한 것이다.

혹자는 이 책에서 현실에 대한 명쾌하고 창발적인 대안이 없다고 시시하게 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다의 최우선 목적은 대안 제시가 아니다. 공감이다. 연예인 뒷담화를 하다보면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엄청난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친구들이 있다. <당신의 스무살을 사랑하라>는 딱 그 수위의 공감을 이끈다. 20대 여자들이 살면서 부딪히게 되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하여.


스쿱 원고

by 김작가 | 2007/11/23 16:28 | 바벨의 콘서트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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