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고고70
2008/10/01   <고고 70>: 청춘은 불꽃이어라 [11]
<고고 70>: 청춘은 불꽃이어라


생각해본다. 내 인생을 이끌었던 힘을. 설레임이었다. 중학교 2학년때 헬로윈의 <Keeper Of The Seven Keys>를 들었을 때의 충격은 먼 훗날 첫 경험을 했을 때와 맞먹었다. 설레였다. 그 때문에 메탈 키드가 되었고 머틀리 크루와 건스 앤 로지스, 그리고 메탈리카를 알게 되며 끊임없이 설레였다. 핑크 플로이드, 레드 제플린, 그리고 비틀즈. 모두 다른 설레임의 연속이었지만 같은 설레임이었다. 음악이었다. 어릴 때 TV홀릭이었던 나는 새로운 음악을 만날 수록 TV속의 세계가 얼마나 시시껄렁한 지를 알게 되었고 브라운 관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었다. 대신 소리가 주는 미혹에 점점 빠져들며 나이를 먹어왔고, 결국 음악을 듣고 소개하는 걸 업으로 삼게 되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음악이 운명처럼 나를 이끌었다.

또 생각해본다. 어디 음악뿐이었던가. 삶에서 에너지를 뿜어냈던 모든 순간에는 설레임이 있었다. 단순히 말하면 재미를 좇았고 정색하고 말하면 역동성을 좇았다. 내가 살아있다는 그 느낌. 뭔가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그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교내 신문반을 창립했고 대학교 때는 학생회에 몰빵하다시피 살았다. 제대한 후 우연히 만나게 된 드럭의 친구들, 그들에게는 내가 여지껏 겪었던 모든 설레임을 능가하는 설레임이 있었다. 그들과의 하루 하루가 그동안의 한달만큼이나 즐거웠다. 미칠 것 같았다. 그들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모든 이들또한 마찬가지였다. 기타라고는 잡아본 적도 없는 주제에, 밴드들과 어울려 20대의 반을 보냈고 30대의 반을 보내고 있다. 밴드의 생리와 기승전결과 흥망성회를 옆에서 지켜보다 보니 이제 감히 때때로 훈수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중에서도 새롭게 떠오르는 밴드들을 바라보는 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다. 뜻맞는 청춘들이 서로 다른 소리를 내며 뭔가를 만들어내고 세상에 전파하는 것처럼 보기에 썩 좋은 것은 없다.그만큼 설레이는 것, 또한 없다.

이 블로그를 통해 영화 얘기를 한 적은 거의 없던 것 같다. 일찍이 영화지 기자를 그만두면서 다시는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애시당초 불성실한 관객이었으니 다시 불성실한 관객으로 돌아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꼭 얘기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 아니, 얘기해야만 하는 영화가 있다. <고고 70>이다. 이 영화에 대한 소문은 기획단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리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 동안 한국의 음악영화에 대해 그리 만족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음악 영화라는 것 만으로도 좋을 수는 있었지만 보고 난 뒤 드는 씁슬함이 불편했다. 왜 음악하는 이들은 저리도 비루하고 옹색하게 비춰져야만 하는가. 한 때 록스타를 꿈꿨거나 그 생활을 누렸던 그들은 왜 지금 저리도 남루하고 초라한가. 그리고 왜, 왜, 왜 음악은 그저 암울한 현실의 도피처에 불가한가. 닉 혼비의 말마따나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불행해져야 하는가. <고고 70>도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차승우가 캐스팅되면서, 그를 통해 조승우가 주연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지형과 신윤철 등 이 동네의 존중할만한 현역들이 대거 뮤지션으로 분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누구보다 개봉을 기다리게 됐다. 직감은 <고고 70>에서 음악은 도구와 수단이 아닌, 그 자체가 목적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시사회가 끝나고 얼마 후, 차승우와 조승우와 술을 마셨다. 사적인 자리였으니만큼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닌, 솔직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둘 다 그 정도의 관계는 된다. 조승우는 이 영화에 대해 정말 만족하고 있었다. 자기한테는 정말 의미가 깊은 작품이라고도 했다. 내가 아는 한, 차승우는 세계에서 프라이드가 가장 강한 놈의 하나다. 아마 노엘 갤러거에도 뒤지지 않을 거다. 후지면 안하고, 마음에 안들면 올곧디 올곧게 직설 화법으로 마음에 안든다고 말한다. 그 역시 <고고 70>이 정말 좋다고 했다. 그리고 영화를 봤다. 조승우와 차승우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고고 70>은 한국에서 나온 어떤 음악 영화보다 제대로 된 음악 영화다. 영화에 나오는 모든 음악이 후시가 아닌 동시 녹음 되었기 때문에 사운드의 스펙터클을 느끼게 해줘서만은 아니다. 공연 장면에 A급 촬영감독들이 잡은 10대의 카메라가 동원되어 록 콘서트의 열기를 생생하게 담아내서만도 아니다. 그동안 예쁘기만하고 보잘것 없는 연기를 선보이던 신민아가 아마 그녀의 필모그래피에서 의미있는 캐릭터로 그녀의 매력을 한껏 뽑아내서만도, 역시 아니다.

<고고 70>의 매력은 밴드의 생리와 멋스러움, 그들의 욕망과 갈등을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는 점에 있다. 밴드란 아이러니한 집단이다. 처음에는 친구들끼리 호기롭고 순수하게 시작한 일이 스타덤에 오르게 되면 온갖 유혹과 쾌락에 시달리게 된다. 음악을 스스로 만들고 연주하는 집단이다보니 타인의 간섭도 상대적으로 덜하다. 의견 충돌은 필연적이다. 어떻게 하면 음악을 더 잘할 수 있을까, 에 대한 심사숙고에서 나오는 충돌이라면 좋을텐데 불행하게도 인간이란 쾌락에 무너지기 십상이다. 요컨데 뜬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로움에 탐닉하는 이들이 생기기 마련인 것이다. 대부분의 밴드가 그들 최초의 히트곡을 콘서트 마지막에 연주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대중은 그들의 현재에 만족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지금까지 해왔던 것만 지키면 앞으로도 계속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어리석음에 빠지게 된다. 모두가 그런 생각을 가지면, 그들은 곧 지리멸렬해진다. 어제까지 열광하던 관객들이 오늘 더없이 냉담해지는 걸 만나게 된다. 그리고는 사라진다. 헌데, 밴드의 리더격인 인물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다른 멤버들의 무사안일을 다잡으려 하면 거기서 갈등이 발생한다. 무명 시절이었다면 따랐을 멤버들이, 이제는 대가리가 커도 너무 컸다. 니가 그렇게 잘났냐? 그래 개새끼야 지금 뭐하는거야! 좃까 씨발 너랑 밴드 안해! 그리고는 탈퇴, 심하면 해체. 여태껏 많은 밴드들이 그런 전철을 밟아왔다. 정책적으로 록을 장려했던 쌍팔년도에 밴드들의 이합집산이 잇다랐던 건 대부분 그런 과정을 통해서다. 회사라면 계약으로 찍어누르면 된다. 가족이면 권위와 사랑으로 다독이면 된다. 하지만 밴드는 회사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다. 욕망의 공동체일 뿐이다. 욕망이 어긋나면 필연적으로 균열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집단이다. <고고 70>은 밴드의 그런 본질을 정확히 집어낸다. 다만 밴드 문화가 마이너리티에 머물고 있는 한국에서, 스토리 상에서 이에 대한 충분한 설명없이 상황이 전개되는 건 아쉬운 지점이긴 하다. 그 외에도 상황과 상황이 툭툭 끊어지면서 최호감독의 전작 <사생결단>에서 볼 수 있었던, 팽팽한 긴장의 그물에 군데 군데 구멍이 있다는 것도 충분히 지적받을만한 대목이다.

하지만 <고고 70>이 관객과 주고받는 대화는 언어와 연기에 있지 않다. 바로 음악에 있다. <와호장룡>처럼 잘만든 무협영화의 화법이 각각의 결투신을 통해서 언어로 짜여진 스토리 이상의 메시지를 전달해주듯, <고고 70>에서 시시때때로 등장하는 공연 장면또한 그렇다. 밴드의 현재 상황과 시대속에서의 의미, 그리고 흥망성쇠의 키워드는 데블스의 공연과 음악을 통해 설파된다. 당초 상영시간의 두 배 가량 촬영됐던 영화를 편집 과정에서 공연쪽에 방점을 찍었다는 감독의 의도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라. <와이키키 브라더스>부터 <님은 먼 곳에>에 이르는 한국 음악영화들을. <고고 70>은 그 영화들과는 사뭇 다른 감흥을 전해줄 것이다. 영화를 보고 있다는 기분이 아닌, 공연을 보고 있다는 기분을, 그러나 뮤지컬의 치밀한 연출이 아니라 록 콘서트만이 전해줄 수 있는 즉흥의 에너지를 느끼게 해줄 것이다. 따라서 '음악만 있고 스토리는 없다'는 일부의 지적은 틀렸다. 오히려 더욱 많은 음악이 있었어야 했다. 왜 피닉스가 '로크 대왕'인지, 템퍼스가 '보컬 대왕'인지 그들의 공연을 통해 더 보여져야 했다. 신윤철과 이지형은 자신들의 역량으로 충분히 이를 설명할 수 있었다. 그 부분이 많이 제시되지 않은 게, 나로서는 무엇보다 아쉽다. 만약 이 점이 보완됐다면, 미8군의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고 기지촌이라는 변방의 공간에서 출발한 데블스가 어떻게 클럽 니르바나의 주역이 될 수 있었는지 더욱 생생하게 전달될 수 있었을 거다. 록스타는 경쟁과 승리를 통해서 더욱 그 존재를 빛내는 법이기 때문이다. 만약 1996년, 오아시스와 블러의 남북전쟁이 없었다면 오아시스에게는 브릿팝의 패자라는 이미지를 얻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시민회관이 불타고, 박정희가 록을 금지시키기 전 (아, 박정희 개새끼) 록이 당대의 트렌드를 주도할 수 있었던 이유중 하나도 플레이보이배 그룹사운드 경연대회였다. 지금처럼 맛가기 전,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의 대상 수상자들이 누렸던 스타덤 역시 경쟁과 승리에 있었다. 데블스가 스타덤에 오르는 과정 역시 마찬가지였을 거다. 왜 피닉스와 템퍼스는 양념처럼 등장하는 것으로 그치는가.

허나, 이것은 음악 덕후의 푸념일 뿐이다. 데블스 자체만을 지켜보는 것으로도 <고고 70>은 충분한 박력을 선사한다. 조승우의 보컬이 있고 차승우의 기타가 있다. 여기에 손경호의 드럼이 더해진다. 어떤 명연기자가 캐스팅 되었어도 연기할 수 없는 재능과 에너지를 <고고 70>은 만끽하게 해준다. 록이 '젊었을 때나 좋아하는 취미 생활'이 아닌, 젊음 그 자체의 대명사였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 시절에 반짝 반짝 빛났던 청춘, 시대의 톱니바퀴에 아랑곳하지 않고 '질러부러!'라고 외쳤던 청춘의 음표다. 70년대의 비루함은 그들과 마찰을 빚어내는 장치이자 그들을 단련시키는 기폭제다. 70년대 정치의 폭력은 데블스를 그저 로큰롤의 화염을 태우는 것만으로, 관객을 미쳐 버리게 하는 것만으로도 시대의 저항자로 만든다.그리고 70년대 경제의 빈한함은 그들의 '소울'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음악하는 놈들은 그리도 가난하면서 음악을 하냐고. 불행하지 않냐고. 물론이다. 비록 가난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최소한 몇천만원의 연봉을 받으며 정시 퇴근과 야근을 반복하는 이들에 비하면 훨씬 행복하다. 나는 그런 표정을 10여년간 지켜봐왔다. <고고 70>에 담겨있는 모든 이의 표정이 바로 그렇다. 데블스는 물론이고 그들을 발견하는 평론가, 그들앞에 열광하는 관객들의 표정은 짜릿하다. 일부러 만들어낼 수도 없고 어디서 재현할 수도 없는, 굉음과 육체가 만나 만들어내는 희열을 이 영화는 포착하고 있다. 그래서다. <고고 70>을 보는 내내 설레였던 것은. 헬로윈에서 플리퍼스 기타에 이르는 상승의 순간을 영화 한 편을 통해 또 만났다. 불꽃같은 청춘의 불꽃같은 순간이 불꽃처럼 타오른다. 그러니 원칙을 깨고, 이 블로그를 통해 영화 얘기를 할 수 밖에. 개봉하면 사운드 좋은 극장에 가서 꼭 한 번 다시 보겠다고 다짐할 수 밖에. 다시 한 번 단언할 수 있다. <고고 70>은 한국 음악 영화의 새로운 전범이다. 그리고 한국 청춘 영화의 걸작이기도 하다. 왜 록을 젊음의 음악이라고 하는가. 청춘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고고 70>은 이에 대해, 단순명료하게 외친다. 질러부러!, 라고. 또한 말한다. 핏속의 불씨에 휘발유를 붓는 것. 그것이야말로 소울이고 로큰롤이라고.
by 김작가 | 2008/10/01 23:59 | 스토리 | 트랙백(5) | 덧글(11)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음악 친구나 해요
by 김작가 2008 이글루스 TOP 100
Calendar
메모장
noisepop@hanmail.net
http://twtkr.com/GrooveCube
카테고리
전체
음악이 해준 말
생각
스토리
대화
어른들의 놀이터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상수일지
아주 특별했던 봄
아주 특별한 여름
go20
private press
NM
야담과 실화
바벨의 콘서트
VS 칼럼
자전거 라이프
방명록
비밀의 창고
미분류
포토로그

보이는 것의 날인
태그
아이돌 페스티벌 국카스텐 아감벤 내한공연 맑스 그린데이 2010 씨엔블루 들뢰즈 이런들어떠하리저런들어떠하리 레미제라블 블로그 FnC 밥딜런 오아시스 철학성향테스트 매시브어택 루시드폴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문화정책 VampireWeekend 전망 이병우 글래스톤베리 어떤날 Contra 인디 트위터
전체보기
rss

skin by zodiac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