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거리공연문화
2008/01/04   인디 음악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 [11]
인디 음악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



대한민국에서 인디 음악을 지원하는 정책은 딱 하나다. 인디레이블 육성지원 사업이다. 2003년부터 시작, 매년 20개 정도의 프로젝트를 선정해서 제작비 1천만원을 지원해온 문화컨텐츠진흥원 정책이다. 매년 봄이 되면, 이 지원금을 둘러싸고 그야말로 쟁탈전이 벌어진다. 물론 빽을 동원한다던가, 권모술수가 판친다던가 하는 아비규환은 아니다. 록 밴드와 힙합팀, 퓨젼 국악과 그 외 온갖 비주류 음악인들이 기획서를 써서 지원서를 접수하러 진흥원으로 몰려든다. 이 날이 되면 인디 동창회라는 말이 썩 어울릴만한 풍경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정책으로 자칫 묻힐 뻔한 음악들이 음반으로 남았다. 이장혁의 데뷔 앨범,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Ramble Around>등은 5년간 시행되온 인디레이블 육성지원 사업의 가장 큰 성과다. 또한 이 정책은 기존 레이블들의 음악적 퀄리티를 높이는 결과도 낳았다. 메이저 음악계에서 1천만원은 큰 돈이 아니지만, 인디에서는 그야말로 거금이기 때문이다. 바닐라 유니티의 데뷔 앨범, 스왈로우의 <Aresco> 등은 이 정책을 바탕으로 제작된 우수한 앨범이다. 특히 스왈로우의 앨범은 지난 해 3월 한국대중음악상시상식에서 심사위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올해의 음반'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해 언젠가부터 흉흉한 소문이 들렸다. 인디레이블지원사업이 올해부터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동안 투입된 금액에 비해 시장에서의 성과가 너무 없기 때문이라는 근거였다. 하긴, 그럴 수도 있다. 위에서 열거한 음반 중 대중적으로 성공한, 쉽게 말해 많이 팔린 음반은 없다. 스타덤에 오른 뮤지션도 없다. 시장주의 논리라면 인디레이블지원사업은 그야말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일수도 있다.

하지만 물어보자. 인디 음악의 존재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한국 인디 음악이 싹 튼 90년대 중반부터,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한 대답을 해왔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다양성과 독창성, 그리고 토대로서의 가치다. 한국의 인디 음악은 갈수록 획일화, 상품화되어가고 있는 대중음악계에서 다양성을 담보하고 있다. 초창기 펑크, 그런지 등에서 출발해서 10년 가까이 된 지금, 경향은 있어도 대세는 없어졌다는 게 그 증거다. 다양한 시대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전 세계 인디 음악의 추세이기도 하다. 또한 기획사 시스템하에서 철저히 분업화된 대중음악 생산 시스템에서 창작자가 주체가 되어 자기표현으로서의 음악을 지켜내는 장이다. 트렌드만 쫓는 게 아니라 자신의 독창적 음악으로 음악의 질적, 미학적 발전을 이끄는 것이다. 주류 음악계에서 갈수록 싱어송라이터의 입지가 좁아지는 상황이다보니, 인디 신은 그들의 유일한 숨통 역할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토대다. 대중음악의 역사를 발전시켜온 이들은 대부분 언더그라운드에서 시작했다. 비틀즈부터 너바나 까지 모두 그랬다. 그들은 지역 인디 신에서 출발해서 세계를 점령했다. 좋은 의미에서의 피라미드 구조는 음악 씬을 건강하게 한다. 따라서, 인디 음악을 지원하는 정책에는 거시적 안목이 필요하다. 당장의 시장성으로 평가하기 보다는, 시장성을 갖출 수 있는 여견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외연 확대를 위한 정책과 내수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인디 음악은 오프라인에서 어렵지만, 온라인에서도 어렵다. 갈수록 커지는 온라인 시장에서 인디 음악이 차트 50위권에 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시장을 당장 키울 수는 없다. 다른 돌파구가 필요하다. 장르 음악이 발달한 해외 시장말이다.  현실적으로 진출 불가에 가까운 영미권은 아니더라도 아시아 음악 시장에서 한국 인디 음악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껌엑스, 스트라이커스등의 밴드는 그 좋은 사례다. 껌엑스는 한국 록 밴드 중 일본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팀이다. 2003년 자력으로 일본의 메이저 기획사 토이스 팩토리와 계약을 맺은 그들은 2005년 군입대 직전까지, 일본의 대형 클럽과 록 페스티벌을 누비며 현지 펑크 씬에 자리를 잡았다. 지난 해 주요 멤버들의 제대 이후 다시 토이스 팩토리와 재계약, 오는 5월부터 일본 50곳 이상을 누비는 투어를 준비하고 있다. 댄스와 발라드가 전체 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는 국내의 기형적 소비 패턴과는 달리,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확고히 자리잡고 있는 일본 시장은 실력있는 국내 밴드들이 진출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다. 동남아 시장도 무시할 수 없다.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의 국가의 음악 시장은 한국을 능가한다. 아직까지도 100만장 이상의 밀리언 셀러가 나오는 곳이다. 일본과 동남아, 그리고 중국을 하나로 묶는 '아시아 투어 라인'은 그래서, 인디 음악을 지원할 수 있는 매력적인 정책일 수 있다. 현지의 중대형 라이브 클럽들과 연계, 이 클럽들을 통해 투어 라인을 형성하는 인프라를 구축한다면, 대부분의 인디 밴드들이 현재 바라볼 수 있는 가장 큰 목표인 '홍대앞 스타'를 능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현 상황에서 지금 음악을 시작하는 소년들이 꿀 수 있는 꿈은 작을 수 밖에 없다.

내수 시장의 확대를 위해서는, 뿌리부터 시작해야한다. 우선 지역 음악 신의 양성이다. 한국 제 2의 도시인 부산에조차 라이브 클럽이 2개 밖에 남지 않았을 만큼, 한국의 지역 음악은 초토화됐다. 비틀즈 혁명의 거점이었던 리버풀, 80년대 후반 세계의 멋쟁이들을 매혹시켰던 맨체스터, 너바나를 배출한 시애틀, 모두 지역 씬의 활성화로 독자적 사운드를 만들어낸 도시들이다. 뿐만 아니라 음악 선진국일수록 각 지역마다 독특한 음악이 존재한다. 지역에서 출발해서 중앙으로 진출하는 시스템이다. 한국의 인디 음악이 홍대앞에서 시작해서 홍대앞으로 끝나는 지금의 상황에서 자생적 음악신의 발현, 지역 스타의 등장은 요원한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거리 공연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공연 관람이 하나의 이벤트처럼 되어 있는 한국특성상, 라이브 클럽에는 높은 심리적 벽이 세워져있다. 음악 매니아들이나 가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나마 클럽이 없는 도시가 더 많다. 그래서 거리 공연 문화가 필요하다. 세계 어딜 가나 거리의 뮤지션들은 도시의 색깔을 만드는 주역중 하나다. 일본의 경우, 아카펠라부터 펑크 까지 거의 모든 장르의 뮤지션들이 우선 거리에서부터 공연을 시작한다. 거리에서 팬을 만들고 클럽으로 진출한다. 거리는 지역 음악 신을 만들 수 있는 첫번째 거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거리에서 공연을 하기 위해서 공식적으로는, 허가를 받아야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원칙적으로 단속의 대상이다. 도심의 광장이나 유동인구가 많은 블록 등에서 활발한 공연이 이뤄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거리는 열린 공간이다. 사람을 끌고, 문외한도 팬으로 만들 수 있는 공간이다. <어거스트 러시>에서 주인공 에반이 처음 기타를 잡자마자 쳤던 'Bari Improv'는 원래 카키 킹이란 뮤지션의 곡이다. 그녀도 거리에서 출발해서 직업 뮤지션이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거리 공연 문화가 활성화될 때, 지역 음악 신의 가능성은 열린다. 큰 예산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쏟아질 수 있는 민원에 부딪히지 않기 위한 교통정리와 분위기 조성 정도면 충분하다. 

대중음악은 산업이지만 예술이기도 하다. 굳이 예술이란 거창한 말을 쓰지 않더라도, 창작임에는 틀림없다. 음악이 발달한 나라일수록, 뮤지션들은 인디 신에서 창작활동, 공연활동을 시작한다. 그곳에서 보다 많은 대중과 만날 수 있는 기초를 쌓는다. 인디 신은 창작의 인큐베이터다. 혹은 자궁이다. 인디 음악계에 대한 정책적 지원없이, 한국 대중음악의 장미빛 미래를 꿈꿀수는 없다. 대형 기획사가 만들어낸 분업 시스템과 마케팅 지상주의가 점령해버린 지금의 주류 음악계를 보고 있으면 더욱 그렇다.

시사IN 원고

by 김작가 | 2008/01/04 09:18 | 생각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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