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우, 어떤날을 연주하다

지난 9월 중순, 이병우는 콘서트를 어떻게 꾸며야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10월 3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콘서트, 이 곳에서만 벌써 열 번째 공연이다. 뭔가 좀 다른 걸 보여주고 싶었다. 당초 생각하고 있던 건 브라질 음악을 연주한다거나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정도였다. 조언을 얻기 위해 지인에게 전화를 했다. 어떤날 시절부터의 오랜 팬이기도 한 지인이었다. 이병우는 이런 말을 들었다. “형님에게 가장 새로운 건 어떤날의 음악을 하는 거에요.” 그는 대답했다. “뭘 그런 옛날 노래를... (조)동익이형도 없고...” 그리고 혼자말처럼 되뇌었다. “어떤날, 어떤날이라...” 결정이 됐다. 그리고 이병우 본인도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 밀려왔다. 어떤날을 기억하는 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트위터에 이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미친 듯이 리트윗이 됐다. 마치 지금의 인기 가수의 새소식을 전하는 것과 비슷한 속도로. 이런 반응에 당초 두 곡 정도를 생각하고 있던 계획도 바뀌었다. 이병우 자신의 노래 뿐만 아니라 조동익의 노래도 추가, 30분으로 시간을 늘렸다. 1986년과 1989년, 두 장의 앨범을 내놓고 역사로 사라진 어떤 날. 하지만 앨범만 내고 단 한 번도 공연을 한 적 없는 어떤 날의 음악들은 그렇게 처음으로 라이브로 들려지게 됐다.

어떤날이 결성된 건 1984년, 이병우가 갓 스무살이 됐을 무렵이다. 열한 살부터 기타를 잡았던 그는 주변에서 제법 기타를 잘 치는 소년으로 통했고, 그런 그를 한 친구가 압구정동의 카페에 데려갔다. 조동익이 기타치며 노래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카페였다. 역시 같은 아르바이트를 하던 친구가 이병우와 조동익을 소개해줬다. 다섯 살 차이였던 둘은 곧 친해졌다. 팻 메스니, 핑크 플로이드... 음악 취향도 비슷했다. 함께 음악을 해보기로 했다. 조동익은 이병우에게 들국화의 최성원을 소개시켜줬다. 그렇게 알음알음, 이병우는 언더그라운드(라 불리던) 인맥과 어울릴 수 있었다. 조동익이 자신의 친형이기도 한 조동진 2집을 위해 줬던 ‘어떤날’이라는 노래에서 팀 이름을 따오고 곡 작업을 했다. 그렇게 나온 곡중 ‘그런 날에는’은 1985년 동아기획의 컴필레이션 <우리노래전시회>에 실리며 어떤날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비슷한 시기에 발매된 들국화의 데뷔 앨범에는 이병우가 만든 ‘오후만 있던 일요일’이 실렸다. “늦잠자고 일어나서 한 번에 만들었어요. 동익이형한테 들려줬더니 녹음을 해보자고 했어요. 나중에 최성원형이 듣고 들국화 1집에 넣고 싶다고 했죠. 그 상황을 그냥 적으니까 노래가 딱 되더라고요.”

둘의 출생년도에서 제목을 따온 어떤 날의 데뷔 앨범 <1960.1965>는 1986년에 나왔다. 데뷔 앨범이었지만  중압감보다는 자유로움이 있었다. 녹음 기간에 제작자를 스튜디오에도 못오게 했다. “어린 마음에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아무도 큰 기대를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죠.” 그런 생각대로, 발매 당시 이 앨범을 주목한 사람은 없었다. 스산하고 차분했으며 서정적이고 밋밋했다. TV만 틀면 조용필이 나오고, 소극장 무대를 들국화가 주름잡던 시절이었다. “당시 (들국화를 비롯한 많은 명반을 제작한)동아기획이 어떤날에는 투자를 안했잖아요. 그만큼 상품성이 없었던 거죠.” 게다가 둘이 팀을 시작하면서 약속한 게 있었다.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기에 공연도 안하기로 했던 거다. 앨범에 담긴 노래들은 라디오에서 종종 흘러 나왔지만 아무도 그들의 공연을 볼 수 없었다. 이병우와 조동익은 앨범 발매후 다른 뮤지션들의 세션 활동을 하며 음악을 지속했다. 클래식 기타 유학을 결심한 후, 이병우는 두 장의 앨범을 연달아 녹음했다. 어떤날의 두 번째 앨범과 자신의 첫 솔로 앨범. 1989년 6월 어떤날의 두 번 째 앨범이 나왔을 때는 이미 솔로 앨범의 녹음까지 끝난 상태였다. 곧바로 오스트리아로 떠났다. 훗날 기타리스트와 영화음악가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이병우의 이십대 초반의 가장 큰 기억이었던 어떤날은 그렇게 기억으로만 남았다. 하지만 앨범은 기억에 묻히지 않았다. 이 두 장의 앨범은 시간과 상관없는 생명의 물결을 이어나갔다. 오버그라운드든 언더그라운드든 어떤 유행에도 휩쓸리지 않았기에, 오히려 세월과 상관없는 명반이 됐다. 한 시대를 여는 음악은 아니었으되, 시대가 바뀌어도 각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가슴 한 켠을 아릿하게 하는 음악을 그들은 남겼다. “20대의 가장 큰 추억이죠.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이고.” 그 사진이 처음으로 현실의 공간에 울려 퍼진다. 이병우의 기타와 이적, 유희열의 보컬로. 옛 생각에 젖어들고 지금 이 순간을 추억하게 될 울림이 10월의 마지막 날, 세종문화회관을 적시리라.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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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 2010/10/15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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