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 내한후기

믿지 않았다. 밥 딜런 내한설이 떠돌 때, 그가 실제로 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전에도 수차례는 뿌려진 떡밥이 아니었던가. 100% 거짓으로 끝났던.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내한 공연 시장이 급속히 커졌지만 그럼에도 밥 딜런은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뮤지션이라고 단정했다. 그만큼 경외의 대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소위 전설이라 불리는 아티스트들의 시간은 바로 그 '전설'의 시기에 멈춰있는 경우가 많다. 재능과 열정이 만개했던 때의 업적을 나머지 일생에 걸쳐 재현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니까. 하지만 밥 딜런은 단지 전설로 그치는 이가 아니다. 'Like A Rolling Stone'이라는 그의 노래 제목처럼, 평생을 안주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찾아 떠돌아왔던 이다. 1941년 태어났으니 올해 우리 나이로 70이건만, 그의 음악적 여정은 멈출줄을 몰랐다. 삶의 여명기에 접어든 2000년대에 발매한 앨범들이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 모두 찬사를 받아온 건, 그저 경로우대 차원의 일은 아니었다. 식을 줄 모르는 음악적 열정과 창작욕구에 대한 마땅한 결과였다. 2007년 제작된 밥 딜런의 난해한 전기영화의 제목이 <아임 낫 데어>처럼, 어떤 고정 관념과 이미지도 거부한 채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고 있는 밥 딜런인 것이다. 그런 밥 딜런이 한국을 찾았다. 2010년 3월 31일. 한 달에 가까운 일본에서의 일정을 마친 후, 그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일반적인 공연 리뷰란, 보통 기존의 곡을 얼마나 충실하게 재현했느냐, 얼마나 화려한 무대 퍼포먼스를 선보였느냐, 또는 앨범으로는 다 느낄 수 없는 라이브의 감동을 얼마나 잘 전달했느냐, 정도가 기준이 된다. 하지만 밥 딜런의 공연에 그런 기준은 단 하나도 적용할 수 없었다. 그 모든 기준에서 밥 딜런은 완벽하게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Blonde On Blonde>에 실린 'Rainy Day Women'을 시작으로 마지막 앵콜곡이었던 'Blowin' In The Wind'까지, 밥 딜런은 총 18곡을 연주했다. 그러나 그 노래들은 앨범과는 모두 다른 버전이었다. 메인 리프를 듣고 제목을 떠올릴 수 있는 노래부터 가사를 유념해서 듣지 않으면 어떤 노래인지 알아차릴 수 없는 노래까지, 어떤 노래도 '충실한 재현'의 노선을 따르지 않았다. 미국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컨트리 클럽에서 열리는 파티처럼, 그는 대부분의 노래를 컨트리와 블루스로 편곡해서 들려줬다. 원형이 남아있는 노래는 많지 않았다. 애초에 밥 딜런에게 화려한 무대 퍼포먼스를 기대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며 무표정하게 노래하는 그의 유명한 옛 영상들을 눈앞에서 볼 수 있기를 바랬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밥 딜런이 기타를 잡은 노래는 단 한 곡, Lay, Lady, Lay 뿐이었다. 대신 그는 해먼드 오르간앞에 앉아 건반을 누르며 노래했다. 그래서 밥 딜런이 처음 무대에 등장했을 때 그를 못알아본 관객들도 있었다. 앨범으로는 느낄 수 없는 라이브의 감동, 역시 미묘하게 벗어나 있었다. 밥 딜런의 노래는, 노래라기 보다는 이야기에 가까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본래 그가 정확한 멜로디를 짚어가며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가수는 아니었다지만, 2010년 그의 노래는 더욱 이야기화 되어 있었다. 낮고 성긴 목소리에서 내뱉듯이 던져지는 가사는, 보다 음악과 분리된 의미로서 존재할 뿐이었다.

공연의 반응은 그래서, 현장에서도 양분될 수 밖에 없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그래서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보다 무대에서 가까운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중년층은 자리를 지키느라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들이 알고 있던, 즉 70-80년대의 한국에서 낭만화됐던 밥 딜런의 모습과 노래가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한국의 가수들이 지금 7080콘서트를 통해 과거를 '재현'하며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면, 그 날 밥 딜런의 모습에서 그런 향수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는 사실상 전무했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경제적 여유가 없는 젊은 층이 앉아있던 2층 객석에서는 끝없이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왔다. 밥 딜런이 과거에 머물지 않는 뮤지션임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었며, 그가 현재 어떤 형태의 공연을 하고 있는지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가 '무엇'을 연주하느냐가 아니라 공연 자체를 즐겼기 때문이기도 했다. 공연을 보던 한 외국인이 친구와 통화하며 말했다. "야, 한국 사람들은 이 공연을 앉아서 보고 있어. 진짜야!" 그가 놀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들의 문화권에서는 스탠딩으로 들으며 한 손에 맥주를 들고 까딱까닥 춤을 추며 즐겨야할 음악이었을테니. 그 양분되는 반응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밥 딜런은 기대안에 머무는 뮤지션이 아님을 보여주는 모습일 것이다. 그는 향수안에도, 만들어진 아우라안에도 없었다. 수천번도 더 연주했을 옛 히트곡을 들려주며 그 자신은 관객만큼 즐겁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지금 그 자신의 욕망이 가리키는 곳에 있는 소리를 훌륭한 밴드와 함께 연주했다. 첫 앵콜의 마지막 곡 'All Along The Watchtower'를 연주하기 전에야 그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팬 여러분, 고맙습니다." 그리고 밴드를 소개한 게 밥 딜런이 공연에서 한 말의 전부였다. 음악외에 달리 무엇이 필요하겠냐는 듯. 자신은 일생동안 한 번도 어떤 당위나 기대, 의무나 영합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사람임을 그는 어떤 기대를 시종일관 배반함으로서 역설했다. 즐깁시다, 이것은 그저 즐기기 위한 음악이에요, 라는 걸 그는 공연을 통해 말했던 것이다.

무엇인가를 선택한다는 건 쉽다. 하지만 역사적 위치에 오른 사람일 수록 그 선택 이전에 짊어져야할 무게또한  실로 대단할 수 밖에 없다. 60년대의 저항가수이자 팝의 전설, 그리고 가장 성공한 록스타. 그는 이 모든 무거운 이미지에서 벗어나 자신도 즐길 수 있고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한 명의 뮤지션으로서의 무대를 선보여줬다. 밥 딜런이란 이름이 아니라 음악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무대를. 누가 그럴 수 있을까. 인간이란 과거를 먹고 사는 존재다. 그래서 자신의 과거에 집착하고 그 과거에 투영되어 있는 존재가 지금 그것을 재현하기를 희구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일종의 거래다. 하지만 밥 딜런은 그 거래에 응하지 않음으로서 과거란 재현될 수 없음을, 중요한 것은 지금 무엇을 하느냐임을 첫(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내한 공연을 통해 보여줬다. 추억만을 먹고 사는, 이를 통해 현재를 합리화하는 이들에게 날리는 침묵의 고성이었다.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Rainy Day Women (Blonde On Blonde)>
Lay, Lady, Lay (Nashville Skyline)
I'll Be Your Baby Tonight (John Wesley Harding)
Stuck Inside Of Mobile With The Memphis Blues Again (Blonde On Blonde)
The Levee's Gonna Break (Modern Times)
Just Like A Woman (Blonde On Blonde)
Honest With Me (Love And Theft)
Sugar Baby (Love And Theft)
High Water (For Charley Patton) (Love And Theft)
Desolation Row (Highway 61 Revisited)
Highway 61 Revisited (Highway 61 Revisited)
Shelter From The Storm (Blood On The Tracks)
Thunder On The Mountain (Modern Times)
Ballad Of A Thin Man (Highway 61 Revisited)

 

Like A Rolling Stone (Highway 61 Revisited)
Jolene (Together Through Life)
All Along The Watchtower (John Wesley Harding)

Blowin' In The Wind (Freewheelin' Bob Dylan)

경기문화재단

by 김작가 | 2010/04/19 12:30 | 스토리
※ 이 포스트는 더 이상 덧글을 남길 수 없습니다.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음악 친구나 해요
by 김작가 2008 이글루스 TOP 100
Calendar
메모장
noisepop@hanmail.net
http://twtkr.com/GrooveCube
카테고리
전체
음악이 해준 말
생각
스토리
대화
어른들의 놀이터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상수일지
아주 특별했던 봄
아주 특별한 여름
go20
private press
NM
야담과 실화
바벨의 콘서트
VS 칼럼
자전거 라이프
방명록
비밀의 창고
미분류
포토로그

보이는 것의 날인
태그
블로그 트위터 페스티벌 문화정책 그린데이 2010 국카스텐 아이돌 FnC Contra 이런들어떠하리저런들어떠하리 전망 오아시스 맑스 내한공연 철학성향테스트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들뢰즈 루시드폴 글래스톤베리 씨엔블루 인디 매시브어택 밥딜런 어떤날 레미제라블 아감벤 이병우 VampireWeekend
전체보기
rss

skin by zodiac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