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 폴은 왜 면학을 접고 음악에 올인했나

2009년 초, 한국에 잠시 돌아온 루시드 폴에게 물었다. 박사도 땄는데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공부는 이제 그만하고 음악만 할 거라고. 설마. 2002년 도망치듯 떠난 유학이었다. 스웨덴과 스위스를 거치며 석사와 박사를 땄고, 그 와중에 두 장의 앨범을 냈다. 그렇게좌뇌와 우뇌를 동시에 활용해왔던 루시드 폴이었다. 그런데 한 쪽을 접다니. 그럼 ‘네이쳐’에 실렸던 논문은? 화학지 ‘JACS'에 실렸던 논문은 어떻게 할 건데? 무엇보다 7년이란 시간은 뭔데? 그가 공부를 접고, 전업 뮤지션으로 나서게 된 이유를 모놀로그 형식으로 들어보자.

“공부가 아니라 연구라고 하자. 순수 과학자가 아니라 엔지니어니까. 연구를 재미있게 했어. 그런데 상품 백화점이 갑자기 무너지지 않잖아. 피로도가 쌓이다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거야. 2008년 9월 토리노에서 열렸던 컨퍼런스였을거야. 호텔 로비에 포스터를 붙여 놓고 앉아 있는데 왠지 행사장에 들어가기 싫더라? 그 때 알았지. 무너졌다는 걸. 연구를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음악을 하면서 살아아겠다는 결심이 들었어. 그렇게 결정하기 한 달전까지만 해도 연구를 계속 할 거라는 걸 한 순간도 의심해본 적이 없어. 이미 학위도 받고 포스트 닥터로 있었으니까. 계속 포스트 닥터를 하려고 몇 군데 이야기도 있었고. 그런데 무너진거야. 그 전까지는 몰라. 나도 몰라. 다리 부러진 거 모르고 달리다가 들어와서야 퍽, 쓰러지는거지. 무너지고 나서 보면 원인을 따질 수가 있잖아.
일단 외국생활의 피로함. 작은 스트레스들이 주는 불편함과 피로함이 쌓였던거지. 그리고 같이 연구하는 사람들과의 답답함. 그들이 답답한 사람들이란 얘기가 아니야. 다만 더 재미있게 살 수 있는 파트너로는 힘들더라. 같이 일이 끝나고 맥주 한 잔을 하더라도, 나눌 수 있는 대화나 교감의 폭이 나와는 너무 달랐어. 그건 역설이야. 외국에 갈 때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한 한국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단조로웠던 거지. 그럴 수 있어. 제한된 필드에 있는 제한된 사람들이니까. 국적이 중요한 게 아니야. 정치인은 정치인의 성향이 있고, 법조인은 법조인의 성향이 있잖아. 공학하는 사람들, 과학하는 사람들도 그런 게 있거든.

또 하나는 동물 실험이었어. 적응이 안 되더라고. 쥐로 실험을 계속 했는데 못하겠는거야. 마흔 몇 마리를 죽였어. 그 실험이 결과없이 종결이 됐어. 사람의 모럴리티란 게 참 웃겨. 전쟁터에서 처음 사람을 죽였을 때는 괴롭겠지만, 살기 위해 반복되다보면 둔감해지거든. 동물 실험도 마찬가지야. 만 마리 가까이 죽이고 학위를 딴 사람들이 있거든? 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목을 비틀어서 죽여. 물론 그들이 악해서가 아니야. 둔감해지는거지. 나도 처음 실험을 할 때랑 나중이랑 달라지더라고. 그런데 그게 더 무서운거야. 그래도 내 스스로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동물에게 미안해도 계속 했겠지. 그런데 내가 만든 약이 이론적인 배경도 없는데 선생님들은 쥐에 쑤셔 넣으라는 거야. 전형적인 공학자 마인드가 뭐냐 하면, A라는 약물을 만들었어. 그럼 타겟이 있겠지? 약의 목적이 있을 거 아니야. 그런데 다른 곳에 써보고 싶어. 그래서 효과가 있으면 논문 한 편 더 쓸 수 있으니까. 그럼 실험을 하는 거야. 실험해서 뭐가 나오면 거기에 맞춰서 이론을 찾는거지. 역으로 맞춰서 스토리를 쓰는거야. 문제는, 생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고 있는 거지.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하는 연구가 유의미한가, 생각이 들었지.

교수를 하면서 음악을 할 생각은 없었냐고? 교수, 쉽게 못하지. 포스트 닥터 기간안에 좋은 논문을 내고 하면 지원해서 학교에 갈 수도 있겠지만, 내가 포스트 닥터를 안했다는 건 이미 그 길을 가지 않겠다는 이야기였어. 박사 땄다고 다 교수주는 게 아니거든. 세상에 쉬운 게 어디 있니. 나도 박사 학위 졸업한 사람 치고는 실적이 나쁜 편은 아니지만 더 좋은 논문 쓰는 사람 정말 많아. 회사에서는 마땅히 이슈거리가 없으니까 이른바 엄친아 마케팅을 하는 거지. 음악으로 홍보할 방법이 없잖아. 이 음반 좋아요, 라고 할 수는 없잖아. 리쌍이 나오기 전에 길, 박정아 연인설 터뜨리듯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거지. ‘핫 뮤직’이나 ‘서브’가 있을 때처럼, 많은 사람들이 인정받는 평론가의 리뷰를 보고 음악을 알 수도 없는 거고. 

물론 음악은 대안은 아니었어. 돌아오는 거지. 그건 그냥 계속 하고 있었던 거니까 돌아오는 거지. 아니, 음악만 하게 되는 거지. 물론 수동적으로 결정한 건 아니야. 음악에 올인하고 싶은 마음도 강했어. 가끔씩 한국 들어와서 음악하는 동생들을 만나면 내가 거기에 완전히 속해있지 못한 것 같았거든. 왜냐하면 나는 항상 돌아가야하고, 외국에서 다른 자극을 받고 있잖아. 그러니까 그들이 하는 고민이 완전히 동화되지 못하는 기분도 가끔 들었어. 그것도 사실 싫었지. 그리고 나는 음악을 시작하면서 단 한 번도 어딘가에 완전히 속해있지 못했어. 미선이 할 때도 다른 친구들은 재머스, 드럭, 하이텔 소모임, 어딘가에 속해 있었어. 게다가 대학생이었고. 그렇지만 나는 방위산업체에서 일을 했잖아. 마치고는 또 유학을 갔잖아. 한 번도 음악에 올인한 적이 없던거야. 그 상황이 지긋지긋했던거지. 그래서였어. 음악에 올인하기로 한 건."

BRUT

by 김작가 | 2010/02/19 13:02 | 야담과 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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