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한공연과 컨텐츠 시장



한국이 변하고 있다. 정치가 변하고 있으면 좋으련만, 불행히도 그건 아니고 내한공연 시장이 변하고 있다. 몇 년전 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팝의 양로원이라는 말을 쓸 수 있었던 한국이다. 정말이지 한 물, 아니 두 세 물씩 간 원로들만 오던 게 현실이었다. 혹은 본국에서는 무명인데 이상하게 한국에서만 인기 좋은 뮤지션들의 공연이나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흐름을 보면 그런 말은 이제 사어가 됐다, 라고 선언해도 틀리지 않다. 최근 한국을 찾은 뮤지션들만 거론해도 변화가 확 느껴진다.

지난 여름 레이디 가가를 시작으로 비욘세, 미카, 건스 앤 로지스, 어스 윈드 앤 파이어가 하반기에 한국을 찾았다. 올해는 뮤즈와 그린데이가 불과 두 주 차이로 공연을 했다. 휘트니 휴스턴이 2월 첫 주에, 시카고가 2월 23일에 내한 공연을 가진다. 제프 벡이 3월에,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가 4월에 내한한다. 이 정도면 원로부터 신인까지, 보편적인 뮤지션부터 매니아형 뮤지션까지 두루두루 한국을 찾고 있는 셈이다. 이런 추세가 조금만 더 이어지면 이제는 누가 와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폴 매카트니라던가, 마돈나라던가 하는. 그 만큼 정상급 뮤지션의 내한 공연이 당연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그런데 이상하다. 해외 아티스트들이 공연을 할 때는 시장성이 있는지를 우선 판단하게 된다. 판단의 근거는 보통 음반 판매량이다. 하지만 한국의 팝 음반 시장은 절멸에 가깝다. 어쩌다가 가끔 만장만 팔리는 앨범이 나와도 대박이라며 좋아하는 게 업계의 모습이 됐다. mp3의 등장으로, 정확히 말하자면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음반 업계의 '삽질'로 국내 가요계가 폭탄을 맞았다면 팝 음반계는 원자폭탄을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회복 추세를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외국 뮤지션들이 줄줄이 한국을 찾는 이유는 음악의 패러다임이 변했기 때문이다. 즉, 전체 음악 산업의 패러다임을 음반이 주도하던 시대가 끝나고 공연 산업이 중심에 서게 된 덕이다. 마이클 잭슨과 더불어 80년대 팝계를 양분했던 프린스의 경우, 2007년 자신의 새앨범을 영국의 일간지에 공짜로 끼워줬다. 그리고 말했다. "요즘은 음반 판매가 아닌 공연으로 돈을 버는 시대다. 그러니 음반은 공짜로 듣게 해도 된다. 대신 그들을 공연에 오게 하면 된다."  국내 음악팬들이 가장 보고 싶은 공연으로 꼽는 라디오헤드도 2007년 <In Rainbows>를 온라인으로 배포했다. 소비자가 원하는 가격으로. 그 후 <IN Rainbows>의 월드 투어는 라디오헤드의 역대 투어중 가장 대규모로 열렸으며, 최대의 수익을 냈다. 그래서다. 더이상 음반 판매량은 시장 조사의 절대적인 근거가 아니다. 대신 공연 기획사들은 포털 사이트를 검색하며 해당 뮤지션이 얼마나 많이 블로깅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 게시판에서 얼마나 자주 언급되고 있는지를 본다. 많이 '구매'된 음악 뿐만 아니라 많이 '청취'된 음악의 주인공이 섭외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 패러다임의 변화는 생산자 뿐 아니라 소비자에게서도 보여진다. 2006년부터 시작된 록 페스티벌의 붐은 음악 애호가들에게 공연의 맛을 느끼게 했다. 10년의 역사를 쌓아온 라이브 클럽도 그렇다. 10대 때 부터 공연을 보는 게 특별하지 않은 세대에게 경제력이 생겼다. 그들은 음반을 구매하는 대신, 공연 티켓을 산다. 음반이 차지하던 지위, 즉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기에 소장하고 싶다는 욕구를 공연이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음악 파일은 물리적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하드 디스크가 날아가면 끝이다. 음반은 실체다. 하지만 공연에 비하면 그 역시 하나의 가공된 상품일 뿐이다. 레코딩이라는 과정이 거세된 뮤지션과 팬이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 즉 공연을 볼 때 우리는 진짜 음악을 듣다는, 그 뮤지션을 만나고 싶다는 욕망을 완벽히 구현하게 된다. 그래서 예전에 비하면 많은 공연들이 초대권없이 유료 티켓으로 객석을 채울 수 있게 됐다.

물론 국내 공연 시장의 시스템 개선 및 인지도 상승도 빠트릴 수 없는 변화의 요인이다. 사람의 심리는 다 비슷하다. 가보지 않은 미지의 영역은 선뜻 투자의 대상이 아니다. 해외 뮤지션들의 에이전시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검증되지 않은 국가에서 공연을 했다가 사전에 취소라도 되면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핫'한 아티스트의 내한 공연이 하나 둘 씩 성공을 하고, 록 페스티벌도 성공적으로 지속되면서 한국은 미지의 영역에서 검증된 시장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게다가 뮤지션들이 직접 자국 미디어나 자신들의 블로그를 통해 한국 관객들의 열정에 대해 칭찬하기까지 하는데야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요인들이 맞물려 이토록 내한 공연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제는 있다. 인프라의 부족이다. 대형 공연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체육관에서 열리기 마련이다. 애초에 공연을 염두에 두고 무대 장치를 설치할 수 있게 설계된다. 음향적 고려는 물론이다. 하지만 한국의 체육관에는 그런 배려가 없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 열린 공연에서는 버젓이 존재했던 무대 장치를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설치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연이 끝나면 늘 터져나오기 마련인 음향에 대한 불만 역시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이제 막 매니아를 중심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신인들이 공연할 수 있는 1000-2000석 규모의 스탠딩 공연장이 악스홀 정도를 제외하고는 없다는 것도, 활성화의 속도를 저해하는 하나의 요인이다.

공연은 매력적인 컨텐츠다. 현대 대중예술의 정점이자, 가장 높은 부가가치를 갖는 산업이기도 하다. 해외 뮤지션들의 공연은 국내 공연관계자는 물론이고, 장래의 뮤지션들에게도 더할 나위 없는 공부가 된다. 일본의 경우, 공연이 끝나면 객석에 있던 뮤지션 지망생들이 무대앞에 몰려 장비와 세팅을 살필 정도다. 문화가, 컨텐츠가 미래의 동력이라고 한다. 불합리한 여건에서도 성장하고 있는 콘서트 시장에 날개를 달기 위해서 필요한 건 바로 인프라 확충이다. 외국의 히트 컨텐츠를 따라 하기 급급한 한국 대중 문화 정책이 놓치고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아바타>가 대박을 쳤다고 해서 3D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기술을 응용하고 적용할 수 있는 인문학적 베이스와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게 아니냔 말이다.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사과나무>원고

by 김작가 | 2010/02/04 05:12 | 생각 | 트랙백(1) | 덧글(3)
Tracked from noodles' me2.. at 2010/02/04 19:51

제목 : noodles의 생각
RT clotho님: 내한공연에 관한 좋은 글. http://bit.ly/cTWeIU...more

Commented by Lucida at 2010/02/04 11:26
그린데이 놓친 건 천추의 한. ㅠㅠ 내 지갑은 어떡하라고. 안 오실 땐 그 핑계라도 되지. 하는 심정이랍니다. 요즘은...
Commented by highenough at 2010/02/04 12:47
아아 그래미의 그린데이 공연을 보니까 놓친 게 더 한이 되더군요.
Commented by spaceboy at 2010/02/04 13:39
"즉, 전체 음악 산업의 패러다임을 음반이 주도하던 시대가 끝나고 공연 산업이 중심에 서게 된 덕이다" - 이 문장 하나가 전체의 글을 대변하는 듯 하네요. 다만, 우려되는 것은 티켓 높은 판매량을 개런티 할 수 없는 한국에서는 공연의 성공적인 유치를 위해 '막강한 스폰서십'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좀 아쉽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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