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공화국, 빛과 그림자
2009년 가요계를 잠시 되짚어 보자면, 아이돌로 시작해서 아이돌로 끝난다. 올해 가요계의 가장 큰 열쇳말은 걸 그룹의 대공세였다. 소녀시대가 '지'로 2009년을 크게 열어 제끼더니 카라, 투에니원, 티아라, 에프엑스, 애프터 스쿨, 브라운 아이드 걸즈 등등 유래없이 많은 걸 그룹이 인기의 중심에 섰다. 이 유래없는 걸 그룹의 대약진에 심지어 걸 그룹 멤버들만으로 추석 특집 프로그램 하나가 만들어 졌을 정도였다. 아이돌에 관심이 없었던 남성들이 대거 브라운관에 몰려 그들의 귀엽고 섹시한 춤을 보면서 마음 설랬고, 그들의 팬이 됐다. '걸 그룹은 안된다'는 가요계의 통념이 산산히 부서진 게 2009년이다.

걸 그룹 현상에 대한 여러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월해진 10대들의 발육상태가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를 자극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경제 불황으로 다른 여가 생활이 축소되면서 방송, 특히 예능을 통해 스트레스를 푸는 계층이 늘어났기 때문일 수도 있다. UCC를 통해 연예인들이 소비자에 의해 재해석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인터넷 커뮤니티의 주된 남성 사용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원인이 무엇이든, 결과는 남성을 주된 소비자로 하는 엔터테이너의 형태가 걸 그룹으로 이동했다는 거다.

걸 그룹만 화제를 몰았던 건 아니다. 올해 가요계에서 굵직한 사건들은 모두 남자 아이돌의 몫이었다. 동방신기와 소속사의 분쟁, 지 드래곤의 표절 논란, 2PM 박재범 사건, 신화 신혜성의 도박, 슈퍼 주니어 강인의 음주뺑소니 등 불미스러운 일들이 연달아 터지며 연예 기자들을 바쁘게 했다. 스타가 되겠다는 욕망으로 어린 시절부터 기획사 시스템에 입문 한 후, 스타가 되고 어른이 되며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욕망의 발로였다. 아이돌로서 포장된 삶과 인간의 세속적 삶이 부딪힌 결과였다. 어쨌거나 올해는 아이돌로 시작해서 아이돌로 끝난다. 기쁨과 안타까움이 모두 아이돌의 몫이었다. 아이돌 공화국, 2009년 가요계를 규정하는 유일무이한 단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아이돌은 '소외'의 산업이다. 기획사에 의해서 발탁되고 트레이닝된다.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한다면,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서 아이돌은 목소리를 제공하는 일밖에는 하지 않는다. 그나마 발달된 레코딩 기술은 부족한 가창력을 테크놀로지로서 새롭게 재창조시키니, 가수의 목소리가 있는 그대로 들어가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 외에 수많은 사람들이 달라 붙어서 아이돌의 이미지를 만들고 상품화시킨다. 정교한 기획과 시장의 욕망이 맞아 떨어질 수록 고위험 고수익 상품인 아이돌 그룹은 스타가 된다. 아이돌이 자신의 음악, 혹은 시스템에서 소외되면 될 수록 대중이 원하는 상품이 탄생하는 거다. 여기서 음악 생산의 주체는 자본, 즉 기획사다. 아이돌 시장이 커질 수록 자본의 위상이 막강해지고 몇 몇 대형 기획사가 음악 시장 전체의 판도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게 올 해 가요계의 모습이다.

바람직한 현상일까. 그렇지 않다. 멀리갈 필요도 없다. 작년을 생각해보면 된다. 보이 밴드와 걸 그룹이 아이돌 시장을 이끌었었다. 유희열과 김동률, 언니네 이발관, 루시드 폴 등 음악 창작자들의 음반도 풍년이었다. 장기하와 얼굴들, 국카스텐, 검정치마, 브로콜리 너마저 등 인디 신의 지지를 힘에 얻고 화제가 된 팀들도 대거 등장했었다. 다양성이 충만한 한 해였다. 그 다양성이 올해는 급격히 침해됐다. '천상천하 아이돌독존'의 시대가 길어질 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공연이 아니라 방송이 음악 유통 구조의 중심인 한국 특성상, 그리고 이리 저리 써먹을 여지가 많은 아이돌을 선호할 수 밖에 없는 방송의 생리상, 자신의 음악에 있어 주체가 되는 이들이 시장에 진입할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아이돌의 인기에는 문제가 없다. 아이돌만 있는 게 문제다. 아이돌만 바라 보는 이들이 점점 늘어간다는 게 더 큰 문제다.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한겨레 10월 24일자 칼럼의 원본
by 김작가 | 2009/10/27 17:32 | 생각 | 트랙백(1) | 덧글(14)
Tracked from uniquely ban.. at 2009/10/28 14:26

제목 : 아이돌?
아이돌 공화국, 빛과 그림자 지금 웃기도록 순수한 피를 가지신 분의 글을 읽어비웃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이 해맑은 입가를 머금고간만에 트랙백을 작성해볼까 한다 이명박처럼 직접적인 삽질없이슬그머니 취향이라는 것에 매체를 통해시덥잖다는 아이돌 음악이 들어앉는 것을 일전에 언급하신 칠사칠 공약에 버금가는 간지의글래스톤에 엣지있는 코리아타운을 만들자는그런 우국충정의 마음으로 걱정함을 내 모르는 바 아니나 그 분의 음악친구가 되려면 적어도국......more

Commented by 으악 at 2009/10/28 06:38
전 이제 아예 아이돌들을 '필요악'이라 규정짓고 있어요. 젠장
Commented by 50051 at 2009/10/28 23:13
아이돌시장과 음악 창작자-인디신 시장을 제로섬게임이 성립하는 시장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이 드는 군요
Commented by ㅇㅇ at 2009/10/29 01:01
공감합니다. 잘 나가다 마지막에 성급한 결론도출로 빠진것 같은데요. 위에 열거된 인디씬,뮤지션들의 음악을 듣던 삼촌들도 소녀시대,카라 같은 아이돌을 소비하기 시작했죠. 작년같지않은건 단순히 아이돌 말고 들을만한게 없었던거죠.(저같이 양쪽을 넘나드는 사람에겐 말이죠.) 강력한 펀치가 없었다는거죠.
단순히 아이돌독존의 시대가 문제가 아니라 변화된 시장,대중 혹은 인디,음악창작자들의 문제는 없는겁니까?
Commented by 김작가 at 2009/10/30 00:03
옳은 지적입니다. 빅뱅과 원더걸스 이후의 아이돌은 그 전과는 소비되는 방식도, 표현하는 방식도 이전 세대의 아이돌과는 분명히 차이점이 있다고 봅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인데, 아직 연구방법론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고민들이 있어서 연말쯤 결산기사를 쓸 때나 포괄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의 깜냥 부족으로 윗 글에 논리의 공백이 발생했습니다. 트랙백으로 비판하신 분을 포함해서, 댓글로 지적해주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Commented by 홍씨 at 2009/10/30 00:17
그러나 가볍게 매꿔보자면 제로섬 시장이 어느정도 맞기도 하죠.

아이돌을 막 찾아내서 매니아처럼 듣는 사람은 별로 없잖아요?

즉 많은 사람들이 별 생각없이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을 좋은 것이라고 여기기에 그걸 좋아하고 있는건데,

만일 창작자-인디들이 많이 노출되면 많은 사람들이 생각없이 그걸 좋다고 생각하겠죠,

물론 후자의 경우가 되더라도 문제지만 제 생각엔 후자의 상태가 된다면 인디는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저절로 그걸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 내부에 다양함에 대한 시각이 생성되어 이제는 돌아가지 못할 문화가 될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홍씨 at 2009/10/30 00:22
좀더 덧붙일게요
제 생각이 맞다면 작년에 다양성이 확 늘었었기에 올해 이렇게 돌아갈수가 없는 거일텐데,

그말은 지난해에 커다란 변화의 바람처럼여겨졌던언니네 브로콜리너마저 장기하 등등의 선전이 사실은 별로 큰 변화가 아니었다는거죠 (사람들 뇌리에)

제가 위 댓글에 말한 노출은 엄청난 겁니다. 물론 그렇게 되려면

뭔가 더 근본적인 환경이 변해야겠지요 (갠적으로 군대가 사라진다면 문화적인 양상이 엄청 바뀔꺼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김작가 at 2009/10/30 01:32
-이발관 등등의 일이 큰 변화가 아니었다라고 단적으로 규정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을 듯 싶고요, 어떤 '일'을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대한 고민의 문제라고 봅니다. 이건 사실 미디어 환경의 문제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런 징후들은 물밑에서 나타나고 있지요. 조만간 가시화될 듯 합니다.

-한국 대중문화 발전을 저해하는 근본적인 요인 4가지는 군대,교육,과도한 노동시간, 그리고 수도권집중이죠. 그런데 이걸 지적하면 밑도 끝도 없는 소리가 되곤 하는 게 또한 현실입니다
Commented by 홍씨 at 2009/10/30 01:45
네네 이발관 짱이죠,ㅎ 작은 변화라고는 결코 생각치 않아요!

저도 사회의 가시적인 부분을 많이 바꿔놓은 변화는 아니라는 이야기였습니다.
Commented by longseason at 2009/10/30 12:58
글의 논지에 동의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이 글이 아이돌만 듣는 사람에게 언니네도 들어야 한다고 '계도'하는 글처럼 보이진 않는데요. 많은 돈이 투입되지 않으면 결코 가능하지 않은 방법으로 성공한 아이돌에게 관심과 사랑이 집중되는 현상이 바람직한가, 김작가가 볼때는 아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요? 그래서 어쩌자는 건 이야기된 바 없고, 그냥 좀 문제의식을 가지고 보자는 정도? 근데 이 글을 아이돌 팬들 너도 소시만 듣지 말고 언니네나 국카스텐 좀 들어야돼 라고 읽을 수 있는게 신기하네요.
Commented by HD at 2009/10/30 16:30
간단하다. 아이돌과 인디가 사귀면 된다. 기다려라. 조만간 빵 터진다.
Commented by 흠. at 2009/11/02 10:24
올해 들을 게 없었나요? 전 작년보다 더 좋은 음악이 많았다는 느낌이었는데, 흠.
Commented by 박민지 at 2009/11/08 07:06
날카로운 댓글 지적 공감하구요, 이렇게 논의가 발전되는 모습 훈훈합니다.! (저도 제로섬 게임으로 보지는 않아요. 아이돌들도 이렇게 서로 경쟁하며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로비윌리엄스같이 좀 더 자기주도적인 모습으로 거듭나길 바라는 바입니다.)
Commented by zoomup at 2009/11/29 16:50
아이돌 소비는 이를테면 30 40십대 기성세대들사이에선 적어도 "난 아직도 젊었다"의 메시지를 주는것 같아요.그래서 이문세,이승환,을 던져버리고 아이돌의 세계로 빠진거같아요. 그래서 삼춘빠들 이모빠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보여집니다. 반면 인디에 빠진 이들은 "난 니들과 좀 달라"이런 메세지를 줄 수 있고요. 그런면에서 만나는 대상에 따라 화제를 자유자재로 선별에 쓰고 있는 저도 2PM빠순이자, ANJELL 임호팬이자 브로콜리너마져 의 열혈빠입니다.
Commented by ㅇㅇ at 2009/12/20 03:50
구구절절 동감합니다. 아이돌을 찬양하는 아저씨들이 많이 늘었는데, 다양성의 발현이라기보다는 솔직히 그냥 퇴행적인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증가한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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