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
요즘처럼 모기가 기승인 때가 없다. 밤,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어김없이 검정색, 혹은 갈색의 모기가 한 마리씩 눈앞을 난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놈의 향방을 좇는다. 이동 경로가 파악되면 양 손을 치켜들고 잽싸게, 입력된 패턴으로 손뼉을 친다. 80프로 이상의 높은 확률로, 놈은 손바닥에 짜부가 되어 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살핀다. 아이쿠야. 역시 한 두 마리의 모기가 달라 붙어 있다. 아무 책이나 꺼내 들어 놈이 휴식을 취하는 천장 밑에 선다. 유리 겔라가 의자를 들어 올리듯 주저함없이 책을 천장을 향해 직각으로 던진다. 쫙, 책이 천장을 친다. 놈의 일부는 천장에 흔적을 남기고, 또 일부는 책에 흔적을 남긴다. 다만 흔적 뿐이면 얄팍한 승리감이, 흔적에 지방과 알콜이 가득할 피가 섞여 있으면 왠지 모를 분노가 솟아오른다. 아니나 다를까. 팔이든 다리든, 어딘가에 70에 AA컵의 가슴보다도 빈약한 언덕이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이 공간에 모기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창문을 열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24시간 활짝, 창문을 열어 놓는다. 밖도 더운 여름철이면 굳이 이 놈들이 방충망과 샤시의 비좁은 틈을 뚫을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밖은 쌀쌀하고 안은 그나마 괜찮은 지금이니까, 그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틈을 찾아 일신의 안녕을 추구하는 것이다. 게다가 먹이까지 버젓이 놓여 있어 기회를 틈타 피를 빨 수 있으니, 바늘구멍을 뚫지 않으면 척살당하는 낙타의 결의를 다지는 것이다. 미연에 그 결의를 방지하는 방법이 있다. 창문을 닫는 것이다. 하지만 공기가 순환하지 않으면 왠지 답답한데다가, 무려 실내에서 흡연까지 하고 있으니 창문을 닫을래야 닫을 수가 없다. 남자의 방에서 종종 나기 마련인 홀애비 냄새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성의다.  여기서 생각한다. 내가 모기라면 이 쌀쌀한 날씨에도 창문을 열어놓는 공간을 보고는 숙연해지지 않을까. 외부의 공기를 그리워하고, 홀애비 냄새를 증오하는 한 인간의 결연한 근성을 느낀다면, 설령 방충망이 앞을 가로막지 않을지라도 감히 들어올 마음이 안 생기지 않을까. 적어도 군자의 덕을 조금이나마 아는 모기라면 그래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한갓 미물인 모기가 군자의 덕을 알 턱이 없다. 하여, 놈들은 배덕의 침공을 멈추지 않는다. 따라서 모기를 한 마리 한 마리, 깨끗한 손과 신성한 책으로 잡아 터뜨리는 것은 그 배덕에 대한 윤리의 응징에 다름 아니다. 

설령 풍전등화의 국가를 책임진, 국경수비대의 대장일지라도 최소한의 수면은 취해야 하는 법이다. 밤마다 피가 튀는, 배덕자와의 사투를 벌이는 처지에서도 무릇 그렇다. 자야 한다. 아침이 되면 적잖은 70에 AA컵의 가슴보다도 빈약한 언덕들이 신체 부위를 가리지 않고 솟아 올라있다. 지난 밤의 시간이 어떠하였는지를 웅변하는 흔적인 것이다. 잠자기 전 전기 모기약이라도 꽂아놓으면 불침번과 5분대기조를 정예부대로 세워놓고 휴식을 취하는 격일 테지만, 불행하게도 침대 주변의 컨센트는 이미 만석이다. 한갓 배덕의 모기를 잡겠다고 냉장고를 꺼놓을 수도 없고 음악을 들으면서 눈을 감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또한 없다. 잡고 또 잡아 고작 몇 마리 되지도 않을 놈들이 몸에 이리 많은 구멍을 뚫어 놓다니, 피도 미친듯이 빨았을테지. 그리 생각하면 가슴이 저민다. 신체발부수지부모라 했거늘, 부모님이 주신 소중한 몸을 저 따위 미물들에게 공양한 것이다. 저 배덕자들이 나로 하여금 패륜의 업을 씌운 것이다. 단발령이 내린 후 강제로 머리를 잘린 지사의 마음으로 샤워를 한다. 신기한 노릇이다. 따스한 물로 온 몸을 적시고 나면 붉게 솟아 올랐던 상처, 비슷한 건 온데 간데 없어진다. 살구빛의 평탄한 피부가 다만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밤의 시간은 한 바탕의 꿈에 불과했던가. 관대한 마음이 생겨 난다. 이 분 정도의 관대한 마음이.

그 관대함으로 평화로운 하루를 보낸다. 저녁이 되고, 해가 저문다. 온 세상이 어두워진다. 다시 모기들이 한 마리 두 마리씩 활동을 재개한다. 오늘의 마수걸이, 한 놈이 눈에 포착된다. 비행 궤도를 파악한 후 양 손을 치켜든다. 단 한 번의 박수로, 놈은 세상을 하직할 것이다. 문득, 샤워를 마친 후의 관대한 마음이 떠오른다. 채, 하루도 안되는 시간만 참는다면 아무 일도 없는데, 고작 몇 방울의 피를 빼앗기기 싫어서 애꿎은 생명을 희생할 필요가 있겠는가. 놈에게 피를 적선함으로서 덕과 자비를 쌓는다면, 그것이 또한 군자의 길이요 생명존중의 실천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이 미처 끝나기도 전, 놈은 나를 도발한다. 귓가를 스쳐가며 에에에에에에에엥 소리를 내는 것이다. 피를 빨리는 건 참을 수 있다. 잠시 가려운 것 또한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저 에에에에에에에엥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911테러 직후의 미국인들에게 이슬람을 포용합시다, 라고 외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것도 온가족을 그 참사로 잃은 미국인에게. 관대함? 덕과 자비? 군자의 길? 생명존중의 실천? 그게 뭥미? 손수 알 카에다에게 복수를 하겠다며 미 해병대에 입대하는 유족의 마음으로 짝!!!! 박수를 친다. 놈은 피 한 방울 빨지 못하고 짜부가 된다. 짧은 시간동안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세 마리의 모기가, 그렇게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최소한 에에에에에에에엥 거리지만 않았던들, 그 중 한 놈 정도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뻘글을 쓰게 할 만큼, 이 공간에서 모기는 지속적으로 나를 괴롭혀왔다. 그 중 압도적으로 대부분은 쓰레기 봉투에 담겨 소각되거나 매립되어 자연에 귀의했을 것이다. 그 중 압도적으로 일부는 천장에 신체의 일부를 남기며, 자신이 최후에 머물렀던 공간이 이 곳이었음을 웅변하고 있다. 언젠가 이 공간에서 나가는 날, 나는 천장을 찬찬히 살펴 보며 피튀기던 사투의 나날을 돌아보게 되리라. 귓가를 수없이 스쳐가던, 에에에에에에에엥을 사운드 트랙으로 삼아.



Aerospace-Summer Still Reigns Supreme


by 김작가 | 2009/10/24 01:38 |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 덧글(3)
Commented by Leedo at 2009/10/24 02:11
ㅋㅋㅋㅋㅋㅋㅋㅋ
멀티선을 구매하셔야할듯;; 응?
Commented by 갑자기 급궁금 at 2009/10/25 05:46
저도 자기 전에 항상 mp3로 음악을 세팅하고 자곤 하는 데..
김작가님의, "잘때 듣는 음악들" 꼭 알고 싶다는...
(아직벅스에 40여 잔여곡이 남았어요, 급합니다. ㅎㅎㅎ)
Commented by 플린 at 2009/10/25 17:59
책의 신성함으로 늘 응징해야 하는 괴롬을 모기는 알까요? 그래서 책들은 결국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생활의 비굴로 물든 피의 책이 되죠. 공감 잔뜩하고 갑니다. 어제는 새벽에 잠을 설치고 프리미어 리그를 보다 잠들었거든요. (첼시를 싫어하지만요...)
※ 이 포스트는 더 이상 덧글을 남길 수 없습니다.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음악 친구나 해요
by 김작가 2008 이글루스 TOP 100
Calendar
메모장
noisepop@hanmail.net
http://twtkr.com/GrooveCube
카테고리
전체
음악이 해준 말
생각
스토리
대화
어른들의 놀이터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상수일지
아주 특별했던 봄
아주 특별한 여름
go20
private press
NM
야담과 실화
바벨의 콘서트
VS 칼럼
자전거 라이프
방명록
비밀의 창고
미분류
포토로그

보이는 것의 날인
태그
국카스텐 오아시스 씨엔블루 인디 전망 문화정책 Contra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트위터 FnC 내한공연 밥딜런 맑스 아감벤 VampireWeekend 레미제라블 블로그 어떤날 그린데이 이병우 철학성향테스트 글래스톤베리 이런들어떠하리저런들어떠하리 페스티벌 들뢰즈 2010 루시드폴 아이돌 매시브어택
전체보기
rss

skin by zodiac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