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윕 <X Marks Destination>


"물론 스톤로지스는 맨체스터 출신이다. 그들이 거기 아니면 어디 출신이란 말인가? 스미스와 조이 디비전은 또 어떻고? 이언 커티스는 어디 출신이지? 팩토리 레코드는? 하시엔다는 어디 있었지? 존나 자연스러운거다. 북부 잉글랜드의 이 좃만한 장소에서 엄청난 음악들이 나왔다." 맨체스터 음악 씬을 다룬 책 'The North Will Rise Again'에서 노엘 갤러거는 이렇게 얘기한다. 그렇다. 맨체스터는 특별한 도시였다. 산업 혁명이 시작된, 자본 주의의 요람이었지만 70년대 후반 영국에 IMF가 터짐과 동시에 곧 자본주의의 무덤이 됐다. 공장들이 우수수 무너지면서 백인 노동자 계급은 곧 실업자 계급이 됐다. 역시 같은 책에서 팩토리 레코드, 하시엔다의 대표였던 토니 윌슨은 말한다. "그래서, 맨체스터만큼 펑크에 적합한 도시가 없었지." 섹스 피스톨즈의 맨체스터 공연을 기점으로 청년 백수들은 바로 기타를 들었고 펑크를 시작했다. 하지만 맨체스터에는 좋았던 시절에 축적된 소울/훵크 씬이 있었다. 흑인 노동자들이 유입했고 백인 노동자들이 함께 즐겼던. 조이 디비전의 음울함이 IMF의 공황을 담지하는 거울이었다면, 뉴 오더의 댄스는 갑자기 촉발된 펑크와 기억에 축적된 쾌락을 접목시키는 교배였다. 매드체스터는 그렇게 시작됐다. 스톤 로지스와 뉴 오더와 해피 먼데이스와 함께. 한 때 세계 제일의 클럽이었던 하시엔다에서. 그 기운을 오롯이 담아냈던 팩토리 레코드를 통해. 그들과 다르기 원했던, 그러나 그 에너지를 알고 있었던 오아시스가 결국 맨체스터 출신의 가장 성공한 밴드가 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금의 맨체스터에 그 때의 흔적은 찾기 힘들다. 하시엔다는 진작 아파트가 됐고, 맨체스터의 가장 큰 콘서트장이던 G멕스는 컨벤션 센터로 탈바꿈하고 있다. 영화의 공간들 대부분이 재개발의 이름아래 사라지고 있다. 한 때 잘나갔던 밴드들 중 어떤 이는 매드체스터의 자취를 좇는 투어 코스의 관광객으로 연명하고 있다. 90년대 시애틀과 더불어 '로컬 음악'을 대변했던 80년대의 맨체스터는 정신의 박물관에만 있는 걸까. 그렇지는 않은 듯 하다. 클럽 5th 애비뉴처럼 '끝장'을 보는 댄스 클럽이 남아 있고 그린 룸 같은 곳에서는 런던에서도 보기 힘든 온갖 아방가르드 퍼포밍들이 꾸준히 새로운 힘을 비축하고 있다. 무엇보다 맨체스터 젊은 세대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맨체스터의 음악적 전통에 대한 자부심은 오아시스 이후 뚜렷한 거물을 내놓고 있지 못한 그 곳이 여전히 가능성의 땅임을 알려 준다. 더 윕도 그런 팀의 하나다.

그들은 맨체스터 출신의 4인조 혼성 밴드다. 역시 잉글랜드 북부 출신의 팻 보이 슬림이 운영하는 서든 프라이드 소속으로 몇 장의 싱글 앨범을 낸 후 갓 데뷔 앨범을 내놓은 따끈한 신인이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국내에는 생소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생소함이 주는 거부감은 오래 가지 않는다. 첫 곡 'Trash'를 플레이하는 순간, 스피커에서는 맨체스터의 화양연화가 펼쳐진다. 혹은 80년대 후반의 맨체스터에서 공연하는 팅팅스의 모습이 상상되기도 한다. 뉴 오더와 해피 먼데이스가, OMD와 제임스가, 웨이크와 일렉트로닉이 정말로 사이 좋게 어우러진다. 마치 팩토리 레코드의 앤솔로지 앨범을 믹서에 갈아서 듣는 듯한 기분이다. 맨체스터식 복고랄까. 반복되는 단순한 리듬, 그 만큼이나 단순한 리프의 조합, 그 사이로 착착 감기되 역시 단순 반복되는 멜로디. 역시 뉴 오더와 해피 먼데이스가 협연을 한다면 이런 느낌일 것이다. 여기에 LCD 사운드 시스템이 피쳐링을 한다면 더욱 그럴테고. 그렇게 산뜻하고도 반가운 복고로 출발하는 이 앨범은 단순한 회고와 융합에 머물지 않는다. 앨범 중반부 이후로는 현재 동부 런던쪽의 클럽에서 들을 수 있는 미니멀하고도 자극적인 비트의 쾌락이 펼쳐진다. 일렉트로니카의 시대에 표현할 수 있는 원초적 펑크의 에너지랄까. 이 에너지야말로 이 신인 밴드가 전통의 계승을 넘어 새로운 시대와 만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니 미래가 엿보인다. 덧붙여 다리를 떠는 습관이 있는 정서불안자에게는 더없이 좋은 앨범이기도 하다. 아무리 몸치라도 이 앨범을 들으며 어깨와 다리를 까닥거리지 않을 수 없을테니. 매드체스터는 진리였다. 이 앨범이 증명한다.

by 김작가 | 2009/09/15 13:54 | 음악이 해준 말 | 트랙백 | 덧글(7)
트랙백 주소 : http://zakka.egloos.com/tb/4234997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at 2009/09/16 00:2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9/09/16 01:0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엄.. at 2009/09/16 11:41
9th avenue -> 5th avenue입니다.
관광객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5th avenue는 undergraduate용이고, 42nd street에는 90년대에 젊음을 보낸 좀더 나이 든 층들도 옵니다. 인디 음악팬이라면 노던쿼터 쪽이 여전히 진리, 그린룸은 posh & artsy type이 아니라면 비추입니다.
Commented by 김작가 at 2009/09/16 12:49
착각했네요. 감사합니다. 맨체스터 친구들에게 물어보니까 5보다는 9가 재미있다고 해서 9만 가봤는데 5는 그런 컨셉이로군요. 혹시라도 또 맨체스터를 갈 일이 있다면 꼭 가보고 싶네요. 노던 쿼터는 처음 듣는데 안타깝습니다.
Commented by 엄.. at 2009/09/16 15:00
에엣? 그 말씀은 9th라는데가 실제로 있단 말씀입니까? 저는 정말 처음 듣는 데인데요? 어디쯤 있는지 풀네임이랑 같이 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Commented by 김작가 at 2009/09/16 15:02
아-_-; 5와 42얘기였습니다. 이거 병원을 가보던지 해야지... 엄...님 말씀이 맞습니다.
Commented at 2009/09/17 21:49
비공개 덧글입니다.
※ 이 포스트는 더 이상 덧글을 남길 수 없습니다.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음악 친구나 해요
by 김작가 2008 이글루스 TOP 100
Calendar
메모장
noisepop@hanmail.net
http://twtkr.com/GrooveCube
카테고리
전체
음악이 해준 말
생각
스토리
대화
어른들의 놀이터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상수일지
아주 특별했던 봄
아주 특별한 여름
go20
private press
NM
야담과 실화
바벨의 콘서트
VS 칼럼
자전거 라이프
방명록
비밀의 창고
미분류
포토로그

보이는 것의 날인
태그
Contra 씨엔블루 이병우 FnC 블로그 루시드폴 전망 인디 2010 페스티벌 레미제라블 아감벤 어떤날 맑스 이런들어떠하리저런들어떠하리 오아시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문화정책 글래스톤베리 들뢰즈 내한공연 아이돌 국카스텐 트위터 매시브어택 밥딜런 철학성향테스트 그린데이 VampireWeekend
전체보기
rss

skin by zodiac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