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씨, 김작가에게 묻다

70년대 중반, 서울에서 태어난 김모씨는 어느 순간 김작가라는 필명으로 살게 되었다. 같은 몸뚱아리안에 있되 김작가에게 밀려 존재감을 잃어버린 그가 첫 단행본 <악행일지>를 낸 김작가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았다.



글밥을 먹고 산지 8년만에 첫 책이죠? 기분이 어떤가요?
글쎄요... 진작 나왔어야 할 게 너무 늦게 나오다보니 일단은 속이 후련하네요. 그동안 신문과 잡지를 통틀어서 <월간 미용저널>이나 <계간 인삼>정도를 제외하고는 안 써본 곳이 없는데 정작 내 책은 없다보니 세션만 뛰는 기분이 들었지요. 정작 책을 내고 나니 뒤늦게 자기 앨범을 발표한 세션맨이 된 느낌이랄까, 임자있는 여자들의 세컨드만 하다가 제대로 된 연애를 하는 기분이랄까, 뭐 그렇습니다.

<악행일지>는 어떤 책인가요.

그게 참.. 저도 뭐라고 말하기가 힘들어요. 에세이나 칼럼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설도 아니고. 물론 비평집은 더더군다나 아닙니다. 그래도 세상 모든 게 장르가 있어야 사람들이 이해하기 편하잖아요? 하여, 나름 <악행일지>를 음악만담집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어릴 때 부터 음악에 빠져 살았던 데다가, 생활 자체가 품행방정과는 거리가 멀었던지라 음악생활과 관련된 온갖 에피소드들이 많았거든요. 술자리에서 좌중을 휘어잡는 단골 레퍼토리기도 했는데, 그런 에피소드들을 모아서 책으로 엮었지요. 흔히 음악책하면 읽는데 덕후의 공력이 필요하다고 여겨지잖아요? 그런 거 없이, 그냥 음악의 ㅇ도 몰라도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음악책을 써보고 싶었어요.

<악행일지>를 읽다 보면 뭐 이런 기구한 인생이 다 있나 싶더군요. 삶이 온통 시트컴이던데요.
에이 설마... 네, 슬프게도 그렇습니다.(한숨) 제 인생이 좀 그래요. 뭐랄까, 신은 저에게 하나의 재능을 주신 것 같아요. 삶의 어떤 고비도 모두 시트컴스럽게 만들어버리는, 그런 재능이요. 남들이 짝사랑을 하면 멜로 드라마가 되는데, 제가 짝사랑을 하면 뭔가 <아메리칸 파이>스럽게 되죠. 남들의 방황은 청춘성장드라마가 되는데 저의 방황은 블랙 화장실 코미디가 되고, 그런 식입니다. 그러니 글로 안 쓰고 배길 수가 없는 거죠. 어쩔 수 없어요. 오오, 그것은 데스티니입니다.

직함을 음악평론가라고 달고 있잖아요? 어쩌면 평론가스러운 책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앞서도 이야기 했듯이 아무도 안 읽을 평론집보다는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첫 책으로 내고 싶었기 때문이죠, 라기 보다는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사실 저도 평론가라고는 하지만 그 단어에 들어있는 무거운 느낌에 대해서는 살짝 거부감을 갖고 있어요. 처음 음악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그래서 음악수필가라는 명칭을 썼어요. 그 후에는 음악만담가라고도 했고요. 그런데 여기저기 이름이 알려지고 신문에 음악과 관련된 코멘트를 하면서 기자들이 평론가 꼬리를 달아주더라고요. 저도 이름이 좀 알려지다보니 어떤 책임감 비슷한 걸 느끼게 되기도 하고, 그래서 평론가를 자칭하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지금도 어깨에 힘주는 글이나 말 보다는, 쉽고 재밌고 음악의 즐거움과 감동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흔히 평론가라고 하면 사사건건 시비나 거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저의 경우는 '좋은 음악 소개할 시간도 부족하다'라는 주의라서요.

올 여름을 아주 뜨겁게 보냈더군요.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질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고 하던데.

질문만 보면 뭔가 아방궁을 차려놓고 기골이 허해질 때 까지 주지육림에 빠져 지냈다는 걸로 보여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건 아니고요. 한달 반 정도 여행을 다녀왔어요. 주로 영국을 돌아다니면서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도 보고 런던, 맨체스터, 리버풀, 에딘버러, 브리스톨, 더블린 등을 돌아다니면서 영국 음악의 현장을 보고 다녔지요. 음악 덕후의 로망을 이뤘달까. 우와, 그런데 글래스톤베리가 정말 대단하긴 대단하더라고요. 왜, 언어는 환경에 의해 발전하잖아요? 에스키모들이 눈을 수십개 단어로 구분하는 것 처럼. 그런데 글래스톤베리는 한국어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세계같아요. 십만평이 넘는 농장에 닷새동안 하나의 도시가 들어 섰다가 홀연히 사라지는 느낌인데, 정말 유토피아죠. 사람이 태어나서 한 번 쯤은 가볼만한 페스티벌인 것 같아요. 글래스톤베리뿐만 아니라 여행 전체가 큰 깨달음을 줬죠. 영국 물가가 워낙 비싸다보니, 한달 반 동안 대학원 두 학기 등록금이 그냥 녹아버렸는데 세 학기 동안 학교에서 배운 것 보다 더 많은 걸 보고 느꼈어요.

들리는 바에 의하면 오디오질도 하고, 음반도 많고, 술 담배 커피에 고루 능한데 유럽 여행까지.. 그래서 어느 세월에 돈모아서 장가가려고 그래요?

오디오는 해도 카메라와 자동차는 안하니까 괜찮지 않을까... 결혼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요즘 그것 때문에 고민이에요. 결혼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는데 안하면 안될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라이프 스타일이 일반적이지 않다보니 일반적 라이프 스타일을 사는 분들을 만나면 얼마 안가서 꼭 깨져요. 멘트도 똑같애. 처음에는 자기랑 달라서 호기심도 생기고 끌렸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힘들 것 같다고. 아 놔, 그렇다고 동종업계 사람을 만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그렇잖아도 좁고 좁은 바닥인데 업계 사람 만나봐요. 같이 안있어도 일거수 일투족이 다 귀로 흘러 들어갈텐데 이런 저런 어른의 사정은 영원히 안녕이 되는 거지. 그러니 아마 안 될거야. 혼자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게 낫지.

하는 일도 그렇고, 라이프 스타일도 그렇고 20대들과 어울릴 기회가 많을텐데, 그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왜, 요즘 심심하면 까이는 게 20대잖아요.

중요한 건 세대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봐요. 옛날에는 아무나하고도 잘 어울렸는데 점점 사람을 가리게 되더라고요. 의식적으로 그러는 게 아니라서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만났을 때 쉽게 마음을 열게 되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따져보니 자기 컨텐츠가 있는 사람들이더라고요. 혹은 자기 세계가 분명한 사람이랄까? 자기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 지 알고, 그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거죠. 그건 나이나 세대가 말해주는 게 아니에요. 아무래도 홍대앞에서 음악을 하거나, 그 주변에 있는 친구들과 어울리다보니 20대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무래도 자기 취향과 주관이 뚜렷한 친구들이니까 말도 잘 통하고 벽도 없고 그렇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여행을 하면서 그 세계 바깥에 있는 20대들을 만나게 됐어요. 단절감이 확 느껴지더라고요. 서양의 20대에 비해서 너무 자기 방어적이랄까, 폐쇄적이랄까. 쉽게 말해 여행의 뚜렷한 목적없이 그냥 가보자, 해서 온 경우가 태반이에요. 그러니 명소 사진만 후다닥 찍고, 갤러리가서도 별 느낌을 못받고. 딱히 관심사가 뚜렷하지 않다보니 외국 사람을 만나도 뻔한 얘기만 하다가 끝나고. 물론 우리 세대 때도 마찬가지였겠지요. 그 전 세대도요. 그 때는 목적없는 여행도 특별한 경험이었지만 지금은 안 그렇잖아요? 밴드를 한다는 의미가 90년대와 지금과 다른 것과 마찬가지죠. 작년에 등장한 신인 밴드들로 인해서 인디 신이 본격 세대 교체가 됐어요. 인디 역사상 거의 처음 있는 일이죠. 결국 앞 세대의 등만 좇는 게 아니라 칼을 꽂고 넘어설 때 새로운 세대의 존재의미가 생긴다고 봐요.그러기 위해서는 불타는 욕망이 있어야 하는데, 세상이 그들에게 욕망을 키울 공간을 주지 않는다는 게 문제죠. 예전에는 그냥 방치되었던 욕망의 공터가 자본의 빌딩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일까요. 토익 점수라는 게 뭐에요, 그 빌딩에 들어가기 위한 입주권이잖아요. 그것에만 목숨을 걸고, 그게 바람직한 걸로 여겨지다보니 결국 자기 건물은 못짓게 되는 거죠. 자기 욕망이라는 이름의 건물 말이에요.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뭘 잘하는지 아는 20대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말은 좋은데, 그렇게 말만 하고 끝나면 그냥 먹물로 끝나는 거겠죠.
십여년의 한량 생활에 이번 여행에서 보고 들은 풍월을 더해보니 좀 구체적으로 하고 싶은 게 생겼어요. 말하자면 기획이라는 건데, 진짜 페스티벌을 만들어보고 싶네요. 록 페스티벌이나 운동권 축제같은거 말고, 진짜 인터랙티브하면서도 재미있는 거. 아이디어가 많아요. 놀 줄 모르는 사람은 각성의 기회도 못 얻어요. 사람들이, 특히 20대가 좀 더 잘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벌여 보려고요. 말로만 끝날 수도 있겠죠. 태생이 먹물이니까. 그래도 본질은 한량. 한량 생활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는 내가 놀아 보고 싶은 판을 짜야하지 않겠어요?

바자 9월호 원고

by 김작가 | 2009/08/14 19:29 | 대화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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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Silver at 2009/08/14 19:37
제가 봤을떈 부럽기만한 개성과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ㅎ_ㅎ..

닉네임 위에있는 주소가 네이트온 주소인가요?
Commented at 2009/08/14 22:4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daria at 2009/08/16 11:12
언젠가 김작가님이 여실 인터랙티브한 페스티벌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Commented at 2009/09/11 01:5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김작가 at 2009/09/11 05:47
다만 감사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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