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잊었나요?
(일러스트 김세중)


2009년 5월 23일, 역사에 남을 토요일이었다. 전날 과음을 하고 늦게 일어난 사람이건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이른 아침을 맞이한 사람이건 모두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일과를 멈추고 TV나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계속 지켜 봤을 것이다. 멍한 심정으로. 황망한 마음으로. 언니네 이발관의 이석원 또한 그랬다. 이 비현실적이고, 그래서 더욱 비극적인 상황은 그에게 고민을 안겼다. 그 날 대구에서의 콘서트가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공연을 취소해야하나.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그럴 수는 없었다. 4년만의 대구 공연이었다. 이미 티켓은 매진이었다. 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기다리는 팬들에게 당일 취소를 통고한다는 건 옳지 않았다. 무슨 축하 이벤트도 아니고, 모름지기 콘서트였다. 공연을 강행하기로 했다. 공연장은 대구 수성 아트피아. 시내에서도 꽤나 떨어져 있는 한적한 곳이었다. 라디오에서는 연일 침울한 뉴스만 흘러 나오고 있었지만 공연장 주변은 그저 적막할 뿐이었다. 세상의 일이란 그저 덧없는 찰나의 순간일 뿐이라는 듯, 나무는 푸르렀고 꽃은 색색으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회색의 콘크리트, 검은 아스팔트 만이 무겁게 그 날의 분위기를 대신했다.

리허설이 끝나고 관객 입장이 시작됐다. 저녁 6시. 공연장의 불이 꺼졌다. 언니네 이발관은 무대에 올랐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공연이었다. 첫 곡 '동경'으로 시작해서 20곡의 세트리스트가 늘 그렇게 지나갔다. 관객들은 때로 집중하고, 때로 환호하고, 때로 박수치고 점프하며 정말 오랫만의 이발관 공연을 즐겼다. 대체, 세상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던가. 공연이란 게 현실을 잊기 위한, 현실에서 탈출하기 위한 문화적 장치라면 이발관의 대구 공연이 바로 그러하였다. 무대 밖에서의 현실이 무대 안에 개입한 건 마지막 곡 '인생은 금물'에서였다. 앨범에서와는 달리, 이 노래는 이석원과 이능룡이 나눠 부른다. 이능룡에게 주어진 부분은 몇 소절 안된다. 경쾌하고 발랄하게 흘러 가는 이석원의 파트가 잠시 멈추고 이능룡이 마이크앞에 섰다. 그러나 그는 이 짧은 소절을 끝까지 부르지 못했다. 무대를 등지고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그가 불러야 할 가사는 '살아간다는 것은/별이 되어 가는 것이라네'였다. 눈치를 챈 관객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객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이능룡의 눈물이 흐르는 걸 본 사람은 극히 일부였으니까. 그는 뒤돌아 있었으니까. 그렇게 본공연을 마친 후, 이발관은 퇴장했다. 당연하게도, 앵콜요청이 파도를 쳤다. 첫 앵콜로 '나는'과 '아름다운 것'을 부르고 다시 퇴장, 그리고 또다시 앵콜요청의 연호.

두번째로 앵콜요청에 응한 언니네 이발관의 가슴에는 검정 리본이 달려 있었다. 謹弔라는 한자가 인쇄된 리본을 본 객석은 삽시간에 침묵. 당연하게도, 몰랐던 게 아니다.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잊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잊고 바람처럼 흘려 보내기엔 너무나 거대한 현실이었다. '인생은 금물'에서 돌발적으로 치고 빠진 현실은 이제 공연장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그 현실 앞에서 이석원은 말했다. "생각이 다른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래도 한 곡만 추모하게 해주세요." 설령 '생각이 다른', 그것도 아주 다른 이가 그 자리에 있다 한들 감히 나는 반대합니다, 라고 외칠 수 있으랴. Fm7 - Gm7 - Cm7로 진행되는 노래가 연주됐다. '아주 먼 곳으로 갔지/거기에 숨어 있어/볼 수 있나요/찾을 수 있나요'. 공연을 강행하기로 결정한 후, 대구로 내려가는 길에 그들이 준비한 노래였다. '나를 잊었나요'. 무대는 숙연했다. 객석은 울음바다가 됐다. 이능룡의 댄서블한 후반부 애드립에서도 몸을 들썩 거리는 이는 없었다.

그들의 추모는 그렇게 끝났다. 공연도 끝났다. 대기실에서 이능룡은 말했다. "저, 차 가지고 왔어요." 이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이석원은 KTX를 타고 내려왔다. 여느 때 였다면 다른 멤버들은 매니저의 차로 움직였을 것이다. 그런 이능룡이 차를 갖고 온 건, 공연이 끝난 후 어딘가로 가기 위해서였다. 이석원과 전대정, 임주연이 함께 몸을 실었다. 차는 서울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봉하마을로. 고인의 자택이 있는 그곳의 풍경은 그야말로 깡시골이었다. 어두운 시골 길을 걷고 또 걷던 추모 인파 틈에서, 이능룡은 읇조리듯 말했다. "이게 무슨 아방궁이야!" 한반도의 거의 끝자락, 난데없는 비보에 몰려든 사람들 가운데 언니네 이발관이 있었다. 그 날의 충격, 봉하의 소회는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비보를 접한 사람들이 뭔가 말하고 싶었고 뭔가 쓰고 싶었고 뭔가 행동하고 싶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먹먹하다는 말로 모든 심경을 대신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상이 아닌 개인의 이야기를 노래해왔던 언니네 이발관이다. 이석원에게 물었다. "그 느낌을 노래로 만들어 볼 생각은 없나요?" 담배를 피지 않되, 종종 불 붙이지 않은 담배를 만지작 거리며 입에 물기도 하는 그는 헛담배 한 모금을 빨더니 말했다. "생각하고 있어."  언니네 이발관은 곧 여섯번 째 앨범 작업에 들어간다.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Brut 7월호에 개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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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 2009/07/25 03:15 | 야담과 실화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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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9/07/25 05:0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nibs17 at 2009/07/25 20:42
공연으로 십수번, CD로 수백번을 들은 곡이지만 그날의 '나를 잊었나요'만큼 사람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던적이 있었나 싶네요.
Commented by 페이토 at 2009/07/26 00:08
그들의 음악만큼이나 멋지네요.
Commented by sang at 2009/07/26 01:38
한겨레21 보니 책 내신 듯.. 서점가서 찾아봐야겠어요. 축하드려요 :)

(헌데 맞나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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