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바코 주스: 다 이루었도다
기원후 30년 하고도 4월 7일, 가시 면류관을 쓰고 십자가를 진 채 채찍을 맞으며 골고다 언덕으로 오르는 사내가 있었다. 그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 그는 십자가에 못박히면서 일곱 마디의 말씀을 남겼으니, 이를 가상칠언(架上七言)이라 한다. 앞 다섯 마디는 생략하고, 사람들이 바친 신 포도주를 입에 머금은 예수는 여섯번째 말씀을 가로되 "다 이루었다"하였다. 이 칼럼이 전도를 목적으로 하지도 않으며, 나 또한 기독교 신자가 아닐진데 감히 성경의 한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다 이룬 사내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무엇을 이루었느냐. 들어보면 안다.

대구옆 영주, 서울 하고도 홍대앞을 동경하며 소년시절과 청년시절을 보낸 형제가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권기욱과 권영욱. 마음은 홍대앞 라이브 클럽에 있으되 몸은 클럽하고는 인연없는 작은 도시에 있으니 그저 꿈만 불태울 수 밖에. 그들은 어디선가 구해온 비디오 테이프 하나를 시청하면서 영주에 가상현실을 구축했다. 뭐랄까, 밴드는 없고 관객만 있는 기묘한 현실. 하지만 펑크를 동경했던 그들이 시청했던 라이브 실황은 빡세디 빡센 하드코어였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전, 비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 밖에 없던 선한 양들처럼 공인된 클럽도 없이 방구석에서, 음악만 틀어놓고 피가 터지도록 모싱만 했다. 과연, 성에 차지 않았다. 하여, 형제는 서울 진출을 결심했다. 형인 권기욱이 노래를, 동생 권영욱이 기타를 맡기로 했다. 맨체스터의 빈촌에서 천하재패를 꿈꾸던 노엘과 리엄 갤러거 형제의 심정이었을까. 도무지 답이 없는 영주를 벗어날 기회가 찾아왔다. 온 가족이 수도권으로 이주하게 된 것이다. 비디오에서만 보던 홍대의 라이브 클럽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된 것이다. 오, 내일은 록 스타!

라디오헤드 같은 음악을 하고 싶은 드러머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백승화. 혼자 드럼을 두드려서야 라디오헤드 같은 음악을 하고 싶어도 이룰 수가 없다. 세이클럽 음악방송 채팅방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라디오헤드 티셔츠를 입고, 권기욱이 그렇게 나타났다. 보컬과 드럼만 있어서야 역시 라디오헤드 같은 음악을 하고 싶어도 이룰 수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기타가 합류했다. 권영욱이었다. 그렇게 모인 세 명은 또한 라디오헤드 같은 음악을 하고 싶었다. 아니, 홍대앞에서 가장 우울한 음악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실력이 안됐다. 권기욱의 목소리는 톰 요크나 엘리엇 스미스와는 백만 광년 정도 떨어져있었다. 외모와 목소리가 완벽한 자마이카의 빈민 그 자체였다. 플렌저와 딜레이, 카오스 패드를 완벽하게 다뤄야하는 조니 그린우드나 잘 쓰이지도 않고 어렵기 짝이 없는 코드들을 조합해서 가슴을 후벼파는 엘리엇 스미스의 기타 솜씨를 권영욱이 발휘할 가능성은 게르만족의 영토에 말발굽을 찍은 훈족이 그 즉시 기독교에 귀의할 가능성만큼이나 희박했다. 요컨데, 꿈은 높았으되 현실은 시궁창이었던거다.

하여, 그들은 홍대앞에서 가장 우울한, 아니 찌질한 가사에 단순하기로 따지면 천하 제일의 음악을 결합했다. 처음보다 지금 더 미약한 스리코드 펑크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음악은 없었다. 2004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타바코 주스의 주 근거지는 인디 중의 인디 클럽이라 할 수 있는 바다비, 부평 모텔촌 한 복판의 오아시스를 자임하는 루비 살롱이었다. 루비 살롱을 근거지로 꾸준히 공연을 하기 몇 달, 자작곡이 쌓여갔다. 마침 제작사를 겸하고 있던 루비 살롱에서 디지털 싱글을 내기로 했다. 2007년 여름 타바코 주스의 첫 디지털 싱글인 '돗대 천대 피면 투명인간 되나요?'발매기념 공연에 모인 관객은 무려...세 명. 그들 앞에서 열심히 노래한 권기욱은 울며 외쳤다. "다 이루었다."  2008년 말 발매된 첫 앨범 <쓰레기는 어디로 가나여>발매 기념 공연에서 권기욱은 역시 울며 외쳤다. "다 이루었다." 그리고 관객들을 향해 큰절을 했다. 크라잉 넛이 정기적으로 기획하는 공연인 '너트 쇼'에 타바코 주스가 섭외됐다. 크라잉 넛의 베이스인 한경록이 권기욱에게 섭외 전화를 걸었다. 권영욱은 한경록의 전화를 받는 내내 엉엉, 울었다. 경산에서 비디오로만 보던 '그 큰 당신'이 직접 전화를 하다니, 세례자 요한의 성수를 뒤집어 쓰는 예수라도 된 기분이었으리라. 모든 걸 이뤘다고 판단한 권기욱은 루비 살롱 대표인 리규영에게 이제 밴드를 해체하겠다고 선언했다.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낸 음반이 500장이나 팔리며 다음 앨범 쯤에서는 뭔가 해볼만하겠다고 생각한 그는 불같이 화를 냈다. "왜 해체하는데!" "꿈을 이뤘으니까요" "해체하면 뭐할건데!" "노가다해서 재판 찍은 CD 다 살거에요." "맘대로 해!"

리규영은 타바코 주스를 이르러 "홍대앞 최고의 진상"이라 했다. 내일은 록스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한 필수적 코스, 즉 근면한 합주와 성실한 자작곡 비축과는 완벽히 반대의 길을 걸어온 그들이었다. 평소에는 선한 양이되, 취하면 애굽에 재앙을 내리는 유대의 신이나 다름없었다.술만 마시면 그 자리를 초토화시켰다. 앨범 발매 기념 공연 뒤풀이 때는 욱 브라더스의 음주후 싸움으로 순식간에 자리가 파장됐다. 킹스톤 루디스카의 공연 뒤풀이에서 욱 브라더스가 가는 테이블에는 트위스터와 쓰나미가 몰아 닥쳤다. 취한 그들이 휩쓸고 가는 자리는 열가지 재앙을 당한 애굽의 풍경 그 자체가 됐다. MBC FM '두시의 데이트'에서 의욕적으로 기획한 '더 홍대'라는 코너가 있었다. 장기하, 타루 등 인디 뮤지션들이 출연해서 자신들의 음악을 소개하고 박명수와 만담을 주고 받는 코너였다. 한 '두시의 데이트' 애청자는 전한다. "타바코 주스가 출연했을 때, 간이 오그라드는 줄 알았어. 생방송인데 이건 뭐 싸움나기 직전이더라고." 아니나 다를까, 타바코 쥬스의 출연을 끝으로 '더 홍대'는 폐지됐다. 모든 것을 이룬 자리에 있는 건 진상의 끝장이었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는 삼일만에 부활하는 화려한 세레모니로 2000년이 넘게 인류의 곁에 머물렀다. 그러나 해체를 선언한 타바코 쥬스는 별다른 번복의 세레모니도 없이 계속 활동을 이어갔다. 그야말로 취중허언이었다.

그러다 터졌다. 음악이? 아니, 그랬으면 좋겠으나 유대교 랍비도 아닌, 예수의 제자였던 유다가 그를 배반했듯 운명이란 당췌 종잡을 수 없는 법이다. 루비 살롱 다큐멘터리 <반드시 크게 들을 것>에 삽입된 권기욱의 인터뷰 일부가 인터넷에서 패러디의 대상이 된 것이다. '나루토'를 통해 자신들의 게으름을 담담히 설파하는 권기욱의 그 영적인 표정과 말투는 예수의 산상수훈만한 아우라를 담고 있었다,는 건 거짓말이고 아무튼 네티즌들을 거역할 수 없는 중독의 세계에 빠져들게 했다. 음악팬보다 프로야구 팬, 스타크래프트 팬들에게 그들의 이름이 드높아지더니 오병이어처럼 무한한 자기 증식을 거쳐 온갖 곳에, 모든 것으로 적용되기 이르렀다. 급기야는 검색창에 타바코 주스를 입력하면 '나루토 아저씨'가 연관검색어로 떴다. 나루토 아저씨라니, 이 얼마나 현자의 포스가 느껴지는 별칭이란 말인가.

된다, 뜬다 싶으면 가차없이 끌어 쓰는 게 무릇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본질이다. 허무 속에 담겨 있는 웃음, 논리학을 초월한 이 괴기한 연역 또는 귀납의 과정을 개그 프로그램에서 놓칠리 없다. 누구나 다 아는 개그 프로그램에서 그들에게 연락을 했다. '안될거야 아마'를 개그 소재로 써도 되냐고.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욱 브라더스는 천사의 성품을 지녔다. 천사장 가브리엘이 따로 없을 정도다. 하지만 술만 마시면 루시퍼에 못지 않은 악마로 현현하는 게 또한 그들의 성품이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연락이 왔을 때, 하필이면 그들은 루시퍼 모드였다. 꺼져. *까. *발. 그런 짧고도 강한 단어로 뒤범벅된 말을 로마 병사 롱기누스가 예수의 육신을 창으로 후벼 파듯, 전화기에 쏴붙였다. 세속의 헛된 부름에 흔들리지 않는, 모든 것을 다 이룬 사내들만이 능히 토해낼 수 있는 사자후였으리라. 악마의 유혹을 일언지하에 거절하던 광야의 예수마냥 타락한 현대 대중문화산업에 경종을 고하는 타바코 주스의 기개, 감히 어느 성인에 견줄 수 있으리오.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Brut 창간호 칼럼의 확장본
by 김작가 | 2009/06/03 20:30 | 야담과 실화 | 트랙백(2)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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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roo's me2DAY at 2009/06/04 12:57

제목 : roo의 느낌
세속의 헛된 부름에 흔들리지 않는, 모든 것을 다 이룬 사내들만이 능히 토해낼 수 있는 사자후였으리라. 악마의 유혹을 일언지하에 거절하던 광야의 예수마냥 타락한 현대 대중문화산업에 경종을 고하는 타바코 주스의 기개, 감히 어느 성인에 견줄 수 있으리오....more

Tracked from sodacan's me.. at 2009/06/04 17:48

제목 : 소다캔의 생각
타바코 주스 : 다 이루었도다...more

Commented by mentirosa at 2009/06/03 20:48
으하하하 어쩜 좋아요. 자음 모음 세트로 남발 하고 싶네요.
Commented by 피노 at 2009/06/03 20:51
오오 오오오 그들과 뒤풀이 자리를 가질 기회가 있었는데 하필이면 그날따라 급한 일이 생겨 빠져나올 수 밖에 없었던 기억이... 다, 다행이었군요...
Commented by sarah at 2009/06/03 20:52
으하하, 정말재밌게읽었습니다
Commented by 영쵸 at 2009/06/03 21:29
대박
Commented by joooh at 2009/06/04 18:19
그 다큐 어떻게 볼 방법 없나요?
Commented by 김작가 at 2009/06/05 00:35
부천,제천영화제등등에서 상영한다 하네요
Commented by 퍼갑니다 at 2009/06/05 01:26
즐겨찾기로 지정된 김작가님의 블로그 글들 중에서
가장 웃긴 글이네요. 원문 링크 달고 글 좀 퍼 갈께요.
Commented by 하나만 at 2009/06/05 13:29
요컨데->요컨대
글 잘 읽었어요.^^;
Commented by 말보로미디엄 at 2009/06/06 20:33
하드디스크 사망으로 포맷+2차 중간고사 크리가 터지는 덕분에 몇일 못들어왔더니 이런 떡밥이...
큰집인 영주시 상망동 산 X번지 (실제 주소가 '산'임)에서 국딩때부터 주기적으로 양계를 하던 저에게 아주 정감이 가는군요.
그러고보니 예전 소리바다에 청춘98을 검색하면 크라잉넛으로 나오던 것 과는 다를수도 있겠지만 디씨에서 '윈디씨디보컬(인듯).jpg' 정도의 느낌으로 떠돌아 다니던게 기억이 납니다.
저도 3주뒤에 한국가면 당장 영주부터 가야하는데 역시 선비(룸펜)의 고장인 영주에 연이 있는 사람들에겐 뒷풀이 브레이커의 기질이 잠자고 있는듯...
Commented by hinak at 2009/06/10 12:07
아놔 오빠. 원본이 백배 더 웃기잖아 ㅠ 상/하로 진행해도 됐을것을!
Commented at 2009/06/12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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