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한국 대중음악계는 삼국지에 비견할만 하다. 세력적으로만 보자면 아이돌계는 위나라다. 빅뱅, 원더걸스, 소녀시대, 동방신기 등 음반과 음원, 공연에 이르기 까지 크리티컬 히트를 기록하는 아이돌을 통해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스타들이 배출된다. 용감한형제, 이트라이브등 프로듀서의 세대교체를 주도하는 프로듀서들도 아이돌들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그러니 바야흐로 천하의 주도권을 쥔 조조 치하의 위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오나라는 90년대에서 넘어온 싱어송라이터에 비견될 수 있다. 풍부한 물자와 장강이라는 천혜의 방벽을 매개로 성장한 오나라 말이다. 대한민국 문화 시장의 절대 주도권을 쥐고 있는 20-30대 여성 팬들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는 그들은 음반 시장의 황혼기에 아직까지 10만장을 노릴 수 있는 유일무이한 세력이다. 김동률, 유희열등이 입증했다. 게다가 주류 음악계에서 가수들이 음악 창작의 시스템에서 소외된 상황에서, 그들은 스스로 음악의 주체가 되면서도 당당히 주류 음악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문화의 주소비층이라는 탄탄한 경제적 기반과 90년대라고 하는 대중문화황금시대의 방벽위에 서있는 것이다. 삼국지는 촉을 중심으로 쓰였지만 알다시피, 촉의 당대 영향력은 보잘 것 없었다. 그것도 위와 오가 기반을 다진 후에야 칭왕을 했을 정도다. 인디가 꼭 그렇다. 아이돌과 90년대 싱어송라이터에 비하면 시장의 규모나 음악적 영향력에 있어 지극히 미미하다. 그러나 촉의 유비는 공손찬, 원소등 당대의 영웅호걸들이 모두 사라지는 와중에도 천하를 떠돌며 자신의 세력을 지켰다. 민심이 그의 곁에 있었다. 황숙이라는 정통성도 무기였다. 오랜 세월 때를 기다리며 근거를 찾고 명분을 확립했다. 그래서 결국 천하를 삼분하기에 이르렀다. 역시, 인디가 꼭 그렇다. 90년대 중후반, 홍대앞에서 시작되어 언제나 마이너의 위치에만 머물던 인디가 지금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 당대를 호령하던, 발라드를 중심으로 한 인기 가수들이 몰락하고 사라지는 와중에도 꿋꿋이 자리를 지켜내더니, 장기하와 얼굴들 같은 전국구 스타를 배출했다. 어디 장기하 뿐인가. 최근 홍대앞에서 열리는 공연들 중 매진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크라잉 넛이나 언니네 이발관 정도 되어야 가능했던 일이, 이제는 신진급들에 의해 일어난다. 국카스텐은 앨범 발매 직후 가졌던 첫 단독 공연에서 예매로만 500장 이상의 티켓을 팔며 현매로 온 사람들을 집으로 돌려 보내야했다. 검정치마도 두번의 단독 공연을 모두 매진 시켰다. 홍대앞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이제 장기하 신드롬에 대해 언급하는 건 뒷북이 되버렸다. 음악여행 라라라, 스페이스 공감, 유희열의 스케치북 등 진지한 음악 프로그램에서는 종종 인디 밴드들이 무대에 선다. 포털 사이트의 '이주의 음반'에 인디 음반들은 단골로 선정되며 대중에게 음악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인디 르네상스다. 굳이 르네상스라는 말을 사용한 까닭은 90년대 중후반, 인디 신이 형성되며 받았던 관심이래 10년만에 양적 질적 확장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부흥, 그 자체다. 지금의 이 부흥이 더욱 눈에 띄는 이유는, 르네상스를 주도하고 있는 뮤지션들의 면면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 인디 신에서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다. 새로 등장하는 뮤지션들이 1세대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던 거다. 크라잉 넛, 노 브레인, 언니네 이발관, 델리 스파이스 등 말이다. 어떤 밴드가 등장해도 고작해야 홍대앞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 때는 시대를 잘못만났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거품에 가까웠던 초기의 인디 붐을 타고 대중에게 노출된 1세대 밴드들이었다. 거품은 곧 꺼졌다. 매체는 인디를 외면했다. 그러니, 뮤지션들또한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충분히 1세대를 넘어설 수 있는 기량을 갖고 있는데, 라고들 생각했다. 과연 그랬을까. 돌이켜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2000년대 중반, 즉 2세대 밴드들이 한창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의 지향점은 대략 같았다. 대중친화적인 음악. 루시드 폴과 재주 소년등의 성공을 따라 가려 했다. 언니네 이발관과 델리 스파이스의 아성에 묻어 가려했다. 이른바 소녀 취향 음악의 득세였다. 어쿠스틱한 사운드에 어디선가 들어봤던 가사들. 내용은 없으되 이미지만 있는. 그러나 새로울 것 없는, 좋게 말해 친숙하고 나쁘게 말해 뻔한 가사들이 그들의 이야기였다. 누구 음반이 괜찮다는 얘기는 종종 들었다. 그러나 라이브가 약하다는 꼬리표가 늘 따라 붙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의 팬층은 대부분 겹쳤다. A라는 밴드의 공연에서 볼 수 있었던 관객들 상당수를 B에서도 볼 수 있었다. 쉽게 말하면 그 얼굴이 그 얼굴이었다. 그들은 결코 라이브로 입소문을 몰아 팬층을 넓혀가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당시의 흐름에 대해 '인디 상업주의'라는 말로 정리한 바 있다. 모던 록의 문제 뿐만은 아니었다. 당시 인디 신은 특정 장르를 중심에 두는 레이블들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펑크나 하드코어등. 크라잉 넛과 노 브레인이라는 걸출한 스타를 배출했던 펑크 신은 럭스 정도를 끝으로, 차세대 스타를 키워내지 못한 채 게토화되고 있었다. 펑크 특유의 커뮤니티 마인드가 지나친 나머지 배타적인 게토가 되어갔다. 더더군다나 마니아 음악일 수 밖에 없는 하드코어는 바세린이라는 공전절후의 팀을 배출했지만 그 뿐이었다. 여타 레이블도 마찬가지였다. 무릇 어떤 팀도 단 한 명의 스타만 있어서는 강팀이 될 수 없다. 스코티 피펜없는 마이클 조던을 상상할 수 없고, 박지성 없는 루니를 떠올릴 수 없듯 넉넉한 백업뮤지션이 있는 레이블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초기의 드럭을 제외하고 어떤 레이블도 '누구와 아이들'이라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결국, 2000년대 중반의 인디 신은 중세시대였던 거다. 1세대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드리운 그림자에 눌려있던. 이 시기를 돌파할 수 있었던 힘은 역설적으로 그 고정화된 구조에 있었다. 레이블들이 특정 취향이나 장르만을 지향하고 팬의 색깔또한 한정 되어있던, 하여 인디 음악의 최우선적 가치인 다양성이 상대적으로 소실되어 있던 그 시기 말이다. 더욱 오갈 곳 없는 소년들이 있었다. 대세에 따르지 않아 봐주는 이 없는 뮤지션 지망생들이 있었다. 고만고만한 밴드들 사이에서 고만고만하게 활동하며 묵묵히 자신의 음악을 갈고 닦은 이들이 있었다. 중국의 역사를 바꾼 민족은 한족보다 북방민족인 경우가 더 많았다. 중원이 나태해지는 동안 변방에서 힘을 키워 천하를 움켜쥔 것이다. 역사는 그렇게 종종 변방으로부터 뒤집어진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거다. 국카스텐의 하현우는 말한다. "2003년 쯤, 어느 클럽에 당시 활동하던 밴드들이 모여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인디, 이거 해서 뭐하냐는 식이었다. 회의주의적인 분위기였다. 그래서, 음악이 좋으면 사람들은 듣게 되는거 아니냐고 했다. 난 그 때 내가 인디 음악을 하면서도 좋은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다. 제대하고 2006년 쯤, 다시 활동을 시작했을 때 깜짝 놀랐다. 좋은 음악을 하는 팀이 너무 많았던 거다. 눈뜨고 코베인, 네스티요나 등등" 그렇다. 징후는 2006년, 2007년이었다. 문샤이너스와 갤럭시 익스프레스 처럼 1세대와 어떤 식으로든 관련 있는 팀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골대에 슛을 쏘기 시작했다. 누가 라이브를 잘한다더라, 라는 입소문의 주인공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듣보잡들이 그 이름의 소유자들이었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가 2007년 끝 무렵 인터넷으로 입소문을 타고 인디 상업주의를 지향하던 이들이 가고 싶어하던 바로 그 길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2008년, 물밀듯 변방의 이들이 중원으로 치고 들어왔다. 로로스, 장기하, 갤럭시 익스프레스, 고고 스타, 검정치마, 국카스텐 등등. 인디 신의 내부에서 내공을 키우며 조역에서 주연으로 크레딧을 바꾼 팀들도 있고, 갑자기 튀어나온 팀들도 있다. 영웅은 시대를 만나고 시대는 영웅을 만난다고 했던가. 때마침 그들의 이름을 널리 알릴 기회도 찾아왔다. EBS 스페이스 공감의 '헬로 루키'는 네이버, 펜타포트 등과 연동하며 자칫 아는 사람만 알게 될 지도 모를 무명의 뮤지션들에게 로열 로드를 깔아줬다. 네이버에서 의욕적으로 시작한 '오늘의 뮤직'은 매체에서 소외받아온 인디 앨범을 널리 알리는 기회가 됐다. 그리고 윤도현의 러브레터와 이하나의 페퍼민트, 음악여행 라라라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신변잡기를 늘어 놓지 않고, 결혼장난 같은 거 하지 않아도 검색어 1위에 오를 수 있음이 입증됐다. 칼을 갈아온 이들이 칼을 쓸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검정치마가 일만장 가까운 음반 판매고를 올리고, 고고 스타나 로로스가 팬들로부터 아이돌 급에 가까운 충성도를 누릴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세대 교체다. 인디 신의 오랜 숙원이었던 세대교체가 비로소 이뤄졌다. 1세대의 뒤만 따르지 않고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됐다. 세대 교체를 이룬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인디 신 내부의 패러다임은 크게 세 단계로 변화해왔다. 처음에는 단순한 장르를 바탕으로 자작곡으로 승부하는 이들의 세상이었다. 펑크나 모던 록, 그런지의 틀에서 외국곡을 카피하는 게 아니라 독창적인 자작곡을 만드는 팀이 주목을 받았다. 크라잉 넛, 노 브레인, 델리 스파이스, 언니네 이발관, 허클베리핀 등이 그랬다. 그 다음에는 장르적 완성도 또는 대중친화성이였다. 앞서 말한 인디 중세 시대의 패러다임이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는 자작곡은 기본이되, 어떤 장르라 말할 수 없는 카테고리 안에 있다. 그리고 라이브에서 승부수를 띄운다. 반드시 대중적이라 말하기도 쉽지 않다. 결국 라이브와 창작력을 결합하는 걸 넘어, 누구와도 비교되기 힘든 유니크함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주류 음악계에서 유니크함이 사라졌다. 소몰이에서 일렉트로니카로, 그리고 후크 송으로 뭐가 한 번 뜨면 레밍스 때처럼 몰려 가는 게 한국 주류 대중음악의 속성이긴 하지만, 최근에는 더욱 심해졌다. 익숙한 것을 찾으면서도 뭔가 좀 다른 걸 갈망하는 건 대중의 속성이다. 장기하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음악과 퍼포먼스가 뻔한 음악들과 차별됐기 때문이다. 대중의 속성과 공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카스텐과 검정치마, 요조 등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되 본질적으로는 마찬가지다. 남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그 무엇이 그들에게 있었던 거다. 한국 뿐 아니라 외국의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는 선연한 정체성, 혹은 외국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서 만들어내는 부가가치. 이런 무기들이 만들어질 때 까지는 축적이 있었다. 역사란 시간의 영속을 통해 지속된다. 90년대 중후반 부터 부침은 겪었으되 명맥은 끊기지 않았던, 라이브 클럽과 인디 레이블을 통해 쌓여왔던 음악이 인디 음악을 지속시켜왔다. 역사는 앞선 자의 등에 칼을 꽂는 자들에 의해 바뀐다. 1세대를 답습하지 않고 넘어서려는 이들이 지금의 인디 르네상스를 만들어 냈다. 역사는 이를 지지하는 민중에 의해 확립된다. 새롭게 라이브 클럽을 찾아 오고, 음반을 구매하고, 적극적인 팬 활동을 하는 이들이 없었다면 어떤 울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숙원은 이뤘다. 이제 새로운 프레임이 필요할 때다. 인디라는 단어에는 아직 마이너리티라는 함의가 포함되어 있다. 한 번 인디는 영원한 인디라는 인식도 있다. 그래서 크라잉 넛이나 언니네 이발관이 아직까지도 인디 밴드 취급을 받는다. 아이러니다. 왠만한 메이저 가수들 보다 입소문 한 번 탄 인디 뮤지션들이 실질적 관객 동원력이 더 높은 상황이 됐는데 말이다. 그래서 언니네 이발관이 '인디 음악' 대신 '밴드 음악'이라는 말로 스스로를 명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사실상 한국에서 자신의 음악을 하기 위해서는 인디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이 된 지금, 인디의 기의는 마이너리티가 아니라 음악 창작의 주체로 격상되어야 한다. 한국 대중음악의 지형도에서 21세기의 인디 음악과 자기 음악 사이에는 등호가 성립한다. 지금, 자본과 시장의 논리가 아닌 자기 스스로의 음악을 하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은 인디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엔터테이너가 아닌 아티스트의 꿈을 꾸는 인재들이 모이는 곳, 그게 지금의 인디 음악계다. 그럼에도 '인디'와 '마이너'가 등치를 이룬다는 건 창작자의 위치를 능동적 주체가 아니라 소외된 주체로 바라본다는 무의식의 표현일 것이다.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Brut 창간호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Calendar
카테고리
전체음악이 해준 말 생각 스토리 대화 어른들의 놀이터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상수일지 아주 특별한 여름 go20 private room NM 야담과 실화 바벨의 콘서트 VS 칼럼 자전거 라이프 방명록 비밀의 창고 미분류 최근 등록된 덧글
액슬, 건스의 파워와 ..by 소년 at 12/16 다른 건 그냥 보기 나름.. by 레나타 at 12/16 음향 문제만 아니라면 제.. by 999 at 12/16 우와 김삐끼님 오직 김.. by Zannah at 12/16 ㅋㅋㅋ 김삐끼님 대박. .. by 일월이 at 12/15 엑슬로즈가 김빼끼님의 .. by 포니우롱 at 12/15 ㅋㅋㅋ 할말은 없고 그.. by 김삐끼 at 12/15 결론적으로 이게 문제.. by 김삐끼 at 12/15 "아마, 이 것이 마지막.. by 김삐끼 at 12/15 "예고된 일이긴 했다. .. by 김삐끼 at 12/15 최근 등록된 트랙백
091209(수)-1 : 즐거운 ..by the universe (and .. 미카 Mika 내한공연 by Nomadic DNA | Naebi.. 아이돌? by uniquely banal (tas.. "Dientens" - 검정치마 by un regard lubrique EBS Space 공감 - 로.. by 여후니 kei의 느낌 by keikei's me2DAY 오소영 – a tempo by 말없는 등으로 기대고 .. 검정치마 - 좋아해줘 by Namgloo (Review) Dig Out Yo.. by Live Forever (Oasis) 내가 부르는 이문세 by jukun weblog 포토로그
태그
이능룡
자니마
Bleach
NorthernSky
하현우
고민하다가연애로보냄
상상마당
기대했던옛사랑은실망만안겨주더라
크립스
CD홍수
Dido
길티플레져
본조비
레미제라블
GMF2009
크라잉넛
내한공연
허클베리핀
열린포럼
언니네이발관
루시드폴
다른이유는아니고그나마그쪽이제일비슷한것같아서
킹스턴루디스카
LiveAtReading
루네
김경주
도대체이런건어느밸리에보내야하나
건스앤로지스
미카
너바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