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은 <지은>



얼짱이네 여왕이네 심지어 여신이네 하며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을 포장하는 요즘이다. 이에 대한 긍정 또는 부정적 해석은 후일로 미루기로 하자. 그 틀거리에서 오지은을 수식할 수 있는 적절한 말은 여전사가 아닐까.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홀로 데뷔 앨범의 작사,작곡, 녹음, 제작을 소화했던 그녀다. 그러나 전형적인 방구석 음악이었던 그 음반은 그야말로 화제의 중심에 서더니, 야금야금 수천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어쿠스틱 기타를 칼로, 진득한 목소리를 활로  삼아 일기당천으로 음악과 시장을 누볐던 거다. 인디계의 잔다르크랄까. 오지은이 해피로봇과 계약하고 2집 작업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방구석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환경에서 어떤 음악이 나올까 궁금했다. 이제 게릴라가 아니라 정규군인 것이다. 그녀의 휘하에 인디 음악계의 스타급 뮤지션들이 모여 들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정중엽, 디어 클라우드의 김용린, 임주연, 전자양 등 이름만으로도 화려하다. 자, 전력 분석은 끝났다. 오지은이 친구들과 함께, 스튜디오에서 벌인 전투 결과를 살필 때다.

앨범의 커버는 1집과 동일하다. 아무 텍스트도 없이, 오지은의 바스트 샷이 담겨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뭇 다르다. 1집의 심플하고 꾸밈없는 흑백 사진이 단촐한 방구석 어쿠스틱 DIY 사운드를 말해줬다면, 2집은 한 여성으로서의 아우라를 뿜어내는, 멍한 표정의 그녀가 서있다. 음악 또한 그러하다. 1집의 연장선상에 있는 첫번째 곡 '그대'가 지나가고 나면 '진공의 밤'이 노도처럼 휘몰아친다. 이후에 펼쳐지는 건 다양한 스펙트럼이다. 오지은은 팔색조 같은 목소리로, 주로 사랑을 테마로 한 여러 노래들에 걸맞는 감정을 목소리로 표현한다. 데이트를 하고 고백을 하고 상상을 하고 아파한다. 발군의 연기력이다. 뮤지션이라기 보다는 표현가라는 말이 걸맞을 만큼 오지은은 때로는 팜 파탈을, 때로는 20대 초반의 소녀를, 때로는 제 나이 또래인 아가씨와 숙녀 사이의 어디 즈음을 펼친다. 내면 속 여러 자아를 가감없이 드러내며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공존시키는 것이다.

소리의 표현뿐 아니라 언어도 마찬가지다. 타인에 의해 기대되는 자아가 아닌 내면으로부터의 욕망을 자유분방한 가사로 풀어 놓는다. 소리에서 보여주는 상상력에 비하면 뛰어난 작사 능력이라 단정할 수는 없으되, 여성 뮤지션 중에서는 분명히 보기 드문 케이스다. 비슷비슷한 얘기를 모호한 상징이나 공허한 가식으로 뒤범벅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은 물론 음악계에서 뿐만 아니다. 한국 대중 문화에서 허용되는 주체로서의 여성성, 아직까지 그 폭이 좁다는 증거이기도 할테고. 그런 상황에서 오지은은 넘치는 자의식을 과잉의 늪에 빠지지 않게 잘 통제하면서 담아내는 모범 사례를 남겼다. 그간 숨겨두었던 음악적 욕망들을 한껏 펼치면서 시이나 링고를 비롯한 일본 음악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지만 감점 요소는 되지 않을 터다. 이 앨범은 지금의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범주를 뛰어넘는, '어느' 싱어송라이터의 잘 조절된 자의식과 주체가 표출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진공의 밤

by 김작가 | 2009/05/13 23:51 | 음악이 해준 말 | 트랙백(2)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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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ONELINEDRAWING at 2009/05/14 08:10

제목 : 오지은, 그녀에 대한 채무감
오지은을 알게 된 건 내가 따르던 한 형으로부터였다. 그 형은 네이트온으로 이야기할 때마다 들을만 한 것을 mp3로 찔러주는데 그 때만은 예외였다. 그 형으로부터 도착한 메시지는 파일이 아니라 다른 사이트로 통하는 한 URL이었다. 파란색 하이퍼링크를 누르자 새 창이 떠올랐고 그 프레임 안에 어떤 여자가 기타를 퉁기면서 노래를 하고 있었다. 이후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오지은, 그녀는 인터넷에서 이슈가 되어 있었다. 음반을 발매하기도 전에 팔......more

Tracked from poosuk's me2.. at 2009/05/17 19:24

제목 : poosuk의 느낌
박지윤과 오지은을 듣기 위해 오랜만에 멜론 결제....more

Commented by 쭈우우운 at 2009/05/14 00:28
밸리를 달구길레 궁금하던 가순데 요즘 들으니 정말 좋네요. 당장 주문했습니다. 왜 몰랐을까라는 아쉬움이 드는 가수네요.
Commented by 정신병동 at 2009/05/14 09:43
1집과 2집의 느낌이 달라 ebs공감 공연을 시청하며 혹 다른 사람이 아닌가 할정도였습니다. 밋밋함을 없애도 좀더 자신의 색깔을 낸듯하더군요
Commented by 류연 at 2009/05/14 21:59
오오!
Commented by 취한배 at 2009/05/16 01:53
오오, 한국가면 한 장 사봐야겠어요.
Commented by ssolason at 2009/05/16 06:34
잘모르는 가수인데 앞으로 관심을갖고 지켜봐야겠네요
Commented by 토렝 at 2009/05/17 14:04
앗 오지은 ㅠㅠㅠ!!!!
앨범사러가야겠어요 꺅꺅!!
Commented by meou at 2009/05/18 21:54
안 그래도 이곳 저곳에서 너무 많이 본 이름, 얼굴이라 궁금했었는데.........흠.......역시 제 맘에 드는 여성싱어송라이터는 앞으로도 한동안 흐른씨가 유일하겠군요. 개인적 취향이니 오지은씨 팬들은 흥분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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