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티의 추억
1993년 3월 말이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 날 나는 입학 후 매일같이 이어오던 음주의 나날을 멈췄다. 다음 날 동기 MT를 떠나기 때문이었다. 1년에 한 번 같은 과, 또는 같은 학년 학생들끼리 교외의 민박촌에서 1박을 하며 관계결속을 다지는 행사인 MT는 membership training의 줄임말이다. 그러나 제대 후 복학한 예비역 선배들은 'MT는 military training'의 준말이다!'라며 '학교 생활은 곧 군생활의 연장'이라는 철학을 MT에서 이루기도 했다. 또한 아직 음흉한 고등학생의 기질에 젖어있는 몇몇 신입생들은 midnight technic의 줄임말이라고 생각했는지 어땠는지, 뭔가 야릇한 표정을 짓곤 했더랜다. 일부 유언비어 생산자들이 20대초반의 남녀대학생들이 한 방에서 혼숙을 한다는 사실을 놓고 온갖 그릇된 상상을 동원해서 망측한 소설을 지어내곤 했던 탓이다. 하여, 고등학교의 흉측한 남자 교실에서는 어쩌다 이런 대화가 오가곤 했다. "대학생들은 엠티를 가면 집단으로 응응을 한다는 군" "하악하악. 진짜? 아오. 정말. 으윽" 저열한 수컷들의 저열한 상상에서 나오는 저열한 대화였다.

그러나 아마 그들이 MT의 실상을 알았다면 결코 그런 상상은 하지 못했으리라.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나는 밤. 집에 갈 필요가 없기에 모두 한 방에 모여 밤새도록 퍼마시다가 아무데서나 쓰러져 자버리면 그만인, 그런 밤이야말로 MT의 실체인 것이다. 아마 MT가 없으면 우리나라의 주류소비량이 10%는 감소할 지도 모른다.

동기 MT는 나의 첫 MT는 아니었다. 입학도 하기 전, 신입생 수련회라는 이름으로 2박 3일동안 설악산을 다녀왔으며 입학 후에도 매주말 전체 MT, 동아리 MT등등의 명분으로 3월 말까지 매주 MT를 갔었다. 그렇다면 왜 나는 이런 뻔한 패턴의 하루를 놓고 잠을 이루지 못했을까. 답은 역시 짝사랑이었다. 한달동안 지켜보기만했던 동기여학생에게 이 날 프로포즈를 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때마침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바닷가로 간다니 분위기또한 받쳐주었다. 모두가 적당히 취기가 올랐을 때 조용히 그녀를 불러내어 파도소리를 배경삼아 속마음을 고백한 후 다음날 아침 친구들에게 부끄럽게 둘이 손잡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리라. 이런 생각으로 나는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떠난 동기MT는 모든 게 이미 예상했던대로 였다. 30여명의 친구들이 다 모인 시간은 약속보다 2시간이나 늦은 12시였다. 오후 4시쯤 도착, 매우 늦은 점심을 먹고 무료한 오후를 보냈다. 삼삼오오 바닷가를 거닐거나 민박집 마당에 둘러앉아 통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어떤 아이들은 족구를 하기도 했다. 나는 찬 수돗물에 담궈놓은 수십병의 맥주와 소주 근처를 기웃대며 얼마나 시원해졌나 계속 확인하고 있었다. 빨리 밤이 와서 술판이 벌어지기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해가 지고 아이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모두 한 자리에 둘러앉으니 과대표가 술을 가져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눈앞에 쌓인 술병은 보는 것만으로도 일대장관이었다. 모두가 애주가는 아니니 처음부터 달릴 수는 없는 노릇. 30여명의 신입생들은 대학와서 배운 온갖 게임을 하며 벌칙으로 한 잔씩의 술을 마셨다. 일단 술이 들어가면 술이 술을 부르는 법. 게임따위 필요없었다. 처음에는 하나였던 큰 원이 서서히 몇 개로 쪼개지더니 여기저기서 술판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여자아이들은 뭐가 그리 슬픈 일이 많은지 서로서로 울었다. 아마 그들 중 몇몇은 왜 우는지도 모른 채, 그저 옆에 있는 친구가 우니까 따라 울었을 것이다. 내가 찍어둔 여학생도 울고 있었다. 달래준다는 명분으로 슬쩍 그녀의 손을 잡아 바닷가로 이끌었다. 그리고 고백했다. "우리 사귀면 안될까.""....""나 사실은 옛날부터 너를....""미안해, 우리는 그냥 친구야."

여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내가 만취해있었다는 거다. 게임의 벌칙으로 맥주에 소주를 섞고 포카리 스웨트를 더한 괴상한 칵테일을 너무 많이 마셨나보다. 게다가 누군가가 가져온 싸구려 양주까지 반병을 들이킨 차였다. 그녀의 거절에 쓸데없이 눈물이 나왔다. 그리고 취한 김에 울부짖기 까지 했다. "어떻게 니가...엉엉엉."아무도 없는 바닷가에서 취해서 울부짖는 남자가 무서웠는지, 그녀는 슬쩍 자리를 피했다. 혼자 울기 시작했다. 왜 우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냥 눈물이 났던 것이다. 실연당해서 울고, 달이 밝아 울고, 울기 시작했으니까 울었다. 울음소리 사이로 팔자좋은 파도소리만 들려오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우니까 술이 좀 깼다. 몸을 추슬러 방에 들어가보니 이건 완전히 초상집이었다. 몇 명 속깊은 남자애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이곳 저곳에서 울음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스무살들은 이리 슬픈 인생을 살아왔나 싶을 만큼. 막상 그런 생각이 드니 나도 또 눈물이 나왔다. 그날 우리가 먹은 술은 모두 눈물로 빠져나왔을지도 모른다. 젠장, 거기에 또 누군가는 기타를 튕기며 김현식의 '넋두리'를 애절하게 불러제기까지 했다. 이건 뭐, 최후의 한 방울까지 쥐어짜겠다는 심산도 아니고.

다음 날, 아무도 슬퍼하는 사람은 없었다. 서로 누가 더 추하게 울었는지를 놀려대며 낄낄거릴 뿐이었다. 우리의 첫 MT는 청춘이라는 책의 한 페이지에 눈물자국만 남겨놓고 끝났다. 지금 나는 생각한다. 모든 속마음을 털어놓아 그리도 눈물이 흘렀을거라고. 그런 눈물 뒤덤벅의 밤이 없었다면 어쩌면 우리는 그 후로도 조금 덜 친해졌을 지도 모른다고. 또, 술 얘기다. 술좀 작작 마셔야할텐데.
by 김작가 | 2009/03/31 23:03 |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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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leopord at 2009/03/31 23:44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김작가 님과 그 사람이 바라보았을, 각기 다른 풍경이 지나가는 상상이 드는군요. 술의 힘은 위대해요. (야;)
Commented by Leedo at 2009/04/01 00:13
작가님의 이런 글 정말 너무 좋아요.ㅋㅋ
Commented by 체리씨 at 2009/04/01 01:04
조금은 아스트랄한 엠티의 추억이군요. 전 새내기때 엠티갔다가 다리가 부러졌,,,,
Commented by acrobat at 2009/04/01 09:12
그러게요 왜 그렇게 그당시 엠티에서는 우는 친구들이 많았을까요... -.-;;
Commented by kainen at 2009/04/01 09:40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눈물콧물범벅 (...) 결론은 술이네요. 또;
Commented by 후이짱 at 2009/04/01 13:50
아..우리때는 '마시고 토하기'의 준말로 불렸지..쩝.
Commented by U at 2009/04/03 15:48
저 예전에 선배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나네요..

엠티가서 자고 있는데, 남녀 두 명이 위 아래로 합체가 돼있는 상황이 연출되었는데, 다들 똑바로 누워있는데도 전부 고개는 그쪽으로 향해 두 남녀만 바라보고 있었다는군요.


전해들었던 이야기가 기억이납니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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