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로 18 <Apollo18>


연주로만 청중을 몰입시키는 건 힘든 일이다. 특히 보컬이 반은 먹고 들어가는 록에서는 더욱 힘들다. 탁월한 연주는 주연급 조연은 될 수 있어도 주연 그 자체는 되기 어렵다. 하여, 특정한 악기가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 밴드가 끌고 가는 연주 음반이란 배우없는 영화가 되기 쉽다. 그러나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 자연 다큐멘터리가 종종 휴먼 다큐 이상의 감동을 주듯, 한국 록의 흐름에서 탁월한 연주 집단들이 있었다. 한국의 슈게이징을 완성했던 우리는 속옷도 생기고 여자도 늘었다네가 모던 계열의 정점이었다면, 하드코어계열 최초의 연주 밴드일 아폴로 18은 헤비니스 계열에서 연주만으로 어떻게 격랑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모범사례다. 리더이자 베이시스트가 한 때 해파리소년이란 이름으로 활동했던 김대인이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그들은 데뷔 EP에서 슈게이징과 포스트 록, 그리고 스크리모의 정수를 끌어 모아 새로운 문법으로 재조합한다.목소리가 거세된 기타와 베이스, 그리고 드럼의 만남은 역으로 보컬에 구애받지 않고 침잠하는 서정과 역류하는 분노의 양극단을 오간다. 바셀린과 할로우잰의 그 멋진 보컬들을 빼고도 느낄 수 있었던 그 파멸의 격노를 아폴로 18은 연주만으로 구현한다. ('End'는 이 앨범에서 유일하게 보컬이 흐름을 주도하는 곡이다.) 조와 울을 넘나들고 애와 락을 함께 쥐어짠다. 영화없는 사운드트랙이요 활자없는 서사다. 극과 극은 통하는 법, 비탄과 노여움은 아폴로 18에 의해 이리도 아름답게 조우한다. 전통적인 장르 음악의 퇴조가 눈에 띄는 지금, 하드코어의 명가 GMC레코드는 새로운 답을 얻었다. 침묵하되 많은 것을 담지하는 문장 아닌 문장을.

 


Warm

by 김작가 | 2009/03/09 05:35 | 음악이 해준 말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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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나른나른 at 2009/03/09 12:05
EP가 드디어 나왔군요 ㅋ_ㅋ 보컬은 참으로 안습해도 세명의 연주라곤 믿을수 없을만큼 알차있고 즐기기 딱 좋다고 기억하는 밴드
Commented by 푸에르 at 2009/03/11 09:00
아~~ 몇개월째 아폴로18에 빠져 지내던 저로선 정말 감사하네요.ㅎㅎㅎ 정말 멋진 밴드죠.^^ 담아갑니다ㅎㅎ
Commented by namy at 2009/03/11 13:23
하드코어와 슈게이징은 전혀 다른 팬층과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인종의 벽을 허무는것처럼 장르의 벽을 마구 부셔버리는 기분이군!! GMC쪽 의 음악은 전혀 모르지만 앞으로 관심이 생겨버리네~
요즘 밴드들 점점 무서워지고 있어~
Commented by 한선우 at 2009/03/12 00:58
처음 루비쌀롱에서 아폴로18을 봤을 때의 감동과 충격이 잊혀지지않아요.^^
그날 찍은 warm이라는 동영상을 지엠씨 밴드인 나인신 게시판에 올렸는데 그것을 인연으로(만날 사람들은 어떻게든 만나겠지만) 이후 GMC 공연에서 자주 보이던 아폴로18이 GMC레이블을 통해 앨범이 나오더군요.감회가 새롭습니다.무척 기대되는 멋진 밴드인듯.
Commented by ㅇㅇ at 2009/03/20 05:52
'거세된' 이라는 표현은 대게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 않나요?
문맥상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
Commented by 고로 at 2009/11/16 00:11
담아가겠습니다!
Commented by 히버인 at 2009/11/21 01:40
헬로루키 대상먹었자나요 이팀 ㅋㅋ저는 뭔가 밋밋한 느낌이 많이 들었는데 ㅜㅜ
Commented by 베스트 at 2009/12/07 18:38
헬로루키 이후로 아폴로18에 빠져 지내고 있습니다.
warm 이외의 다른곡들 꼭 들어보셔야 합니다. 정말 다양한 색이 묻어나옵니다. 감히 한국의 시규어로스로 부르고 싶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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