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가붕가레코드: 우리는 느리게 걷자



아무도 몰랐다. 2004년 <관악포크청년협의회>라는 컴필레이션이 등장했을 때, 수많은 자가 제작 앨범의 하나인 줄 알았다. 붕가붕가레코드라는 레이블명을 보고, 또 하나의 키치인줄 알았다. 그 땐 그랬다. 이듬해 나왔던 <청년실업>도 마찬가지였다. 서울대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하는, 키치적이고 위악적인 밴드로 끝나는 줄 알았다. '밤은 깊어 가는데 기상 시간은 정해져있다'같은 가사는 위트가 넘쳤다. 그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붕가붕가 레코드는 루비 살롱과 더불어 한국 인디 신의 가장 '핫'한 레이블이 됐다.

그것은 융기였다. 두 번의 치솟음이 있었다. 2007년 말, 조용히 등장한 브로콜리 너마저의 EP <앵콜요청금지>에 담긴 동명의 노래가 조용히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제목과 더불어 소박하고 단아한, 그러나 범상치 않은 멜로디. 그리고 은유적이면서도 일상적인 가사는 이 노래를 매달리는 전 애인에게 바치는 노래처럼 보이게 했다. 후일 이 노래를 만든 윤덕원(베이스)이 사랑노래가 아니라고 부인할 때 까지 모두가 그렇게 믿었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앨범은 그들이 다른 레이블에서 정규 데뷔 앨범을 발매한 지난 해 말까지도 계속 전문 레코드 샵의 판매 수위권에 올랐다. 그러나 그건 전조에 불과했다. 2008년 5월 뚝 떨어진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싱글의 입소문은 더욱 거셌다. 처음에는 홍대앞에서 야금야금 화제를 모으더니 가을의 록 페스티벌과 EBS <스페이스 공감> 출연 동영상은 인터넷을 몰아쳤다. '홍대앞의 빅뱅' '인디의 서태지'를 넘어 급기야는 '가요계의 버락 오바마'라는 별명이 장기하에게 붙었다. 결국, 장기하는 2월 현재 빅 뱅의 태양을 누르고 한국 대중음악상의 '네티즌이 선정한 올해의 음악인' 투표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이건, 기적이다. 정말, 아무도 몰랐다. 붕가붕가 레코드 자신도 그럴 줄 몰랐다.

소박한 시작이었다. 서울대 재학생들끼리 일종의 '집단'으로 출발했다.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이라는 모토하에 모든 걸 스스로 해결했다. 레코딩은 친하게 지내는 밴드 작업실에서 해결했다. 프레스는 강의실에 컴퓨터를 가져다놓고 직접 구웠다. 종이 박스에 스티커를 붙여서 패키지를 해결했다. 붕가붕가 레코드의 특징인 '가내 수공업 싱글'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1만장을 훌쩍 넘긴 장기하의 싱글 역시 여전히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취미로 시작한 일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장기하 뿐만 아니라 치즈 스테레오, 술탄 오브 더 디스코 등 기존 소속 팀의 인기도 올라갔다. 아마도 이자람 밴드와 불나방 스타 쏘세지 클럽이 새로운 식구로 합류했다. 이미 초미의 관심이 되고 있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정식 데뷔 앨범 <별일 없이 산다>는 가내 수공업을 벗어나 '공장제 대량 생산'으로 제작된다.

붕가붕가 레코드의 시스템은 인디 레이블이 어떻게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메이저의 시스템은 융단폭격이다. 데뷔 전, 연습생 시절부터 팬클럽이 결성되고 데뷔 직후에는 온갖 예능 프로를 총동원해서 물량으로 승부한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붕가붕가는 완벽한 반대였다. 그들의 목표는 전업 뮤지션도 아니고, 어떤 형태로든 음악을 계속 하는 거였다. 불투명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신기루를 찾는 대신, 산업의 외연을 벗긴 음악 그 자체만 본거다. 저예산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차라리 무예산에 가까운 제작 시스템은 누구에게도 큰 경제적 부담을 지우지 않았다. 이렇다할 홍보도 한 적이 없다. 앨범에 딸린 간략한 보도자료 한 장이 전부. 나머지는 입소문과 공연에 모든 걸 맡겼다. 인건비도, 경상비도 오직 동인집단에 가까운 청년들의 시간과 땀으로 해결했다. 미디어를 통한 하향 인기 몰이가 아닌, 입소문에 의한 팬 커뮤니티가 음악을 자발적으로 알리는 방식을 택했다. 양질의 사운드 대신 노래 그 자체에 집중했기에 붕가붕가 레코드의 많은 음반들이 크던 작던 입소문을 탔다. 장기하는 그 대표적인 사례를 너머, 입소문으로 스타덤에 오른 한국 대중음악의 이변일테고. 그야말로 노 리스크 하이 리턴인 셈이다.

붕가붕가 레코드의 이런 활동 방식은 한국 대중문화 산업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크게 베팅해서 크게 먹는다, 식의 블록버스터 논리는 이미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음악은 진작에, 영화와 드라마가 연이어 무한히 피어 오른 거품이 터져 애를 먹고 있다. 위기설은 끊이지 않는다. 탐욕과 오만이 결국 파생상품에서 시작한 금융위기를 낳았듯,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돈놀이가 컨텐츠를 압도한 지 오래였다. 결국 거품이 터졌고 위기설이 덮쳤다. 그러나 붕가붕가는 설령, 장기하와 얼굴들의 앨범이 실패하더라도 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애시당초 이들의 목표는 도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앨범은 싱글과 마찬가지로 홈 레코딩으로 제작됐다. 장기하는 여전히 "전업 뮤지션하다가 안되면 다른 일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만하면 스타덤이건만, 여전히 그들의 주활동무대는 홍대앞이다. 레이블의 대표인 고건혁은 이리도 일이 커졌음에도 본업을 놓지 않고 있다. 대신 상근직원 한 명이 들어와 모든 일을 도맡아 처리한다. 지를 법 하건만, 크게 지를 법하건만 여전히 느린 발걸음이다. 자본에 모든 것을 집중하는 대기업의 논리도, 작게 시작해서 터지면 크게 지르는 벤쳐의 논리도 이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붕가붕가는 일종의 꼬뮨이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약간의 인력과 상당한 스케줄, 그리고 이를 능가하는 관심이 있을 뿐이다. 70년대의 청년 문화도 마찬가지였다. 혁명으로 이어지는 모든 하위 문화는 늘 제도권 밖에서 나온다. 스타덤에 대한 허영보다 창작에 대한 욕망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대중과 시스템을 좇기 보다 그들이 따라오게 했기 때문이다. 청년문화가 소멸했다는 개탄도 식상한 지금, 친구들끼리 재미삼아 시작한 레이블이 한국 청년문화의 계보를 잇고 있다. 새로운 신화를 쓰고 있다.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중대 대학원 신문 원고


by 김작가 | 2009/02/24 05:17 | 스토리 | 트랙백(1) | 핑백(1)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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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품앗이 at 2009/02/24 10:53

제목 : 지속가능한 딴따라질
참 재미난 말이다. 장기하와 얼굴들, 붕가붕가레코드을 보면서 세상을 사는 또 다른 방법을 배운다. 일주일에 한두번 들리는 김작가 블로그에 '붕가붕가레코드'를 재미나게 분석한 글이 실려 퍼왔다. 붕가붕가레코드: 우리는 느리게 걷자...more

Linked at note : 별일 없이 at 2009/02/25 18:27

... 오늘도 무사히 10. 별일 없이 산다 11.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12. 멱살 한 번 잡히십시다 13. 달이 차오른다, 가자 14. 그 남자 왜 붕가붕가레코드김작가, &lt;붕가붕가레코드: 우리는 느리게 걷자&gt; ... more

Commented by 바시 at 2009/02/24 09:04
...호오 그나저나 정규음반 콘서트는 가고 싶은데
작은 글씨로 보이는
"매진되었습니다. 성원에 감사합니다."
라는 글씨가(...)
Commented by 사월십일 at 2009/02/24 09:30
붕가붕가가 일종의 꼬뮨이라는 말에 어쩐지 깊이 공감하고 갑니다.
Commented by 정유 at 2009/02/24 09:46
이번주금요일에공연갑니다..ㅠㅠ 웃대랑 디씨와 빅뱅팬들의 대결이라더군요...-_-
Commented by leopord at 2009/02/24 12:21
올한해 장기하와얼굴들은 별일없이 살긴 힘들 것 같지만(바쁘단 얘기지요!), 이렇게 계속 창작물을 내줘서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어요.
Commented at 2009/02/24 16:3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ticketr at 2009/02/24 21:55
아, 앵콜요청금지가 사랑노래가 아니었다니! 그럼 뭔가요? (너무궁금해서..)
Commented by X at 2009/02/25 15:12
정말 좋은 글이네요...
특히 마지막 문구, 공감이 갑니다.

개인적으로 장기하밴드 팬은 아니고 솔직히 좋아하는 음악스타일은 아니지만,
동네 고등학생들까지 싸구려 커피를 부르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라긴 했습니다.
장기하의 음악보다 이런 현상이나 소위말해 '뜬' 후의 그들의 태도와 마인드가 (그의 음악보다) 고무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창작자들은 창작자들대로 핑계대며 자본과 대중들의 의식수준 탓을 하고, 대중들은 대중대로 사회분위기와 경제 위기 핑계나 대고...
하지만,
대중들 역시 상업적인 문화에 식상해하고, 좀 더 참신한 문화에 목말라했다는 것은 장기하 현상(영화쪽에서는 최근 워낭소리 현상)을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딱 하나 우려(?)되는 것은...
장기하나 붕가붕가 제작자들처럼 망해도 손해없고....식이 아니라,
그리고 문화를 산업적인 측면으로 이해하고 거대자본을 들여 (도박처럼) 판을 벌이려는 사람들도 아니면서, 인디음악이든 독립영화든, 그 분야로 어떻게든 성공해야하고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입장입니다....
어차피 배운 것이 그것 밖에 없고, 그 일만 계속해왔고, 그 일에 청춘까지 다 올인해버린 사람들이요.

주변인들을 떠올리며 들었던 저만의 생각입니다.
그들에게도 장기하는 역시 똘똘한 신세대 뮤지션의 모습일테지만, 제 생각에는 아직까지는 장기하나 붕가붕가레코드 제작진들처럼 그런 생활방식과 마인드를 생각지도 못하고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 하나에 올인 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세상엔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오히려 예술분야라면 그런 사람이 생각보다 더 많을지도 모르구요.. 제가 막 떠오른 사람만해도 벌써 두명입니다).
그들은 예술적 성공여부에 대해 장기하처럼 '초연'할수가 없을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술분야의 일이든 다른 분야의 일이든,
나이도 있고, 기술도 없고...... 거기서 아무리 멸시와 무시를 당해도 나갈 수 없을 상황이었고, 그만큼 노력했으니 자기도 거기서 빛 좀 보고 싶다, 성공하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심리는 어쩔 수 없는 걸테고요. 마찬가지. 장기하처럼 자기 일 당당하게 하면서 재능도 있어서 뮤지션으로 빛나는 사례는 정말, 극히 드물지 않느냐..하는 것이죠.

그것이 다른 뮤지션들이나 다른 음반제작사들에게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칭찬하기 앞서, 저들의 상황자체가 특수해보이기도 하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그래서 홍대출신 뮤지션들이 음악은 접고 돈이 많으면 빠를 차리거나 아니면 그냥 회사원이 되거나 또는 사업가로 변하게 되지 않나 싶습니다. 세상엔 장기하만큼 재능있으면서도 자기 일 척척해내는 젊은이 보다 하나도 못해내는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저 역시 김작가님 언급하신 것처럼 현재 한국의 문화가 거대기업, 자본 논리의 엔터테인먼트 산업 체계로 흘러가다 부작용을 낳는 시대에 장기하의 마인드와 붕가붕가 레코드의 제작시스템 자체가 하나의 자극제가 되리라는 것은 동의합니다.
(이러한 자극 하나하나가 모여 한국 음악시장도 좀 달라졌으면 좋겠고요. ^^)

그리고.. 앞서 말한, 인간적으로 이해는 하되 일을 하든 예술을 하든 연애를 하든, 80년대 마인드로 무조건 빡쎄고 진지하게 밀어부치는 꼰대들에게도, 장기하의 모습이 자극이 되어 '우직'과 '무식'을 구분하고, 그것이 타인에겐 민폐가 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변화, 발전할 수 있는 동기가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에서 역시 하나의 혁명,이란 생각 들구요.


장기하와 붕가붕가 레코드의 음반 제작시스템을 꼬뮨에 비유하셨는데, 동감하고 전 장기하의 뮤지션으로서의 마인드가 21세기적 예술가적 태도라 생각합니다.

좋은 글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첨/ 다 써놓고 다시 보니, 장기하가 회사도 다니면서 음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업 뮤지션이었군요?..(전 회사도 다니면서 뮤지션을 병행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같습니다.
음악 활동과 제작 시스템도 시스템이지만, 전 장기하의 마인드 자체를 마구마구 칭찬하고 싶습니다.
자기 혼자 청춘바친것도 아니건만, 혼자 예술가 흉내 다내면서 어쩌고 하며 푸념이나 늘어놓는 꼰대들. 그러면서 '안되면 다른 것 하자'가 아니라, '오기로' 언젠가 성공할 거라 생각하며 오늘도 굴욕의 나날을 스스로 자초하는 사람들에게, 장기하는 하나의 자극-정도를 넘어- 마인드 혁명,이라 생각됩니다. -:)
Commented by smileyes at 2009/02/27 10:48
저도 눈뜨고 코베인 공연을 2004년 학교 봄축제에서 보고 주목을 했는데 결국 장기하와 얼굴들이 떴더군요. 저도 학부 졸업선물이라는 미명하에 앨범을 질렀습니다
Commented by midnight at 2009/02/28 21:13
글 좋아요. 여러 부분에서 공감!
참. 우연히 라디오를 듣다 2AM의 정진운이 직접 기타를 치면서 달이 차오른다 가자를 부르는 걸 들었어요. 정말 좋아하는 노래라면서 부르더군요. 뭔가 느낌이 색달랐어요. 주류 아이돌에게도 신선한 자극을 준 걸까요
Commented by cryingkid at 2009/03/04 12:46
괜히 사놓고 처박아둔 관악청년포크협의회 앨범
다시 꺼내 들어봐야겠네요. 그땐 정말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Commented by 도락 at 2009/03/07 22:47
흠... 꼬뮨... 뭔가 이데올로기적인 냄새를 풍기는 그 단어에 묻어있는 의미가 어떤 것인가 음미하기 위해 네이버를 검색해봤더랬습니다. 윗분들처럼 공감이 되더군요. :)

아무튼 요즘의 인디씬이 거대자본의 두터운 벽을 뚫고 나올 수 있는 건 아무래도 흔히 나오는 대중음악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탓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2000년 전후로 쏟아져나오던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요즘 뜸한 까닭도 여기에 있는 듯 하구요. 대신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니라 블록버스터 드라마가 나오더군요. 로스트라든지 CSI라든지... 드라마의 블록버스터화는 그간 드라마에서 찾을 수 없던 "신선함과 새로움"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장르를 불문하고 인디가 그 신선함과 새로움 무장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이 사랑받고 있는 거구요. 사랑과 우정의 상징뿐 아니라 먹어도 먹어도 변함없고 벗겨도 벗겨도 깊은 녀석으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인디를 즐기는 요즘은 너무 좋다는 느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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