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뱅과 신중현, 정수라

작년 촛불 정국 때 본의아니게 도로교통법(집시법도 아니고) 위반 사범이 된 이후, 본업에만 충실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마감은 쌓여 있는데 몸은 광장에 와있다 보니 여러 곳에 민폐를 끼쳤기 때문이다. 청와대발 개그 콘서트가 매일 열리고 경제가 꼬꾸라져도 오직 음악을 듣고 음악에 대해서만 쓰리라, 굳게 다짐했다. 허나 울화통이 터지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려 나름 애썼다. 내 '나와바리'인 음악만 건드리지 말아다오, 속으로 애원했다. 그러나 이 정부는 어찌나 오지랖도 넓으신지 사방팔방 국가를 중대장 내무검사(그 분들은 군대 근처에도 안 가보신 분들이 많아 아마 이게 무슨 말이지 모르시겠지만)하듯 들쑤시더니 정권 출범 1년이 채 안되어 살인정권이란 소리까지 들으셨다. 그리고 종국에는 음악도 건드리셨다.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더니 온 누리에 국가의 이름이 울려 퍼진다. 그렇다. 최근 청와대에서 나온, 이른바 '나라사랑 랩송'에 대한 얘기를 하려는 거다.

지난 주는 빅 뱅 팬들이 그룹 역사상 가장 분노한 한 주가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빅 뱅의 팬이 아니더라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였을 거다. 무려 "3.1절과 임정 수립 90주년을 맞는 올해는 의미가 더욱 각별한 해"에 "나라사랑을 주제로 한 랩송을 만들어 전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청와대 관계자가 밝혔으니 말이다. 그 노래를 부를 가수들 중 빅 뱅이 '콕찝어' 언급된 것으로 전해졌다.  어쨌든 정치 근처에도 안 얽히는 게 미덕인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게다가 일거수 일투족에 예민하디 예민할 수 밖에 없는 빅 뱅은 곤혹스러웠겠지만 나는 당혹스러웠다. 게다가 '관계자'의 입을 빌어 흘린 후 여론이 안 좋으면 부인하며 닭잡아먹고 오리발, 아니 꼬리곰탕 먹고 쥐꼬리 내미는 신공을 또 한 번 발휘하면 그냥 웃어넘기겠다. 그러나 "젊은층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 아니겠냐. 여러 의견들을 잘 들어보고 건의하겠다"는 유인촌 문화부장관의 말을 들으니 웃지도 못하고 미칠 노릇이다. 이건 정말이지, 1970년대 건전가요 부활의 화려한 신호탄 아닌가.


1970년대를 주름잡은 두 명의 음악 프로듀서를 꼽는다면 누구나 신중현을 우선 꼽을 것이다. 1974년, '삼천만의 히트곡'이란 별명을 얻은 '미인'으로 그 자신이 슈퍼스타가 되기 전에도 이미 당시 대중음악계에는 신중현 사단이 존재했다. 김추자, 김정미, 남인수, 펄 시스터즈 등 당대를 주름잡던 가수들은 대부분 신중현에 의해 발굴됐고 훈련됐으며 스타덤에 오를 수 있었다. 그가 만드는 곡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가수 지망생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요즘으로 따지면 용감한 형제나 박근태 급일테지만, 그 때는 지금보다 음악이 대중문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컸을테니 영향력도 더 강할 수 밖에 없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했던가, 천하에 두려울 게 없었던 신중현보다 더욱 막강한 프로듀서가 존재했으니 이름하여 박정희였다. 응? 박정희 전대통령 말이다. '미인'은 '삼천만의 히트곡'이었지만 박정희가 작사 작곡한 '새마을 노래'는 '삼천만의 필청곡'이었다. 1972년 4월 21일에 공식 발표된 이 노래는 온 국민이 아침마다 듣고 모이면 불러야 했던 노래다. 멜로디와 박자는 쉽고 메시지는 명확하다. 선동가로서 갖춰야할 필수조건을 '새마을 노래'는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방송과 언론은 물론, 동사무소 스피커까지 장악하고 있었다. 목적이 뚜렷하고 간결한 '훅'을 가진 노래를 만드는 능력에 미디어까지 총동원할 수 있는 권력을 갖고 있는데 이 어찌 최고의 프로듀서요, 기획자라 아니할 수 있는가. 농담같지만 그렇지 않다.

실제 박정희는, 혹은 그의 측근들은 음악이 갖고 있는 힘을 잘 알고 있었다. 5.16쿠테타에 성공한 박정희 정권은 집권 초기인 1966년 한국문화예술윤리회를 세우고 이듬해에는 음반법을 제정하여 심의를 강화하고 금지곡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당시 보편적인 통념대로 대중음악을 그저 '저질 문화'라고만 생각했으면 굳이 필요없는 행정 절차였다. 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무렵, 음악에 대한 통제도 더욱 심해졌다. 미약한 정권의 지지를 음악으로 만회하려는 시도도 일어났다.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이 청와대와 공화당으로부터의 '박정희 찬가' 제작 지시에 대한 반발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유명한 일이다. 그는 그 사건으로 인해 경찰의 지속적 감시를 받았고, '미인'을 비롯한 대부분의 히트곡은 금지곡 처분을 받았으며, 결국 대마초 파동으로 고초를 겪어야했다. 신중현 뿐 아니라 품행 불량한 록 뮤지션과 사상이 불온한 포크 뮤지션들 모두 같은 시련을 겪었다. 박정희 정권은 그렇게, 한국 대중음악의 허리를 끊어버렸다.

80년대 역시 관제가요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증가했다. 5공화국은 집권 이후 사회정화위원회의 관할하에 모든 국내 가수들의 앨범에 '시장에 가면' '어허야 둥기둥기' 건전가요를 의무적으로 싣게 했다. 이 위원회는 아예 1983년, 국민들에게 주인의식을 고취시킨다는 취지하에 KBS와 공동으로 건전가요 컴필레이션을 기획했다. 이 앨범에 실려있던 노래가 바로 정수라가 부른 '아! 대한민국'이다. 이 노래는 발표와 동시에 가요계의 패왕, 조용필을 꺾고 단숨에 가요 차트 1위를 기록했다. 정권이 직접 나서지는 않았으되 방송이 알아서 나팔수 역할을 자임했으니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비화에 의하면, 정부에서는 이 노래를 조용필이 부르기를 희망했다고 한다. 1988년 노태우 정부가 출범하고서야 유신정권 치하의 금지곡들은 해금됐고, 모든 음반에 담겨있던 건전가요도 그 해 중반 사라졌다. 관제가요는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듯 했다. 1998년 황신혜 밴드는 두번째 앨범 제목을 <건전가요>라 명명, 대중음악을 정권의 홍보수단으로 사용하던 구시대를 조롱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왠말인가. 정권차원에서 애국심을 고취하는 노래를 만들어 보급하겠다니. 시간을 거꾸로 달려도 이렇게 거꾸로일수야.  특정 가수를 콕 찍어 지목하는 걸 보니 건전가요 전성시대인 80년대를 사뿐히 즈려밟고 70년대로 달리는 형국이다. 게다가 그 아이디어는 마이클 잭슨, 케니 로저스 등 미국 팝계의 슈퍼 스타들이 모두 모여 1984년 발표한 'We Are The World'란다. 설마, 아프리카를 돕자는 메시지를 담은 이 사해동포주의적 노래를 제목만 보고 '음, 레이건의 강한 미국 정책을 지지하는 당시 가수들이 우리가 곧 세계라는 제국주의적 주장을 아름다운 하모니로 풀어내어 애국심을 고취시킨 노래겠군'이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농담이긴 한데, 워낙 개그를 멈추지 않는 분들이다보니 혹시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니 엉뚱한 것 같다붙이지 말고, 유신정권의 '새마을운동' 히트 신화가 부러웠다고 말했으면 한다. 이 정권의 기조로 보아, 그게 차라리 진정성이 있어 보인다. 물론, 진정성이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렴 어떤가. 성장앞에 ‘녹색’을 갖다 붙이는 분이 다스리는 나라인데.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by 김작가 | 2009/02/22 05:29 | 스토리 | 트랙백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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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kundera at 2009/02/22 06:07
이러다 박정희처럼 헌법도 바꿔서 한 5번 중임하려고 하는게 아닌가 모르겠어요. 한 6개월 전 같으면 그게 말이되냐 했겠지만 요즘 하는 꼬라지 봐서는 실제로 그렇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설마가 사람 잡는 정말 무서운 정부예요. -_-;
Commented by 김고기 at 2009/02/22 07:27
노댄스에 들어있던 시장에가면이라는 건전가요(플레이 타임이 0초지만-_-)가 그런 의도 였군요.ㄷㄷㄷ

이래서 사람은 배워야 하나 봅니다. 전 그냥 이거 뭐야? 신해철 장난치는거야? 하고 말았는데-_-;;;;;;
Commented by EXmio at 2009/02/22 10:10
한국대중음악상에도 지원을 끊고 한국의 그래미를 만드시겠다던데.. 영화하는 분들도 바빠지고, 음악하시는 분들도 바빠지는 때인가 봅니다.
Commented by TokaNG at 2009/02/22 16:40
저도 여기서 노댄스 앨범에 들어있던, 0초짜리 음악의 진위를 겨우 알 수 있었군요..;;
당시엔 제가 산 앨범이 불량품인줄 알고 무지 속상했었는데..
뭐, 남들도 다들 그렇다는 말을 듣고 겨우 진정되긴 했지만요..=ㅅ=a
Commented by 스페이드A at 2009/02/22 21:56
대중가요가 유해매체딱지를 받고있는 이 시대가 도대체 21세기가 맞나 하고 전 의아햐 하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시대유감 at 2009/02/22 23:27
새마을 운동 노래가 정말 박정희 작사 작곡이 맞는 건가요?
이건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고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어 뭘 믿어야 할지 영...
Commented by 체리씨 at 2009/02/23 00:16
아, 씨발.
Commented by 오이스타 at 2009/02/23 08:11
아 씨발 추가요.
Commented by 한양댁 at 2009/02/23 10:07
테이프를 사면 녹음할 수 있게 구멍 막아서 건전가요 부분만 싹 지워서 듣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젠 씨디 시대니 어떻게 해야 하나요?
Commented by 베리배드씽 at 2009/02/23 11:32
이게 진짜 이루어진다면 빅뱅 불쌍하네요.해도 욕먹을 거고 안해도 욕먹을 거고 ㅜㅜ
Commented by 천기누설 at 2009/02/23 13:37
저도 여기서 노댄스 음반의 시장에가면의 정체를...-_-;;; 신해철도 엄청 비꼬고 있었군요. 자기 솔로앨범도 아니고 윤상이랑 같이 한 앨범에 그런[..]
Commented by 나이쑤 at 2009/02/23 15:08
간단히 말하자면,'시간을 달리는 정부'입니다.그것도 70년대 박텅이나 80년대 전텅을 보는 듯한 그런 '반이성의 시대'로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이거 잘못하다가는 '반공가','똘이장군'같은 그런 게 나와도 이상할 건 없겠는데요?
Commented by hislove at 2009/02/23 16:58
21세기를 선도하는 각하께 이 무슨 망발이란 말입니까!
명백한 반동분자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박수를 쳐도 모자랄 판에 비난이라니요!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 작은 희생은 불가피합니다.
자손 대대 길이길이 남을 각하의 업적을 칭송하지는 못할 망정
식상한 레퍼토리로 비난이라니요!

꺼지지 않는 새 시대의 지도자상,
지구에서 가장 현명한 그분이십니다!
쇼를 일삼았던 전 정권과는 다르다구요!
!
Commented by hislove at 2009/02/23 16:58
(아 뭔가 억지스럽다 ㅠㅠ)
Commented by 루시 at 2009/02/24 10:11
그런 것이었군요. 가엾어라. 이제야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악 맘껏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이상한대서 태클이 들어오니 참.....뭐가 건전이란 건지
모르겠군요. 애국심보다 반발심을 키우는 노래가 될지도 모르는 일인데 말이지요.
Commented by 휴이 at 2009/02/24 15:23
아 님아 매너좀 이 말이 진짜 절로 나오네요(..) 왓더......이건 좀 아니야 ㄱ-;;
Commented by midnight at 2009/02/28 21:36
이래서 역사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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