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퍼텍 수다
-'어떻게든 되겠지'가 인생의 절대 불변 모토지만 절대 어떻게든 안되는 게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출국. 첫 여행 때는 게으름탓에 항공권을 미친듯이 비싸게 샀고, 두번째부터는 늘 전날 밤을 꼴딱 세운 후 비행기에서 뻗어 자야 했다. 역시 게으름을 피우다가 일을 다 못끝내고 가곤 했으므로. 주말에 홍콩에 갈 일이 생겼다. 그 동안의 출국 소동은 이번 출국에 비하면 리무진으로 공항까지 가서 VIP클래스를 타고 발리로 가는 정도의 호사나 다름 없었다. 기획사에 여권번호를 알려 주기 위해 여권을 찾는데, 이거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는 거다. 내 작업실이 무슨 이건희 집무실도 아닌지라 있을 곳은 뻔하고 숨을 곳도 뻔한데, 깨끗이 실종됐다. 에라 모르겠다. 분실신고하고 재발급받아야지 하고 구청에 갔다. 만사가 평화로웠다. 담당 공무원분도 친절했다. 이런저런 절차를 거쳐 발급 접수증을 받으려는 찰나! 신원조회에서 미회보가 뜬 것이다. 미회보라는 말이 무엇이냐. 나 역시 처음 들었다. 쉽게 말하자면 신원조회에서 걸려서 여권을 즉시 발급받을 수 없다는 통보다. "최근에 경찰서에 간 일 있으세요?" 그럴리가. 소시적에 예비군 훈련 안갔다가 벌금 먹었던 게 10년전인데! 그 동안 정권이 두번이나 바뀌었는데! 그 사이 사면도 받았는데! 아뿔싸. 촛불이 있었지. 200만원이라는 벌금을 통지받고 법원으로 가 정식재판을 청구한, 문제의 그 일반도로교통법위반사건. 30여년을 살면서 국가와 나는 아무 상관없는 남남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놈의 정권은 정말 나를 수시로 괴롭힌다. 그 째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치를 떨게 한다. 에이 씨벌. 홍콩 포기해야겠구나. 마음을 비웠다. 보내주는 친구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대타를 잡아놔라. 나는 못갈지도 모른다. 했더니 출국 당일 오전까지 여권 번호 알 수 있으면 되니까 일단 기다려보라고 했다. 그래서 기다렸지 뭐. 만에 하나를 대비해서 스웰 시즌 티켓을 약속 받아놓고. 화요일 오전,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여권 발급 가능하다는 것이다. 구청에서 금요일 오전에 찾아가라고 한다. 스웰 시즌을 못보는 게 안타깝기는 하지만, 원스가 워낙 히트쳤고 이번 공연도 매진이라는 얘기가 있으니 다음에 분명히 또 올거야 아무렴. 이렇게 써놓으니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멀쩡하던 소시민에게 여권이 안나온다는 건 정치 스캔들에 연루된 인사가 공항에서 출국금지 통보를 받는 것과 비슷한 강도다. 하여, 출국가능하게 됐다.

-그렇다면 왜 출국을 하느냐. 홍콩에서 X재팬 공연을 보기 위해서다. X재팬이야 워낙 소시적에 잠깐 좋아하고 그 뒤로는 관심 끊었던 밴드긴 하지만 4월 내한 공연에 앞서 가지는 일종의 프리뷰 스케줄 같은 거다. 그래도 여러 명 가지 않겠나 했는데, 나 혼자 간다고 해서 살짝 부담스럽다. 공연이야 보고 후기 쓰면 되는 거지만 공연 다음 날에는 요시키와의 인터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명색이 요시킨데 대충 갈 수는 없잖아. 그래서 옛날 자료 다 꺼내서 보고 케케 묵은 CD꺼내서 다시 듣고 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아니 도대체 왜 내가 옛날에 이 형들을 좋아했었지? 백스테이지에서 도쿄돔 라이브 보면서 요시키가 피아노 치다가 피흘리며 쓰러지면 왜 나까지 눈물이 글썽거렸던거지? 그러고보니 히데가 죽었을 때는 이미 관심이 없어져서 별 감흥이 없었구나, 라는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그리하여 유투브를 뒤져 또 옛날 라이브까지 봤다. 아 니미, 이거 존나 로망이네. 이러니까 옛날에 좋아했지. 정확히 말하자면 머리를 아교로 세우고 가부키와 순정만화를 합친듯한 메이크업을 자랑하던, X-재팬이 아닌 X를. 듣자 하니 이번 공연도 스펙타클이 장난 아니라고 하던데 홀로그램 히데가 또 등장하려나 모르겠다. 아무튼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요시키도 만나고 홍콩 구경도 하고.

-위 핏을 샀다. 기타 히어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옛날에 펌프나 비트 게임도 안 좋아했으니 이것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해서 결국 위 핏으로 선택했다. 이래저래 직관적 설치(닌텐도 최대의 장점)을 끝마친 후 막상 해보니 생각했던 것 보다 운동이 많이 된다. 다행히도 신체 나이는 딱 정상으로 나왔는데 (물론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겠지만) 운동을 하면서 재미있다고 느낀 건 이번이 두번째다. 첫번째는 하드코어밴드에서 활동하는 헬스 코치를 만났을 때다. 이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늦어도 3월에 나오는 첫 단행본을 참고하면 된다. (은근히 책광고) 월요일부터는 헬스 클럽에 나가기로 했는데 연말을 거치면서 노화를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오래 살 생각은 없지만 아프면 큰 일 난다. 특히 요즘 같은 시절에는. 헬스와 위 핏을 병행하면 효과가 좀 좋을런지 모르겠다. 그런데 역시 위는 혼자 하는 것 보다 같이 하는 게 백배는 더 재미있다. 그러니 앞으로 작업실에 사람들 불러서 같이 놀 수 있는 게 생긴 셈이다.

-블로그 이전은 아마 안하게 될 것 같다. 대신 분점을 하나 냈는데, 그 쪽은 매달 하나씩 각계 관련자들을 모아놓고 하는 인디씬 대담을 공식 컨텐츠로 하여 여기에서보다 간단한 새앨범 감상기로 꾸려나갈 작정이다. 내일 쯤 오픈 예정.

-절대 어떻게든 안되는 두번째는 역시 연애다. 요즘 자연 다큐멘터리와 진화심리학에 빠져 있는데 수컷으로서의 나는 자연의 세계에서라면 완벽한 낙오 유전자라는 생각에 악몽을 꿀 정도다. 아, 이러면 안되는데.
by 김작가 | 2009/01/15 18:49 | 상수일지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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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kainen at 2009/01/15 19:31
앗!! 요시키씨와 인터뷰 하시는거예요?
인터뷰 내용 꼭 보고 싶어요. 근데 어차피 올 3월에 한국에서도 공연 하는데 거긴 안가시는건가요. 홀로그램의 히데씨(♡)는 나올 것 같네요. 아무래도.
Commented by 피노 at 2009/01/15 19:34
블로그 이전 안하시는군요. 가끔 눈팅만 하다가 지난번 딱 링크추가하자마자 블로그 이전하신다는 소식에 어이쿠 이놈의 타이밍했었는데.ㅋ 앞으로도 좋은 글과 소개 부탁드립니다~
Commented by 섹시미롹양 at 2009/01/15 19:37
우왕.. 하여튼..
이번에 망할놈의 어느나라 국가원수님 때문에
도로교통법위반으로 들어가신 분들이 하도 많아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신 것 같네요.

그나저나.. 엑스제팬은 밴드 이상의..신화적인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제 또래에도 엑스제팬 팬들은 꽤나 흔히 볼 수 있고 더 어린친구들도...
그래도.. 히데가 어디까지나 요시키와 함께 프론트 맨인 존재였는데..
히데가 죽고난뒤엔 이건.. 프레디 머큐리 없는 퀸이네요.
중학교 때 참 열광했었는데 말이죠^_^
어째 전 꼭 지나간 것만 좋아하네요. 사람이던 음악이던
Commented by 체리씨 at 2009/01/15 23:21
수다가 돌아왔군요. 반갑습니다. 블로그 이전하신다는 소식에 아쉬워서 zakka.@@@@.com 쳐 보았던 1人 입니다 ㅋ
Commented by 지름판™ at 2009/01/16 17:32
이글루 핫100 축하드려요.
Commented by 물빛도시 at 2009/01/17 19:07
마페하시네요...^0^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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