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와 얼굴들: 그저 약간의 인기가 멈추지를 않는다


(사진출처ㅣ 한겨레)


장기하와 얼굴들을 만난 어느 평일 저녁, 스튜디오 근처의 한 분식집으로 식사를 하러 들어갔다. 장기하, 이민기, 정중엽, 김현호. 네 명의 얼굴들이 먼저 와있었다. 미미 시스터즈는 엄마 뱃속에서 나왔을 때 부터 그랬을 법한, 섹시 미망인 컨셉의 복장으로 침묵을 지키며 나중에 들어갔다. 그 범상치 않은 포스를 본 알바생이 대뜸 묻는다. "혹시 미미 시스터즈 아니세요?" 미미 시스터즈는 침묵한다. 라디오에 출연해서도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 그녀들이다. 그 침묵은 그러니 곧 긍정이다. 누군가 웃으며 그런다. "장기하는 못 알아봤어요?' 그의 얼굴이 붉어진다. "나 원래 붉어." 수습하려 하지만 뭔가 역부족이다. 알바, 이건 좀 뭔가 아니다 싶었는지 애써 수습에 한 수를 보탠다. "아니, 제가 아까부터 계속 힐끔 쳐다보고 있었는데 혹시 못보셨어요?" 여기가 홍대였다면, 인디 음악을 좋아해서 알바 자리도 홍대앞에서 구하고 뮤지션들을 옆집 슈퍼 아줌마 보듯 흔히 볼 수 있는 곳이라면 능히 일어나고도 남을 일이다. 알바의 요청으로 그들은 가게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지나가던 소년 소녀들도 한 마디씩 수근거린다. "장기하네?" "어! 미미다." 이만하면 전국구? 그렇고 말고. 이제와서 지난 가을부터 시작된 그들의 상승기를 돌이켜보는 건 새삼스럽지도 않다. 그러니까, 이런 스토리 말이다.

어릴 때 부터 음악 보다는 TV, 특히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했고 '배철수의 음악 캠프'를 들으며 뮤지션이 아닌 DJ 배철수의 말에 매료되었으며 고등학교 때 교회에서 악기를 배운 후 드러머의 꿈을 품게 되고 대학에서 과 친구들을 얼레 벌레 모아 오직 자작곡으로만 취미 비슷한 밴드 생활을 하다가 마침 같은 학교에 다니던 눈뜨고 코베인 멤버들에게 발탁, 드러머로 영입된 후 홍대 클럽가에 데뷔하여 활동하다가 어느 날 나의 길은 연주자가 아니라 창작자로구나, 라는 걸 깨닫고 곡을 쓰다가 청년실업이란 프로젝트도 하고 제대한 후 곧바로 녹음을 시작, CD라이터로 구워 만든 가내 수공업 음반 '싸구려 커피'를 냈는데 이게 입소문을 타더니 급기야는 쌈지사운드페스티벌과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대박이 터졌고 그도 모자라 DC인사이드에서 거의 부흥회에 가까운 열기를 불러 일으킨 후 '이하나의 페퍼민트' '음악여행 라라라'같은 공중파TV에 입성하고 MBC파업현장에서 지지발언과 공연을 한 것이 포털 메인 뉴스에 걸렸다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 그러니까, 여기에는 기획사의 힘도 없고 예능 프로에서의 빵터지는 개인기도 없었다. 지금의 한국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에서 스타가 되는 길에 한발자국도 걸치지 않고 입소문과 스스로 만들어낸 연출, 그리고 음악만으로 장기하와 얼굴들은 스타덤 비슷한 것에 올랐다. 유희열은 그를 이르러 '가요계의 버락 오바마'라 했고 최근에 새 앨범을 낸 한 중견 밴드는 "요즘은 어떤 인터뷰를 가도 장기하 얘기를 하더라"며 살짝 시샘, 내지는 견제를 하기도 했다. 무슨 성공 가도를 알집으로 압축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큰 주목을 받았던 뮤지션은 한국 인디신에 없었다. 아니, 대중음악계를 통틀어봐도 손꼽을만한 일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성공은, 그러나 현재의 한국대중문화계의 욕망과 맞닿아 있다. 아이돌을 제외하고 뚜렷한 돌출점이 보이지 않는 음악계에서 대중은 새로운 음악을 갈망하고 있다. 지난 해 부터 주요 매체에서 인디 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그 밥에 그 나물인 주류 가요계가 아니라 새로우면서도 설득력있는 그 무엇을 찾고자 하는 계 계기였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그 욕망을 그대로 충족시켰다. 김창완이 '모던 트로트'라 칭하는 '싸구려 커피'는 우리가 어릴 때 부터 흔히 듣고 자랐던 통속적 노래의 코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열광하지는 않더라도 무의식 중에 흥얼거리는 멜로디의 모습을 갖고 있다. 거기에 버라이어티 토크쇼의 웃음 폭탄 아이템인 삶의 비루한 순간을 소재로 한 가사가 랩, 아니 타령으로 결합한다. 내용에는 페이소스가 있고 비트와 딱딱 붙는 그 전개는 가히 높은 집중도를 만들어낸다. 어느 공연에서도, 어느 방송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타령이 끝나고 다시 노래로 돌아올 때 탄성이 터지는 까닭은 말이다. 장기하는 음악을 통해 캐릭터를 만들었다. 지금의 예능에서 반드시 요구되는 그것을 음악으로 구현한 것이다. 그것 뿐이 아니다. 심지어 아직 음원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동영상만으로도 빵 터진 '달이 차오른다'에 등장하는 미미 시스터즈의 패션과 그루브. 나미와 붐붐의 붐붐, 현진영과 와와의 와와도 누리지 못했던 인기는 미미 시스터즈의 팬클럽이 만들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여진다. 언제 어디서나 무표정과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들의 캐릭터는 신비주의를 패러디한 신비주의라 할 수 있다. 옛날 개그맨들이 이야기의 힘으로 화려하게 컴백하는 흐름에서 알 수 있듯, 이야기가 있고 익숙하되 이를 변주한 노래가 있으며 캐릭터가 있다. 게다가 만들어진 게 아니라 새롭게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참신하더라도 어색했다면 '아, 쟤들 참 잘 노는구나' 선에서 머물렀을텐데 몸에 배인듯 자연스럽다. 그렇다. 그건 성공한 예능에 다름 아니다.

밴드란 게 그렇다.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일단 만들어놓고 합주를 하다가 음악을 만든다. 그러나 장기하와 얼굴들은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장기하가 싱어송라이터로서 싱글을 낸 후 공연을 하기 위해 친구들을 하나 둘 씩 끌어들인 게 밴드화가 됐다. 멤버들 중 유일하게 음악을 전공했던 정중엽은 말한다. "그동안 많은 세션을 했지만 음악을 들었을 때 어, 이건 뭐지? 했던 건 처음이었다." 대학교 때 부터 장기하와 교류가 있었던 이민기와 김현호도 비슷한 소감을 전한다. 그렇다면 미미 시스터즈는? 그녀들과 유일하게 대화가 허락된 존재, 장기하가 전한다. "우리의 춤을 도구가 아닌 음악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매체로 이해하고 있는 게 마음에 들었다"라고 한다. 많은 이들이 그들을 개그로 소비하고 있지만 의도한 건 아니었다. "비주얼을 입히고 시청각적 요소를 모두 한다고 했을 때 어울릴 만한 걸 했을 뿐이죠. 안무를 짤 때도 웃기다고 생각안했어요. 그런데 그런 춤이 별로 없으니까, 차마 저런 걸 어떻게 할까 하는 걸 하니까 웃기는 것 같아요. 그냥 노래에 기타 리프를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장기하가 아니라 장기하와 얼굴들로서 대중에게 선 보일 첫 심판의 무대는 2월 중 발매되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정규 앨범이다. 싱글에 들어가있는 3곡의 노래를 포함, 총 11곡이 담길 이 음반은 장기하와 얼굴들이 그동안 숟하게 등장했다가 사라진 엽기 가수 중의 하나로 남을 지, 성공적으로 대중음악계에 연착륙할 수 있을 지를 판가름하는 진검승부의 장이 될 것이다. "부담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그렇지만 옛날부터 만들어뒀던 노래들이라 창작의 압박은 사실 별로 없어요." 사실, 그렇게 압박을 안 느껴도 될 것 같다. 앨범에 들어갈 대부분의 노래들이 이미 공연을 통해서 선보였던 곡들이다. 그리고 '달이 차오른다'와 마찬가지로, 음원도 없는데 객석에서는 싱얼롱과 추임새와 환호가 울려 퍼지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역사에 음반이 등장한 건 불과 100년 남짓일 뿐이다. 그 이전의 모든 음악은 귀와 입으로 전해지고 반응을 얻었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이 디지털 시대에 구전의 시대를 향유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의 소속사, 라고 하기에는 좀 거창하지만 아무튼 친구들끼리 학교내 인디 레이블로 만들었다가 장기하의 성공으로 상근 직원까지 영입한 붕가붕가 레코드의 소속 밴드는 모두 캐치 프레이즈를 갖고 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그것은 '한국 대중음악의 오래된 미래'다. 제 아무리 마케팅이 산업을 선도하는 시대라할지라도, 그래서 홍보비와 마케팅비가 제작비 못지 않게 규모가 커진 지금일지라도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은 자발적 입소문이다. 유사이래 문명의 전파는 늘 그래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오래된 미래야말로 지금까지의 장기하와 얼굴들을 가장 적확히 말해주는 문장이다. 1집이 나오면 양상은 달라질 것이다. 많은 기대, 그리고 매체의 관심이 쏟아질 것이다. 그 안에서도 대중의 평가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것이다. 호의적일지 부정적일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상관없다. 스타가 되어 호의호식하는 게 아니라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이야 뭐, 다른 일 해서도 벌 수 있는 거니까." 벼락 스타가 된 이들에게 흔히 느껴지는 초조함과 강박의 흔적을 그에게 읽을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런 겸허함 때문이 아닐까. "1집이 나오면 공연을 여한없이 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램은 이를 뒷받침해주는 단초일테고.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바자 200902

by 김작가 | 2009/01/15 01:12 | 스토리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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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토시야 at 2009/01/15 13:44
잘 읽었습니다.
장기하와 얼굴들 싱글 3곡 모두 들어봤는데 "정말 좋다" 이런 느낌보단 뭔가 "참신하다","독창적이다" 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2월에 나오는 정규 앨범은 반드시 구매 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인디 음악은 아직 많이 모르는데 장기하와 얼굴들 처럼 많은 인디밴드들이 힘들겠지만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오버로 올라와서 많은 대중들에게도 호응을 얻었으면 좋겠네요.
Commented by 플루토 at 2009/01/15 14:22
잘봤습니다. 정말 장기하의 음악은 '짝 붙는다'라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아요. 몇 번 듣지 않았는데도 한 20년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음악이랄까요. 게다가 '저는 그걸 랩이라고 하는 겁니다'라는 그 '타령'이 정말 흥을 절로 돋궈주고... 계속해서 몇십년이고 이 음악이 이어졌으면 좋겠네요. ^^
Commented by leopord at 2009/01/15 14:23
장기하와 얼굴들의 성공(?)스토리는 어쩐지 언니네이발관을 떠올리게 하지만, 장기하에게서 이석원의 까칠함과 다른, 어떤 여유가 느껴지는 건 음악의 질 여부를 떠나 역시 그 사람의 스타일의 문제가 아닐까 싶군요.
대박 났으면 좋겠습니다 진짜. :)
Commented by leopord at 2009/01/15 14:24
아, 그리고 늦었지만 링크 신고합니다-
Commented by Feelin at 2009/01/15 14:39
이 글을 보고 있자니 곧 나올 정규앨범, 왠지 사서 들어야 할것같은 기분이 드는군요..
Commented by 소년에이 at 2009/01/15 14:58
안녕하세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문득 보그걸(아마도 11월호) 잡지에 실린 짤막한 (괄호넣기) 인터뷰에서 '가요를 노래한다'고 스스로를 정의했던 게 생각납니다:)
Commented by 살모넬라 at 2009/01/15 17:57
좋은글 잘 봤습니다.
Commented by Initial_H at 2009/01/15 21:42
정말로 성공해서 계속 정직한 딴따라로 남아줬으면 합니다. 글 잘읽었어요~
Commented by powder at 2009/01/16 16:16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이 가능하도록 응원하고싶어요
21세기다운 하이브리드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이 아닐까싶습니다.
트로트와 아이돌 사이에 끼여버려 들을 가요가 없는 저같은 세대들이
요즘 인디로 몰리고있지않나 생각해봅니다.
Commented at 2009/01/19 19:3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9/01/21 17:2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바보 at 2010/11/12 14:15
야이 빵꾸똥꾸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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