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치마 <201>

이런 세상에, 검정 치마의 데뷔 앨범 <201>은 정말 하늘에서 뚝 떨어진 작품이다. 메이드 인 차이나 짝퉁 명품인 줄 알고 샀는데, 알고 보니 에르메스의 장인이 사적으로 만든 핸드메이드 수트였다는 기분이랄까. 한국 인디 음악, 아니 한국 록의 계보와 아무런 상관이 없이 느닷없이 등장한 밴드의 느닷없는 데뷔 앨범이다. 이 느닷없음은 사실상 밴드를 혼자 이끌고 있는 조휴일의 출신 배경에서 나온다. 재미교포 출신인 그는 뉴욕에서 밴드 생활을 했고, 아리조나-인디애나-뉴욕-뉴저지 등을 전전하며 외국인 친구들과 이 앨범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이 앨범은 국내가 아닌, 영미권 인디록을 듣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밴드의 이름이 영어고 가사 또한 그렇다면 누구나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이 말은 곧, 그들의 음악에 담겨있는 정서가 그동안의 국내인디 앨범들과는 전혀 다른 괘도에 놓여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 앨범은 그 동안 교포 출신들이 만들어낸 결과물들과도 전혀 다른 감성을 갖는다. 유앤미블루처럼 외국에서 성장하여 국내에서 활동한 경우나, 심(SEAM)이나 카이트 오퍼레이션, 그리고 수지 서처럼 미국 내 소수민족 공동체에서 활동한 경우 모두 어딘지 마이너리티의 애수와 그늘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검정치마에게서는 그런 감정이 읽혀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쪽'에서 자랐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정서에 융화되어 만들어낸 음악이랄까. 미국 사회에서의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 완화를 살짝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여, 이 앨범은 느닷없지만 낯설지 않다. 발군의 팝 센스와 밝은 터치, 그리고 동시대 트렌드가 고루고루 녹아있기에 스트록스에서 클랩 유어 핸즈 세이 예로 대변되는 2000년대 뉴욕을 중심으로 하는 인디 록의 축에 그대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더없이 차밍한, 훅으로 넘치는 음악이다. 아 물론, 현지에서 녹음된 사운드는 찰랑찰랑 깔끔하기 그지없다. 펑크와 뉴 웨이브, 파워 팝, 자마이칸 덥의 요소를 갖추고 발군의 멜로디 감각을 보여주는 검정치마에게 한국이라는 지역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건 역시 가사다. 단순히 한글 가사기 때문에만은 아니다. 우리말을 활용하는 조휴일의 감각은 때때로 웬만한 토종 한국 뮤지션에 비해서 결코 꿀리지 않는다. '사랑을 외던 끈적한 입술에 빨간 분홍색 다른 입술로 번지려 하네 씨발 나 어떡해'(Tangled)같은 가사에서 '씨발'이라는 단어를 이토록 처연하게 사용한 음악을 들어본 적 없다. 단어만으로 국지적 판단을 하려는 게 아니라, 어떤 감정들을 표현하는 문장의 활용도가 뛰어나다는 얘기다. 검정 치마의 데뷔 앨범, 그리고 활동은 한국의 밴드 신에 추가된 또 하나의 자산이다. 빨리 안정된 멤버를 갖춰 라이브에서도 앨범의 질감을 살릴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by 김작가 | 2008/11/22 12:16 | 음악이 해준 말 | 트랙백(4) | 핑백(3) | 덧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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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pengdo's me2.. at 2009/05/20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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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의 정체를 드디어 알아냈다. 검정치마구나...more

Tracked from Namgloo at 2009/09/22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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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좋아해줘 아무런조건없이 니엄마아니아빠보다더서울아니면 뉴욕에서도 어제막찾아온사춘기처럼 *내가 아플때 더욱더 나긋대는 목소리로 속삭여야해뜨거운말로내게 믿음을줘그래도 내가싫어진다면 그건 아마너의잘못일거야 날좋아해줘 월요일아침에도 내옆에만있어줄래오빠날잡아줘 날 감싸안아줘 니피부속으로 날숨겨주겠니 * repeat baby now i really wanna know (들리는대로 따라적은 것이라서 원작자의 가사와 다를 수 있음) ......more

Tracked from Sensational .. at 2010/03/29 01:23

제목 : 검정치마 - Dientes
으아닛! 한국 사람이 어떻게 뽕끼가 이렇게 없을 수가 있지?! 앨범을 사서 듣고 있는데, 마치 한국어를 잘하는 영국 사람 같잖아! 분위기는 전혀 다르지만 '못'을 처음 들었을 때 같다. 아니 뭐 이런 하늘에서 떨어진 애들이 있담? 그건 그렇고, 이건 너무나 슬프고, 너무나 잘 만든 뮤직비디오다. 큰 흐름과 디테일이 모두 잘 살았다....more

Tracked from Connection G.. at 2012/01/08 10:13

제목 : 검정치마 2집 앨범받아 감상까지! DON'T YOU..
검정치마 2집 앨범 DON'T YOU WORRY BABY(I'M ONLY SWIMMING)을 받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위드블로그에서 Don't You Worry Baby 검정치마의 두 번째 이야기 리뷰어로 선정되어 또 한번의 좋은 기회를 얻게되었습니다. 검정치마 2집 앨범인 Don't You Worry Baby는 검정치마가 2007년 1집 앨범 201을 발매한 후에 오랜만에 발매한 앨범입니다. 검정치마라는 가수의 존재를 모르고......more

Linked at Be Aggressive!! .. at 2009/01/05 22:57

... 년에 찾은 또 하나의 행복 아방가르드 김이 더 취향인데 찾을 수가 없네. 내가 직접 올리시면 음협님이 때찌하니까 안되겠네연... 관심이 가면 내가 좋아하는 김작가님의 깔끔한 리뷰를 봐주시자... 정말 국내에서 이토록 매력적인 씨발은 공공의적의 설경구와 파이란의 최민식 이후로 처음일 것이다. 물론 전혀 다른 종류의 매력이라 신 ... more

Linked at UNDENIED MATTERS.. at 2009/04/16 18:08

...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은근 유쾌한 가사라는.뉴요커든 서울리안이든, 이 분 좀 능력자이시다.ㅋps. 그건 그렇고, 이때껏 이렇게나 처연했던 '씨발'은 처음이라는 김작가님의 리뷰에 100% 동감.ㅜ ... more

Linked at Namgloo : 검정치마 -.. at 2009/08/15 12:32

... 사와 다를 수 있음) 어깨가 들썩들썩하면서도 처음들었을때부터 가사가 귀에 쏙 들어오는게.. 눈물나올만큼 so lovely 오랜만에 느껴보는 '급 빠져듦' 검정치마 &lt;201&gt; ... more

Commented by 잉여인간 at 2008/11/22 13:51
홋홋. 드디어 올라왔군요.
영어가사에 목매는 밴드들이 본보기로 삼아야 될 모범 밴드죠.
한국 어느 누구보다 영어에 강하면서도 한글 가사의 묘미가 빛나더군요.
단 한 문장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무너뜨린다는 건 참으로 어렵죠.
저는 앨범에서 가장 빛나고, 가장 어두운 안티프리즈와 탱글드 트랙을 제일 좋아합니다.
Commented by 준희 at 2008/11/22 15:20
왠지 김대기 닮으셨구..
Commented by 김근근 at 2008/11/22 22:26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거야~
Commented by Ginger at 2008/11/22 23:27
훌륭하군요!
Commented by banbal at 2008/11/23 00:14
틈틈이 홍대서 공연하던 밴드 아닌가요? 멋집니다..
Commented by 체리씨 at 2008/11/23 00:56
오 이런 세상에. 좋네요!
Commented by 로메슈제 at 2008/11/23 01:35
아, 루비쌀롱 레코드에서 나온거 아닌가요?
Commented by 길마담 at 2008/11/24 10:00
히밤나우즈캥? =_=
Commented by 노랑트위티 at 2008/11/24 11:39
역시 김작가형님! 그냥 리뷰가 입에 척척달라붙어요 ㅋ. 검정치마 잘 부탁드리겠어요
Commented by <<>> at 2008/11/24 15:15
'에르메스의 장인이 사적으로 만든 핸드메이드 수트'라는 비유는 수정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에르메스는 남성 수트를 만드는 브랜드가 아닙니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별로 적절한 비유는 아닌 것 같지만, 굳이 하고 싶다면 가방이나 지갑, 넥타이 등으로 고쳐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 제대로 하자면 빼는 게 유일한 답입니다. 에르메스의 관리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에 설사 사적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시장에 유통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설사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라고 해도 함구하는 게 좋겠죠.
Commented by 행인1 at 2008/11/25 05:06
키보드 워리어기질이 다분하신듯 위에 분..
개콘에서 나오는 대사랑 비슷하네요.
"뭐 하나만 걸려봐 아주" 이런 마인드이신듯..
Commented by 홍씨 at 2008/11/26 03:22
위에위에.. 진짜 별 병신같은걸로 트집잡네 아유 ...
오랜만에 지 아는거 나왔다고 핵심도 아닌거 물고 늘어지는 저 꼴아지
ㅄ이란말밖에..

에르메르건 뭐건 이글을 읽는 우리에게 그 비유가 적절히 이해됬으면 잘 쓴 표현입니다.

"<<>>"님은 독종기질이 돋보이는군요.ㅎ 국지적인얘기 물고늘어지면 주위사람들이 화안내나요?ㅎ
Commented by 뱅글뱅글 at 2008/12/03 22:16
아, 듣자마자 깜짝놀래서 바로 검색했어요
국내밴드 아닌줄 알았는데 ,
Commented by ㅎㅎ at 2008/12/12 12:43
잘 읽었습니다 검정치마 속에 갈고리가 있네요 ㅎ

그리고 한가지 말씀드리면 "괘도" ->"궤도" 입니다
Commented by 하지메 at 2008/12/31 02:09
아이팟에 검정치마 CD 리핑하다가 이미지 사진 찾으려 들렸습니다.
제 심정을! 아아~ 정말 검정치마 만만세에요!
Commented by youtoo at 2009/01/02 01:39
<<>>님이 단 답글에 대해 반박을 한 번 해보자면, 에르메스는 유명한 가방을 비롯한 가죽제품 전반과 스카프 등의 액세서리는 물론 쥬얼리, 승마용품, 리빙, 필기용품 등 인간의 삶 전반에 걸친 제품을 만든답니다. 또한 기성복의 남성복과 여성복 또한 그들의 중요한 상품입니다. 기성복은 그들에게 명성을 안겨준 가죽제품과 스카프와 함께 현재의 에르메스를 대표하는 중요한 축 중 하나이고, 매년 파리에서 정기적으로 기성복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으니까요. 남성복이 에르메스를 대표하는 제품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남성 수트를 만들지 않는 브랜드도 아니기 때문에, 저 비유는 <<>>님 얘기처럼 '틀렸다'고 단정 지을 수 없겠지요.

(김작가님께: 글과 상관 없는 댓글 남기게 되었군요.)
Commented by 마르셀 프루스트 at 2009/03/07 01:24
위에 겉멋만 드신 무명님 에르메스에서 남성 수트를 안만든다고요?
시즌별로 있습니다. 죽방멸치 맛도 못본티 너무 내시는데요. 그나마 알아서 닥버중이니 좁은 가슴이 가상해 길게 까진 않겠습니다.
Commented by 열대야 at 2009/05/14 06:19
검정치마 좋아합해요. 블로그 구경하니까 좋아하는 음악도 많고, 모르지만좋은 음악도 많네요~~~ 종종 놀러오겠습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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