컷 카피 <In Ghost Colours>



장르란 양날의 칼이다. 어떤 음악을 어떤 장르라 규정할 때 들어본 적 없는 이에게 특정한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편리함이 있지만, 반대로 그 덫에 걸리게도 한다. 특히 딱히 하나의 장르로만 규정할 수 없는 뮤지션의 경우는 후자의 위험이 크다. 최근 해외 평단의 극찬을 받고 있는 호주 출신 3인조 밴드인 컷 카피의 두번째 앨범은 이런 전형적인 경우다. 그들을 규정하는 장르는 인디 댄스. 댄스 쪽에 방점을 찍는 이라면 강렬한 비트와 넘실대는 그루브, 몰아치는 온갖 음향효과를 떠올릴테고, 인디 댄스라는 장르를 이해하고 있다면 감상과 댄스의 중간 어드메 쯤에서 기타 팝과 일렉트로니카의 절묘한 결합을 이뤄내는 음악을 떠올릴 것이다. 불행하게도, 둘 다 아니다. 또한 둘 다 맞기도 하다.

만약 이 음반을 원심분리기에 넣고 돌린다면 80년대 신스팝을 중심으로 2000년대 기타팝, 그리고 앰비언스와 디스코 펑크, 뉴 레이브 등 일렉트로니카의 온갖 하위 스타일들이 줄줄이 쏟아질 것이다. 이렇게 쓰고 나니 뭔가 석연찮다. 잡다한 게 많이 섞여있을 수록 알맹이는 없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원래,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닌 법이다. 그러나 컷 카피는 그 무수한 음악적 요소들을 통합하되 특정 스타일로 중심을 잡는 게 아니라, 통합된 결과물 그 자체를 중심으로 세운다. 이를테면 서로 다른 색과 재질의 옷감을 잇대어 만들었는데, 봉합선이 전혀 없는 티셔츠랄까.

그러나 이런 실험은 자칫 실험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컷 카피는 특정 장르대신 특정 시간의 분위기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서 실험에 팝의 향신료를 듬뿍 친다. 뉴 오더가 주도했던 80년대 신스팝이다. 아니, 전성기의 뉴 오더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만약 아무 정보 없이 이 앨범을 듣는다면 뉴 오더의 음악을 지금의 일렉트로니카 뮤지션들이 리믹스한 거라 해도 믿을 지 모른다.  보컬과 기타, 키보드를 맡고 있는 댄 휘트보드의 목소리는 버너드 섬너의 재림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팀 호이가 담당하는 베이스 라인과 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 맞다. 역시 뉴 오더의 피터 훅이 그리도 즐겨 사용하며 팀의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던 신스 베이스다.

바야흐로 복고가 대세, 컷 카피 역시 복고 열풍에 편승하여 재미를 보고 있는걸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80년대 신스팝이 현재의 인디록, 그리고 일렉트로니카와 섞여 어떤 빛을 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연금술사다. 미래로 가는 복고다.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각각의 트랙이 쌓아가는 점진적 그루브 속에는 어느 한 곡 놓칠 수 없는 노래들이 있다. 그 안에서 팝은 댄스와 만나고 록과 손을 잡는다. 아니, 마치 애초에 그것들이 하나였던 것 처럼 순환한다. 이들은 아마도 사람들을 춤추게 하고 싶을 거다. 푹 빠져 감상하게 하고 싶을 거다. <In Ghost Colours>는 두 욕망의 장벽없는 통로다. 기꺼이 춤출 수 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을 수 있다. 저스티스의 <Cross>가 2007년 일렉트로닉스의 승자였다면, 컷 카피는 올해의 영예를 누릴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후보다.


Lights And Music

by 김작가 | 2008/10/02 07:46 | 음악이 해준 말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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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kimi at 2008/10/02 17:29
물속에서추는춤, 봉합선이 없는 티셔츠.. 적절한 비유에 매번 놀랍니다@_@
Commented by Ginger at 2008/10/02 22:02
으... 좋네요!
Commented by 영원 at 2008/10/05 16:47
오우 전 이 앨범 너무 좋았는뎅. strangers in the wind. 가 특히.
물 속에서 추는 춤. 멋진 비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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