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펑크, 지금 어디에?


지난 9월 5일 밤, 홍대앞 구석에 있는 민속주점. 갤럭시 익스프레스와 친구들이 앉아 있었다. 평범한 술자리는 아니었다. 이 날 방송된 '윤도현의 러브레터'를 보기 위해서였다. 출연진은 빅 뱅과 윤하, 그리고 갤럭시 익스프레스. EBS의 '스페이스 공감'을 제외하면 첫 방송 출연이었다. 프로그램이 시작하기 전, 그들은 걱정스러운 이야기를 나눴다. "세 곡 했는데 편집되고 한 곡만 나오는 거 아닌가?" "카메라 앞이라 완전 떨었는데 이상하게 나오면 어떻게 하지?" 하지만 쓸데 없는 걱정이었다. 음향도 훌륭했고 앵글도 여느 주류 가수의 그것에서는 볼 수 없을만큼 역동적이었다. 술자리의 분위기는 격앙됐다. 함께 보고 있던 사람들 모두 진심어린 축하의 박수와 환호성을 보냈다. 현재 한국 록 신에서 가장 뜨거운 밴드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공중파 입성은 이런 분위기에서 치뤄졌다. 공중파에 밴드가 나오면 사운드가 엉망이 된다, 그림이 영 형편없어진다는 그동안의 이야기와는 여러 모로 다른 무대였다.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출발은 펑크 신에 있다. 리더인 이주현의 음악여정이 곧 한국 펑크의 한 지류이기 때문이다. 그는 90년대 중반 자살매미라는 밴드로 시작, 럭스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게토 밤즈를 거쳐 자신의 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를 만들었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윤도현의 러브레터' 같은 프로그램에 펑크 밴드가 나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크라잉 넛과 노 브레인 정도에게만 허용된 일이었다. 그리고 설령 TV에 나오게 된다 한들, 주변에서의 반응또한 달랐을 것이다. 뭐하러 그런 데 나가느냐라는 핀잔부터, 너희는 셀아웃이야!라는 비난까지. 그리 달가운 시선은 돌아오지 않았을 거다.

이 날 오갔던 대화 중, 의미심장한 얘기가 있었다. 스컹크 라이브헬이 문을 닫는 다는 거였다. 이 소식은 사실, 그동안 스컹크 라이브헬을 운영해오다가 최근 서울예술대학에서 영화를 공부. 스컹크 운영에 전념할 수 없게 된 원종희가 결정하자 마자 홍대앞에 쫙 퍼진 얘기였다. 마포구 상수동 86-35번지 지하 1층은 한국의 펑크, 아니 인디가 태어나고 자라온 공간이다. 예전 드럭 자리였던 이 곳에서 크라잉 넛과 노 브레인, 18크럭과 레이지본등이 탄생했으며 관객으로 놀러 다녔던 소년 소녀들 상당수는 밴드를 결성했다. 신촌 기차길에 있었던 스컹크가 2004년 그 자리로 옮긴 후에도 이 공간은 여전히 펑크의 온상이었다. 공연이 열리는 주말이면 공연장 주변에 가득한 펑크족들은 펑크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풍경이었다. 펑크에 뿌리를 두고 있되 펑크라 부를 수는 없는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승승장구, 그리고 스컹크헬의 폐업은 한국 펑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말해주는 대비점이 아닐까.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는 지난해부터 여름 특집으로 '열혈 사운드의 발견'이라는 기획 시리즈를 해왔다. 공감에서조차 쉽게 소화할 수 없는 펑크와 하드코어의 현재 진행형을 보여주고자 마련된 시리즈다. 작년과 올해, 이 시리즈를 기획했던 나는 적잖이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럭스와 숄티캣이 펑크의 대표로 참가했던 지난해와는 달리, 올해는 마땅히 세울 팀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새 앨범 <New Classics>를 통해 음악 스타일을 확 바꾼 썩스터프와 이모 펑크의 신예인 A팝이 이 자리에 서긴 했지만 그들을 올해 펑크의 대표주자로 보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누가? 껌엑스 정도가 있을까. 하지만 비록 그들이 드럭에서 데뷔하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성장한 곳은 일본이다. 말하자면 토종 한국 펑크 밴드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얘기다. 인디 신 전반과 비교해보면 '핫한 펑크 밴드'의 희소성은 더욱 높아진다. 이 바닥을 잘 아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제2의 르네상스가 오는 느낌이라고. 신진 밴드 중에 치고 올라오는 팀이 많아지고 있다고. 몇년전까지만 해도 그 치고 올라오는 팀들 중에는 펑크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언급되고 있는 팀들 중, 펑크는 없다. 징박힌 라이더 자켓과 반디지 팬츠, 왁스로 세운 머리는 밤의 홍대 놀이터나 스컹크헬 주변에서나 보일 뿐이다. 한국 펑크, 아니 펑크를 상징했던 전형적인 스타일들이 향해 온 것이다. 그들이 못한 게 아니다. 다만, 끼리 끼리 어울려서 생활하는 것에 만족하는 동안 다른 팀들이 치고 올라왔을 뿐이다. 말하자면, 점점 골수로 치닫은 나머지 외부와의 소통에 문을 닫아버린 셈이랄까. 10년 넘는 세월동안, 한국 인디 신의 건강한 에너지와 페스티벌의 정점을 담당해왔던 장르가 펑크임을 생각해보면 아쉬운 일이다. 이른바 '방구석 모던록'이 계속 자기복제만 하다가 사멸해버린 지난 몇년의 일과 유사하다.

초기 펑크 신에서 느낄 수 있었던 활력은 오히려 그 바깥에 있다. 굳이 분류하자면 개러지 록이라 할 수 있는 누렁이, 핑크 엘리펀트, 서교 그룹사운드의 공연에는 90년대 중반 드럭에서 느낄 수 있었던, 개가 무는듯한 패기가 있다. 머리를 세우지도 않았고 음악에서 섹스 피스톨즈나 클래시의 영향이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스트록스, 리버틴스 등 2000년대 이후의 록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들 또한 펑크로 분류되기도 한다. 펑크가 고정적인 스타일을 갖고 있는 음악이 아님을 말해주는 평가다. 사실 펑크가 매력적인 이유는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전통과 관습을 부정하고 엿같은 현실에 엿먹이므로써 70년대 펑크 폭발이 일어날 수 있었다. 그 때의 펑크가 본국에서 소멸한 것도, 그 자체가 하나의 관습이 되었기 때문이다. 펑크의 전형적 스타일이 마치 교복처럼 재현과 답습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펑크는 폭발의 현재 진행형이 아닌 단순한 하위 부족 문화가 된다. 물론, 전통적인 의미와 스타일로서의 펑크를 얘기하는 거다. 중국의 역사가 단순히 한족의 역사가 아닌, 온갖 이민족들에 의해 지배당하고 융합해온 세월의 기록이듯 지금 새롭게 출몰하고 있는 밴드들은 매너리즘에 빠져 게토화된, 전통적인 한국 펑크의 새로운 피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펑크가 정말 에너제틱했던 지난 시절, 마치 인디를 대표하는 장르인것 처럼 여겨지던 그 시절 현장에 있었던 뮤지션들은 여전히 음악을 하고 있다. 그 때 그 에너지를 더욱 발전시키고 승화해서 관객을 휘어잡고 있다. 앞서 말한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말할 것도 없고, 노브레인의 초기 사령탑이었던 차승우의 밴드 문샤이너스는 서는 무대마다 매진행렬을 기록하며 진정한 록 스타의 길을 걷고 있다. 마치 80년대 초반 펑크가 뉴 웨이브와 포스트 펑크로 변화했듯, 록과 댄스의 만남을 시도하고 있는 고고 스타와 텔레파시는 각각 럭스와 게토 밤즈 출신들이 주도해서 만든 밴드다. 그들 모두 인디 신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떠오르는 태양들임은 말할 것도 없다. 펑크가 처음 이 땅에 등장했을 때 폭발할 수 있었던 건, 기존 언더그라운드 헤비 메탈과의 '다름'에 있었다. 그 다름이 새로움으로 이어졌다. 방구석 헤비메탈이 아닌, 살아있는 음악을 청춘들에게 들려줬기에 그 조악한 사운드와 극악의 연주에도 불구하고 인디의 아이콘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덧 2008년 달력도 몇 장 남지 않은 지금, 그 때의 새로움은 이제 익숙함이 됐다. 더이상 허리에 체인을 두르는 게 낯선 일이 아니다. 심지어 빅뱅과 다이나믹 듀오가 닭머리를 하고 다니는 게 세상의 모습이다. 펑크에서 출발, 다른 음악으로 넘어가고 접목을 시도하는 그들이 주목받고 있는 건 오랜 세월 펑크가 갖고 있던 에너지를 다른 방법론으로 표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안에서 다시 새로움을 뽑아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허나, 돌이켜보면 헤비 메탈도 마찬가지였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인디로 넘어가는 흐름에서 얼마나 많은 메탈 뮤지션들이 메탈 스피릿을 버렸던가. 하지만 대부분 코미디로 끝났다. 여기에 메탈과 펑크의 차이가 있다.  방에서 3년 연습하기 전에는 무대에 오르지도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예전의 메탈이 철저한 기교숭배의 문화였다면 펑크는 표출의 문화였다. 그래서 3코드만 칠 줄 알면 무대에 올랐다. 거기서부터 발전을 시작해왔다. 자기 안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게 중요했을 뿐, 방법은 뭐든 상관없는 거였다. 펑크는 손가락과 성대가 아니라 심장에 충실한 음악이다. 그 안에 흐르는 피를 언어로, 박동을 소리로 만들어내는 이들이 있는 한 시대의 분위기를 달구는 최전선에 있다. 다만, 새로운 외피를 갈아입고 새로운 욕망과 호흡하고 있을 뿐이다. 70년대 후반 이래, 록의 역사를 바꿔온 모든 장르가 그 뿌리를 펑크에 두고 있듯 말이다.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블링 10월호 원고.
같은 책에 루비살롱레코드의 이규영대표, 럭스의 원종희, 펑크샵 런던스 버닝의 최석, 페이션츠의 조수민, 그리고 제가 참여한 대담이 실려있으니 연동해서 읽는다면 도움이 될듯 합니다.
by 김작가 | 2008/09/30 17:22 | 스토리 | 트랙백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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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NePHiliM at 2008/09/30 17:55
하아 ㅠㅠ 스컹크헬 문을 닫는군요. 이럴수가 지나갈때마다 담에 가야지 담에가야지 하면서 한번도 못갔는데
-네피
Commented by nique at 2008/09/30 18:46
뭐 펑크 그딴거 없어도 사는데 아무 지장없는걸요...
Commented by NePHiliM at 2008/09/30 20:11
솔직히 그렇게 따지면 뭐 다른 장르나 예술작품도 다 사는데 아무 지장 없습니다. -_- 다른 사람 좋아하는 분야를 그 딴거로 취급하셔서 좀 욱하는군요.
-네피
Commented by 땅콩샌드 at 2008/09/30 20:18
풋. 욱해봤자.
Commented by 토달 at 2008/10/01 05:13
당신 같은거도 없어도 될듯.
Commented by 땅콩샌드 at 2008/09/30 20:09
텔레파시, 고고스타, 갤럭시 익스프레스, 누렁이 노래 좋더군요. 라이브도 힘 있고.

한국 인디가 일종의 전환점에 서 있군요. 저번에 헬로 루키 ebs 공연을 갔다가 놀랐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팀들이 어디에 숨어 있었나 하고요. 이제 홍대에서 밴드가 크던 시대는 지난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국희샌드 at 2008/10/03 12:34
풋. 놀라봤자.
Commented by 지녀 at 2008/09/30 22:57
아... 제가 펑크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군요...
심장에 충실한 음악이라...
Commented by belle at 2008/10/01 00:08
김작. 좋은 글 항상 감사하다오. 덕분에 이번 펑크 특집도 무사히...땡스얼랏.^^
Commented by 빈그릇 at 2008/10/01 11:15
펑크는 손가락과 성대가 아니라 심장에 충실한 음악이다. 가슴에 와닿네요.
Commented by 김생 at 2008/11/27 18:44
심장에 가깝기보단 쉬워서하죠. 머리안쓰고 바로 할수있는게 펑크 속된 말로 개나소나 펑크한답시고 머리세우고 댕기면 뭔가 있는척하고 사람이나 폭행하고 술먹고 깝치는게 펑크인겁니다. 정신차리고 홍대가보세요 30넘은 펑크있나. 전부 10대 20대 초반애들입니다. 펑크가 아니라 일종의 패션집단 소비 패턴입니다. 뭔가 있는듯이 지네들노는 것을 문화적인 힘이 있는듯이 하는 말은 좀 자제했으면 하는군요.
Commented by 사막늑대 at 2008/11/27 21:01
그렇게 막말하는 당신이 개와 소에 해당되는군요.
누가 폭행을 하던가요? 뭘 알고나 지껄이세요.
당신이 머리나쁘니 다른사람들까지 그렇게 보이는가보군요~
Commented by 김생 at 2008/11/27 18:48
양아치집단으로 매도되는 현실이 과연 그냥 '풍문'이고 일반인들이 가지는 나와 다른것에 대한 거부인지 아니면 진정 그들이 양아치짓거리를 하면서 얼마나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면서 형사'사건'을 만드는지 한번 그 기록을 보면 참 놀라실 겁니다. 일부 음악하는 사람을 제외한 절반이상은 '폼'으로 음악하면서 마약과 폭행을 일삼읍니다. 거론된 밴드에 속한다고 말은 안하겠습니다만...
Commented by 찰리 at 2010/03/18 01:29
사람들이 펑크로 인해 인생이 바뀌고 눈을 뜨는것은 부정할수가 없습니다.
인디가 그렇게 진화해왔고 아직도 바뀌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냥 리스너라면 뭐라 지껄여도 그러려니 하건만 당신이 음악을하는 뮤지션이라면 그딴 허접스러운 생각들은 다 지워야 할것입니다. 누군가의 음악을 비방하고 헐뜻는것 자체가 참 용서가 되지않는군요.
공연장을 가보십쇼 그리고 그 찢어지는 소음에다 몸을 맡겨 보십쇼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고 심장의 달리는 소리를 온몸으로 느끼고
사람들과 몸을 부대끼면서 행복을 느껴보십쇼.
이렇게 살아있는 음악이 몇음악이 되겠습니까?
펑크는 힘이 있습니다. 한사람이 비록 작은 소리를 낼지라도
뭉쳐서 크게 외칠수있는 힘이 있습니다.
비록 세상을 바꿀수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않지만
사람들은 선동하고 이끌수 있는 힘은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나 모습은 난폭하지만
좋은 에너지로 관객들을 행복하게 합니다.
어느 장르에 비교되지 않는 단합과 폭발력을 이루어냅니다
그런 펑크를 함부로 비방하지 말았으면합니다.
사회에 틀속에서 단지 한 조그만한 시선의 모습으로
뭔가를 판단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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