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퍼텍 수다
-벽에 걸린 스케줄 보드를 보니, 새삼 눈이 아찔해진다. 아니 무슨, 보험사 영업맨도 아니고 9월 한달동안 스케줄이 이리 많은 거야. 많은 날은 5개씩 있고 그렇다. 여기서 말하는 스케줄이란 누군가를 만나거나 어딘가로 가는 사회적 관계를 말한다. 마감일정은 아예 별도로 빼놓는다. 그러다보니 거의 화이트보드가 블랙보드가 될 지경. 게다가 이번주에는 월간지 마감들이 줄줄이 쌓여있었고, 계획대로 지켜나가지 못했으며, 따라서 본의아니게 민폐를 좀 많이 끼쳤지만 무엇보다 폐를 당한 건 내가 되겠다. 수요일밤부터 34시간, 목요일 낮부터 26시간을 꼬박 깨어 있어야 했다. 몸 망가지는 소리가 뻐적뻐적 들린다. 생활리듬은 물론 망가졌다. 덕분에 어제 저녁부터 책상에 엎어져 자다가 깼고 침대에서 몇 시간 자다가 깼고 다시 침대에서 몇 시간 자다가 깼다. 제일 망가진 건 어제 스케줄이다. 저녁에 껌엑스 공연을 보러가기로 했고, 끝난 후 안국동 써머셋 팰리스로 상상마당 포럼 엠티를 가기로 했는데 기절해있느라고 아무 것도 못갔다. 아아, 써머셋 팰리스.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가보겠어. 내 팔자에. 그래서 이번 주말 최대의 과제는 생활리듬 원상복귀. 한 4시쯤 자서 10시쯤 일어나는, 정상의 생활로 돌아가야지.

-덕분에 블로그가 거의 방치상태였다. 작년 6월부터 이글루스를 시작해서 이렇게 오랫동안 아무 포스팅도 안한적은 아마 처음이지 싶다.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했으니 포스팅따위할 겨를도 없었다,라고 하면 좀 민망해진다. 어차피 이 블로그의 대부분 포스팅은 각종 매체에 쓰는 원고 중 골라서 올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 원고를 다 쓰면 바로 바로 올리곤 했는데, 어찌하여 여러 매체의 에디터들이 이 블로그를 오기 시작하면서 좀 민감해졌다. 요컨데 신문이나 잡지의 발행 후에 올리기로 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한동안 공백이 불가피해졌다. 빨리 분점도 운영해야 하는 데.

-이번 1박 2일 사직구장 사태를 보면서 떠오른 일화가 있다. 아마 2000년이었을 거다. 레이니 썬의 김태진과 김대현이 지금 커피프린스1호점 자리 맞은 편 건물에서 자취를 했었는데, 그 집을 꽤나 자주 들락거리곤 했다. 태진이가 워낙 메탈 매니아, 그것도 쌍팔년도 매니아인지라 왕년의 메탈 히어로들 얘기로 시간 가는지 몰랐다. (아, 그러고보니 이 넘이 관련된 대폭소 에피소드가 있는데, 이 건 나중에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카테고리 감이다.) 그들의 옥탑방을 처음 갔을 때, 나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옥상 위에 떡하니 롯데 자이언츠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제대로 깃봉에 매달려서. 태극기도 안 거는 시대에 롯데 자이언츠 깃발이라니, 망연자실하고 있었던 나에게 대현이는 부산 사내 특유의 프라이드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행님, 저 깃발이요 저래뵈도 롯데 자이안츠 원년도 깃발 아임니까." 그 때나 지금이나 야구에 통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아마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이런 씹덕후 색희.' 올해 롯데의 선전으로 부산과 롯데의 그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를 새삼 느끼고 있는 요즘에서야, 당시 대현의 그 프라이드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한화 응원가를 불렀다니, 목숨을 부지하는 것만으로도 다행-_-;;

-그런데 왜 부산은 그리도 야구에 목숨을 거는 걸까, 잠깐 생각해봤는데 이런게 아닐까 싶다. 예로부터 대한민국 제2의 도시로서의 프라이드가 남달랐으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달래 즐길만한 지역 대중문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서울 것들 좋아하는 거 그대로 따라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하고, 하다보니 축구보다 먼저 지역 연고 문화가 생성된 야구를 통해서 지역적 유대감을 고취시킬 수 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하는. 요 몇년 사이에 급격히 퇴조하긴 했지만 자고로 부산은 헤비 메탈 시절부터 서울에 결코 꿀리는 도시가 아니었다. 온갖 메탈계의 전설들도 다 부산에서 잉태됬거니와, 인디로 넘어와서도 레이니 썬, 피아 등등을 배출한 도시 아닌가. 그리고 예전에 밴드들도 전국 투어를 하던 시절에, 가장 독특한 음악 문화를 가진 도시도 부산이었다. 그러고보니, 서울은 언더그라운드와 인디가 단절된 역사로 출발했지만 부산은 계승이었다. 모두 헤비 메탈 출신이고, 펑크들조차 메탈 출신에게 레슨을 받거나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로 연결되있다. 예를 들어 최석과 공태호가 게토 밤즈로 활동하던 2005년 무렵, 부산 출신 밴드들이 롤링홀에서 오랫만에 갈매기 공화국 공연을 열었다. 게토 밤즈는 라인업에서 빠져 있었는데 대기실에 최석이 와서 완전 각을 잡고 있는 게 아닌가. 놀이터에서 다른 펑크들과 어울릴 때의 껄렁껄렁한 모습은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행님들 앞에서는 꼼짝을 못하겠어요"라며 각잡힌 부산 사투리로 말하던 그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알고보니 그의 스승이 앤, 위퍼 등에서 활동했던 최민수. 여튼, 재미있는 동네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로컬 프라이드가 살아있는 땅이 아닐런지.

-이번 주로 급한 마감들은 다 털었으니,라기 보다는 함박눈을 치웠으니 잔눈을 털어내야할 때다. 이석원 인터뷰와 백현진 인터뷰를 다음 주에 모두 녹취 및 정리해서 '보다'에 올리는 게 목표. 아, 그러고보니 오아시스 해설지를 써야하는군;

-끝내려다가 생각나서 하나 더. 레이니 썬의 신곡을 미리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아직 믹싱하기 전의 소스 한 곡을 들었는데 당초 계획처럼 1집 스타일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김태진 왈 "90년대말고 80년대 켈틱 프로스트 같은 느낌이 나야하는데...." 혹시 켈틱 프로스트가 어떤 팀인지 아는 분들이라면 기대해도 좋을 듯.


-딱 요즘 날씨에 어울리는 노래

Aerospace-Summer Still Reigns Supreme
by 김작가 | 2008/09/20 11:28 | 상수일지 | 트랙백 | 덧글(7)
트랙백 주소 : http://zakka.egloos.com/tb/3910424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at 2008/09/20 13:2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김작가 at 2008/09/20 13:45
퍼블리셔랑 퉁치면 끝;
Commented by 둥구 at 2008/09/21 03:00
아, 포스팅 내용 중에 감격적인 내용이 있구랴.
기다릴 거예요~-_-
Commented by 김작가 at 2008/09/21 03:01
이런 스토커-_-;
Commented by opp at 2008/09/21 16:30
레이니 썬 앨범이 나오는가 봐요^^
몇년만인지...기대되네요.
Commented by 말보로미디엄 at 2008/09/22 21:13
부산야구는 이해보다는 공감이 중요한것 같습니다.
지하철역에서 유니폼입고 플랫폼에서 캐치볼을 하는 초딩들을 보며 '용돈을 좀 줘야겠다' 라면서 슬그머니 일어서는 남친을 잡으며 말리는 여친을 둔게 자랑스러울 정도로...
Commented by Mr.Unknown at 2008/09/24 11:55
몰락한 록의 도시 인천도 있습니다 ㅠㅠ
※ 이 포스트는 더 이상 덧글을 남길 수 없습니다.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음악 친구나 해요
by 김작가 2008 이글루스 TOP 100
Calendar
메모장
noisepop@hanmail.net
http://twtkr.com/GrooveCube
카테고리
전체
음악이 해준 말
생각
스토리
대화
어른들의 놀이터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상수일지
아주 특별했던 봄
아주 특별한 여름
go20
private press
NM
야담과 실화
바벨의 콘서트
VS 칼럼
자전거 라이프
방명록
비밀의 창고
미분류
포토로그

보이는 것의 날인
태그
루시드폴 레미제라블 아이돌 국카스텐 이병우 블로그 이런들어떠하리저런들어떠하리 페스티벌 어떤날 2010 내한공연 들뢰즈 철학성향테스트 아감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트위터 매시브어택 글래스톤베리 오아시스 Contra 전망 맑스 문화정책 인디 FnC 그린데이 VampireWeekend 밥딜런 씨엔블루
전체보기
rss

skin by zodiac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