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다도 사랑하는 안토니
보다의 뉴스를 보니, 프라다의 가을 신상 컬렉션의 테마 음악으로 안토니 앤 존슨스의 신곡이 사용된 모양이다. 21세기에 등장한 보컬리스트 중 가장 강력한 중독성을 가진 그의 목소리는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으되, 일단 들으면 누구나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신비한 우울의 결정체다. 올해 새 앨범을 발표한다고 들었는데 소식이 없다. 우리나라에 라이센스된 앨범 중 안토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앨범은 피쳐링으로 참가한 비욕의 <Volta>와 <아임 낫 데어>OST가 있다. <아임 낫 데어>OST에서 안토니는 'Knocking On Heavens Door'를 불렀는데 건스 앤 로지스, 헤븐 등 수많은 뮤지션들이 리메이크한 노래지만 안토니의 버전은 마치 천국에 독안개를 흩뿌리는 듯한 포스가 있다. 워낙 쟁쟁한 인디 슈퍼스타들이 참가한 앨범이지만, 안토니의 곡이 가장 빛나는 이유는 사적인 애정뿐은 아니다. 안토니의 새앨범을 라이센스로 만날 수 있으려나. 프라다 컬렉션에 사용된 'Fallen Shadows'의 뮤직 비디오를 첨부한다. 비디오도 죽이니, 꼭 보시길.

*한국 패션 브랜드에서도 연예인 말고 뮤지션과의 콜라보레이션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패션과 음악은 땔래야 땔 수 없는 건데, 그저 셀레브리티에만 올인하는 한국 디자이너들의 모습은 라이프스타일로서의 패션에 대한 그들의 철학이 딱 허영의 시장안에만 머물고 있다는 걸 여과없이 드러낸다.




이 형에 대해서 뭔가 써보고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2005년 가을에 멜론 웹진의 칼럼에 소개한 적이 있다. 안토니를 처음 들었을 때의 묘한 흥분감이 살아있는 듯하여, 민망함을 무릅쓰고 올린다.



목소리 하나로 영혼을 울리다'가 이 칼럼의 제목이다. 그런데 사실 정말 영혼을 울리는 목소리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노래를 빼어나게 잘하는 사람은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으나 '영혼'이라는 부담스러운 단어에 걸맞는 목소리를 찾는다는 건 마음에 쏙 들어서 기차 타고 달려갈만한 카페를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다. 특히 이미 음악의 역사를 통해 검증된 인물들이 아닌 동시대에 살아 숨쉬는, 그것도 갓 등장하여 아직 평가의 도마위에 올려지지 않은 목소리란 더더군다나 만나기 힘들다. 자, 평소에 이런 류의 글을 주의깊게 읽는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그런데 여기 그런 목소리가 있다'라는 문장이 튀어나올 것이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예상은 정확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안토니 앤 존슨스라는, 낯선 밴드를 이끌고 있는 안토니 히거티( Antony Hegarty)다. 빌리 할리데이가 양성애자 남성으로 태어났다면 바로 이렇게 노래 부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목소리는 전세계의 비축유 저장탱크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 영적인 힘으로 충만해있다. 어린 시절 왕따였으며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다는 안토니가 뮤지션이 되겠다고 자각한 계기는 컬쳐 클럽을 접하고 나서였다고 한다. 그의 역할 모델이 보이 조지였다. 그러나 안토니의 목소리는 보이 조지를 비롯한 일군의 양성애자 뮤지션들과는 달리 들린다. 보이 조지의 음악이 모호한 성 정체성의 그늘을 과장된 화려함으로 덮으려 한다면 앤토니의 목소리는 그 그늘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아니, 빛 없는 음지에서조차 선명하게 드리워진 그림자와 같다. 말하자면 안토니는 남성과 여성, 양쪽에 대한 욕망이 아닌 어느 쪽도 온전히 욕망할 수 없는 외로움을 영혼의 추진력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일상의 의식 바깥으로 우리를 한 걸음 이끌며.

그의 인도에 따라 다다른 의식 바깥에는 희뿌연 무의식이 있다. 무의식은 종종 꿈을 통해 존재를 드러낸다. 우리가 꾸는 꿈이란 대부분 흑백이다. 색깔이 있다 한들 의식의 세계에서는 그 꿈의 색을 기억하지 못한다. 흑백으로 채색된 욕망 깊은 곳의 좌절과 자위, 일련의 고딕 예술가들이 표현하고자 했던 일상 깊숙한 곳의 음지를 안토니는 목소리 하나로 일거에 풀어낸다. 그 목소리에 담겨 있는 영혼은 열반 직전의 고승이 토해내는 최후의 화두처럼 가슴을 묵직하게, 심장을 서늘하게 한다. 들숨과 날숨, 모두에 거부할 수 없는 중독의 유혹이 스며 있고 숨을 멈추는 그 순간에 침묵의 파장이 뻗어나간다. 평론가의 글줄과 저널리스트의 취재 수첩에 담아낼 수 없는 소리와 소리가 아닌 그 무엇이 짙은 포연처럼 귀로 빨려들어가 청신경을 지나 뇌와 심장의 구석구석 깊숙이 박힌다. 갓 태어난 신생아를 안았을 때, 어느 날 현저히 노화된 피부를 만졌을 때, 어느 날 갑자기 암선고를 받았을 때, 어머니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았을 때, 비로소 체험할 수 있는 생로병사의 본질이 어쩌면 그의 목소리의 힘일지도 모른다.

이제 두장의 앨범을 발표했을 뿐이며 그나마도 모두 인디 레이블을 통해 선보였지만 안토니의 목소리는 대대적 홍보 없이도 즉시 귀밝은 이들을 무릎 꿇게 했다. 올 초에 발매된 그의 두 번째 앨범 <I Am A Bird Now>에 기꺼이 그와 입을 맞추겠다고 달려온 인물들을 살펴보자. 노래 잘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루퍼스 웨인라이트가 'What Can I Do?"에 참여했으며 안토니의 어릴 적 우상이었다는 보이 조지가 'You Are My Sister'에 목소리를 빌려주고 있다. 'Spiraling'에서는 뉴욕 인디 포크 신의 거물인 데벤드라 반핫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며 루 리드는 'Fistful of Love'에서 기타 연주를 맡고 있다. 앨범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티어스의 브렛 앤더슨과 버나드 버틀러는 틈만 나면 앤토니의 목소리에 대해 입을 모아 극찬중의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최근 열린 머큐리 수상식에서 <I Am A Bird Now>는 쟁쟁한 경쟁작들을 제치고 올해의 앨범으로 선정됐다. 의외의 결과였다. 하지만 조금은 놀랍더라도 곧 수긍할 수 밖에 없는 결과였다. 적어도 그의 목소리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 밖에 없다. 여기, 21세기의 목소리가 있다. 백년이라는 단위가 스물 한 번 반복되는 동안 각각의 백년을 살아왔던 사람들이 모두 칭송할 수 밖에 없었던 목소리가 말이다. 기억하기 바란다. 그의 이름은 안토니다.
by 김작가 | 2008/09/20 06:35 | NM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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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빰빰빰 at 2008/09/20 13:28
요즘 미국 씬에서 강세인 Hercules and Love Affair의 데뷔 앨범에도 참여해서 노래를 해줬더군요. 디스코에도 어울리는 묘한 목소리!
Commented by 김작가 at 2008/09/20 13:43
그 앨범도 킹왕짱이죠. 안토니의 목소리가 댄스비트에 그리도 잘 어울릴지는 꿈에도 생각못했었는데, 역시 보이 조지를 롤모델로 삼았던 과거가 드러나는듯;
Commented at 2008/09/20 21:5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김작가 at 2008/09/20 22:45
제가 들은 바로는 무성애자에 가까운 양성애자라고 하더군요.
Commented by 속임수 at 2008/09/21 23:47
아 안토니 진짜 오랜만이네요.ㅠㅠ 만화 벡을 보면서 유키노가 노래부르면 다들 깜짝 놀라고 충격받잖아요. 그런 보컬리스트가 진짜 있을까? 했는데 생각난ㄱ 안토니였어요.ㅠㅠ
Commented by 말보로미디엄 at 2008/09/22 21:15
출신이 오덕이라 그런지 이런게 눈에 띄더라구요
http://dory.mncast.com/mncHMovie.swf?movieID=1000792772006090200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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