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포트 VS. 서머소닉

기대치는 어느 때 보다 높았다. 3회째를 맞는 펜타포트. 첫 날의 폭우를 뚫고 마침내 승리한 첫 해. 케미컬 브라더스와 뮤즈가 감동의 쌍곡선을 그리며 버젓이 자리잡았던 두번째 해. 그리고 세번째가 왔다. 무릇 하나의 왕조도 세번째 왕이 되면 자리를 잡듯, 펜타포트또한 그랬다. 열리는 건 당연했고 과연 누가 그 라인업을 채우냐였다. 소문은 그래서 일찌감치 퍼졌다. 아직 개최 발표도 안됐건만 연초부터 라인업이 돌아 다녔다. 4월 1일에는 근거있는 소문과 근거없는 루머가 조합된 펜타포트 포스터가 '만우절 짤방'으로 돌아다니기도 했다. 희대의 낚시였다. 라인업이 하나 둘 씩 발표됐다. 둘째날 트래비스, 마지막 날 언더월드는 진작 나왔다. 하지만 끝내 비워진 자리가 있었다. 첫날 헤드라이너였다. 당초에는 레이지 어게인스트 머신이 설 예정이었다. 그러나 보컬 잭 덜라루차가 주니어를 얻으면서 펜타포트 뿐만 아니라 모든 스케줄이 취소됐다. 육아에 전념하겠다는 이유에서였다. 아아, 불세출의 저항 래퍼여. 그대도 2세 앞에서는 한갖 평범한 가장이었을 뿐이더냐. 레이지 어게인스트 머신이 새 앨범을 발표한다면 'Sweet Chid Of Mine'같은 제목의 노래라도? 아무튼, 갑자기 공석이 된 첫 날 헤드라이너 자리를 놓고 몇달간 위저, 스티비 원더, 도쿄지헨, 그리고 슬레이어등이 물망에 올랐다. 계약 직전까지 간 팀도 있었고 불발에 그친 팀도 있었다. 결국 최종 라인업이 발표된 건 페스티벌의 시작을 일주일 쯤 앞둔 7월 17일이었다. 이미 섭외되어있던 엘르가든과 지난해 한국팀중, 전체 라인업을 통틀어서 가장 높은 호응도를 보인 팀중 하나였던 크라잉 넛이 긴급 투입됐다. 초유의 공동헤드라이너로 짜여지는 순간이었다. 올해 펜타포트는 그토록 긴박했다.


펜타포트만 긴박했느냐. 아니다. 나또한 긴박했다. 마감이란 축제고 나발이고 상관없이 닥쳐온다. 7월 25일도 여실히 그랬다. 4시까지는 반드시 송도에 도착해야했다. 고! 팀의 공연이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밤새 마감을 털고 나니 해는 진작 떴고 시계바늘은 10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이대로 밤새고 가버려? 노노, 작년의 날씨만 같았어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이미 폭우가 예고된 바 있다. 이미 비가 한 두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지 않으면 폭우를 맞으며 서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들었다. 누웠다. 눈을 떴다. 1시에 맞춰둔 알람은 울리기나 한걸까. 비정하게도 4시를 향해 초침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럴 때 쓸 수 있는 말은 오직 하나의 단어밖에 없다. 절망. 5분만에 짐을 챙기고 송도까지 가는 버스 정류장에 섰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런 상황일수록 버스는 절대 오지 않는 법이다. 그래 좋아. 고! 팀은 놓치더라도 더 뮤직은 봐야지. 과감하게 택시를 잡아탔다. 초조했다. 혹시라도 공연을 놓치면 어쩌나, 하는 마음보다는 순식간에 쭉쭉 올라가는 미터기 때문에. 그래, 항상 이런 식이었지. 작년에도 늦잠 자다가 오케이 고 인터뷰를 못할 뻔했어. 재작년? 첫해니까 군기가 바짝 들어있었고. 쏜살같이 달리는 경인고속도로는 무심히 뻗어있었다.

펜타포트


그래도 운이 좋았다. 프레스티켓을 발부받고 이미 진흙밭이 된 행사장으로 뛰어 들어갔을 때, 더 뮤직의 공연이 시작된 참이었다. 밴드이름이 '음악'이라니, 자못 무성의하기 짝이 없는 네이밍 센스지만 펜타포트를 얼마 안 앞두고 발매된 그들의 3집은 왜 더 뮤직이 늘 차세대 유망주로 꼽히는 팀인지를, 그리고 왜 이들의 공연을 거금의 택시비를 지불하며 봐야하는지를 말해주는 수작이었다. 80년대 후반 맨체스터에서 피어오른 록과 댄스의 결합을 2008년 현재, 이들만큼 제대로 계승하는 팀은 없다. 미친듯한 일렉트로니카 비트에 맞춘 공격적인 사운드. 그야말로 쫙쫙 조였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그런 음악을 라이브에서 할 수 있을까? 한없이 뻗어가는 높은 키의 보컬은 레코딩 기술의 산물이 아니었을까? 천만에. 디제이 쿠와 똑같은 헤어 스타일, 즉 스킨헤드로 무대에 오른 보컬 로버트 하비는 디제이 쿠에 못지 않은 춤사위를 선보였다. 그리고는 앨범에 담긴 그 노래들을 똑같이 불렀다. 어떻게 그렇게 기계 느낌의 소리를 자연스러운 육성으로 내는지 덩실덩실 그를 따라 춤추면서도 마냥 신기할 뿐이었다. 최근 앨범에 쓰인 각종 FX사운드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쉬웠지만 기타와 베이스, 드럼만으로도 충분히 그에 못지 않은 각진 그루브를 선보였던 더 뮤직의 공연이었다. 그동안의 페스티벌이 첫날이면 몸을 푼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이번에는 처음부터 제대로다. 여기에 고! 팀까지 봤다면 어땠을까. 아마 둘째날 정도만큼의 파워업을 하고도 남았을 거다.

이미 비가 잔뜩 내리고 있었다. 첫해만큼의 폭우는 아니었지만 여름의 낭만,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모두 첫 해 만큼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 때의 관객들은 정말이지 <랜드 오브 더 데드>에 나오는 좀비때에 다름아니었다. 어딜가나 발이 푹푹 빠지는 진흙밭이었고 장화는 커녕 우비조차 갖추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한 걸음을 옮기기 위해 10여초의 시간을 써야했으니 체력은 소모되고 속도는 느리고, 그래서 좀비처럼 걸어다니며 근성으로 공연을 봤던 게 불과 2년전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경험으로부터 문화를 만들어낸다. 사방에 투입된 자갈과 판넬이 진흙밭의 면적을 상대적으로 줄였다. 모두 장화와 우비로 중무장하고 있었다. 혹시 보호장비를 못준비한 이들도 장내에서 쉽사리 구입할 수 있었다. 2년전의 피로는 열기아래 완전히 눌려 있었다. 설령 록의 신이 2008년 대한민국의 현실에 분노, 폭우로써 저주를 퍼붓는다해도 이제 취소의 두려움, 고난의 행군은 남 얘기가 된 것이다. 이런 문구가 씌여있는 공식 티셔츠가 눈에 띄었다. 'weather is nothing'. 그래, 날씨는 아무 것도 아니지.


크라잉 넛과 엘르가든의 무대가 연달아 펼쳐질 차례, 펜타포트 한일전이 펼쳐지려했다. 그동안 크라잉 넛의 공연은 최소한 100번은 더 봐왔을 거다. 공연장 바깥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만 듣고도 대충 흐름과 분위기를 짐작할 수도 있다. 굳이 안봐도 된다. 하지만 이 정도 규모의 공연이 되면, 봐야 한다. 그들은 무대가 크면 클수록 진가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작년에도 그랬고 올해 역시 그랬다. 초등학교때부터 지금까지 늘 함께 해왔던 사내들만이 발휘할 수 있는 케미컬, 지하의 클럽에서부터 스타 시스템에 기대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간 야성의 저력은 고! 팀, 뮤직이 쌓아온 온도를 비등점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옥의 티가 있었으니, 이 날 이들이 준비한 퍼포먼스는 키보드를 불태우는 것이었다. 상상해보라. 이미 오를 만큼 오를 열기속에 무대위에서 불타는 키보드! '다죽자'를 할 때였다. 분위기는 정점으로 치닫고 있었다. 김인수가 미리 준비한, 저렴한 키보드에 기름을 뿌렸다. 베이스를 놓고 노래하던 한경록이 그 위로 올라가 쾅쾅 뛰었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객석으로부터의 데시빌은 한껏 올라갔다. 그리고 입에 머금었던 럼을 뿜으며 불을 붙였는데, 불쇼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닌지 키보드에 붙은 불은 객석에서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미약하여 실패로 돌아갔다는 슬픈 이야기. 대신 키보드의 상태가 이상해져서, 노래가 끝날 때까지 기묘한 소리를 홀로 내뿜었으나 본인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민망한 사연이 함께 전해지고 있다. "바람도 불고...흥분도 했고...나무도 젖었는지 잘 안 붙더라고..." 당시를 술회하는 한경록의 말이다. 갑작스레 헤드라이너로 격상된 엘르가든의 팬들로서는 이 날 공연이 소중할 수 밖에 없었다. 멤버간의 불화로 사실상 해체 상태인 엘르가든이다. 펜타포트 출연은 오래전부터 정해져있던 일. 그래서 무대에 올라야했다. 마지막 공연이나 다름없던 셈이다. 공식 발표는 아니었지만 소문이란 언제나 새기 마련.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지 일본에서 건너온 팬들도 제법 보였다. 어느 일본 펑크 밴드보다 한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엘르가든이다. 2006년 월드컵 때 줄기차게 방영된 은행 CF에 'Make A Wish'가 대중적 인지도도 한껏 높였다. 'Space Sonic'으로 시작된 그들의 공연은 그러나, 한 곡 한 곡 끝날 때 마다 뒤쪽의 관객들이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그 노래가 그 노래처럼 들리기 십상인 멜로 펑크의 특성 탓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감안한다해도 그 동안 펜타포트의 헤드라이너들이 펼쳤던 압도적 무대에 비하면 엘르가든의 공연은 존재감이 약한 게 사실이었다. 사실상 케미컬을 상실한 밴드가 가진 한계는 팬들의 열성적 반응에도 회복되지 못했다. 그들은 당초 예정된 90분의 시간 중 60분만을 채운 후 무대에서 내려왔다. 크라잉 넛이 그날 뒷풀이에서 즉석으로 취중공연을 벌이며 여흥과 추태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던 반면, 호텔 로비에서 본 엘르가든은 하염없이 차분했다.

둘째날, 비는 거의 잦아들었다. 2년전과 똑같은 날씨 패턴이었다. 이 날 국내팀 라인업 중 '라이징 스타'는 단연 문샤이너스. 아직 정규 앨범 한장 내지 않았음에도 서브 무대의 서브헤드라이너로 선정됐다는 것이 유망주로서 이들의 위치를 알려준다. 밴드의 리더이자 추석때 개봉하는 <고고 70>에서 조승우와 공동 주연을 맡은 차승우는 이 날 공연을 이렇게 회상한다. "사운드 체크하고 있는데 무대앞이 썰렁하더라. 아, 그냥 클럽 공연한다는 느낌으로 해야하나 싶었다. 그런데 이게 왠걸. 막상 공연이 시작되니까 1절도 끝나기 전에 객석 뒤편까지 꽉 차는 거다. 다 죽여주지, 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들의 공연을 처음 본 사람들은 다 죽었다. 홍대앞이 배출한 최고의 기타 히어로를 중심으로 펼치는, 진정한 로큰롤쇼에 여성 관객들은 그 날 술자리에서 계속 차승우 타령을 해댔으니 말이다. 왠만해선 국내팀 공연을 보지 않는 펜타포트 현장의 총사령관, 옐로우나인의 김형일 대표도 콘솔에 서서 문샤이너스의 공연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그 훈훈한 순간을 지켜볼 수 없었다. 트래비스와의 인터뷰 때문이었다. 라마다 호텔에서 트래비스를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다. 세상에, 저렇게 맑고 고운 눈을 가진 사람이 실제로 존재한단 말인가. 특히 보컬이자 대부분의 송라이팅을 책임지고 있는 보컬 프랜시스 힐리의 눈동자는 정말이지, 겨울의 쪽빛 호수같았다. 그들에게 꼭 물어보고 싶었던 게 있다. 전설의 확인이랄까. "트래비스가 뜬 게,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서 'Why does it always rain on me?'를 연주할 때 실제로 비가 내렸고 이게 화제가 되면서부터라던데 맞나요?" "네, 진짜 그랬어요. 그런데 우리한테는 그 공연이 최악이었어요. 연주도 잘 안됐고. 공연이 끝난 후에 '어후..' 뭐 이런 분위기였달까? 게다가 좋은 날씨였다가 갑자기 비까지 왔으니 얼마나 우울했겠어요.(더기 페인)" " 그런데 집에 가서 TV를 켜니까 모든 매체에서 '트래비스가 비를 내리게 했다!'라며 떠들어 대더군요.(프랜시스)" "6-7년 후에 유튜브에서 다시 보니까 잘 했던데요. 스테이지에서 들리는 거랑 관객이 보는 건 완전히 별개일 수도 있지요.(프랜시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얘기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흥분한 게 역력해보였다. 어쨌거나 그들은 페스티벌 역사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드라마의 주인공이니까 말이다.


인터뷰를 끝내고 다시 공연장으로 허겁지겁 달려왔다. 이번 펜타포트 최고의 기대주였던 가십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늦어서 'Listen Up'과 ' standing in the way of control'밖에 보지는 못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명불허전이었다. 왜 그녀가, 단신에 과체중의 상징인 그녀가 현재 영국 셀레브리티계의 떠오르는 샛별인지를 여실히 입증하는 순간이었다. 객석은 흥분으로 그야말로 아수라장. 관객들 틈으로 섞인 베스 디토를 보기 위해 <향수>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루누이를 향해 달려드는 파리의 부랑자들처럼 한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혼미한 상태로 뒤엉켰다. 이 미친듯한 공연에 뒤쳐지지 않는 이 미친듯한 반응. 가십으로서도 당연히 흥분할 수 밖에. 드럼인 한나 브릴리는 공연이 끝난 후 무대 뒤에서 만난 한음파의 장혁조에게 계속 "이런 미친 관객들은 생전 처음이다. 공연이 됐든 관광이 됐든 반드시 또 오고 싶다"라고 수차례 이야기했다. 그 흥분의 순간을 축복하고자 국내 관계자들과 가진 뒷풀이 자리에서 베스 디토는 2차로 가라오케를 가자고 했다. 그럴싸한 가라오케를 섭외해놓았으나 아쉽게도 베스 디토의 노래방 솜씨를 볼 수 있는 기회는 오지 않았다.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마신 후 피로도가 급상승, 그냥 숙소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만약 베스 디토의 폭탄주 솜씨가 좋았거나, 술버릇이 조금 안 좋았다면 훈훈한 뒷이야기 하나가 추가됐을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그나저나, 노래방에 가십 노래가 있던가?


흥분하기는 트래비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생전 처음 와보는 나라의 페스티벌에서 바로 헤드라이너를 맡게 된 그들이다. 당연히 긴장도 됐을 법하다. 그래도 한국 관객들의 와일드함에 대해 미리 알고는 있었다. "사람들이 다 그러던데요. 여기 관객들 장난아니더라고." 하지만 현장에서의 반응은 귀띔이상이었다. 같은 날의 브로콜리 너마저, 다음 날의 델리 스파이스와 함께 '싱얼롱형 공연'으로 분류할 수 있었던 트래비스의 공연에서 무엇보다 기억나는 건 역시 객석의 거대한 합창이었다. 'writing to reach you' 'turn'같은 기존 히트곡은 물론이거니와 최근 앨범에 담긴 'Closer'에서도 초대용량 스피커에 못지 않은 싱얼롱으로 화답하는 이 미지의 관객들에게 트래비스도 흥분한게 분명해보였다. 결국 기타리스트 앤디던롭도, 프랜시스 힐리도 무대 아래로 내려오고 말았다. 마지막 앵콜로  'Why does it always rain on me?'를 연주할 때 주변에서 "아, 이럴 때 비가 와줘야하는데!"라는 탄식이 들렸다. 그 맑은 눈으로 시종일관 미소를 띄며 노래하는 트래비스에게도, 방방 뛰며 목이 터져라 싱얼롱을 하는 관객들에게도 이미 마음에는 단비가 내리고 있었다.  열대야를 달래며, 바람이 불었다.  

날씨란 격년주기로 반복되는 것일까. 마지막 날의 작렬하는 태양까지, 2006년과 똑같다니.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현장의 분위기도 그랬다. 여기저기 돗자리가 펼쳐졌고 골프 의자가 놓였다. 아이들을 무등태운 아빠들도 쉽사리 찾아볼 수 있었다. 달뜬 더위를 뚫고 낮시간에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친 건 국내팀이었다. 갤럭시 익스프레스, 검엑스 등은 세대교체된 펜타포트 국내 라인업의 주력이라 해도 틀리지 않았다.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미친듯한 질주가 끝나고 어느 관객이 이런 말을 하며 빠져나갔다. "어제 메인 무대에 자우림이 아니라 갤럭시가 섰어야 하는데!" 국내의 신진세력들이 발군의 솜씨를 보였다는 게 이번 펜타포트의 뚜렷한 경향이다.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그 명백한 증거였다. 멘트도 없이 모든 노래를 이어서 달리는 그들의 공연은 말그대로 탈진 로큰롤, 그 자체였으니까. 일찌감치 공연장을 찾아 무대 앞뒤를 배회하던 트립합의 마왕, 트리키도 콘솔 근처에서 멍하니 그들의 공연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다. 페스티벌의 마지막 날이다. 남은 에너지를 모두 쏟아 달리고 또 달릴 뿐이다. 앨범에 비해 심심한 라이브를 보여줬던 하드파이, "그동안 약안먹고 한 공연 중에서는 단연 최고"라며 모든 곡이 끝났음에도, 멤버들에게 즉흥 연주를 시킨 채 자신도 계속 사이키델릭 잼을 펼쳤던 트리키의 무대도 끝나고 바야흐로 영국의 종마들을 맞이할 때가 됐다.

카사비안. 비록 한국에서의 음반 판매량은 '안습' 수준이지만 일찍이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가 인정했던 유망주 중의 유망주다. 아니, 이미 라이브를 잘하기로 국제 무대에서는 정평이 나있는 그들이다. 그리고, 소문은 그냥 소문이 아니었다. 'Empire'를 시작으로한 카사비안의 무대는 3일간 송도를 지켜온 이들의 마지막 체력을 쥐어짜버렸다. 페로몬이 풀풀, 스피커를 통해 뿜어져 나왔다. 공연 시작전 가진 팬사인회에서 어느 소녀팬에게 받은 커다란 꽃송이를 가슴에 달고 나온 톰은 훈남이라기 보다는, 섹시남의 면모를 잔뜩 선보였다. 건스 앤 로지스의 액슬 로즈와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을 합쳐놓는다면 꼭 저런 분위기겠지 싶었다. 음악 자체가 워낙 싱얼롱하기에도, 놀기에도 최적의 분위기인지라 객석의 호응도는 단연 최고였던 게 당연하다. 멀찍이서 이 공연을 지켜본 허클베리핀의 이기용은 "넋이 나간다"며 "그래, 남자만의 음악을 하는거야!"라 외쳤다. 그는 아직까지도 그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남자들의 록, 달래 무슨 말로 카사비안의 무대를 표현할 수 있을까. 문득, 롤링 스톤즈나 더 후의 공연을 60년대에 본 악동들의 기분이 이런거겠지 싶었다.


체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젠장, 카사비안이 앵콜로 L.S.F.만 하지 않았던들 최후의 한 모금은 남겨뒀을텐데. 아아, 파우스트 박사가 되어 메피스토에게 영혼이라도 팔아 체력을 대출받고 싶구나. 그러나 악마는 멀리 있지 않았다. 언더월드가 곧 악마였다. 영상이 설치되고 레코딩 스튜디오를 그대로 옮겨놓은듯한 온갖 장비들이 무대로 올라왔다. 이런 일렉트로니카 공연은 사람뿐만 아니라 무대 자체가 주인공이 된다. 조명과 영상이 곧 퍼포먼스다. 인간이 탑승하는 로봇이랄까. 이 메피스토 로봇이 비트를 송출하는 순간, 고갈된 체력 게이지가 수직상승하기 시작했다. 쉴틈없이 믹스되는 온갖 음향들, 몇 번이나 바뀌는 무대 세팅, 이것은 일렉트로니카 공연이라기 보다는 희대의 멀티미디어 쇼였다. 하체의 통증을 느껴가면서도 춤을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익숙한 비트가 흘러나왔다. 단선의 신시사이저 선율이 잠시 멈춘 비트를 뚫었다. 'Born Slippy'였다. 어쩌면 이 신시사이저 선율 하나를 듣기 위해 이 자리에 서있는지도 몰랐다. 맨 앞부터 맨 뒤까지, 모두가 손을 번쩍 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누구 하나 예외는 없었다. 'Moaner'를 끝으로 엑스터시는 끝났다. 사지가 후덜덜. 성능좋은 마약을 잔뜩한듯한, 기분좋은 탈진이었다. 펜타포트의 마지막 헤드라이너가 끝나면 늘 그랬다. 올해도 당연히 마찬가지였다.

서머소닉
이제 무슨 낙으로 사나, 예년 같았으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숨돌릴 틈이 없었다. 그로부터 2주일 후면 서머소닉이 열리는 것이다. 올해로 9회째, 후지록을 따돌리고 아시아를 대표하는 록 페스티벌로 자리잡은 서머소닉 페스티벌은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할 라인업, 아니 가야하는 라인업이었다. 그래서 갔다. 가야했다. 8월 7일 낮부터 8월 8일 새벽까지, 그야말로 1박 2일에 걸쳐 마감을 끝내고 나니 시간은 새벽 6시 반. 비행기 시간은 8시 50분, 즉 최소 7시반까지는 인천 공항에 도착해야한다. 헌데, 문제는 아직 짐조차 꾸리지 않았다는 것과 짐을 꾸리기 위해서는 집에 가야한다는 거였다. 부랴부랴 집에도착해서 단 5분만에 짐을 싸니 7시 5분. 공항버스를 타고 가면 이래저래 최소 한시간은 잡아야하는데, 그럴 경우 짐을 부치지 못하여 거대한 트렁크와 함께 이코노미 클래스의 비좁은 좌석에서 새우잠을 자야한다는 결론. 아니, 만약 공항버스가 늦게 오면..... 더이상 상상하는 건 절망이다. 아아,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될 수 있다면. 눈 딱감고 택시를 탔다. 기사님이 묻는다. "몇시 비행기세요?" "8시 50분입니다." "그럼 7시 반정도까지만 가면 되죠?" "그러실 수 있나요?" 기사님은 대답대신 액셀을 밟았다. 공항고속도로까지 딱 5분. 그리고 초과속운전을 시작했다. 속도계를 보니 시속 180km. 1차선에서 4차선을 순식간에 넘나들며 스피드 레이서의 실사판을 찍기 시작했다. 음,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못되도 총알탄 사나이는 되는구나. 공항에 도착하니 7시 32분이었다. 요금은 5만원. 뭔가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도쿄에 도착했다. 기적이었다, 생각하며 하루를 보냈다.


8월 9일, 도쿄역에서 전철을 갈아타고 도쿄디즈니랜드를 지나면 가힌마쿠하리역이 나온다. 지바 롯데의 홈구장인 마린 스타디움과 우리 식으로 하면 코엑스라 할 수 있는 마쿠하리 메세가 나란히 위치한 곳이다. 서머소닉은 이 두곳을 통째로 빌어서 열리는, 도심형 록페스티벌이다. 펜타포트와 후지록이 야외형 페스티벌로서 캠핑을 전제로한다면, 서머소닉은 공연의 박람회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각 무대는 매일 하나의 컨셉을 가지고 진행됐다. 예를 들어 둘째날의 소닉 스테이지에는 MGMT, 슈퍼 퍼리 애니멀스, 스피리추얼라이즈드, 지저스 앤 메리 체인이 사이키델릭/노이즈의 향연을 펼쳤다. 첫 날의 마운틴 스테이지는 로스트 프로피츠, 뉴파운드글로리, 그리고 섹스 피스톨즈까지 펑크계열의 팀들이 분위기를 달궜다. 둘째날에는 팅 팅스, 정키 XL, 저스티스, 팻 보이 슬림 등 댄서블한 사운드로 꾸며졌다. 그리고 메인 스테이지인 마린 스타디움은 장르에 상관없이 페스티벌에 어울리는 빅 밴드들로 채워졌다. 하나의 컨셉트만으로 한 무대를 통째로 채울 수 있는 것에서 실제로 가본 첫 서머소닉의 저력이 느껴졌다.


마음만 먹으면 모든 공연을 볼 수 있는 펜타포트와는 달리, 서머소닉에서는 그런 게 불가능했다. 보기 싫은 공연을 건너 뛰는 수준이 아니다. 보고 싶은 공연을, 더 보고 싶은 공연을 위해 포기해야하는 상황이 속출했다. 아니, 도대체 팅팅스와 MGMT의 공연이 뱀파이어 위크엔드의 공연과 겹친다던가 프로디지와 폴 웰러, 섹스 피스톨즈의 공연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하는 상황이 말이 된단 말인가. 마쿠하리 메세와 마린 스타디움은 걸어서 약 15분. 그러니 둘 중 한 곳을 택한다면 차라리 마음이 편할텐데, 마쿠하리 메세에 설치된 세개의 무대에서 동시에 보고 싶은 공연이 열리면 눈물이 날 지경이다. 스피리추얼라이즈드의 공연을 곁눈질로 보고 귓등으로 들으면서 저스티스의 무대를 향해 뛰어간다던가, 프레탈리스의 무대앞에서 가슴을 쾅쾅 두드리며 핫 칩의 공연을 향해 발걸음을 돌려야하는 실로 어이없는 시츄에이션의 연속인 것이다. 선택과 집중. 서머소닉에 임하는 필요불가결의 자세였다. 말하자면 플러쉬와 스트레이트 포커를 두루 선택할 수 있는 카드조합이었달까.


하여, 팀을 선택하는 데 이런 기준을 세웠다. 일단 메인 헤드라이너를 챙긴다. 한국에선 절대 볼 수 없을 것 같은 팀들을 본다. 유명세보다는 알맹이가 꽉 차있을 것 같은 무대로 간다.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그것도 사실 힘들다. 왠만해선 다들 그렇기 때문이다. 양일간 서는 팀이 총 96개팀. 아침 11시부터 밤 10시까지 쉴틈없는 스케줄이다. 팀이 아니라 아예 스테이지를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과감하게 중요도에서부터 순서대로, 마린 스테이지와 마운틴 스테이지, 소닉 스테이지를 살리고 댄스 스테이지와 비치 스테이지, 아일랜드 스테이지는 버리기로 했다. 최근 인디 록계의 떠오르는 별인 밴드 오브 호시스와 케이준 댄스 파티로부터 시작했다. 두 팀 다 몰입을 요구하는 공연을 펼쳤다. 패닉 앳 더 디스코는 생각보다 실망스러운 공연을 펼쳤고, 왠지 그럴 것 같은 예감도 진작 가지고 있었지만 같은 시간 소닉 스테이지에서 열린 데스 캡 포 큐티를 포기하고 패닉 앳 더 디스코를 본 이유는 두가지였다. 하나는 데스 캡 포 큐티는 나중에 ETP에서 보면 된다는 마음이었고 또 하나는 패닉 앳 더 디스코 이후 마린 스테이지에 서는 바로 그 팀 때문이었다. 버브 말이다. 'Bitter Sweet Symphony' 'Sonnet'같은 주옥의 명곡들을 실제로 들을 수 있다니. 까칠하며 성격 더러운 90년대 형 간지남, 리처드 애시크로프트를 알현할 수 있다니. 해체했다가 지난 해 재결성, 올해 글래스톤베리를 뒤집어놓았던 그들의 공연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이상은은 가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흠뻑 빠졌던 밴드로 버브를 꼽은바 있다. 그럴만도 했다. '브릿(brit)'이란 단어말고는 달래 설명할 길이 없는 그 까칠한 서정은 때로는 사이키델릭하게 때로는 차분하게 펼쳐졌다. 리처드 애시크로프트는 이 날도 역시 그 예민함을 한껏 과시했다. 'Drugs Don't Work'를 부르다말고 '이런 *같은 노래는 부를 수 없어!"라며 중단해버린 것이다. 객석은 술렁. 다른 노래를 부르려다가 "한번 더 갈까?"라는 말과 함께 선글라스를 벗고 다시  'Drugs Don't Work'를 불렀다. 쇼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잔뜩 긴장한 드러머의 표정이 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다음날 오사카 공연에서는 아예  'Bitter Sweet Symphony' 를 부르다가 말고 무대 뒤로 퇴장해서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고 하니, 가까스로 재결성한 버브의 공연을 봤다는 것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으로 삼을 노릇이다. 그리고 도쿄에서는 신곡 'Love Is Noise'까지 다 부르고 공연을 끝냈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할까. 생각보다 실망스러웠던 섹스 피스톨즈의 공연은 그저 전설의 고향을 확인한다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썰렁한 객석을 향해 "이 찌질이들아!"라며 욕을 퍼붓던 자니 로튼의 멘트에도 불구하고, 객석은 여전히 조용했다. 일본인들이 원채 영어를 못하는 탓이었을 거다. 반면 광란의 도가니였다는 프로디지의 공연을 포기한 게 아쉬웠지만, 이제 다들 할배가 된 섹스 피스톨즈의 공연 역시 이 때가 아니면 또 언제 보겠는가.

첫 날에도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둘째날인 10일에는 어느 무대나 인파가 들어찼다. 아침 11시에 소닉 스테이지에 오른 팅팅스의 무대에도 수천명은 족히 보이더니, 마린 스타디움은 하루 종일 절반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낮 시간의 대부분은 소닉 스테이지를 지키기로 마음 먹었던 터였다. MGMT는 올해의 신인에 반드시 언급되어야 하는 팀이다. 비치 보이스와 플레이밍 립스, 그리고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하나로 합친듯한 그 기묘하면서 키치적이면서 복고적인 사이키델리아. 과연 이걸 라이브로 잘 표현해낼까? 이런 의문은 그야말로 기우였다. 올해 서머소닉 베스트 10을 뽑는다면 당연히 들어갈만한 공연이었다. 마지막 곡이자 이들 최대의 히트곡인 'Kid'에서 다른 세션을 물리치고 두 명의 멤버가 MR을 틀어놓고 뮤직 비디오의 유니크한 댄스와 패션을 그대로 재현했다. 아아 너희들, 꼭 한국에서 보고 싶구나라는 한탄이 절로 나왔다. 아마도 불가능하겠지만. 미국에서는 프라이러리티급 대접을 받는 그들이건만 한국 라이센스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국 가자마자 벨소리를 당장 'kid'로 바꾸겠다고 마음먹었다. 소닉 스테이지의 몽환은 내내 이어졌다. 웨일스 출신의 거물 슈퍼 퍼리애니멀스나 90년대 사이키델릭의 거물 스피리추얼라이즈드는 무대 컨셉에 맞게 앨범에 담긴 음악보다 더욱 사이키델릭한 노이즈를 계속 뿜어냈다.


마쿠하리 메세를 뒤로 하고 마린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쿡스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영국에서 아이돌 급의 취급을 받는 쿡스가 공연하던 2-3시 무렵에는 거의 일사병 위기를 느낄 정도로 햇볕도 뜨겁고 습도도 높았건만. 자리를 뜨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스타디움, 그리고 마쿠하리 메세 어디에서나 아무렇게 드러 누워 음악을 즐기거나 단잠에 빠져든 사람도 많았다. 아직은 군데 군데 빈틈이 보이는 마린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쿡스의 공연은 과연 귀여웠다. 록스타라기 보다는 로큰롤 키드나 록 아이돌 정도로 불러도 좋을 것 같았다. 너희들 한국 오면 누나들좀 울리겠다. 그런데 아직 공연은 별로구나, 짬밥좀 더 먹어야겠는 걸?

마운틴 스테이지에서 펼쳐진 저스티스의 무대를 빼놓을 수는 없다. 둘째날 마운틴 스테이지의 컨셉인 댄스에서 저스티스는 헤드라이너인 팻 보이 슬림을 제치고 단연 최고의 댄스 타임으로 꼽혔다. 딱히 화려한 퍼포먼스나 영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믹싱 콘솔 앞에 떡 세워둔 그들의 트레이드마크 십자가 하나만으로도 그들이 뿜어내는 비트는 심장에 한일자동펌프를 꽂아놓은 듯 했다. 아드레날린이 가뭄날 양수기에서 물 뿜어져나오듯 콸콸 분비됐다. 한달치 발바닥 때는 다 벗기고도 남았다. 아아 이 공연을 끝까지 봐야하는데! 그러나 매정하게도, 다시 마린 스타디움으로 뛰어갔다. 듣자하니 도쿄와 오사카 두곳을 합쳐 판매된 티켓은 총 12만장이다. 도쿄에만 최소 6만명은 몰렸다는 얘기다. 그 대부분의 인원들이 각자의 취향에 맞게 각자가 원하는 무대를 오가다가 한 군데 모였다. 바로 메인 헤드라이너인 콜드 플레이의 공연이 남은 것이다. 그 인원이 몽땅 몰리면 입장에도 족히 시간이 걸릴터. 그랬다가는 공연을 놓칠 수도 있거니와 자칫 입장제한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미리 가서 자리를 잡아야지. 공연장에 들어갔을 때는 다행히도 알리시아 키스의 공연이 끝나고 세팅 시간이었다. 주변을 둘러봤다.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마린 스타디움이 물샐틈없이 꽉 차있었다.

새 앨범으로 영국 뮤지션들의 숙원인 빌보드 정상을 밟은 밴드, 싱글인 'Viva La Vida'역시 같은 위치에 올린 밴드. 즉 2008년 8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밴드의 공연인 것이다. 게다가 미국보다는 영국에 더 많은 영향을 받은 일본이다. 당연하게도, 이틀중 가장 설레이는 공기가 마린 스타디움을 휘감았다. 공연 시작전, 스타디움 펜스를 둘러친 LCD에서 이런 자막이 흘렀다. 2000년 데뷔했을 때 첫번째 서머소닉의 서브 스테이지에 섰던 밴드가 2008년 헤드라이너로 참가하게 됐다는. 미래의 거물들을 발굴하는데도 탁월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정평이 난, 서머소닉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자막이었다. 콜드플레이로서도 금의환향하는 기분이 아니었을까. 새앨범에 'Lovers On Japan'이라는 곡을 수록할 정도로 일본을 사랑하는 그들이다. 앨범 커버에서처럼 프랑스 민중혁명군의 옷을 입고 나온 콜드플레이는 어느 밴드 보다 많은 일본어로 멘트를 했다. 그들의 히트곡이 하나씩 연주될 때 마다 조금씩 서로의 간격을 유지하던 관객들도 계속 앞으로 몰리며 싱얼롱을 이어갔다. 약 3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마린 스타디움에 꽉 찬 인파를 무대에서 보는 기분은 어땠을까. 적어도 크리스 마틴은 매우 감격한 것 처럼 보였다. 게다가 사운드 좋기로도 유명한 일본 공연 시스템이다보니 그는 계속 무대 이곳 저곳을 누비고 심지어 객석으로 내려가 콘솔까지 뛰어가는 팬 서비스를 멈추지 않았다. 그런 서비스의 절정은 역시 본 공연이 끝나고 였을 것이다. 멤버 모두가 무대아래로 내려가더니 콘솔옆에 설치된 간이 무대에 올라 꽤 긴 인사말과 함께 어쿠스틱 기타 한대로 공연을 벌인 것. 그걸로 끝이었느냐. 물론 그렇지 않다. 다시 무대에 오른 크리스 마틴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소개합니다"라며 앨리시아 키스의 이름을 불렀다. 콜드 플레이 바로 전에 마린 스테이지에 섰던 앨리시아 키스는 그의 부름에 화답, 크리스 마틴의 노래에 맞춰 'Clocks'의 피아노를 연주했다. 모든 공연이 끝났다. 무대 오른쪽, 스타디움 바깥에서 불꽃 축제가 시작됐다. '마츠리'. 일본어로 축제다. 서머소닉은 축제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서머소닉 VS. 펜타포트
앞서도 말했지만 서머소닉은 최대한 밀집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그래도 광활하지만) 도심형 페스티벌이다. 모든 것이 일률적으로 통제되고 사전에 준비되어 있다. '에코 록'을 모토로 어디에나 분리수거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실제로 관객들도 모든 것을 분리수거한다. 뭐 좋다. 그러나 마쿠하리 메세가 대형 컨벤션 몰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야외에서 벌어지는 캠핑형 페스티벌에 비하면 관람회를 보는 느낌이 강하다. 공연이 끝난 후 볼 수 있는 재밌는 풍경이 있다. 아마추어 뮤지션이나 엔지니어링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대거 무대앞으로 몰린다. 그리고 방금 그 뮤지션이 어떤 장비를 어떻게 세팅해서 사용했는지를 불타는 눈빛으로 꼼꼼히 적어간다. 역시 좋다. 버브의 공연을 볼때다. 야, 이거 이래도 되는거야? 혼잣말이 나왔다. 공연이 훌륭해서? 물론 그렇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객석의 반응이었다. 한국에서 공연을 볼 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객석 호응도의 문제였던 것이다. 싱얼롱은 커녕 박수도 짧고 낮다. 적어도 내가 본 공연중 한국과 비슷한 호응도를 느꼈던 공연은 콜드플레이가 유일했다. 그런데 만약 똑같이 한국에서도 3만명 정도가 모여있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게 틀림없다. 얌전하기로 유명한 일본 관객의 실체를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니 왠만한 뮤지션들은 '땡큐' 이상의 멘트를 하지 않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반면 계속 '환타스틱' '퍼킹 크레이지'등을 연발하는 내한 공연에서의 멘트들이 단순한 립 서비스가 아님을 증거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유일하게 공연 후 만날 수 있었던 뮤지션인 고!팀은 한국 관객에 대해 "일본과 영국 관객의 딱 중간"이라 평했다. 물론 "크레이지 피플"이란 단어를 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단순한 호응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관객이 만들어가는 재미도 큰 몫을 차지하는 게 페스티벌의 묘미다. 펜타포트의 맛은 그저 공연에 있지 않다. 관객들이 준비한 온갖 깃발과 티셔츠, 그리고 코스프레 등등. 공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진화하는 속도보다 이를 사용하는 유저들의 속도가 훨씬 빠르다. 올해는 촛불 정국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대운하 반대, 2mb아웃 등의 구호가 적힌 깃발들도 보일 정도였다. 물론 그 색깔이 '빨갛기만'했느냐. 그렇지 않다. 언론탄압 중지라는 띠를 두른 여성들은 고스 룩으로 무장했으며 반정부 구호가 적힌 깃발은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The Battle Of Los Angeles>를 패러디해서 만든, 록 페스티벌에서만 볼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재치의 산물이었다. 여러 동호회는 모두 팀 셔츠를 제작해서 입고 나왔으며 글래스톤베리처럼 각양각국, 서로 좋아하는 밴드들의 이름의 깃발이 휘날렸다. 오프라인 UCC의 경연장이었달까. 서머소닉에서는 전무하다시피 했던 모습이다. 물론 야외형 페스티벌과 도심형 페스티벌이라는 다른 출발점이 있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후지 록 페스티벌에서는 주최측에서 마련한 공연 말고도 온갖 자발적인 이벤트가 열린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한국관객들이 일본관객들보다 우월하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화려하고 거대하기 이를 데 없는 서머소닉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가능한 이유는 전적으로 하나다. 시장말이다. 서머소닉 오피셜 굿즈를 판매하는 부스에는 실로 많은 양과 다양한 종류의 티셔츠와 수건등을 판다. 그런데 이걸 사려면 하늘의 별따기다. 공연장이 열리기도 전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관객들 때문이다. 공연이 시작되는 11시쯤 가면 극히 소량만 남아있고 매진된지 오래다. 장내에 마련된 HMV와 타워레코드의 지점도 문전성시를 이룬다. 끊임없이 손님이 들어 CD를 사간다. 물론 서머소닉 기념 사은품을 주는 탓도 있을테지만. 이런 상황에서 한국 관객의 열광적인 호응에 감동하고 있는 뮤지션에게 "그런데..사실 너희 음반 여기서 거의 안팔렸어. 한 천장이나 되려나..."라고 말해준다면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무리 썰렁한 반응을 보일지라도 왠만한 공연장은 초대권이 아니라 판매된 티켓으로 꽉 차는 관객들이 있고 본국에 못지 않은 음반판매 수입을 보장하며, 세계 어디보다 뛰어난 음향과 진행 시스템을 갖춘 그들의 인프라가 있는 한 해외 뮤지션들은 한국보다 일본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는 걸, 서머소닉은 말해줬다. 아울러 일본의 인프라와 한국의 관객들이 합쳐진다면, 가히 어느 뮤지션이나 앨범을 내자마자 달려올 페스티벌이 될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서머소닉은 내년에 10주년을 맞는다. 이를 기념하여 이틀간의 행사를 삼일로 연장, 도쿄와 오사카외에 서울에서도 여는 방안을 현재 추진중이다. 국내의 여러 기획사들이 이를 위해 서머소닉 측과 접촉중이다. 말만 들어도 입이 벌어지는 팀들이 이미 내년 서머소닉 참가를 확정지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만약 이 꿈의 페스티벌이 한국에서 열릴 때, 그래서 한국과 일본의 음악 문화가 동등한 선상에서 비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것은 어떤 화두를 던지게 될까.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프리미어 51호 원고의 원본.
by 김작가 | 2008/09/04 02:39 | 스토리 | 트랙백 | 핑백(1) | 덧글(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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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총천연색 at 2008/09/04 03:47
아으 멋드러진 융화.
생각만해도 자지러집니다.
Commented at 2008/09/04 10:4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은혈의륜 at 2008/09/04 12:22
아아아아아아아 펜타포트 자금만 있었으면 3일 가는건데 말입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확실히 엘르가든이 시간 덜 채운게 아쉬웠지만 그덕에 지하철 안놓쳐서 다행이디고 했어요 :D
Commented by ddinne at 2008/09/04 14:59
아, 프란의 사슴같은 눈을 보셨다니..부럽습니다.
그나저나 카사비안 공연 놓친게 한이네요....
Commented by 자그니 at 2008/09/04 15:11
아니 그런데, 대체 영국관객들은 어느 정도란 말야?....
Commented by 사이동생 at 2008/09/04 15:23
펜타취소.....유일하게 후회하는건 디토를 못 봤다는것이...ㅠ.ㅠ..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도롱이 at 2008/09/04 16:29
김작가님 글좀 가져갑니다 아 쓰라린속...
Commented by 여름 at 2008/09/04 17:10
눈팅만 하다가 몇자 적습니다.
카사비안의 톰은 액슬과 커트의 조합이 아닌 블랙사바스 시절의 젊은 오지가 생각나던데요.^^ 무대액션까지 느릿한게...
사진엔 톰이 너무 날씬하게 나온것 같습니다.
가슴의 커다란 꽃에 대한 응큼한 오해는 풀렸습니다.
Commented by 빰빰빰 at 2008/09/04 17:40
으.. 폴웰러 정말 보고싶어요
Commented by 물빛도시 at 2008/09/04 18:42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정말 맛깔나게 잘 쓰세요...^0^)/
트레비스 프란의 눈동자 표현 정말 죽이시네요! "겨울의 쪽빛 호수"
매우 동감백만표입니다...ㅎㅎ
섬머소닉은 해마다 반응이 아주 좋아지고 있습니다...ㅎㅎㅎ
그나마 미친 관객들을 본건 작년에 fall out boy때랑 맥시멈 더 호르몬때...
저두 패닉엣더디스코랑 쿡스 실망했어요...ㅠ.ㅠ
버브 리처드의 카리스마는 정말...아무도 못당할 듯...!! 최강!!
굿즈중에서 큰수건 사려고 8시인가까지 공연장 갔는데..못샀어요...ㅠ.ㅠ
이 글 보니 펜타랑 섬소때의 감동이 새록새록...^-^
Commented by lee at 2008/09/04 19:40
맛깔난 글...
Commented by 팻보이 at 2008/09/04 19:47
펜타는 매년 가는 거지만 어떻게든 썸소를 한 번 가봐야할텐데... -_-;
Commented by rockholic at 2008/09/05 09:51
저도 펜타포트랑 썸쏘 둘다 다녀왔는데~ 감동이 막 되살아나네요~
물빛도시님처럼, 패닉앳더디스코는 정말 실망 그자체였고, 쿡스도 분위기 살짝 다운이었죠. 그래도 콜드플레이, 프로디지, 팅팅즈, MGMT 최고였어요. 흑
Commented by 자오 at 2008/09/05 11:59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다녀온 것 같은 감동이 무럭무럭- ㅠ_ㅠ
Commented by 쏘닉 at 2008/09/05 13:52
전 작년에 다녀왔는데요, 오피셜 티셔츠 사려고 일곱시 반에 출발,
아홉시 도착, 엄청난 라인을 보고 현기증, 결국 열한시 반에 천막 입성!!
두시간 반 기다려서 겨우 살 수 있는 자리에 섰는데 이미 품절 -_-; 나 뭐한거니... ㅠㅠ
꼭 씨디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음악을 둘러싸고 많은 기회와 많은 돈이 오가고 있는 게 제일 부러워요. 분야를 막론하고 기념품이나 소장품목에 대한 작은 욕심들이 결국 모든 문화를 투명하고 확실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그나저나 공연 끝나고 아마추어 아티스트들 모인다는 건 꽤 흥미로운 얘기네요. 공연 하나 끝나자 마자 개밥 하나 사들고 후다닥 스테이지 이동하는 거에만 정신 팔려서 그런 건 관찰 못했는데.
Commented by am at 2008/09/05 16:29
후아. 잘읽었어요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인터뷰때문에 바인스는 보시지 못하셨나봐요
후기 기대했는데ㅠ_ㅠ
Commented by nibs17 at 2008/09/06 02:47
CD 왜 사요? 라는 말이 현실과 인터넷을 가리지 않고 당연한 질문이 되는 현실에서는 좌절감밖에 남지 않네요.
Commented by 정훈군 at 2008/09/07 19:19
궁금한게 있는데 우리나라 관객이 일본과 영국 관객 딱 중간이라는게 무슨 뜻이죠? 호응도가 그정도라는거 같진 않은데. 영국 라이브 동영상 보면 우리나라 관객 호응도보단 낮아보이는데.
김작가님 대답 좀 부탁드려요.
Commented by 말쓰걸 at 2008/09/08 00:06
MGMT!!!
Commented by ---- at 2008/09/11 14:31
신인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MGMT가 과연 2008년 데뷔한 신인으로 불리기에 마땅한 지 잘 모르겠네요. 게다가 비치보이스는 좀 뜬금 없는 것 같은데.
Commented by 쉴즈 at 2008/09/20 21:14
앗,, 원본이닷!! 저도 이번 여름에 펜타와 썸머소닉을 다녀왔습니다. '선택과집중'하려했지만; 섹피도 못보고, 핫칩,프라텔레스 다 버렸는데..ㅠㅠ 교지에 썸소를 에세이로 써보려는데 펜타와 비교하면서 써볼까 궁리중이었어요.그런데 프리미어지에 김작가님의 글을 읽고 깜짝 놀랐어요. 역시 같은 곳을 가보고 느낀점은 비슷비슷하구나 라는 생각에요.근데 전 짧은 글을 써야되서 비교하면서는 분량때문에 못쓰고 썸소얘기만 써야할 것 같네요^^; 아무래도 소재가 같아서 김작가님 글이랑 비교해보게 되는데 좌절중이에요. 하하;;
Commented by 김작가 at 2008/09/20 22:56
쫄지마세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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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물론 100% 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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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위에 코끼리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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