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

가끔 술먹고 필름이 끊기는 일이 있다. 경험상, 그런 일이 벌어지면 묻어두는 게 낫다. 알면 다치는 경우가 많다. 그저 다음날 주변사람들의 싸늘한 시선만으로도 반성의 시간을 갖기에는 충분한 동기가 된다. 만약 구체적인 내용을 파해친 끝에 잃어버린 시간이 복기라도 됐다가는, 그건 반성을 넘어 자학의 세계로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사건의 전모가 총체적으로 드러나면 때로는 자살 충동이 들 수도 있다. 그러니 묻어둬야 한다. 영원한 미스테리로 남겨둬야 한다.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경구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120%의 기능을 한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하자. 현금 한뭉치가 가방에 들어있다던가 온 몸에 칼자국이 낭자하다던가 하다못해 지갑속에 넣어두었던 콘돔이 없어졌다던가 하면, 머리를 감싸쥐고 괴로워할 수 밖에 없다. 기억에는 없지만 현실에는 버젓이 존재하는 증거들이 독기를 내뿜으며 무엇인가를 웅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밤의 뒤풀이로 엉망이 된 집안을 청소하고자 새벽에 부지런을 떨다가, 저 CD를 발견했다. 누군가의 이름이 없다는 건 모든 게 이 방에서 일어났다는 얘기. 그리고 느즈막히 눈을 떴을 때의 그 상황. 도대체 지난 밤 무슨 일이 있었는가. 일어나선 안되는 일이 일어난 건 아니겠지. 그러면 진짜 자살할테다.

그나저나 이글루스에 연애밸리라는 게 생기고 성황을 이루고 있는 모양이다. 싸이월드를 떠난 여러 이유중의 하나가 그 넘의 사랑타령 분위기가 유치해서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인데, 이제 이글루스도 떠날 때가 다가오는 건가.
by 김작가 | 2008/08/31 04:35 | 상수일지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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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소요 at 2008/08/31 05:27
나도 연애 밸리 생긴 거 싫어, 느끼해
Commented by 기재호 at 2008/08/31 05:31
sk컴의 이데아는 연애인가 봅니다.
Commented by sang at 2008/08/31 10:13
상관하지 마시고 그냥 남으시죠.. ^^;

연애밸리가 생겼다지만 어차피 보지도 않기 때문에 사랑타령 분위기는 (아직은)못 느끼고 있어요. 싸이월드의 분위기도 그닥 모름.. 그러거나 말거나 (적응된 걸까)
저 나름으로 혼자 타령이야 종종 합니다만.
Commented by 자그니 at 2008/08/31 13:11
그동안 쓴 섹-칼럼들을 -_- 모두 연애밸리로 보내보는 거다... 후후후...
Commented by 만나 at 2008/09/01 01:25
회사 초기 시절, 싸늘한 시선을 느낀 후로 다 덮어줄 사람들하고만 마셔댈 줄 아는 요령이 생겼죠. 가끔은 무너지기도 합니다만,,암튼 사건의 전모는 묻어두시길.헤헤
Commented by 비리 at 2008/09/01 10:17
저는 연애밸리를 지지합니다...으하하하하!
그리고 저 사인CD...흑..

;ㅅ;)흑...
Commented by hide at 2008/09/01 15:42
뭐 연애밸리가 아니라 이성간 키워배틀 밸리로 발전하고 있으니... 염려하실 필요는 없으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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