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절


하루 종일 일에 치여 뉴스도 못보다가 잠깐 포털을 봤더니
이언이 죽었다고 한다. 오토바이 사고.
한남 고가라고 하니 전에 몇번 가본 적이 있어 정확히 위치도 알 것 같다.

그와는 일면식도 없다. 그렇다고 팬이었던 것도 아니다.
심지어 그가 나온 영화나 드라마를 본 적도 없다.
얼굴도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묘한 기분이다.

작년 11월 1일이었을 거다.
MBC라디오의 '잠깐만'대본을 막 쓰기 시작했을 때다.
방송대본을 써본 경험도 미흡한데다가
230-240자 내외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게
버겁기만 해서 낑낑대고 있을 때다.

그때 출연자가 이언이었다.
PD에게 그게 누구냐고 물었고
이번에 '심심타파' DJ를 맡게 된 친군데
커피프린스로 떴다고 했다.

아 그렇군요.
네 그렇지요.
그럼 대본써서 넘길께요.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모델 출신 탤런트라...
선입견이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자료를 뒤져보다보니
아 이 친구, 그래도 꽤 진지하네
어라, 게다가 음악도 완전 좋아하네?
으흠, 상당히 치열하게 살아왔구만.

그러면서 써서 넘겼다.
메시지야 당연히 그렇듯 쌀로 밥짓는 얘기지만
메시지를 도출하는 경험담은 그래도 좀 특이한 게 많았다.
그래서 기억한다.

그때 대본을 뒤져보니 이런 문장이 있다.

 

언제나 팽팽한 풍선같이 살아라.

언제나 뜨거운 태양처럼 살아라.

언제나 잔잔한 호수처럼 살아라.

언제나 예민한 날짐승과 같아라.


아마 그의 미니홈피 다이어리를 참고해서 쓴 문장이었을 거다.
본인이 생각한건지 어디서 본 건지는 모르겠으나
아, 이거네 싶어서 바로 대본에 옮겨 썼다.

다른 출연자들과 마찬가지로
녹음하는데 가보지는 않았다.
아마 한 시간쯤 걸렸겠지.

그 뒤로 주욱 잊고 있었다.
봄철 개편때 심심타파도 그만 둔 모양이다.

내가 쓴 대본을 읽은 사람이
그렇게 어이없이 가다니
세상 참 부질없다 싶다.

옷깃도 스치지 않은 인연이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러고보니, 향년 이십칠세로군.

참 힘든 나이다. 스물일곱.
by 김작가 | 2008/08/22 02:28 | private press | 트랙백 | 핑백(1)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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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스물일곱 at 2008/10/20 14:45

... 대한 반발심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옛날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   *    * 방금 김작가 블로그의 글을 뒤지다가, 이언이 죽은 날 쓴 포스팅의 마지막 글귀가 눈에 띄었다. “참 힘 ... more

Commented by 랑새 at 2008/08/22 02:31
그러게요ㅡ 같은 나이 사람의 부고를 듣는 기분이 참 이상하네요.
마침 비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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