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인 이석원은 늘 새 앨범이 나올 때 마다 자신만만했다. 한참 작업중에 주변에서 새 앨범 어떠냐고 물어보면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마, 다 죽여." 그런 이석원이 변했다. 4년만의 새앨범이자 5집인 <가장 보통의 존재>의 작업 기간 내내 그는 "잘 모르겠다"라는 대답만 하곤 했다. 녹음과 믹싱, 마스터링까지 모든 작업이 끝난 후 그는 이 앨범을 들을 수 없다고 했다. 들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어떠냐는 심플한 질문에,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여전히 모르겠다고 했다. 다시 작업하고 싶은 마음 뿐이라고 했다. 그래도 딱 한 곡만 함께 들어보자고 했다. 발매를 며칠 앞둔 어느 날 밤, 인터뷰를 빌미로 그와 만난 자리에서였다. "'아름다운 것' 빼고 아무거나." 1번부터 10번까지, 순서대로 제목을 불렀다. "아니야." "그거 말고." "다른 거 다른 거." 이석원은 결국 '아름다운 것'을 골랐다. 촉촉한 드럼 터치가 시작되고 뮤트를 살짝 건 기타 리프가 흘렀다. 그리고 이석원의 허밍으로 노래가 시작됐다. 첫 후렴구가 지나가고 2절이 시작됐다. "어떤 사람을...." 묻지도 않았는데 그가 말하기 시작했다. "....정말 좋아해서 사귀게 됐는데 세상 모든 것을 다 얻은 것 같았어. 그런데 불과 몇달만에...식어버렸어." 그는 이 노래가 떠오르던 순간을 정확히 기억한다. 집에서 작업실로 향하는 차 안에서였다. "미치겠는거야. 너무 가슴이 아파가지고. 멜로디와 가사가 정확히 떠오르는 거야. '그대의 익숙함이 난 미쳐버릴 듯이 힘들어/당신은 내 귓가에 소근대길 멈추지 않지만/ 하고 싶은 말이 없어질 때까지 난 기다려/그 어떤 말도 이젠 우릴 스쳐가' 이 노래, 진짜 슬픈 노랜데 노래 자체가 나를 또 슬프게 해. 이 노래를 들으며 나 스스로 울던 시절이 있었는데, 더이상 눈물이 나지 않고 감정 자체가 휘발되버렸는지 아무 느낌이 없어. 듣기도 참 너무 힘들고, 너무 아파. 너무 슬퍼." 가장 특별했던 것이 가장 보통의 존재가 될 때의 그 황막함. 감정은 휘발되고 사실만이 건조히 남아있을 때의 그 헛헛함을 언니네 이발관은 그들의 다섯번째 작품으로 그려낸다. 열 곡 모두 하나의 테마를, 서로 다른 관점과 이야기를 통해 서술하고 상영한다. 이 앨범을 설명하면서 '들려준다'라는 음악과 어울리는 단어를 쓰지 않는 이유는 이 앨범을 플레이 하면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영화를 보는듯 하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는 듯 하기 때문이다. 공감각적 반응을 유발시키는 컨셉트 앨범, <가장 보통의 존재>를 규정하는 키워드다. 언니네 이발관은 델리 스파이스와 더불어 한국 모던록을 창시한 밴드다. 아마추리즘으로 위장한 간결하고 세련된, 한국 최초의 인디 앨범중 하나였던 <비둘기는 하늘의 쥐>, 아마추어리즘의 연장을 기대했던 이들에게 '왜 이리 연주를 잘해!"라는 뜨악한 반응을 이끌어냈던, 그러나 시간이 갈 수록 재평가되고 숭배하는 이들이 늘어갔던 <후일담>은 그들의 음악적 명성을 드높였다. 공백과 멤버 교체를 거쳐 발표했던 <꿈의 팝송>과 <순간을 믿어요>는 상업적 성공을 안겨줬다. 1집과 2집이 시즌 1이라면, 3집과 4집은 시즌 2였던 셈이다. 그리고 <가장 보통의 존재>는 그들의 세번째 시즌을 알리는 앨범이다. "나는 이 앨범을 첫번째 앨범이라 앨범이라 생각한다"는 이석원의 말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그에게 이 앨범은 스스로 뮤지션임을 자각하고 만드는 첫 앨범이기 때문이다. 1집과 2집이 젊은 패기로 만든 앨범이라면, 3집과 4집은 돈을 벌기 위해 만든 앨범이었다. 4집 이후 그는 뮤지션이라기 보다는 사업가로 성공의 길을 걷는듯했다. 2005년 인사동에 개업한 카페 '살롱 드 언니네 이발관'이 성공을 거뒀고 음악계에서는 그가 신흥재벌이라는 둥, 인사동 돈은 싹 쓸어 모은다는 둥하는 소문도 퍼졌다. 모든 예술은 고통의 산물이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언니네 이발관에게 더 이상 기대할 지점은 없어 보였다. 아니, 미래도 불투명했다. 이석원과 더불어 밴드의 투톱을 맡고 있던 기타리스트 이능룡이 탈퇴했기 때문이다. 음악이 아니라 사업에만 몰두하는 밴드의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밴드는 다시 재건될 수 있을까. 불확실했다. 어쩌다 가끔, 세션을 써서 하는 공연은 환호보다는 실망을 안겨줬다. 그들을 아끼는 사람들은 내심 걱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을 반전시킨건 이석원에게 일어난 어떤 사건이었다. "죽어도 밝힐 수 없다"는. 본인만이 알 그 사건은 이석원에게 정말 음악을 하고 싶다는 욕구와 당위를 불렀다. 결심한 날 밤, 이석원은 이능룡에게 한 통의 문자를 보냈다. '미안하다,' 둘은 다시 만났고 이석원은 그 순간부터 가게에 나가지 않았다. 음악에만 매달렸다. 어느 때 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공백을 극복하느라고? 그렇지 않다. 언니네 이발관은 그들이 해왔던 모든 방법론을 버렸다. 습관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시도와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당초 이 앨범은 지난 연말즈음 발매될 예정이었다. 12월 말, 앨범 발매 콘서트까지 열었지만 그 순간까지도 녹음의 절반이 채 끝나지 않았을 정도였다. 어차피 늦어진 것, 끝을 보자는 일념이었다. 잠시 숫자로 이야기 해보자. 곡 작업 3년, 레코딩 1년, 애초에 저예산으로 제작하려던 계획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여 당초 예산의 3배가 소요됐다. 앨범 발매일은 미뤄지고 미뤄져 5차례 변경되었다. 보통 한 번, 많아야 두번이면 끝나기 마련인 마스터링조차 수차례 했을 정도니, 믹싱 횟수를 말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숫자가 필요할 지는 쉬이 짐작도 되지 않는다. 엔지니어들은 정말 진지하게 이석원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했다. 머리가 빠지고 속을 다 버리고 온갖 병을 얻었다. 신경증까지 도져 의자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차를 10여회 바꿀 정도가 됐다. 인간으로 말하자면 10개월을 훌쩍 넘겨, 남들 돌잔치할 때 비로소 뱃속에서 나온 셈이다. 난산에 난산을 거쳐 태어난 아이지만, 비범하디 비범하다. 영롱한 광채가 풍기는 것도 아니오, 산천초목이 일제히 떠는 것도 아닌데 아이를 받아들고 지켜보는 모든 이들이 알 수 없는 기분을 느끼는 풍경이랄까. 이발관의 홈페이지에는 공지가 떴다. 이 앨범은 첫곡부터 끝까지 반드시 순서대로 들으라는, 일종의 사용설명서다. 어느 아티스트가 그것을 바라지 않겠냐만 그들이 굳이 공지까지 띄운 까닭은 이 앨범 자체가 하나의 스토리이자,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첫 곡의 아쉬움이 두번째 곡에서 보완되고, 다섯번째 곡의 여운이 여섯번째 곡을 시작하게 하는 동인이다. 그리고 그 한 곡 한 곡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감정을 중첩시킨다. 굳이 사용설명서를 읽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첫 곡을 들으면 끝 곡까지 단숨에 듣게 된다. 잡념없이 오직 음악과 마주하게 된다. 탁월한 연설가의 강연을 듣는듯한 위압감도 없는데, 허기진 상태에서 먹는 라면 한 그릇의 자극도 없는데, 진실로 그러하게 된다. 열 곡의 노래가 모두 끝났을 때 드는 감정은 단어가 아니라 문장이다. 이 앨범을 미리 들었던 기자들은 이런 식의 반응을 보였다. "음악을 듣는데 배가 고파져서 냉장고에서 뭔가를 꺼내 먹었어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어른이 되었다는 걸 인정하고 말았어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어요." 그들이 말하는 문장의 소감들을 나 역시 느꼈다. 앨범을 처음 들은지 어언 일주일이 지났지만 다른 음악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첫 플레이와 마찬가지로 지금까지도 첫 곡을 듣는 순간, 끝까지 볼 수 밖에 없다. 특정한 장면이 아니라, 타이틀 롤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게 되는 인생의 영화와 마찬가지로. 이발관은 한동안 라이브에 재미를 느꼈었다. 일년에 100회 이상의 공연을 하며 그 공연을 모두 매진시키곤 했다. 여느 모던 록 밴드의 라이브와는 달리 심지어 댄서블하기까지한 공연이었다. 그러나 <가장 보통의 존재>를 들으면 라이브가 가능할까, 라는 의문이 든다. 이석원도 애써 부인하지 않는다. "이제는 스튜디오 뮤지션이 되고 싶다" 발매 공연을 얼마 안남기고 있지만 마음은 온통 스튜디오에 다시 가있다. 앨범에 누락된 곡들을 모을 수도 있고, 아예 또 새로운 노래를 만들 수도 있다. 어서 다음 앨범에 대한 마음 뿐이다. "내 나이를 생각하면, 얼마나 더 음악이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가장 보통의 존재>는 그런 걱정을 기우라고 밖에 느낄 수 없게 하는 앨범이다. 한국, 아니 여느 외국 뮤지션이 불혹을 앞두고 그동안 걸어왔던 길과는 다른 새로운 길을 걸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전복과 해체가 아닌, 재구성과 재창조의 길을 말이다. 방법론은 달라졌다 해도 <가장 보통의 존재>는 그동안 언니네 이발관이 축적해온 정서의 한 구석을 극단적으로 표출하는 작품이다. 직선처럼 이어지는 일상이 갑자기 점선이 되는 순간, 맹세와 다짐의 부질없음에 대한 은유말이다. 도저히 쿨할래야 쿨할 수 없어 속으로만 끙끙 앓으며 혼자 지지고 볶으며 속물처럼 살아가는 우리들의 저열함 말이다. 돌이켜보건데, 언니네 이발관의 정서는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자 삶에 대한 회한이자 찌질함에 대한 인정과 부정의 경계였다. 그러나 그것들을 모두 끌어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범부의 인생이자 숙명이다. <가장 보통의 존재>는 그런 삶에 대한 치열하고도 사소한 묘사다. 언어와 소리로 섬세하게 직조된, 희뿌연 거울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다. 밴드의 홈페이지 한 구석에 이런 문장이 씌여있다. '사라져가는 모든 것에 대한 미소'. 이 앨범을 설명할 수 있는 그 이상의 문장은 떠오르지 않는다. 이발관은 이 앨범에 대한 어떤 일반적인 홍보도 하지 않기로 했다. 방송출연도 하지 않고, 인터뷰도 최소한으로만 하기로 했다. "정말 좋은 것이라면 홍보가 필요할까"라는 의문이 하나다. 그리고 음악 말고 다른 형태로 이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할 자신이 없어서다. 물었다. "이 앨범이 있는 그대로의 이석원이기 때문일까요?" 그는 침묵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이, 깊어가고 있었다. 시사인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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