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화 VS 이효리
과연 음반 시장이 불황이긴 한 것일까. 요즘 가요계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그럴만도 하다. 줄줄이 컴백이다. 연초부터 토이, 김동률 등이 오랫만에 새 앨범을 들고 나오더니 상반기 브라운관의 핫이슈는 모두 가수들이 장악했다. 비록 음악이 아니라 버라이어티 쇼 프로그램을 통해서긴 했지만 아무튼. 그러더니 결국, 마치 여름 극장가를 블록 버스터가 휩쓸듯 대형 가수들이 대거 돌아오고 있다. 엄정화와 이효리, 원더걸스와 빅뱅, 그리고 서태지와 김건모까지. 야릇한 구도가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그럴 예정이다. 그 중에서도 최근의 가요계를 가장 뜨겁게 달궜던 이슈는 엄정화와 이효리의 동시 컴백이었다. 각각 90년대와 2000년대를 대표하는 섹시 아이콘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돌아온 것이다.

사자와 호랑이가 싸우는 풍경을 거의 볼 수 없듯, 비슷한 팬층을 갖고 있는 덩치 큰 가수 끼리는 같은 시기를 피해서 활동하는 게 가요계의 오랜 관계였다. 자칫 서로의 파이가 줄어들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슈가 분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타 작곡가와 프로듀서의 풀이 한정된 탓에 같은 작곡가의 다른 노래가 같은 시기에 깔리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기 때문인 탓도 있다. 그런데 붙었다. 그것도 이효리와 엄정화다. 물론, 작심하고 서로 진검승부를 펼친 건 아니다. 2주 정도라는 밭은 시간차가 둘의 컴백 타이밍으로 잡힌 데는 몇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우선, 올림픽이다. 월드컵과 올림픽 기간은 전통적으로 문화 시장의 비수기다. 그 기간 동안 국민들의 관심은 당연하게도 온통 베이징으로 쏠리기 마련이다. 대박을 노리고 앨범을 내봤자 쪽박 찰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게다가 8월 초에는 서태지가 컴백하겠다고 진작 선전포고를 한 상태다. 그리고 둘 다 댄스 음악으로 승부를 내는 가수. 그렇다면 대기가 한창 달아오를 때 치고 올라오는 게 시기적으로 유리하다. 그래서 이례적으로 경쟁이라는 프레임을 형성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실 이효리나 엄정화나 이번 앨범이 갖고 있는 의미는 클 수 밖에 없다. 우선 엄정화. 90년대의 섹시퀸이자 댄싱퀸이었던 그녀는 정말 한국의 마돈나가 되고 싶었던 듯 하다. 마돈나가 90년대 후반 당대의 일렉트로니카 뮤지션과 작업하며 엔터테이너에서 아티스트로 격상했듯, 엄정화는 <Self Control>과 <Prestige>등 지난 두 장의 앨범에서 달파란, 정재형, 지누, 페퍼톤스 등 실력파 일렉트로니카 뮤지션들과 함게 했다. 결과는? 비평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뒀다. 평론가들은 기꺼이 이 두장의 앨범에 손을 들어줬다. 'Come 2 Me'는 2007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일렉트로니카/댄스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엄정화에게 아티스트 못지 않게 중요한 건 엔터테이너였다. 섹시 퀸이자 댄싱 퀸의 자리를 수성하는 거였다. 그 누구도 뺏어갈 수 없었던 여왕의 권좌를 2003년 이효리가 쟁탈했을 때 내심 복잡한 심경이 아니었을까. 세월만 탓하고 있기에는 그녀의 야심이 건재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번 앨범은 다시 대중의 열광을 되찾아와야는 절대적 미션을 부여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이효리도 마찬가지다. 돌이켜보건데 '텐 미니츠'와 '애니 모션' 이 가수로서의 이효리에게는 천장이었다. 2집 <Dark Angel>의 'Get Ya'는 등장과 동시에 표절 논란에 시달려야했다. 단순히 논란으로 끝난 게 아니라 기정 사실화되는 분위기까지 몰고 갔다. 핑클 시절부터 인연을 맺었던 DSP와 결별하고 가요계의 마이더스로 통하는 김광수의 엠넷미디어와 계약을 맺은 후 미니 앨범을 발표했다. 여기에 담겨 있던 미디엄 템포 발라드 '그녀를 사랑하지 마'는 '왜 이효리가 씨야짓을 하고 있냐'는 비난을 받았다. 게다가 연기자로 영역을 확장하려는 시도는 번번히 시청률 참패로 돌아왔다. 남은 건 '여자 유재석'이라는 찬사를 받을만큼 탁월했던 방송 진행능력. 만약 가수로서 존재감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이효리의 길은 MC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됐다. 그게 어디냐고? 천하의 이효리가 MC로만 굳어지기에는 뭔가 너무 아쉽지 않은가? 본인에게나 업계에게나.

엄정화와 이효리의 컴백작품에 이런 배경에서 나오는 절치부심이 묻어나오는 건 그래서 당연지사다. 다시 엄정화, 그녀가 손을 잡은 파트너는 YG다. 빅뱅을 대성공시키며 아이돌 시장에 파란을 일으킨 YG의 가장 큰 자산은 확실한 대중적 코드에 SM이나 엠넷미디어와는 차별화된 프로듀싱 능력이다. 엄정화는 그 능력을 샀다. YG의 힙합적 성격에 끌려만 가지도 않았다. 원타임의 테디가 작곡한 '디스코'는 YG특유의 감칠맛나는 사운드 메이킹은 살리되, 엄정화가 그동안 추구해온 일렉트로니카가 주도권을 잡고 있는 노래다. 절창의 보컬리스트는 아니되 탁월한 표현력을 가진 엄정화의 보컬도 최근 그 어느 앨범보다 잘 살아있다. 여기에 빅뱅의 탑이 랩 피쳐링을 맡음으로서 엄정화를 잘 모르는 세대의 시선까지 붙잡는데 성공했다. 여느 걸그룹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아니 혼자서도 그 이상의 존재감을 펼치는 뮤직 비디오 역시 공개와 동시에 큰 관심을 끌었다. 지난 두 장의 앨범에 비하면 확실히, 엄정화는 다시 옛 영광을 되찾을 가능성이 높다.

이효리의 컴백도 성공적으로 보인다. 순차적으로 새 앨범에 관련된 화보와 뮤직 비디오 티저를 공개하며 서서히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온 그녀의 'Hyorish'는 예전에 비해 분명히 나은 보컬 실력과 음악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타이틀 곡인 '유 고 걸'을 비롯, 대부분의 노래에서 목소리를 기계로 매만진 흔적이 많이 사라졌으며 현재 영미권 여성 뮤지션들의 최신 트렌드인 복고풍 소울의 채취도 느껴진다. '천하무적 이효리' '이발소집 딸'같은 자전적 노래들을 통해 가수로서의 이효리와 방송에서의 이효리로 나뉘었던 다중적 캐릭터를 하나로 모으는데도 성공하고 있다. 전자가 섹시함, 후자가 털털함을 대표하는 캐릭터였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두 명의 이효리가 만나고 있는 것이다. 뮤직 비디오 표절 논란도 적극적으로 대처, 큰 문제없이 극복했다. 사실 이효리는 뭘해도 욕먹고 뭘해도 찬사받는 이슈 메이커임을 생각하면 이번 논란은 가벼운 수준이었다.

시작은 그렇게, 양쪽 다 성공적이다. 그리고 현재까지 시장에서의 결과는 이효리가 압도적으로 우세인듯 하다. '유 고 걸'이 등장과 동시에 모든 온라인 음원 차트에서 1위를 석권한 반면, '디스코'는 1위를 놓친 차트가 많았다. 엠넷미디어의 전방위적 마케팅에 상대적으로 '디스코'의 열기가 주춤한 측면도 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이효리의 승리로 올 여름이 굳어질 조짐이다. 그러나 어차피 이효리와 엄정화는 같은 듯 다른 필드에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 이효리가 철저히 방송과 젊은 층 중심을 타겟으로 하고 있다면, 엄정화는 90년대를 관통했던 이들에게는 아직 누나이자 언니다. 보다 소구계층이 넓다는 얘기다. 그래서 장기적 시선이 필요하다. 90년대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섹시퀸, 댄싱퀸으로 부르는 게 어색하지 않은 여성 연예인은 대한민국에 엄정화 하나다. 약 10년이 지났을 때 이효리는 어떤 위치에 서있을 것인가. 훗 날 가요계는 둘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그 하나의 전환점이 바로 올 여름에 놓여 있다.

한겨레 21 원고
by 김작가 | 2008/07/24 22:46 | 스토리 | 트랙백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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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玄雨 at 2008/07/24 22:52
전 음악 자체로는 엄정화 쪽이 더 끌리더군요. 일반 방송은 잘 보지 않아서 예능과 티비에 보이는 이미지는 잘 모르겠구요.
Commented by 김작가 at 2008/07/24 22:56
저도 그렇습니다. 귀에 쏙쏙 박히죠. 반면 이효리는 역시 빌보드 클럽팝같다는 느낌. '훅'이라는 측면에서 약한 감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어린 친구들은 그런 노래를 더 좋아하더라구요;;
Commented by highenough at 2008/07/24 23:14
저도 모르게 디스코 계속 흥얼거리고 있더라고요. yg의 능력과 엄정화의 능력이 절묘하게 만나는 점이랄까요.. 아무튼 아직 건재하고, 섹시한 '언니'의 느낌을 변함없이 준다는 점만으로도 저한테는 엄정화 쪽이 멋있더라고요.
엠넷미디어의 정말 엄청난 마케팅이 오히려 거부감 드는 면도 있고요.. 유고걸도 꽤 많이 세련되어져서 괜찮은데도 말이죠.
Commented by 음반수집가 at 2008/07/25 00:06
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매우 긍정적이네요. ^^
Commented by Mh_Kāśyapa at 2008/07/25 01:04
엄정화는 파워풀하지는 않지만 뭐랄까 가사를 정확하게 표현해주는 해석력이랄까 그런 게 있달까요......이효리의 노래는 음률에서 먹고 들어가도 가사의 맛이 꽂히진 않잖아요. 여전히 엄정화 언냐는 여신이십니다, 라는 느낌이죠.
Commented by Gham at 2008/07/25 03:03
움.. 이효리 세탁소집딸이 아니라 이발소집딸 일텐데요.
Commented by 김작가 at 2008/07/25 03:11
아익후, 고쳤습니다. 윤도현이랑 순간 햇갈리;
Commented by 속임수 at 2008/07/25 04:16
어익후 안냐심까 김작가님. 되게 친하게 인사했지만, 뭐 거의 확실하게 안면이 없을겁니다.;

예전에 스포츠서울인가 일간스포츠에 김작가의 악담음담이라는 꼭지를 연재하셨죠? 그때부터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는 잡지들에 꽤 많이 보이시더라구요. 필름 2.0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이글루까지!!! 낄낄. 어쨌든 그냥 반가워서 말이죠.;;;
Commented by 정훈군 at 2008/07/25 12:12
'디스코'는 YG특유의 감칠맛나는 사운드 메이킹은 살리되, 엄정화가 그동안 추구해온 일렉트로니카가 주도권을 잡고 있는 노래다라는 데는 좀 의문이 생기네요. 사실 빅뱅은 1집이 흑인음악이고 2집부터 방향성이 달라지면서 거짓말부터는 내놓은 곡들이 일렉트로니카계열이잖아요. 게다가 렉시 3집에 실릭 타이틀곡이었던 하늘위로도 일렉트로니카였고 요즘 힙합도 남미 쿵짝 리듬에서 일렉트로니카계열로 넘어갔었고 엄정화씨가 주도권을 잡았다기보다는 현재 주도권자체가 일렉트로니카고 그 붐에는 빅뱅을 포함한 yg의 영향이 오히려 크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음악자체는 yg에게 맡기고 그 음악을 무대에서 잘 살려낸 게 엄정화씨라고 생각함. 나이가 나이인만큼 섹시한 매력을 별로 못 느끼겠지만 확실히 디스코라는 곡 맘에 드는데 엄정화씨외에는 그만한 매력으로 부를만한 가수가 있는지.
Commented by 정훈군 at 2008/07/25 12:20
물론 엄정화씨도 일렉트로니카계열로 넘어가긴 했지만 Come 2 Me와 확연히 다른 색깔. 그냥 같은 장르일뿐이죠. 디스코는 당연히 작곡과 프로듀싱을 맡아서 그렇지만 하늘위로부터 계속된 전형적인 yg색깔이라고 보여집니다.
Commented by 다비 at 2008/07/25 16:58
몇년만에 뮤직비디오를 티비에서 봤는데 조명이 많이 좋아졌더라구요. 근데 애들이 영 아니어서 딴데보다가 디스코 마지막 30초쯤 보고 그나마 쟤가 낫다. 누구니? 했는데 엄정화라 그래서 과연 10여년전에도 있던 그 엄정화인지 깜짝 놀랐었어요. 컴백이었군요.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08/07/26 07:01
예전에 모 프로그램에서 박진영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노래 잘 부르는 여가수는 엄정화라고 했었는데 전 그말에 동의해요. 라이브 실력은 좀 부족할지 모르지만, 그녀의 무대 장악력, 표현력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죠. 불혹의 나이를 앞두고 (혹자는 넘었다고도 ^^) 무대위에서 방방 뛰며 즐겁게 노는 그녀를 보면 저도 절로 즐거워집니다.

하여튼 엄정화는 가수로서도 배우로서도 제가 참 좋아하는 언니 ㅋㅋ
Commented by 누난나의MVP at 2008/07/26 18:30
와~ 이젠 이효리가 엄정화랑 비교도 당하고, 이효리가 많이 크긴 컸나 봅니다.ㅋㅋㅋ 근데 자꾸 이렇게 기사에서 라이벌구도(?)로 몰고가면 누가 더 이쁘네 더 실력이 있네 없네 하면서 싸우는데 전 둘 다 좋아요.ㅋㅋ - 그래도 어려서 라기 보단 이미지자체가 상큼한 이효리쪽이 좀 더 좋은가? - 근데 음악성은 둘 다 비슷하지 않나요? 엄정화도 그다지 가창력이 뛰어난 편이라고는 생각해본적은 없는데..-_-
Commented by 조이플 at 2010/03/04 04:54
엄정화같은 가수가 아직 활동한다는 것에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요?
솔로 댄스 여가수의 전설이죠.. 엄정화가 없으면 아마 효리도 활동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Commented by 음악이조아 at 2010/03/06 21:30
모두들 엄정화씨가 가요계원조라고 칭하지만 댄싱퀸으로원조는 김완선씨 이며 후에는 나미씨가 있었죠.. 그리고 섹시 퀸으로는 룰라의 김지현씨가 있습니다. 섹시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던 90년대 중반 김지현씨가 섹스어필하다라는 뜻의 섹시를 사용하면서 언론에서 찬반까지 일으킬정도로 화제가 되며, 김지현씨가 입고나오는 옷이며 화장, 머리스타일까지 제한하기에 이르렀죠. 세대를 앞서가는것도 김지현씨90년대 방송활동이나 잡지를 보시면 아실듯. 그때 이 후로 이예린씨, 엄정화씨등등 많은 여가수들이 김지현씨가 터놓은 길을 밟으며 섹시 컨셉이 많이 나오게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앨범판매나 가요차트에 순위가 높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룰라이후 솔로 활동이 시원치않아지자 모두들 엄정화씨를 꼽고있는듯한데 정확한 표현으로는 엄정화씨는 나중에 영화출연이후 활발한 활동덕에 90년대에선 그다지 존재가 아니었음에도 재조명을 받고있습니다. 그냥 주저리 주저리 글남깁니당~
90년대 음악 포에버~ ^^
Commented by 딴지는 아니고... at 2010/04/05 18:00
딴지는 아니지만 님의 글에 잘못된 점이 몇개 있어서요...^^

첫번째 나미씨를 김완선씨 이후라고 표현하셨는데...분명하게 말하자면 나미씨가 김완선씨 선배입니다. 그리고 김지현씨를 엄정화씨...등 보다도 훨씬 높게 평가하시는데...솔직히 말해 김지현씨는 룰라때의 김지현씨 인지도를 말하는것이지 솔로라 나오고 나서의 김지현씨는 그녀의 의욕만큼이나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지는 못하셨죠...아무래도 솔로활동때 그녀의 가창력과 카리스마등이 룰라때에 비해 훨씬 떨어져서 일것 같다는...
그리고 엄정화씨는 나중에 영활출연이후에 재조명을 받고 있다고 하셨는데...님의 기억력에 비웃음이 나네요...가수로써의 엄정화씨 최고의 노래들이 언제적이었는지나 알고 계시는지...ㅋㅋㅋ
엄정화씨 4집,5집으로 활동시에는 나이트클럽에서 거의 매일 그의 앨범들을 들을 수 있었다는 웃지못할 에피소드가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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