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 최근 영국 셀레브리티계의 떠오르는 샛별이 있다. 아니다. 이미 떠도 너무 떴다. 얼마전에 그녀와 인터뷰를 시도했다. 영국 현지에서의 인터뷰는 물론이거니와, 이메일 인터뷰조차 시간이 없어서 못하겠다고 거절할 정도다. 이름은 베스 디토. 직업은 뮤지션. 가십이란 밴드에서 보컬을 맡고 있다. 무대에서든 기자앞에서든 사생활에서든 당당하다. 셀레브리티에 뮤지션이며 당당한 캐릭터라, 커트니 러브나 리즈 페어, 그리고 에이미 와인하우스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어쨌든 예쁘고 매력적인, 그러나 앙칼지고 공격적인 비치 캐릭터 말이다. '앙칼지고 공격적인 비치'는 맞다. 그러나 예쁘고 매력적이라는 건 틀렸다. 이 '예쁨과 매력'이 우리의 일반적인 통념에 의거한 것이라면 말이다. 그녀는 페미니스트다. 그리고 레즈비언이다. 여기까지 하자 없다. 그런데 몸무게가 자그마치, 95킬로그램이다. 음악의 역사상 후덕한 여성 보컬은 많았다. 주로 재즈 쪽 이었다. 그리고 그녀들 대부분은 무대에서도 후덕했고 옷도 후덕하게 입었다. 그러나 베스 디토는 후덕함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레깅스부터 란제리 룩, 글리터 룩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는다. 아무리 패션에 문외한인 나라지만, 저런 옷은 정말 한 몸매 하는 여자 아니면 소화 불가능한 (혹은 그렇다고 여겨지는) 스타일이란 건 안다. 어디 그 뿐인가. 겨드랑이 털도 깎지 않으며, 심지어 백인들의 필수품 데오그란트도 사용하지 않는다. 당신 곁에 그런 여자가 있다고 치자. 보나마나다. 놀림감이 되거나 하다못해 은따라도 당할 게 틀림없다. 다이어트가 여성의 기본 미덕처럼 여겨지고 옷에 몸을 맞춰야 하는 까닭에 사이즈는 물론이거니와 스타일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패션 풍토에서, 일년내내 겨드랑이털을 깎고 다녀야하는 그런 환경에서는 말이다. 서구라고 여기서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는가. 뚱뚱한 록스타라니, 개그 컨셉으로 나가지 않는한 놀림이나 받기 일쑤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뚱뚱함을, 레즈비언임을, 그리고 페미니스트임을 당당하게 밝힌다. "여자들은 고양이도, 펫도 아니다. 우리는 그저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 엿같은 길도 주저없이 건너는 사람들일 뿐이다." 베스 디토는 1981년 아칸사스에서 태어났다. 전형적인 미국 남부의 환경에서 자랐기에 어릴 때 부터 뚱뚱하다는 사실에 놀림을 받다가 어느 날 각성하여 파이터가 되었다, 라고 하면 드라마틱할테지만 그렇지 않다. 태어날 때부터 거대한 목청의 소유자였으며, 오히려 목소리를 좀 줄이기 위해 성가대에서 활동했지만 소용없었다. 게다가 워낙 먹는 걸 좋아했던 탓에 몸집도 컸다. 그러니 동네 꼬마남자애들에게도 꿀리지 않고 소녀들의 대장 노릇을 하며 자랐다. 그런 베스 디토가 페미니스트이자 레즈비언이 된 계기는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에서 나왔다. "아직 꼬마였을 때, 추수감사절에 남자들이 미식축구 시합을 보는 동안 여자들은 하루종일 부엌에 있는 걸 보며 미칠 것 같았다. 우선, 나는 요리나 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또한, 미식축구가 싫었다. 중학교 때 (내 정체성에 대한) 생각을 굳혔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기왕이면 '예쁜' 외모의 소유자면 좋을텐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베스 디토는 일갈한다. "사람들은 뚱뚱한 사람들에게 과체중 운운한다. 그러나 난 이말을 증오한다. 삶의 표준을 세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웃긴 게, 이 나라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처럼 뚱뚱하다. 그게 표준이다." 먹을 걸 진정 좋아한다는 베스 디토는 식습관을 바꿀 생각도 없다. 어릴 때 습관을 바꾸려 많은 시간을 허비한 끝에 얻은 건 병 뿐이었기 때문이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처럼 보이고 싶지도, 되고 싶지도 않다. 브리트니는 끔찍하다." 생각해보자. 만약 베스 디토가 말만 그럴싸한 뚱녀였다면, 결코 여장부의 위치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역시 본질은 음악이다. 음악 외적인 부분들이 그녀의 정치적 이미지를 담보한다면, 음악은 뮤지션의 순수한 에너지를 증거한다. 그녀의 공연을 보고 있으면, 동영상일 뿐인데도 땀이 절로 난다. 무대는 그녀에게 전장이다. 춤판이자 굿판이기도 하다. 객석으로 뛰어들고 관객들과 뒤엉키는 건 기본이다. 최근 국내에도 발매된 <Live In Liverpool>의 DVD에서 베스 디토는 쉬지 않고 소리 지르고, 쉬지 않고 춤춘다. 금색찬란한 글리터 타이즈에 반짝이는 가발을 쓰고 등장하더니, 펑크와 디스코, 개러지 록을 아우르는 가십의 음악에 맞춰 95킬로그램의 지방질이 동서남북으로 흔들린다. 그 때 마다 땀인지 기름인지 알 수 없는 액체가 사방으로 튀어댄다. 어느 순간 가발은 벗겨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살은 흔들리고 땀은 메이크업과 온통 뒤범벅된다. 역시,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실신할 지경으로 춤추고 노래한다. 애써 멋있어 보이려고도, 예뻐 보이려고도 하지 않는다. 객석과 혼연일체가 되어, 아니 객석을 압도하며 베스 디토는 이 도저히 몸을 가만히 내버려둘 수 없는 음악에 메시지를 담아낸다. 전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선구안을 갖고 있는 음반 프로듀서이자 기획자일, 소니 뮤직의 릭 루빈이 가십을 메이저에 데뷔시킨 건 베스 디토의 음악에 담겨있는 원초성과 정치성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릭 루빈이 계약서를 준비하게 만든 노래는 가십의 대표적 히트곡인 'Standing In The Way Of Control'이다. 은 부시의 동성결혼금지조치에 대한 항의로 만든 노래다. "시민권이 무너지는 끔찍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살아남을 유일한 길이 우리가 강하게 뭉쳐 계속 싸우는 것 뿐이라고 진심으로 믿는다." 그런 믿음은 이 노래에서 "통제에 맞서서 너는 살아가지. 니가 아는 방법으로만 살아남기를. 바로 지금, 난 그걸 위해 지금 노래하고 있어"라는, 흥겨운 후렴구로 표현된다. 모든 록이 애초에 보여줬을 흥겨움과 대부분이 록에 기대하는 저항정신이 가십의 음악에 원형 그대로 담겨 있고 가십의 무대에서 원형 그대로 폭발하는 것이다. 그 모든 성적 차별과 성적 선입견을 거부하는, 이 래디컬 페미니스트는 그렇게 음악과 생활에서 섹슈얼 마이너리티의 대변자가 됐다. 대중문화 역사에서 볼 수 없었던, 기묘하게 위풍당당한 아이콘이 됐다. 우리도 이 새롭지만 마땅히 있었어야할 여전사를 만날 수 있다. 베스 디토가 몸담고 있는 가십은 7월 25일부터 열리는 인천펜타포트록페스티벌의 두 번 째 날, 펜타포트 스테이지의 헤드라이너로 출전한다. 그녀는 그곳에서도 땀범벅이 되어 살을 출렁일 것이다. 그녀의 체지방이 연소되는 동안 우리가 갖고 있던 레즈비언, 뚱뚱한 여자, 페미니스트에 대한 선입견도 함께 타 없어지지 않을까. 충분히 마초인, 그래서 베스 디토의 사진을 봤을 때 픽 웃고 말았던 나도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깜짝 놀랐으니까. DVD를 봤을 때는 그녀의 매력에 흠뻑 빠지고야 말았으니까. 안티 히어로라는 말은 있어도, 안티 히로인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 없다. 만약 이 단어가 존재한다면, 베스 디토야 말로 외모가 모든 걸 말하는 시대의 첫번째 안티 히로인일 것이다.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 ![]() ※ 이 포스트는 더 이상 덧글을 남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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