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터는 시간을 깁는다


한국의 뮤지션들에게 EBS의 '스페이스 공감'은 꿈의 무대다. 매달 장르를 가리지 않고 10여개의 공연을 소화하고 방송하는 이 프로그램에, 역시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음악좀 합네 하는 뮤지션들은 새앨범이 발매되면 어김없이 출연 신청을 하곤 한다. 그래서 보통 2달치의 공연 일정이 미리미리 차곤 한다. '공감'에서는 7월에 스웨터의 공연을 올릴 예정이었다. 2004년 2.5집 <Songs In The Air>이후 4년만에 3집 <Highlights>를 막 발매한 그들이었다. '공감'의 기획 위원을 맡으면서 봐온 바로는 초절정 인기스타급이 아니고서는 '공감'에서 출연 제의를 하면 어김없이 무대에 서곤했다. 하지만 스웨터 측으로부터 돌아온 건 고사였다. 이유는 역시 4년이라는 시간이었다. 긴 공백의 탓으로 아직 1시간 여동안 방송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을 만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거였다. 확실히, 4년은 짧은 시간은 아니다. 얼핏 썩 길지 않은 것 같다가도, 이명박 정부의 임기가 4년이 넘게 남았다는 걸 생각하면 소스라치듯이. . 그들이 결성되고 첫 공연을 시작한 게 99년이니 올해로 10년차를 맞는다. 그 중에서 4년이다. 절반 가까이의 시간이 비워져있다. 끊어져있던 링크를 이어주는 <Highlights>는 그러나, 그 공백을 쉽게 느낄 수 없는 앨범이다.

스웨터가 데뷔했을 당시 모던 록 씬의 4대 맹주는 델리 스파이스, 언니네 이발관, 미선이, 마이 앤트 메리였다. 다른 밴드들은 그들에 비하면 어딘지 많이 부족해보였다. 캐릭터도 불분명했다. 어딘지 성글었다. 앞으로도 성글 것 같았다. 하지만 스웨터는 곧 입소문을 탔다. 몇가지 요인이 있었다. 여성 보컬 밴드가 드물었던 시절이었다. 모던 록 씬에서는 더 했다. 여성 보컬 밴드기 때문에 더욱 그랬겠지만 이들이 무대에서 선보이는 감성은 '예쁘다'라는 형용사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스웨터에게는 곧 별명이 붙었다. 모던록의 요정. 보컬 이아립이 디자인을 전공한 탓에 공연도 달랐다. 이들의 첫 단독 공연을 기억한다. 500장 한정으로 제작되어 전설로 남아있는, 한 때 중고 시장에서 10만원 까지 치솟았던 데뷔 EP 발매 공연이었을 것이다. 공연장 현관에서 입구까지, 형형 색색의 두꺼운 비닐이 장식되어 있었다. 당시의 라이브 클럽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무대 장치도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 무대에서 이제 20대 초중반의 여성들과 한 명의 남자로 이뤄진 스웨터가 공연을 했다. 아직 인디 씬에서 자극의 역치가 낮았던 그 때, 스웨터의 그런 무대는 탄성을 자아낼만 했다.

그들 보다 한 발 앞섰던 팀들이 앨범을 내고 나름의 스타덤에 올랐다. 스웨터도 그 뒤를 따랐다. 2002년,  이한철이 프로듀서를 맡은 <Staccato Green>이 발매됐다.  밴드 결성시기를 생각하면 살짝 늦은 편이었다. 하지만 데뷔 앨범 치고는 꽤 완성도가 높았다. '우리 비 그치면 산책할까'는 인디 음악 애호가들 뿐만 아니라 라디오에서도 애청되는 노래였다. 그 무렵은 인디 씬의 헤게모니가 펑크와 하드코어에서 모던 록으로 급격히 넘어가던 때였다. 스웨터의 데뷔 앨범은 그 헤게모니가 완성되는 데 일조를 할 수 있었다. 극치의 일상성과 록 보다는 팝을 지향하는 정서가 이 앨범에 담겨 있었다. 다른 밴드들이 영미권의 음악을 교과서로 삼았던 반면, 이들은 스웨디시 팝을 참고서로 더했다. 장르를 불문하고, 이아립은 애호가들의 아이돌이 됐다. 스웨터의 주가도 함께 상승한 건 물론이다. 그 여세를 몰아 이듬해 두번째 앨범 <Humming Street>를, 그리고 또 이듬해 2.5집 <Songs In The Air>를 냈다. 쉼없이 달렸다. 공연도 자주 했다. 그리고 4년을 쉬었다.

다음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은 꾸준히 들려왔다. 하지만 정작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밴드에 국한된 일이다. 멤버들은 스웨터에서 벗어나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아립은 '열두폭 병풍'이란 자체 레이블을 세우고 두 장의 솔로 앨범을 발매했다. 드럼을 맡고 있으며 밴드의 사운드를 조율하는 신세철도 멜로우 이어라는 이름으로 솔로 앨범을 냈다. 이아립의 솔로가 스웨터의 음악에서 사운드를 빼고 노래만을 남겨놓은 느낌이었다면, 신세철의 그것은 반대였다. 키보드 임예진과 베이스 신지현도 다른 밴드의 공연에서 세션 활동을 해왔다. 그 와중에도 이들은 틈날 때 마다 스웨터의 새 앨범을 고민했다. 신세철은 말한다. "스웨터는 의리로 뭉치는 밴드는 아니다. 다소 느슨하게 뭉쳐있다." 그의 말처럼, 공백 기간이 길어도 밴드의 위기가 찾아온다던가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작심하고 새 앨범 제작에 들어가기도 쉬웠다. 멤버들 모두 30대가 되어 생활을 위한 일을 구하고, 그래서 '직장인 밴드'가 된 후였다. 적지 않은 시간동안 곡작업을 하고 레코딩을 했다.

그렇게 완성된 <Highlights>는 다시 한번 말하자면, 긴 공백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작품이다. 늘 그렇게 함께 공연을 하고 작업을 해왔던 것 처럼 이들은 예전의 그 감성을 오롯이 이어간다. 모던록이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이며 라운지, 댄스, 포크 등으로 자리를 옮긴 지금, '아 그래, 예전에 이런 감성들이 있었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예전에는 어떻게 하면 사운드를 꽉 채울까 하는 고민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앨범을 작업하면서는 비우는 쪽을 염두에 두려 했다. 곡 자체에 집중하려 한 것이다." 신세철의 말처럼, 이 앨범에서 선연히 드러나는 건 곡이다. 멜로디와 사운드, 리듬이 조화를 이루고 각 악기들도 적확한 연주로 적확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멤버 중 기타가 없다는, 얼핏 밴드로서는 치명적인 약점도 이번에는 느껴지지 않는다. 다른 신서사이저 음원을 제쳐두고 피아노 사운드에만 집중한 임예진의 지분이 커진 탓이다. 아니, 밴드가 비로소 키보드를 밴드 사운드의 중추로 받아들이고, 소화한 탓일지도 모른다. 주어진 환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미덕을, 스웨터는 10년 만에 체득한 것이다.

인디라는 꼬리표는 달고 있지만, 80년대 부터 90년대까지의 라디오에서 자주 만날 수 있었던 음악이다. 동아기획과 하나음악을 중심으로 몰려 있었던 우리 싱어송라이터들의 감성을 계승하는 음악이다. 이제는 정의내리기조차 힘들어진 그 때의 대중음악을, 스웨터는 동시대의 옷을 입혀 세련되게 들려준다. 이아립은 말한다. "예전의 음악이 나만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도구였다면, 지금은 당신들의 얘기를 듣기 위한 매체다.' 음악계가 불황이라는 핑계로 사랑과 이별 뒤에서 당신의 푼돈을 노리는 피곤하고 뻔한 훈시같은 음악들 틈에서, 스웨터는 발랄한 위안을 던진다. 오랜 시간 걸을 수 밖에 없는 밤 거리를 무심히 스치는 바람같은. 그 모든 함성을 다 받아주면서 도저히 흐르는 밤하늘같은.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Highlights

시사IN 원고
by 김작가 | 2008/06/20 14:22 | 스토리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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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RRRR at 2008/06/20 21:35
와~ 스웨터 신보나왔나봐요~
요즘 일때문에 힘든데 위로좀 얻어야겠어요.
Commented by 태엽이 at 2008/06/20 23:36
도저히 → 도도히.. 로...;
Commented by 레이뒤피 at 2008/06/21 00:00
욜 스웨터 간지
Commented by 사리곰 at 2008/06/21 01:21
링크신고하고 가요
Commented by 정훈군 at 2008/06/21 10:11
뭐하나 했는데 그랬군요. 감성이 오롯이 이어갔다는 느낌에 너무 공감합니다.
Commented at 2008/06/21 14:3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8/06/21 21:4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8/06/21 21:5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골드문트 at 2008/06/23 21:21
스웨터 정말 좋아했는데! 노래때문에 7번국도를 직접 가봤을정도예요

쓸데없는 얘기지만,
언젠가 TV에서 Live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에이브릴라빈의 sk8er boi 불렀었는데 가사도 틀리고
lily는 삑사리(?)도 나고 해서 팬으로써 참 속상했던 기억이..

어쨌거나 반갑네요 스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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