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새벽에 달려가 딱 44시간만에 풀려났습니다.
성북경찰서는 생전 처음 갔습니다. 앞으로도 갈 일 없었으면 좋겠지만.... 시국이 어찌 될지 모르니 확답은 못하겠습니다.
끌려가서 조서를 쓰고 유치장에 수감된 게 아침 9시 무렵이었는데 핸드폰및 일체의 소지품은 보관하더군요.
그래서 핸드폰을 꺼놨습니다.
풀려나서 보니 문자및 전화가 200여통이 와있더군요.
지웅이 블로그에서 소식이 퍼진 모양인데...
걱정해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걱정끼쳐드려서 죄송하구요.
밤 12시 20분 경 풀려나와
홍대앞에 일단 가서 두부 한모 먹고
집에 왔습니다.
기억이 생생할 때..일요일 새벽의 상황을 옮겨보고 자야겠습니다.
다행히도 요즘 유치장이 좋아져서
잠은 실컷 자서 어차피 잠자기도 틀린 것 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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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조용필 40주년 공연을 봤다. 공연이 끝난 후 홍대로 자리를 옮겨서 술을 마신 후 집에 들어오니 새벽 4시 20분. 인터넷에 접속해보니 이건, 상황이 말이 아니었다. 이 시간까지 집회가 이어지고 있으며 인터넷 생중계는 모두 끊겼다는 이야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진중권 선생이 연행됐다 등등 그동안과는 뭔가 다른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침 지웅이가 그 쪽에 나가있는 것 같아 통화를 했다. "야 상황 어떠냐" "어? 끝나가는 분위긴데?" "인터넷에서 보니까 좀 이상한 것 같다. 일단 갈께." 택시를 타고 광화문에 도착하니 5시 안팎. 이미 세종로는 닭장차와 살수차, 경찰용 방송차량으로 봉쇄되있는 상황. 동아일보앞 횡단 보도를 건너 광화문 우체국에서 지웅이와 합류했다.
참 오랫만에 나가는 집회였다. 아마 15년은 족히 된 것 같다.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경찰과 시민의 혹시 모를 충돌을 막기 위해 시민들이 스크럼을 짜고 있었다. 그러니까, 경찰을 향해서가 아니라 시민들을 바라보고 서로 팔을 끼고 "평화시위보장하라"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그런 상태가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어디선가 스크럼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 쪽으로 달려가보니 시민 하나가 경찰들의 손에 붙잡혀 저쪽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정말이지, 그건 빨려들어간다는 단어 말고는 설명할 수 없는 거였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사막에 사는 모래괴물이 있고, 이를 퇴치하기 위해 특수부대가 파견된다. 사막을 행진하던 중 갑자기 대원 하나의 발목을 모래속에서 튀어나온 촉수가 휘감고 빨아들인다. 나머지 대원들은 그의 팔을 붙잡지만 괴물의 막강한 힘앞에서는 속수무책. 그렇게, 사람들이 공권력이라는 괴물의 입속으로 하나 하나씩 빨려들어갔다. 나도 한번 빨려들어갔었다. 그래도 헬스클럽에서도 놀라는 막강한 근육량 덕택에 간신히 빠져나왔다. 그렇잖아도 얇은 셔츠가 완전히 세갈래로 찢겨버렸다. 아, 시위현장에서 웃장 깐 남자들은 자의가 아니라 이렇게, 타의에 의해서 웃장을 까게 되는 거구나 생각했다. 누군가 티셔츠위에 입고 있던 셔츠를 벗어줬다. 땀냄새가 흥건한 옷이었다. 그 냄새가 왠지 뜨거웠다.
괴물은 단지 촉수만 사용하는 게 아니었다. 익히 들어 알고 있던 방패로 머리를 찍고, 턱을 쳐올렸다. 여자도 그 공격앞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다. 서둘러 여자들을 앞줄에서 끌어내렸다. 구호는 어느덧 '평화시위보장하라'에서 '폭력경찰 물러가라'로, '정권 타도'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잠시 소강상태가 찾아왔다. 구호도 다시 '평화시위보장하라'로 한 단계 내려갔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잠시였다. 다시 사람들이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주먹이 날아오고 방패가 휘둘러졌다. 어찌보면, 아니 확실히 말하건데 역시 이 상황의 피해자인 경찰들의 입에서 쌍욕이 나오는 건 애교로 봐주자. 그 와중에서도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폭력진압이 시도되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 이 새끼들아!" 그런 외침이 절로 나왔다. 다들 마찬가지였다. 목이 타서 물병을 들고 있었다. 누군가가 지금 물병 들고 있으면 안된다고, 나 목말라서 그런거에요 괜찮아요, 아니에요 그래도 지금 여기서는 안돼요, 하면서 물병을 가져갔다. 그랬다. 시민들은 어떻게든 폭력으로 번질 수 있는, 아니 보수 언론에 의해 오인 받을 수 있는 요인들을 스스로 철저히 차단하고 있었다.
다시 얼마 후, 경찰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내 앞줄이 홍해가 갈라지듯 쫙 갈라졌다. 그리고 뒤에 있던 경찰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 뚜벅뚜벅,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 다시 잡혔다. 이번에는 빠져 나올 수 없었다. 새로 입은 옷은 찢어진 옷보다 두꺼워서 또 찢어지지는 않았다. 대신 단추가 모두 떨어져나갔다. 이 씹새끼들아, 그래 집에 가면 될 거 아니야! 외쳤지만 바로 닭장차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그 때 시간이 새벽 다섯시 오십오분. 지웅이한테 전화를 걸었다. 야, 나 끌려간다. 성북경찰서로 간대. 이거 아이템이지? 어디에 쓸까? 김작가와 허지웅의 새벽일기 뭐 이런 거 어때? 이런 실없는 농담을 나누다가 전화를 끊었다. 닭장차안은 먹이를 삼킨 모래 괴물의 식도와 같았다. 끌려온 사람들은 창밖을 바라보며 묘한 긴장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를 포함한 모두의 옆에는 한 명씩 의경들이 앉아 있었다. 그제서야 목이 미친듯이 탄다는 걸 알았다. 아저씨 물 좀 주세요. 의경은 묵묵부답. 대신 옆 자리에 앉아있던 연행자가 물병을 건네준다. 바닥에 간신히 찰랑거릴 정도였다. 그 두 어 모금의 물이 정말 달았다. 하지만 정말, 여전히 목이 탔다. 식도는 젖었어도 목이 미친듯이 타들어갔다. 그제서야 두려웠다.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일단 아는 일간지 기자들에게 문자를 돌렸다. 만에 하나의 사태를 대비해서다. 그리고 변호사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한 녀석이 받았다. 성북경찰서로 지금 오겠다고 했다.
총 6명이 성북으로 이송됐다. 취조가 시작됐다. 먼저 의경들에게 사정 청취를 한 후, 연행자들에게 조서를 받았다. 나이 어린 대학생들은 완전히 몰아가는 분위기. 취조가 끝나고 밥을 먹으러 갔다. 식사 후 담배를 피는 데 한 형사, (정말이지 그는 <살인의 추억>에서 조영구 필이 물씬 났다.) 일장 연설을 한다. 아무리 뜻이 좋아도 불법을 하면 안되지 않냐, 라는 쌀로 밥짓는 이야기를 시작한 그는 자기도 밤새 일하는 게 짜증이 났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나도 처음에는 소고기 수입 반대했는데, 지금 같아서는 빨리 수입했으면 좋겠다 라는 쌀뜨물에 죽끓이는 소리를 했다. (그 형사는 심지어 다음날 2차 조사 때는 요새 AI에 걸린 닭 먹고 전염되면 20억 걸린다는데 자기가 먹고 싶다, 그럼 완전 로또 아니냐 라는 다 탄 장작에 불때려는 소리를 했다가 동료 형사에게 막상 걸려봐라, 그런 소리 나오냐는 핀잔을 들어야했다.)
상식적으로, 집회단순가담이라면 조서만 쓰고 풀려나는 건 줄 알았다. 그건 정말 상식이다. 폭력사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 상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일요일 아침은 동생이 이사하는 날이었다. 당연히 이사를 돕기로 했었다. 새벽에 나와서 상황만 보고 다시 들어가 눈을 붙인 후 그럴 예정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예정이 어긋난 것이다. 동생에게 전화해서 사실대로 말하고, 집에다가는 급히 초상집 갔다고 전하라고 했다. 몇 시간 후면 돌아갈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향한 곳은 경찰서 정문이 아니라, 유치장이었다. 허, 웃음이 나왔다. 학교 다닐 때도 안 들어가본 유치장? 그래, 몇 시간 후면 나가겠지. 일단 푹 자고 있으면 깨워서 집에 가라고 하겠지. 일단 철장 안에 들어가 눈을 감았다. 누군가는 그 와중에 경찰한테 맞아 타박상을 입었고, 누군가는 목이 졸려 시뻘건 자상이 남아있었다. 그래도 옷 한벌 망가진 게 천만다행인가, 하는데 어깨가 아파왔다. 멀쩡할 수는 없었겠지, 아무래도. 아무래도 말이야. 스르르,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오후 6시 반. 아직 집에 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유치장의 내근경찰들은 아마 오늘 밤 아니면 내일 아침에는 나갈 겁니다. 이런 건 보통 다 그렇게 해요. 라고 했다. 순박해 보이는 경찰이었다. 또 잤다. 자다 깨다 자고 또 깨고 자고. 아침까지 그렇게 자고 또 잤다. 여전히 풀려날 기미는 안 보였다. 아 이거 48시간 풀로 채우는 거 아니야. 아침 뉴스를 보니 전원 사법 처리 방침이라는 얘기도 들리고. 설마, 구속이야 시키겠어. 지금이 무슨 박정희시대야 전두환시대야. 아니 아니, 지금 시계가 돌아가는 게 약간 그 쪽으로 급격히 돌아가고 있기는 하구나. 아니면 생전 거리집회는 나간적도 없던 내가 거리집회나가서 30분만에 연행되는 일이 있을리가 없잖아. 군대에서보다 맛없는 밥만 계속 먹었다. 이 게 이 곳에서의 마지막 끼니겠지, 라고 믿으며 먹었다. 하지만 몇 시간 후에는 또 똑같이 맛없는 밥이 나왔다. 변호사 친구가 접견이란 명목으로 와서 별도의 접견실에서 수다를 떨 수 있던 게 다행이었다. 누더기가 된 옷을 입고 나갈 수는 없잖냐, 옷 한벌 넣어줘. 라고 했더니 곧 나이키 매장에서 브라질 축구국가대표 선수들이 입음직한 티셔츠를 한벌 보내왔다. 접견이 끝나고 갈아입으려고 하니까 내근 경찰은 이 쪽에서 갈아입으라며 방구석으로 이끈다. "여기서 입으면 안되나요?" "CCTV에 찍히잖아요." "아, 원래는 옷을 마음대로 갈아입어서는 안되나보죠?" "아니, 옷 벗고있는 거 찍히면 좀 그러니까.. 인권을 보호해야죠." 웃으면서 말하는 경찰, 아 그러네요 라고 하면서도 희안한 심정이 든다. 그것은 마치 방한복을 팔러 온 세일즈맨을 만난 에스키모의 심정이었다. 학교선후배, 한겨레기자, 동생내외 등이 면회를 왔다. 아니 소문이 도대체 어찌 퍼진거야 싶었는데 지웅이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 여기저기 퍼진 모양이다. 아, 이 정도면 무슨 고문이라도 당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루종일 쇠창살 속에서 잠만 자고 있으려니 뭔가 미안해질 지경이다.
변호사와 기자들은 오후 5-7시에 석방 예정이라는 말을 전했다. 그 시간이 지나도 나갈 기미가 안보인다. 유치장을 지키는 경찰들도 이상해 한다. 아니 풀어줄 때가 지났는데 왜 안 풀어주지? 관례대로라면 진작 나갔어야 하는데? 마침 뉴스가 시작됐다. SBS에서조차 짐짓 강경하게 현 상황을 보도하고 있었다. MBC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거 48시간 만땅 채우고 나가는거 아닌가.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했다. 24시간은 족히 잔 것 같은데 또 잠이 올리가 없다. 창살 밖에서 무슨 소리만 나면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12시 10분쯤. 풀려났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경찰이 소지품을 내오고 잃어버린 물건 없나 확인시킨 후 저 쪽으로 가서 저렇게 가면 역이 나옵니다. 그걸로 끝. 나왔다.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 40시간만의 담배. 정신이 몽롱했다. 핸드폰을 켰다. 한 3분여에 걸쳐서 계속해서 캐치콜과 문자가 들어왔다. 뭔가 마음이 따뜻해졌다. 일단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먹었다. 유치장에서의 밥도 따뜻했지만, 화학조미료로 범벅된 순대국의 온기, 그 사회의 온기에는 비할 바가 못됐다. 불과 이틀이었다. 제대를 기다리던 군대 말년보다 시간은 더욱 안갔다. 내내 생각했다. 도대체, 뭐가 날 여기까지 이끌었는가. 모래 괴물의 촉수에 끌려 입속으로 삼켠진후, 식도를 거쳐 위속에서 이틀동안 갇혀있도록 누가, 혹은 뭐가 날 이 사막으로 이끌었는가. 왜 내가 음악관련 글이 아니라, 시위 현장과 유치장에서 있었던 일을 써야 하는가. 난 정말, 모르겠다. 알 수가 없다.
다시 일요일 새벽과 아침 사이, 스크럼속에서 버티며 반가운 얼굴을 봤다. 10년전 한 라이브 클럽에서 일하던 동생이었다. "형님, 여기서 보니까 정말 반갑네요." 나도 그랬다. '대통령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벌어지는 이 말도 안되는 상황들이 우리를 홍대앞이 아니라, 시위현장에서 만나게 하는구나.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친구들을 그곳에서 만나야 할까. 종로에서 지금껏 시위가 벌어지다가, 다시 무력진압이 시작됐다고 한다. 외신기자가 철수한 후, 와이브로 까지 모두 끊고 다시 괴물의 촉수가 꿈틀대고 있다고 한다. 흐읍, 어깨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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