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과 뮤지션

대통령이 국민담화(라 쓰고 훈시라 읽자)를 발표하고 미국 정부당국자가 나서도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그 촛불은 결국 횃불이 되어 미국소 모형을 불태웠다. 바야흐로 혁명전야의 기운마저 느껴진다.  이번 촛불집회를 초기에 주도했던 계층은 여고생들이었다. 10대, 고등학생, 여성이라는 마이너리티적 요건을 모두 갖춘 그들이 켠 촛불은 말하자면 좀비의 역습이었다. 그들의 '봉기'에 좌,우 기성세대 양쪽이 모두 놀랐다. 해석만 달랐을 뿐이다. 지난 17일, 촛불은 절정이 됐다. 가수들이 나선 것이다. 김장훈과 윤도현은 자신의 밴드를 이끌고 나와 공연을 펼쳤다. 이승환은 무대에 서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이번 미국 쇠고기 사태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한국에서는 민중가요계에서나 볼 수 있던 모습이다. 그리고 영,미권에서나 만날 수 있던 풍경이다.

지난 2월 힙합 그룹 블랙 아이드 피스의 리더, 윌.아이.앰은 버락 오바마의 뉴 햄프셔 연설문을 그대로 랩으로 옮긴 'Yes We Can Song'을 내놓았다. 이 노래의 뮤직 비디오에는 허비 행콕, 존 레전드 등 정상의 팝스타들이 출연했다. 이 뮤직 비디오는 인터넷에서 1700만건의 조회수를 기록했으며 윌.아이.앰은 덕분에 '인터넷의 오스카'로 불리는 웨비상까지 수상할 수 있었다. 최근의 사례 아니더라도, 음악의 역사로 들어가면 뮤지션들의 정치적 행위는 차고 넘친다. 밥 딜런과 함께 60년대 플라워 무브먼트를 이끌었던 존 바에즈는 언제나 반전 집회의 최선봉에 서서 행진하곤 했다.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이자 미국 록의 '보스'로 불리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1984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재선 캠페인 송으로 그의 히트곡 'Born In The USA'를 사용하자 즉각 사용중단을 요청했다. 나이를 먹어서도 그의 신념은 굳건했다. 2004년에는 부시의 재선 저지를 위해 '변화를 위한 투표' 캠페인을 이끌었으며 R.E.M., 그린데이, 바브라 스트레이전드가 참여한 '부시 퇴장 콘서트'를 주최하기도 했다. 물론 그 자신도 무대에 섰다. 솔로로 활동할 당시의 존 레넌이 반전과 평화 캠페인을 이끌었으며 사비를 털어 뉴욕의 입간판에 반전 광고를 개재했던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반면 대중가수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뮤지션이 한국에서 정치적 발언을 하는 건 여러모로 부담이 된다. 대중음악의 자장안에 존재하면서도 평택 대추리 사건 때 현장에 달려가 공연까지 펼쳤고, 대추리 문제를 다룬 노래까지 발표했던 윈디 시티의 김반장은 말한다. "우리의 태도나 활동에 대해 주변 뮤지션들도 '어려운 길을 간다'고 생각한다. 대중은 엔터테인먼트를 원하는 데 그들에게 정치적 얘기를 하면 뮤지션이 손해라는 것이다." 실제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공개지지하고 선거운동까지 펼쳤던 신해철은 그 후 반대측의 비난에 시달리고 또 시달려야 했다. 우리 사회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인식 때문이다. 딴따라 주제에 어딜 나서냐는 거다. 그리고 한국 대중음악에서 정치사회현실을 다룬 노래가 온전히 민중가요의 영역처럼 되어있는 풍토에서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표출했다가는 팬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이다. 요컨데 나서면 손해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는 박정희 정권부터 검열이 극심해지면서 대중음악안에서 다룰 수 있는 소재가 지극히 제한됐던 비극적 역사에서 출발한다. 지금까지도 대부분의 대중음악이 사랑 아니면 이별, 고작해야 격려 정도만을 다루고 있는 현실은 그런 과거 탓도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와 사회현실은 음악에서 멀어졌다. 대중 또한 자연스럽게 음악과 정치를 분리하게 됐다. 그런 풍토가 뒤집히는 걸까. 미국 쇠고기 파동을 계기로 음악인들이 정치에 한 걸음 다다가는 걸까. 그래서, 우리도 선거 때마다 '줄서기'가 아닌 '신념으로부터의 지지'를 만날 수 있게 되는 걸까. 그렇다, 라고 얘기할 수만은 없다. 이번 미국 쇠고기 파동이 가지는 특수성 때문이다.

한국에서 정치적 소신은 대부분 어느 당을 지지하느냐에 귀결되는 문제였다. 요컨데 너는 어느 쪽이냐 묻는 것에 대한 공개적 대답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번 파동은 좌우의 문제가 아니다. 즉, 현실 정치의 영역을 넘어서는 생존권의 문제아니던가. 거의 전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이 사안에서는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뮤지션이 나서기 전에 팬들이 나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예인이 대중을 선동한다'는 보수 언론의 시각은 옳지 않다. 오히려 대중이 연예인을 선동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17일의 촛불집회에서 이승환의 참여는 예정되있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무대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가수이기 전에 시민의 한 사람으로 여기까지 오게 됐다." 그렇다. 기존 정치에 무관심했던 여고생과 주부들이 먼저 거리로 나섰던 것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사태는 국가가 국민을 위험으로 내모는 현실에 대한 시민 의식의 각성, 혹은 임계점 돌파다. 현실에 침묵해왔던, 혹은 침묵을 강요받았던 뮤지션들도 이 공분의 장에서는 좌와 우의 선택을 강요받지 않는다. 그리고 현정부의 정책은 대부분 마찬가지 맥락으로 흘러갈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정부 대 국민이라는 구도가 형성되는 거다. 국민은 대중이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그래서 대중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음악인들이 앞으로 더 자주 정치적 소신을 펼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되는 근거다.

하지만 전제가 있다. 일관성을 만들어 가야 한다. 윤도현은 지난해 새만금 콘서트에 참여했다. 이 콘서트를 환경단체에서는 극심하게 반대했다. 환경파괴라는 이유였다. 김장훈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서 공연을 가졌다. 물론 그 때와 지금은 다르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맥락의 출발점에 서면 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세상을 바라보는 논리를 뮤지션들이 만들어 갔으면 한다. 그 논리를 음악에 담아냈으면 한다. 그게 철학이다. 더 많은 뮤지션들이 철학과 소신을 바탕으로 더 많은 발언을 하고 더 많은 음악을 발표할 때, 비로소 딴따라라는 인식이 사라질 것이다. 엔터테인먼트 뿐만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발언권 또한 부여될 것이다. 그때 비로소 그들이 부러워할지도 모를, 서구 뮤지션들의 자유가 그들의 손에 주어질 수 있으리라.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시사IN 원고

by 김작가 | 2008/05/23 03:19 | 생각 | 트랙백(1) | 덧글(28)
트랙백 주소 : http://zakka.egloos.com/tb/3754177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Tracked from 거리로 나가자, 키스를.. at 2008/05/26 02:41

제목 : 김작가, 연행되었습니다.
예, 아시는 분은 이미 아시겠지만, 이글루스에서 "Groove Tube" 블로그를 운영하는 음악평론가 김작가가 25일 새벽, 광화문 촛불 집회도중 연행되었다고 합니다. ... 오늘 하루 종일, 이 녀석 어디에 있는지 찾느라고 고생했네요. 예, 이 녀석... 자그니 같은 과 후배입니다. -_-;;; 예전과는 달리 연행자 상황이 인터넷에 올라오지 않아서, 같은 과의 민주군이 많이 수고해 줬습니다. 민변에 전화넣었다, 진보신당에 전화넣었다 하......more

Commented by daria at 2008/05/23 10:57
흑 그날 블랙홀도 나왔었는데 왜들 블랙홀은 다 무시하는지 신문에도 딴가수들 이름만 나오구ㅠㅠ 블랙홀 불쌍해여ㅠㅠ
Commented by minidriver at 2008/05/23 22:47
레논이 사비를 '털어'보단 사비를 들여,정도가 좋을것같은 느낌이 가볍게 전해져오는구만요
Commented by 처절한기타맨 at 2008/05/24 14:47
전 생각이 오지군과 흡사하다는~ http://ozzyz.egloos.com/3747593#3747593_1
Commented by 땅콩샌드 at 2008/05/25 11:31
허지웅 씨 블로그에 의하면 김작가님이 잡혀가셨답니다.
Commented by 마고 at 2008/05/25 12:27
김작가님 ㅠㅠ
Commented by shrek at 2008/05/25 12:55
다치신데는 없으신겁니까!!
쌍팔년도로의 회귀인가요..
무사하시길 바랍니다.
Commented by ........ at 2008/05/25 14:39
김작가님 그동안 눈팅만 했는데...
연행되셨다는 소식듣고 너무 놀라서...
제발 무사하세요.ㅠㅠ
Commented by 케인 at 2008/05/25 17:51
이런. 이제 2008년도에 민주주의를 외쳐야 하는 시대가 왔군요. 몸 건강히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
Commented by hen at 2008/05/25 17:56
아. 정말 너무 놀랬어요.

다친곳은 없단 글에 조금 안심.
무사히 돌아오세요 ㅠㅠ
Commented at 2008/05/26 02:4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8/05/26 02:5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피스 at 2008/05/26 04:39
저도 눈팅만 하다 가던 사람인데요.
저 역시 허지웅님 블로그에서 언급된 김작가님이 여기 주인이신가 해서 와봤습니다.
다친곳은 없으시다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무사히 돌아오세요.:_:
Commented by 화염병 at 2008/05/26 07:52
무사귀환 바랍니다. 고생많으셨어요.
Commented by endinghere at 2008/05/26 08:47
무사귀환을 기원합니다...
Commented by -_- at 2008/05/26 09:06
아 정말 이게 무슨 일인가요...
Commented by 마약모자 at 2008/05/26 09:46
????????????????이게 무슨소리래요;;;;;;;; 괜찮으신겐지;;
Commented by s at 2008/05/26 12:03
이런.. 정말 그들이 미쳤나!!! -____-+
Commented by 소심이 at 2008/05/26 12:39
연행된 사람들 사법처리한다는데 김작가님 어떡합니까 ㅠㅠㅠㅠㅠ
Commented by kkk at 2008/05/26 14:00
김작가를 풀어내라!!!
Commented by mentirosa at 2008/05/26 15:06
이게 무슨 일이래요.
Commented by 처절한기타맨 at 2008/05/26 16:40
그나저나 전원 사법처리 방침이던데 오지 블로그에서 연행소식 듣고 달려옴~ 탈없이 복귀하시기를 빕니다~
Commented by lee at 2008/05/26 18:22
아 정말 세상이 미쳐 돌아가네요...
작가님 무사귀환하시길...
Commented by whynot at 2008/05/26 21:05
짝짝짝...용감하게 맞서셨군요.
김작가님, 건강하게 돌아오시길 기도합니다^^
Commented by 땅콩샌드 at 2008/05/27 00:16
방금 조선일보에 전원 석방되었다는 속보가 떴습니다.
Commented by 무사귀환 at 2008/05/27 00:27
무사히 돌아오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Commented by 레이뒤피 at 2008/05/27 01:16
돌아오셨나요? 아아. 걱정이 많이 됩니다.
Commented by 김작가 at 2008/05/27 03:38
무사귀환했습니다. 불구속 기소라는군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지몽 at 2008/06/03 15:40
눈팅하다 어떤 분이연행되셨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블로그를 운영하는 분이셨군요~ 어쨌거나 다친데 없으셔서 일단은 다행인데 앞으로가 걱정이군요~
※ 이 포스트는 더 이상 덧글을 남길 수 없습니다.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음악 친구나 해요
by 김작가 2008 이글루스 TOP 100
Calendar
메모장
noisepop@hanmail.net
http://twtkr.com/GrooveCube
카테고리
전체
음악이 해준 말
생각
스토리
대화
어른들의 놀이터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상수일지
아주 특별했던 봄
아주 특별한 여름
go20
private press
NM
야담과 실화
바벨의 콘서트
VS 칼럼
자전거 라이프
방명록
비밀의 창고
미분류
포토로그

보이는 것의 날인
태그
이런들어떠하리저런들어떠하리 씨엔블루 글래스톤베리 이병우 페스티벌 아이돌 그린데이 2010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오아시스 밥딜런 블로그 매시브어택 내한공연 철학성향테스트 레미제라블 문화정책 트위터 맑스 전망 어떤날 아감벤 국카스텐 들뢰즈 VampireWeekend 인디 루시드폴 Contra FnC
전체보기
rss

skin by zodiac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