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 오픈
어둠의 자취 생활을 끝내고 가족과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슬금슬금 내 공간에 대한 욕심이 피어 올랐다. 당연하다. 어쨌거나 한 규모의 살림이 방 하나에 모두 들어갔다. 씨디와 책은 이미 놓을 공간이 없었다. 지름신의 여파로 쌓인 각종 아이템은 비좁은 공간 때문에 제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회사를 다니질 않으니 일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았다. 그럴 경우 일은 일대로, 생활은 생활대로 늘어지기 마련이다. 세수도 안하고 부시시한 머리로 야동을 (물론 볼륨은 제로로) 보고 있노라면 마감독촉 전화가 걸려오기 마련이고, 그럼 역시 세수도 안하고 부시시한 머리로 부랴부랴 마감을 하다가 저녁 나절이 되어야 씻고 나가는 생활. 무릇 곤란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얼마나 쓰레기 같은 생활이란 말인가.

그래서 카페 메뚜기 생활이 시작됐다. 덕분에 홍대의 왠만한 카페는 다 가보게 되어, 카페는 어떻게 해야 망하지 않고 어떻게 해야 잘되는지를 터득하게 될 무렵, 이것도 지겨워졌다. 무엇보다 카페에서는 음악을 들을 수 없으니 곤란했다. 헤드폰만으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 단계에 이르렀을 때, 아니 사실은 그 이전부터 작업실을 만들어볼 궁리가 시작됐다. 독립을 꿈꿀 수도 있었으나, 그랬다가는 역시 일과 생활이 하나로 합쳐질 수 밖에 없다. 결혼 전까지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게 도리, 라기 보다는 그게 편하다는 것도 알고 있던지라 그저 내 공간 하나 만들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집을 알아보기 시작한 건 올 초부터였다. 세상에, 홍대 인근의 집들은 왜 이리 비싼건가. 그리고 `생전 처음 집을 보러 다니는 나의 처지를 간파한 부동산 장사치들은 한결같이 쓰레기 같은 물건들만 보여줬다. 만약, 부동산을 알아보는 내내 까탈스러울 정도로 도와준 분이 안 계셨다면 그 쓰레기 같은 물건 중 하나를 계약해서 지금쯤 미친듯이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 작업실은 작업실대로 내버려두고 또 카페를 전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요컨데 그랬다. 마음에 드는 방은 가격이 턱없이 비싸고, 가격이 맞는 방은 영 마음에 들지 않고. 이런 악순환이 계속됐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집을 보러다니는 것도 여간 중노동이 아니다. 하루 날 잡고 부동산을 돌아다니다보면 그 날은 술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피곤해진다. 그러기를 세달 여, 하루 종일 별 스케줄이 없는 날이면 어김없이 부동산의 문을 두드렸다.

지난 달 어느 날이었다. 서교동 인근을 지나다가 펑크 동생을 만났다. 집을 계약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우리은행 사거리 뒤쪽, 서교동 인근에 신축 오피스텔이라고 했다. 그 쪽만 가도, 홍대보다는 훨씬 싸고 좋은 집이 많았다. 문제는 빈 방 찾기가 어렵다는 것. 일찌감치 자취를 시작했던 동생은 과연, 부동산의 달인이었다. 그 친구가 집 계약하는 걸 보고 펑크 동생들이 잔뜩 모여있는 곳으로 갔다. 모두, 부동산의 달인이었다. 어디 부동산이 좋고, 어느 오피스텔이 좋고, 어느 지역이 상대적으로 싸고, 뭐 이런 자잘한 정보들을 훤히들 꽤고 있었다. 펑크들의 특성상 일찌감치 독립을 하게 되고, 허름한 옥탑방 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주거 공간을 업그레이드 시키면서 자연스럽게 생활속에 채득한 알짜배기 지식들. 게다가 대부분 홍대 인근에 서식하고 있으니 돈 주고도 얻을 수 없는, 그야말로 동네 사람들만의 정보가 가득했다. "**오피스텔은 관리비가 싸요. 거기가 심야전력을 쓰거든요. 그리고 관리사무소 말고 근처 부동산에 가면 노인들이 재태크 차원에서 구입했다가 월세 좀 싸게 내놓는 물건들이 있어요. 그걸 노려보세요." "** 빌딩이 몇 개 층을 원룸으로 쓰거든요? 그런데 거기가 방음이 정말 잘되고 천장이 꽤 높아요. 월세가 좀 비싼 편이긴 한데 그래도 그 정도 환경이면 다른 곳 가면 더 줘야 해요." 같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석달 가까이 헛걸음만 하느라 지친 몸에 용기는 백배. 그 날 바로 그들이 말해준 오피스텔들을 다녀봤다. 역시, 빈 방이 없었다.

그 중 한 부동산에서 상수역 바로 근처에 있는 원룸을 한 번 보겠냐고 했다. 내가 찾는 조건은 지층이나 옥탑이 아닐 것, 실평수 열평은 되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이런 조건을 채우는 공간은 보통 월세가 육십, 육십오만원쯤 했다. 그런데 이번에 추천 받은 원룸은 월세가 그보다 쌌다. 바로 혹해서 물건을 봤다.  오랫동안 찾아다닌 보람이 있었다. 그 동안 보고 다닌 물건 중 예산에 비해 가장 좋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약을 결정했다. 나와있는 방은 2층인데 1층은 주차장. 따라서 아래층으로부터 시끄럽다는 민원에 시달릴 우려가 없었다. (그 동안 나의 경험에 의하면 음악소리가 크다고 항의하는 건 언제나 아래층의 몫. 오히려 옆집에서는 한 번도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다.) 공간은 딱 직사각형으로 틔여있어서 공간을 충분히 활용하기 좋았다. 전에 살던 사람이 빠지면 그 다음 날 바로 이사를 할 수도 있었으나, 집주인이 도배를 해주기로 한데다가 인테리어를 해서 쓸 생각이었기 때문에 일부러 이사 날짜를 넉넉히 잡았다. 전에 살던 사람이 나가고 도배가 끝난 직후, 방문해봤다.


이렇게 횅했었다. 전형적인 원룸구조. 인테리어를 하기로 한 친구는 줄자를 들고 이곳 저곳의 치수를 쟀다. 그로부터 며칠 뒤, 인테리어 기획안을 보내줬다. 씨디랑 책이 많다는 특성상 수납공간이 많아야 한다. 장을 들여 놓을 경우, 공간이 비좁아 진다. 따라서 벽에 선반을 짜서 거는 게 최선이다. 이게 핵심이었고, 그 외에 들어올 물건들을 고려, 공간을 설계했다. 이사는 5월 9일. 그 날 아침까지 꼴딱 밤을 새서 마감을 하고, 부랴부랴 짐을 쌌다. 씨디랑 책, 컴퓨터와 스피커 등등. 다행히도 가구가 거의 없어 금방 끝났다. 어차피 씨디를 모두 가져올 수는 없는 노릇. 3분의 1 정도만 추려보기로 했다. 이 작업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용달을 불러 짐을 옮겼으나 정리는 불가능했다. 사람을 불러 벽에 구멍을 뚫고 선반을 설치해야했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없는 틈을 타, 잽싸게 미친듯한 드릴질을 시작했다. 수십개의 구멍을 뚫고 선반기둥을 달았다. 꺾음쇠를 달고 나무판자를 얹었다. 이렇게 선반 짜는데만해도 돈이 꽤 들었다. 집 꼴이 갖춰지는데는 거의 일주일이 걸렸다. 인터넷을 깔고 냉장고, 큰 책상, LP를 보관할 철제 선반, 스탠드, 카페트, 침대형 쇼파 등을 주문했다. 이 역시 인테리어 하는 친구가 일일이 골라줬다. 그 하루하루가 지옥같은 날이었다. 낮에는 작업실로 와서 이런 저런 설치와 공사를 해야했고 밤에는 집에 가서 그 날의 마감을 해야했다. 게다가 지난 주가 월간지 마감 시즌인지라 쓸 건 더욱 많았다. 왠만하면 청탁을 거절하는 게 정답이었을테지만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 당연히 돈도 많이 들어간다. 그러니 해야지.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지. 그렇게 일주일이 흘러갔다. 금요일, 씨디와 책을 선반에 올렸다. 음향 장비들을 세팅했다. 올 초에 샀다가 앰프가 없어 무용지물처럼 방치되있었던 턴 테이블은, 역시 2005년 경 인터넷 방송을 위해 구입했다가 별로 쓰는 일도 없이 처박혀있던 믹서와 연결해서 쓰기로 했다. 넓찍한 테이블의 양 끝에 스피커를 떨어트려 놓아 최선의 청취 환경을 구현했고, 한달전에 주문했던 서브우퍼도 마침내 배송완료. 카페트를 깔고 선반을 조립하고 스탠드를 설치했다. 적어도 외관상의 꼴은 모두 갖춰진 셈이다. 그렇게 완성된 작업실의 모양은 대충 이렇다.

여기가 책상쪽. 당초에는 모두 책꽂이로 쓰려고 설계했으나 이 반대편 쪽의 선반에는 이미 씨디가 넘쳐 흘러 계획을 수정, 세 칸은 씨디꽂이로 두 칸은 책과 DVD꽂이로 쓰는 걸로 했다. 오른 편의 철제 선반은 DIY조립형. 아래에는 LP를, 맨 위칸은 와인과 리큐르 등을 보관하는 용도로 쓸 생각이다.

같은 쪽의 작업 공간을 좀 더 가까이서 찍었다. 책상은 근처 재활용 센터에서 4만원에 구입. 길이가 180cm라 스피커를 넓게 배치할 수 있었다. 턴테이블과 믹서도 덕분에 모두 책상위로 고고.


현재까지는 마지막으로 합류한 서브우퍼. 사전주문한정생산으로 제작된 제품인지라 주문에서 배송까지 한 달 걸렸다. 시커먼 색인데 피아노 도장이 되있어서 촬영을 하니...거울처럼 온 사방이 다 비춰진다. 엄청 크고 무거워서 집에서 가져오는데 좀 애먹었다. 이거 설치하니까 저음이 거의 클럽 수준이다. 음핫핫.


책상 반대편으로는 씨디전용 수납공간을 만들었다. 저렇게 기둥을 달고 꺾쇠를 건 다음, 백송판을 얹었다. 유성 스테인을 칠해서 좀 더 보기 좋아졌다.


싱크대 색깔이 지극히 촌스러웠는데 고동색 시트지를 발라서 대변신! 아직 주방세팅이 안되어서 냄비 부터 젓가락까지 몽땅 가져다 놔야 한다. 씨디 꽂이 아래있는 책상은 팔아 버리고, 쇼파형 침대를 놓을 생각이다. 주문한지 며칠 지났는데 아직 배송이 안됐다. 아, 혹시 저 책상 필요하신 분 있으면 말씀 해주시길. 저렴한 가격에 넘기겠습니다. 일룸 제품이고 기스 하나 없이 깨끗합니다. 넓이는 120cm.

이제 남은 건 주방 세팅과 침대 설치뿐. 오늘 하루 종일 틀여박혀서 음악을 듣는데 이렇게 좋은 리스닝 환경을 가져본 건 처음이다. 홍대는 코앞이고 한강도 그러니 주변 환경도 매우 좋다 아니할 수 없다. 주방 세팅이 되면 오랫만에 요리 라이프도 시작하고, 역시 집에 쌓아둔 와인과 리큐르들을 모두 가져다 두려고 한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굿 뮤직과 함께 한잔하는 꿈같은 생활, 또는 된장 라이프가 펼쳐지려나.
by 김작가 | 2008/05/18 21:15 | 상수일지 | 트랙백 | 덧글(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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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玄雨 at 2008/05/18 21:28
우와~ 드디어 완성이시군요 축하드립니다~!
Commented by LH1 at 2008/05/18 21:48
와우...좋아요 좋아!
근데 퇴폐적인것과는 거리가 먼 분위긴데요?
Commented by mookie at 2008/05/18 21:48
한잔 하시죠. ㅎㅎ
Commented by 레이뒤피 at 2008/05/18 22:39
우아 축하드려요~ 제대로 부러워요 ㅎㅎ
Commented by 올~ at 2008/05/18 22:52
카페.. 하니 생각나는것이.. 제가 토욜마다 여사장님덕분에..몹시편히 들러
머물던 홍대 아담한카페가..
글쎄.. 가게를 다른분께 넘기셨다는.. 우앙~~
(또 갈까.. 말까.. 흑흑..)
암튼 작업방 축하드리고요..
(흑흑..)
Commented at 2008/05/18 22:5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8/05/18 23:2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elle at 2008/05/18 23:33
작업실로 한번 고고씽? ㅋㅋ
Commented by 태엽이 at 2008/05/19 00:14
축하드려요~ 빈손과 선물에서 폭소했습니다^^
Commented by 꿈의대화 at 2008/05/19 00:51
근데 야동 볼륨을 줄이면 재미 없잖아요, 저는 사운드가 매우 중요한지라;;
Commented by Forever at 2008/05/19 01:11
우와! 축하드려요!!
Commented by 마약모자 at 2008/05/19 02:57
우와 부러워요 저런 공간..ㅜㅜ 아직 저는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로 애기의 레벨이라(;) 축하드려요 작업실 생기신거~ㅎㅎ 역시 집 구하는건 발품을 얼마나 파느냐군요;
Commented by lee at 2008/05/19 07:59
축하드려요..^^
Commented by 좀머씨 at 2008/05/19 08:10
정말 근사합니다. 근데 야동과 게임은 볼륨이 생명이라는데...
Commented by 비리 at 2008/05/19 09:14
테그가......ㅋ
Commented by 세류 at 2008/05/19 11:18
작업실 정말 멋지네요~ 'ㅁ'd
Commented by 사막늑대 at 2008/05/19 13:37
블로그 손님들 초대파티 하신다면 다른건 몰라도 술선물만큼은 할 수 있습니다~~ ㅋㅋ
Commented at 2008/05/19 14:3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nique at 2008/05/19 19:07
멋지네요 ^
Commented by 오므라이스 at 2008/05/19 23:57
고시원 사는 저로써는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ㅜㅜㅜㅜㅜㅜㅜㅜㅜㅠ
Commented by CUTNPASTE at 2008/05/20 01:53
나이쓰 방이로군요!
Commented by mookie at 2008/05/20 09:44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야동은 저 컴퓨터에 깔려 있을 텐데, 어차피 작업실로 같이 따라오지 않았나요? ^^a
Commented by shrek at 2008/05/20 16:08
그 부동산 어디시나요..
저도 방 얻어야 하는데 홍대근처는 하나같이 비싸요 ㅠㅠ
게다가 부동산 중계사 아줌마 한분은 어찌나 네가지가 없으시던지..한번에 질리게 만드시더군요 ㅠㅠ
Commented by 총천연색 at 2008/05/21 01:24
크하 축하드립니다!
이제 거의 다 끝나셨겠군요.

더 멋진 음악Life!
가시는 겁니다. :D
Commented by 김작가 at 2008/05/21 01:31
축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오며가며 마음 가볍게 들리세요. 차라도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대신 양손은 무겁게;)
Commented at 2008/06/07 13:5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김작가 at 2008/06/07 14:36
팔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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