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우유 <Aero>



모든 아름답지 않은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건 예술의 역사였다. 20세기 초 일렉트릭 기타가 발명된 이래, 기타의 파이오니어들은 온갖 소음과 굉음을 연주의 일부로 끌어들였다. 통제의 대상이 아니었던 노이즈또한 기술과 창작의 힘을 입어 숨겨져있는 아름다움을 빛낼 수 있었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을 정점으로 라이드, 슬로우다이브 같은 팀들이 노이즈의 신천지를 열었다. 어두컴컴한 클럽에 안개빛 노이즈를 뿜으며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그들을 슈게이징이라 불렀다. 구두를 뜻하는 shoe와 바라본다는 gazing의 합성어다. 말 그대로 연주하는 내내 고개를 숙이고 사운드 속으로 침잠하는 공연의 모습을 본 딴 말이다. 우리나라에도 아름다운 노이즈를 표현의 주된 무기로 삼는 밴드들이 있었다. 옐로우 키친, 데이드림, 잠, 우리는 속옷도 생기고 여자도 늘었다네 같은 팀들이 그 계보를 이어왔다. 이런 노이즈계 밴드들이 애호가들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세력을 형성하지 못했던 건 그들 대부분이 단명했기 때문이다. 절정의 순간이 찾아오기 전에 사라졌다. 원없이 환호하기도 전에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해야했다.

비둘기 우유는 이 아쉬운 계보의 맨 끝 줄에 새로 명함을 낸 밴드다. 결성한 건 2003년이지만 군문제 등으로 꽤 늦게 데뷔 앨범<Aero>를 냈다. 지난 해 초 인터넷을 통해 화제를 모았던 'Siren'과 'Elephant'를 포함, 총 8곡이 수록된 이 앨범은 그들이 오랜 시간 착실히 축적해온 역량을 아낌없이 흩뿌린다. 두 대의 기타가 이지러지고 흐트러지며 스피커 주변을 부유한다. 침묵의 빈 공간은 그 노이즈에 의해 백일몽의 무대가 된다. 의미없던 잡음들이 질서와 논리를 갖추고 이제껏 맛본 적 없던 황홀경을 활강하게 한다.  이 잿빛 노이즈의 파도 뒤에 숨어, 혹은 위에 얹혀 남녀 보컬은 갓 잠에서 깨어난듯, 혹은 아직 꿈속에 있는 듯 나른하게 다른 소리들과 하나가 된다. 시선 없는 목소리다. 방향없는 연주다. 벽속에 스며들고 땅속에 빨려드는 아스라한 소리의 입자들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이들의 소통방식이다. 무의식 속에 잠들어있던, 그래서 열두개의 음표라는 기호만으로는 꺼집어낼 수 없던 아름다움을 비둘기 우유가 이끌어낸다. 이리 저리, 바람이 분다. 예측할 수 없는 저녁에. 흩날리는 벚잎을 한 가득 안고서.



Elephant

by 김작가 | 2008/04/09 21:24 | 음악이 해준 말 | 트랙백 | 핑백(1)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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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으로는 꺼집어낼 수 없던 아름다움을 비둘기 우유가 이끌어낸다. 이리 저리, 바람이 분다. 예측할 수 없는 저녁에. 흩날리는 벚잎을 한 가득 안고서. 原文地址:http://zakka.egloos.com/3695964 分享到:豆瓣 新浪微博 开心网 人人网 Facebook Twitter Tags: Asia Echo | Vidulgi OoyoO ... more

Commented by -浪- at 2008/04/09 22:11
아 좋네요.
처음 알게 된 밴드인데 사야겠슴다:)
Commented by roho at 2008/04/09 22:30
좋네요 정말. (졸네요-라고 썼다가 지웠다는)
Commented by 졸렌호펜 at 2008/04/09 23:28
영어표기가 인상적이네요.
Commented by -浪- at 2008/04/11 19:30
이 엘범 마지막 믹스는 왜 넣었는지 ㅠ
Commented by nh at 2009/05/11 15:44
잘 보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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