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와 아이들, 그리고 서태지

1992년 3월 어느 토요일, <특종! TV연예>의 신인 발굴 코너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이 회오리 춤을 선보였을 때, 기성 세대는 요상하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충격에 휩싸였다. 가요는 듣지 않겠어, 오직 록의 길만을 걸을 뿐이지라고 허세를 부리던 나도 그 '우리'의 한 명이었다. 소방차와 김완선을 로우틴 시절에 겪었던 우리였다. 하지만 서태지는 한국에선 나올 수 없었던 것 같았던 랩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노래 중간에 스래시 메탈의 기타 리프까지 도입했다. 가요계 인사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의 떫더름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 날부터 10대들이 즐겨 듣던 라디오에서는 거의 매일 '난 알아요'가 흘러나왔다. 신드롬은 폭풍처럼 몰아닥쳤다. 너바나가 미국 음악의 90년대를 'Smells Liike Teen Spirit'으로 열어 제꼈듯, 서태지와 아이들은 '난 알아요'로 그 역할을 했다. 카메라 기사들의 넋을 뺐다는 현란한 춤, 랩과 댄스와 록이 녹아있는 노래, 컬러 TV가 원했을지도 모를 그 형광색 의상. 게다가 활동중단이후 새 앨범으로 컴백하는 마케팅 전략까지. 그것은 80년대의 대중음악과 90년대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선을 긋는 모든 것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로 인해서 우리는 90년대를 80년대의 연장이 아닌, 전혀 새로운 10년으로 인식하게 된 거다.

그들은 새 앨범을 발매할 때 마다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항상 짐작을 벗어났고 예측을 뛰어넘었다. 그들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명반이라 할 수 있는 2집의 '하여가'가 처음 방송됐을 때는 친구들끼리 전화를 걸어 "야, 방금 '하여가' 봤냐'라며 평을 나누는 희귀한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 땅에서 영원히 비주류일것 같았던 록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3집으로 한 때나마 메인스트림에 올랐다. 록을 기조로 하되 힙합을 도입한 4집은 그 후 '장르 백화점'이 됐던 90년대 중반 주류 음악의 벤치마킹 대상이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데뷔에서부터 해산할 때 까지, 음악은 물론이고 그들의 모든 것은 초점 중의 초점이었다. 그들로 인해서 90년대에 청춘을 맞이하고 보낸 이들은, '우리 세대의 음악'이라는 집단무의식을 향유할 수 있었다. 앨범을 낼때마다 벌어지는 기성세대의 트러블이 그런 세대의식에 불을 지폈다. 그래서 대중문화에 담론이란 개념이 도입됐고 대중음악은 건국이래 처음으로 연구대상이 됐다. 즐기는 걸 넘어 더 알고 싶다는, 낯선 충동이 폭발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90년대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언더그라운드에서는 헤비 메탈 아니면 하드록 일색이었고, 방송에서는 발라드의 르네상스가 펼쳐지던 시대였다. 그런 환경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은 해외 최신 장르를 실시간으로, 그것도 최초로 이식했다. 영어로만 듣던 노래를 한국어로 들을 수 있게 됐다는 청각적 체험을, 율동이 아닌 춤을 볼 수 있다는  시각적 체험을, 서태지와 아이들은 90년대의 아이들에게 선사했던 것이다. 하지만 인디 음악이 개화하면서 해외 음악은 실시간으로 이 땅에서 연주됐다. 더이상 '실시간 이식'만으로는 선봉의 깃발을 잡을 수 없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서태지는 솔로로 데뷔한 후에도 계속 기존의 노선에 충실해왔다. 뛰어난 프로듀서이자 탁월한 마케팅 전략가로서의 재능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러나 창작의 프론티어로서 그의 자리는 굳건한가? 나에게는 의문이다. 90년대의 서태지와 아이들에 대해서는 기꺼이 찬사를 바칠 수 있지만 2000년대의 서태지는 지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90년대가 지나가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주간동아 원고

by 김작가 | 2008/04/01 10:06 | 생각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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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비리 at 2008/04/01 10:12
그래도 전 태지매냐-ㅅ-)ㅎ
Commented by CrysTal at 2008/04/01 12:39
제목이 적절하시군요.
서태지와 아이들의 그와 서태지...
전 둘다 좋습니다만.. ㅋㅋㅋㅋㅋ
Commented by 오즈 at 2008/04/04 22:55
저도 둘 다 좋습니다만...-_-b
Commented by 오스칼 at 2008/07/20 23:52
서태지만 나왔다하면 눈이 간다는..좋습니다..
Commented by 포울 at 2009/06/11 00:36
60년대가 지났으니 비틀즈도 무시하시고
70년대가 지났으니 레드제플린도 무시하시고
80년대가 지났으니 메탈리카도 무시하시고
90년대가 지났으니 너바나도 무시하시고

서태지는 왜 창작의 프론티어로 그를 존중할 짬도 안되던 것들에게
더이상 인정 못하겠다는 소리나 듣고 살아야 할까..
'깜'도 안되던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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