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 <자가당착>



2000년대의 한국 모던 록은 욕망을 감추고 있었다. 델리 스파이스나 언니네 이발관이 만들어낸 감성의 우산 아래 있으면서 다른 옷을 입는 식이었다. 대부분은 그 우산 밖으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어설픈 아류가 범람했다. 고작해야 한 장, 많아야 두 장의 앨범만 남기고 사라졌다. 모던 록의 거품이었다. 정체성을 제대로 안 갖추고 출발했으니 차이도 생기지 않았다. 이 밴드의 CD를 다른 밴드의 케이스에 끼워 넣어도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능력도 없으면서 솔직하지조차 못한 이들의 음악이란 게 대게 그렇다. 아무리 엘리엇 스미스, 존 메이어의 이름을 외치면 뭐하나. 발은 90년대 한국 모던록을 따라가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나루의 데뷔 앨범은 솔직하다. 이 앨범은 언니네 이발관이 불렀을지도 모를 델리 스파이스의 노래같다. 혹은 우연히 창고를 뒤져 발견한, 90년대 모던 록 밴드의 데뷔 앨범같다. 앨범 여기저기 스매싱 펌프킨스, 위저 등 90년대를 상징했던 감성과 방법론이 짙게 묻어있다. 자가당착>이란 앨범 타이틀이 최근 신진 기타팝 밴드들이 겪고 있는 오류를 말해주는 듯 하다. 평범한 리스너에서 단숨에 뮤지션이 된 후배를 언니네 이발관 출신의 정무진과 델리 스파이스 출신의 최재혁이 각각 베이스와 드럼 연주로 도왔다.  인위적 단절이란 지금 이명박 정부가 그렇듯, 스스로 부작용을 낳는다. 주변에서 늘 들렸던, 그래서 감성의 성장에 자양분이 됐던 음악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앞 사람이 건네준 바톤을 꾹 쥐고 뛰면 된다. 음악은 이렇게 릴레이처럼 흐른다. 부채는 청산하고, 자산은 계승하면 된다. 지각변동도 그런 과정 안에서 생긴다.

이 앨범은 90년대 모던록이 건네준 바톤을 꽉 지고 뛰는 충실한 주자다. 이렇게 솔직한 주자는 없었다. 바톤을 받을 다음 주자는 또 누구일까. 아니, 그가 계속 쥐고 있는 바톤은 트랙의 중간에서 어떤 모습으로 바뀔까.


Mr. Right

by 김작가 | 2008/03/26 20:28 | 음악이 해준 말 | 트랙백(2)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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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ONELINEDRAWING at 2008/05/09 19:58

제목 : 나루 - 자가당착
사실 밴드 이름만 듣고 앨범 근처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나루'라는 이름은 '재주소년'과 같은 골방소년소녀 모던 포크락 밴드같은 느낌이 물씬 났거든요. 선입견이지만 이런 선입견이 선택의 시간을 줄여주는 경우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이 앨범은 스킵했었습니다. 아, 물론 '재주소년'류의 포크밴드를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그저 그런 스타일의 음악은 지금과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앰프에 둘려쌓여 있는 외계인을 묘사한 앨......more

Tracked from Snapp's REVIEW at 2008/09/17 15:43

제목 : [앨범리뷰] 나루(Naru)-자가당착
아마 M모 음악 사이트에서였을 것이다. 타이틀곡 의 전주를 듣고 정확히 5초만에 "이 CD 사야겠군..." 이라고 마음먹었었던 것 같다. 그만큼 타이틀곡의 도입부 하나만큼은 올해 발매된 모던 록/인디 앨범 중에......more

Commented by 말보로미디엄 at 2008/03/28 22:53
오우 무진이형 이름은 참 오랫만에 이렇게 만나게 되는군요;
음악도 좋고 6월에 한국가면 한장 사야겠습니다.
Commented by jay at 2008/03/29 14:12
고양이이야기 앨범에서 '연극'을 참 좋아했는데.
밴드인줄 알았더니 '한분'이였군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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