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미지로 노래한다
로로스의 데뷔 앨범 <PAX>를 들으면 거대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있는 이미지 말이다. 그것을 꿈이라 불러도 좋다. 로로스는 우리를 꿈의 세계로 이끄는 여행 가이드다. 홍대앞 카페에서 그들을 만났다. 로로스가 걸어온 짧은 길과, 걸어갈 먼 길을 살펴봤다.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사진 출처
로로스 싸이월드 클럽)
데뷔 앨범 <PAX>가 꽤 반응이 좋다고 들었다. 어느 정도인가.
초판은 다 팔리고 재판을 찍으려고 한다. 주로 음악 애호가들이 많이 찾는 레코드 샵에서 나가는데, 공연장에서도 갖다 놓으면 다 팔린다. 생각했던 것 보다 반응이 좋다. 앨범을 낼 때는 일반 대중에게는 기대안했고 매니아들도 지지반, 욕 반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두루 좋게 봐주시는 것 같다. 홍보를 특별히 하는 것도 아닌데 찾아오는 반응이라 기분이 좋다. 우리가 원했던 데로다.
피부로 느끼는 반응이 있나.
앨범 내고 클럽 빵에서 단독 공연을 했는데 리허설 끝나고 밖에 나왔더니 눈앞에 줄이 길게 서있는 거다. 그 기분은 말로 형용할 수 없다. 이제 시작일 뿐이지만 우리가 이 순간을 만들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입장관객이 250명쯤 된다.
리더이자 송라이터인 도재명은 원래 잠에서 드럼을 치지 않았었나?
드러머 이전에 작곡을 하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 류이치 사카모토를 듣고 음악에 빠졌고, 공연을 보러 다니다가 중간에 드럼으로 빠졌다. 그렇게 드러머로 활동하던 어느 날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가 양다리를 걸치니 작곡에도 드럼에도 전념이 안됐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처음부터 밴드를 염두에 두고 작곡을 시작한건가.
공연은 생각안하고 집에서 혼자 만들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줬더니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용기를 줘서 진실이와 둘이 시작했다. 그 때가 2004년이다.
복남규는 스키조의 드러머로도 활동하고 있다. 어떻게 합류했나.
스키조 이전부터 도재명과 드럼 연습실을 같이 쓰면서 서로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줬다. 그때 내가 재명이에게 시우르 로스를 처음 알려줬다. 몇 년 뒤에 재명이가 나타나더니 ‘너의 오른 쪽 안구에선 난초향이 나’를 들려줬는데 인상 깊었다. 저 친구에게 이런 면이 있구나 싶었다. 나도 사이키델릭이나 광활한 기타 사운드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로로스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멤버 중에 첼로가 있다는 게 특이하다.
밴드 멤버가 모이는 과정에서 스트링이 있으면 우리 음악과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밴드에 있는 친구가 로로스 리허설을 보더니 마침 스트링이 있으면 드라마틱할 것 같다고 하더라. 아는 사람이 없다고 했더니 제인을 소개시켜줬다. 제인은 미국에서 현대작곡을 전공했다.
김석은 어떤 인연으로?
재명이가 실용음악과입시를 준비할 때 같이 학원을 다녔다. 그런데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시작해서 시험도 못치고 프랑스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음악 학원을 다니다가 2005년 여름에 들어왔다. 재명이가 밴드를 하는 데 베이스가 없다고 해서 공연 전날 합주에 베이스 들고 놀러갔다가 한번 같이 해보고 다음 날 바로 공연도 같이 했다. 그렇게 얼렁뚱땅 들어가게 됐다. 고마웠던 게 첫 공연 끝나고 밥먹으로 갔는데 진실이가 한 번 공연 했으니 다른 사람은 받기 싫다, 계속 같이 하자고 하더라.
그럼 최종민이 제일 늦게 합류한 거네.
재명이와 실용음악과 동기다. 로로스 첫 공연 때였다. 그 때는 재명이와 진실이, 둘 만 있을 때다. 그런데 진실이가 집에 일이 생겨서 땜빵으로 간거다. 그 전에는 로로스 음악도 못 들어봤다. 건반치면서 노래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반신반의하다가 공연을 재미있게 잘하더라. 그 후 계속 백업 멤버처럼 활동하다가 진실이가 입대하고 정식으로 가입했다. 그 전에는 이태원에서 블루스 기타를 쳤다. 지금도 블루스를 가장 좋아한다.
결성 초기와 지금 음악은 어떻게 다른가.
초반에는 일렉트릭 기타보다는 어쿠스틱이 주를 이뤘다. 종민이가 들어오면서 일렉 기타 사운드가 급격히 늘어났다. 진실이가 자기 스타일이 강한 반면, 종민이는 다른 의견들을 많이 받아주는 입장이다. ‘너의 오른 쪽 안구에선 난초향이 나’의 경우 싱글과 <PAX>의 느낌이 많이 다르다는 말을 듣는데 원래 원했던 느낌은 <PAX>에 실린 버전이다.
초기에는 몰라도 지금은 음악이 음악이 굉장히 이미적이다.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며 코드를 진행하면서 곡을 만든다. 그 이미지는 노래 제목이 된다. 나머지 가사는 그 이미지에 대한 부가적 설명이다. 처음에는 한글도, 영어도 아닌 이미지에 맞는 발음을 나열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최소한 멤버들끼리는 소통을 해야 하니 의미전달이 확실한 말들을 끌어 쓰게 됐다.
그렇게 이미지 위주면 편곡할 때 힘들지 않나.
우리도 놀랐던 게 처음에 ‘비행’이라는 노래를 합주하는 데 멤버들 모두 진짜 비행하는 생각을 떠올리면서 연주를 했던 거다. 보통 곡의 뼈대를 쓴 후 편곡할 때는 연주 용어를 쓰면서 의견을 소통하는데 우리는 이런 식이다. 사막에서 들소때가 달려올 때의 모래먼지 같은 사운드를 기타로 표현해달라. 드럼은 철근소리 같게 쳐달라. 그러면 그 이미지에 걸맞는 연주들이 나오더라.
앨범의 사운드가 좋은 편이다. 신인 치고는 돈이 꽤 많이 들었을 것 같다.
한국문화컨텐츠진흥원에서 인디 레이블 지원 사업이 있다. 1000만원을 지원 받았는데 다 쏟아부어도 모자라더라. 그 돈 남겨봤자 뭐하냐는 생각에 마스터링도 미국에서 하고...욕심을 많이 부렸다.
한국 대중음악 현실에서 로로스는 활동이 참 애매할 수 있다. 주류 가요계의 정서도 아니고 행사에 걸맞는 호쾌한 사운드도 아니다. 굳이 말하면 예술계? 가난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웃음)
지금 있는 길 중에서 찾기 보다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보고 싶다. 일단은 외부적인 문제보다는 우리 음악을 완성시키는 데 주력하려고 한다. 1집에서 아쉬웠던 부분이 있었는데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났기 때문에 사비 털어서라도 2집에 집중할 생각이다. 어떻게 활동하느냐, 어떻게 생활을 하느냐 보다는 우리의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지금 1집도 그렇기 때문에 입소문이 난 게 아닐까.
보다 나은 작업 환경을 위해서 안정적인 레이블이나 기획사에 들어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한국 기획사들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밴드를 보는 게 아니라 투자한 것만 빨리 뽑아내려는 것 같다. 인디든 메이저든 대중적, 음악적으로 훌륭한 곡 하나를 쓰면 다른 건 다 필요없고 것만 원하는 회사가 많다. 그런 스타일로만 가라는 거다. 물론 어느 나라나 메이저는 마찬가지겠지만 우리의 경우는 그 중에서도 안 좋은 부분만 보고 따라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우리나라에 역량있는 뮤지션은 많은데 장기적으로 가는 팀이 별로 없는 건 그런 환경 탓도 있을 거다.
만약 로또1등에 당첨되면?
얼마전에 로또 얘기를 하면서 당첨되면 만장굴 가서 녹음하자, 막 이러는 데 곡 벌써 당첨된 사람들 같더라.
어쨌든 돈은 생활에서나 음악에서나 절실한 문제다. 컨텐츠 진흥원의 인디레이블 지원 사업도 없어졌고...
이십대 중반이니까 슬슬 현실적인 게 보이지만 아직까지는 묵과할 수 있다. 그러나 나중에는 어떻게 될까, 모르겠다. 사실 돈은 생활을 위해서보다는 편하게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나 장비등을 갖추기 위해서 필요하다. 우리가 원하는 사운드가 딱 있는데, 그게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작업이 지체될 때 마다 그런 걸 느낀다. 우리 음악에 대해 사람들이 아쉬워 하는 게 있다. 공감한다.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 지도 알고 있다. 그런데 돈 문제로 귀착 될 때 로또도 생각하고... 결국 개인적인 사정보다는 밴드 차원에서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십대 중반이니까 현실적인 게 보일 땐데, 아직까지는 그걸 묵과할 수 있지만 나중에는 어떻게 될까. 돈은 생활보다는 보다 편하게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나 장비 등에. 원하는 사운드가 딱 있는데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작업이 지체될 때 느낀다.
요즘 라이브 클럽 분위기는 어떤것 같나.
예전에는 스타 밴드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클럽도 연명해야하고 스타 밴드도 많아지면서 그들 위주로만 공연하려는 분위기가 있다. 그러다보니 혁신적인 밴드의 탄생도 힘들어지고 다양한 밴드들이 나타날 공간이 점점 없어지는 느낌이다.
가능성만 보여준 채 금방 사라지는 밴드도 많다.
개인적 경험에 비춰보자면, 스무살 때 만났던 멋진 뮤지션들이 지금은 대부분 음악을 안 한다. 버티지 못한거겠지. 조금 더 자기 색깔을 찾는 데 고민할 시간이 있었을 텐데, 그런 시간을 좀 벌 수 있었으면 좋을 텐데.
밴드의 정체성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가끔 다른 밴드들을 보면 트렌드가 바뀔 때 마다 그 음악을 쫓아가는 일이 있다. 어제까지 브리티쉬 록을 하다가 이모가 뜨면 멋지게 액션을 해가며 이모를 하는 거다. 음악이야 얼마든지 바뀌는 거지만 뿌리 자체를 바구는 게 문제다. 그건 뮤지션이라기 보다는 어설픈 엔터테이너가 아닐까. 더 문제는 그렇게 해서 멋지게 변하면 얼마든지 박수를 칠 수 있겠지만 마이너를 빠져나가기 위해 어설피 변하는 게 대부분이라는 거다. 물론 우리도 각성해야할 점은 있다. 시규르 로스에 대한 경외심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다.
그런 약점을 극복한다면 로로스는 지금 인디 음악계에서 미래가 주목되는 팀의 하나다. 본인들이 생각하기에 현재 어떤 단계라고 생각하나.
앞으로 무한히 진화할 음악이 아닐까. 지금 느낌은 갓 태어난 아기다. 자라야 한다. 스폰지로 비유하자면 바짝 말라있다가 물을 빨아들이는 과정이다. 여러 가지 사운드와 멤버들의 생각을 빨아들여서 내부에서 융화중이다. 지금은 우리만의 것을 만들어내는 과도기다.